조글로로고
꿈을 향해 뛰고뛰는 나그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2일 15시34분    조회:79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허만석

“烤牛仔” 허만석사장의 이야기

훤칠한 키에 약간의 고수머리, 항상 얼굴은 밝게 빛나고 웃음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런 모습이여서 보는 사람마다 나이보다 많이 젊어보인다는 평이다.

허만석은 나라가 해방되기전인 19세기 40년대에 양천허씨집안의 3남3녀중 둘째로 태여났다. 형제는 많은데 부친은 일찍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다보니 중학다닐때 공부성적은 항상 학급에서 앞자리를 치지하였지만 대학교문앞구경도 못한채 떠밀려 사회로  진출하였다.

가난한 집의 애가 철이 빨리 든다. 만석이는 연약한 홀어머니의 량어깨에 힘이 되여주려 학교에서 나오자부터  시멘트공장에 들어가 무겁고 어지러운 일을 시작하였다. 월급은 받는 족족 어머니한테 보내여 집살림에 보태쓰도록 하였다. 시멘트공장에서의 2년간 견습공 생활은 고생도 많았지만 외로움의 고통이 더 컸다. 적게 벌어 배가 고파도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은 생각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짐을 꿍져 교하蛟河로 돌아왔다.

생산대에서는 만석이 돌아오기 바쁘게 또래중 중학교물을 먹은 똑똑이가 왔다며 사원들의 로동공수를 기입하고 통계내는 기공원 記工員 책임을 맡겼다. 되글을 말글로 써먹게 된 만석이는 례절도 바르게 어른들을 존중하며 맡아서 하는 일마다  실속있게 해냈다. 그런 보람으로 그해 년말에 현금출입금장부를 관리하는 회계會計로 발탁되였다. 그뒤로 6년간은 생산대과수원농장에서 과수원원장을 담당하고 10년은 생산대장을 역임하였다. 그뒤로는 쭈-욱 식당을 경영하는 사장으로 일해왔다. 지금 북경에 가서 ‘허만석’이름을 대면 조선족들이 다 알아주는 烤牛仔사장으로 통하지만 고향인 이곳- 교하에 오면 사람들마다 ‘허대장’으로 친절하게 불린다.

“로후는 인생의 마지막 황금시기다. 차례지는 매일마다 값지게 보내야 한다.”이는 허만석사장의 현재 좌우명이자 꿈이다. 꼬박 여섯개의 띠해년들을 지나보내고 얼마전부터 하던 일을 서서히 줄이기 시작하였다. 로후로 설계한 만년의 계획에 따라 길림-청도-북경-서울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각지의 문우들과 문학모임을 갖는다. 고생끝에 누려보는 행복으로 만석사장은 감회가 새롭다.

살만하다는 말이 나올적마다 허만석사장은 털면 먼지뿐이던 가난했던 나날들을 회고한다. 색시를 얻어 장가는 들어야는데 이불 두채 마련하기도 어렵다. 돈 빌리기는 매맞아 죽을만치 싫은 일이였지만 언약을 맺어놓은 남의집 귀한 딸을 묵여둘수는 없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웃집들의 문을 두드려 약간의 돈을 빌려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어린 동생들 넷은 나처럼 공부를 중퇴시킬수 없다!) 당시 어린 가장으로 된 만석이의 맘속에 굳힌 결심이다. 그런데 손에는 쥐여진 돈이 없다. 집에도 현금이라고 먹고 죽으려해도 없다. 가난이 진저리나게 싫어진건 그때부터였다.

그토록 가난에 모대기면서 만석이는 어느 일터를 가도 책만은 신변에서 놓을줄을 몰랐다. 보는 사람마다 장래 큰 인물이 될 청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앞으로 꼭 돈 잘 버는 사나이로, 문학에 뜻을 둔 작가로 되리라!) 이는 당시 만석의 정열이 끓어넘치는 목표이고 꿈이였다.

80년대 가을, 마침내 돈버는 기회는 왔다. 나라에서 집집에 토지를 나눠주어 농사짓는 호도거리책임제 정책이 실시된거다. 만석은 등소평주석의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다 훌륭한 고양이다”는 주장과 “일부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져 본보기로 되야 한다”는 주장에 힘입어 57만의 인구를 헤아리는 교하판에 3만의 인구로 서른개도 넘는 자연촌들에 널려 거주하는 조선족들중에 첫 일인으로 담대하게 식당운영에 선손을 썼다.

기차역앞에 자그마한 두간집을 사고 “천지” 라는 상호명의 식당을 운영하였다. 다섯개의 상을 차릴수 있는 좁고 작은 공간이였지만 불고기와 냉면맛이 입소문을 타고 하루에 한식탁에만 손님이 스무번도 넘게 바뀌는 성황을 이루었다. 손님과 벌어지는 돈은 정비례를 이루었다.

워낙 가난하여 어렵게 살다 돈이 좀 모여지니 일손을 놓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듯싶었다.

‘고사리도 꺾을때 꺾는다’고 만석사장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문학의 뜻을 키우려는 갈망이 마음 한구석에서 굴뚝처럼 솟아올랐다.

순옥
2013 두만강 실화응모작품

길림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문화현장, 오늘은 대외경제무역대학의 교수이며 중국 조선족문단의 이름난 수필가이신 서영빈선생님을 모시고 중, 한 양국 수필문학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래는 그 인터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적습니다. [img count='1' width=350' img] 기: 안녕하세요? 서: 안녕하세요, 저는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
  • 2005-08-29
  • 사회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오랫동안 번역사업에 종사해왔고 최근에 중한 실용번역사전을 펴낸 중국 민족번역국의 전홍열 교수를 모셨습니다. 녜, 반갑습니다. 전홍열: 반갑습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번역사업에 종사해온 년한이 어떻게 됩니까? 전홍열: 지금까지 30년정도로 번여사업에 종사해왔습니다. 사회자:...
  • 2005-08-29
  • 중국 100대 명교수의 한사람-채미화 교수 인터뷰 정리 내용- 중국 100대 명교수의 한사람으로 불리우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채미화 학부장, 교사생활에 종사한지도 어언 22년이다. 채미화 학부장을 만나 그녀가 그동안 걸어온 길들에 대해 알아본다. 기자(이하 기로 약칭):22년간 교사사업에 몸담아 오면서 그동안 걸어온 길...
  • 2005-08-29
  • 료녕성 심양시 소가툰구 신흥촌은 현재 1200여호(그중 호적을 갖고있는 호수가 820호이고 동북3성 각지에서 모여온 류동호수가 450여호)에 총인구 4000여명이 모여살고있는 조선족마을입니다. 지금 조선족사회는 일대 변혁의 소용돌이속에서 생존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많은 조선족학교들이 페교되고...
  • 2005-08-28
‹처음  이전 358 359 360 361 362 36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