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근면과 성실로 금자탑을 쌓은 지승원 화백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22일 10시56분    조회:1018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지승원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조선족의 대표적인 원로 서예가이며 화가인 지승원선생(84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문여기인”라는 사자성구가 선생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1946년 《길동일보》(《연변일보》 전신) 창간시절부터 근 25년간 《연변일보》사 통신원, 미술편집으로 사업한 지승원선생은 체계적인 미술공부를 한적이 없지만 자신의 피타는 노력으로 한폭 또 한폭의 서예, 미술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지승원선생은 우선 서예가로 건국초기의 중국조선족서예의 공백을 메웠다. 선생은 1954년에 《동북조선일보》(《연변일보》 전신) 표제를 한어문자로 쓴것을 필두로 1956년부터 1972년까지 도합 4차 《연변일보》(조선문자)의 표제를 썼는데 오랜 기간 선생이 쓴 표제가 사용되였다.

조선문자 글꼴개발에서도 선생은 선후로 명조체, 고딕체, 송조체 등 글꼴과 조선문자 컴퓨터 폰트인 해서와 명조체를 개발하였다. 1992년에 개발한 해행체, 예서체 조선문자 글꼴은 한국이나 조선에서도 아직 개발하지 못한 문자체로 우리 조선문자의 형태를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1982년에 석희만, 김영호 등 화가들과 함께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으로 되고 조선화, 중국화, 만화, 민속화 등 미술쟝르를 골고루 섭렵한 다재다능한 미술가인 선생은 1986년부터 2004년사이 주덕해동지기념비, 연변혁명렬사기념비, 연길항일감옥투쟁기념비,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등의 조형설계를 맡기도 했다.

1953년에 지승원선생이 창작한 30폭으로 된 련속화 “농민속에서 나온 새 인물―김준희”는 그의 처녀작이면서 대표작으로 제1회 길림성미술전시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으며 전국미술전시회에도 입선되였다.

1970년 연변박물관에 전근하면서 1990년에 정년퇴임할 때가지 20년간 선생은 예술부 주임 및 제3기 연변미술가협회 부주석, 제4기 연변미술가협회 고문직을 력임하면서 미술사업에 매진하였으며 2005년 8월,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60돐”을 계기로 “연변조선족항일투쟁사”개인전(125폭 전시)을 가졌고 또 이를 토대로 2008년 10월에는 《조선족항일투쟁사》(200폭 수록) 화책을 출판하였다.

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 우리 민족의 많은 유물들을 접하면서 지승원선생은 민속화창작에 열과 성을 몰붓기 시작, 지금까지 선후로 “장백산팔경도”(8폭), “중국조선족민속도”(8폭), “‘두만강’―중국조선족사화” “‘두만강’―중국조선족사화”(7메터), “‘장백산’―조선족혁명투쟁사화”(8메터), “조선족민속유희도”(8폭) 등 민속화 근 200여폭을 창작하였다. 그중 민속화 “봄”, “봄제비”, “저녁무렵” 등 다수의 작품이 일본, 미국, 한국 등 국제예술문화교류전에 출품되였다. 이런 공로로 선생은 2007년 12월 연변주당위와 주정부로부터 “민족문화사업 특수기여인물”이란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미술에 심취한 68성상, 고향과 중국조선족의 풍토인정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 한평생 진실하고 말쑥한 삶을 살면서 우리 민족의 옥결 같은 혼백을 섬세하고 간결하고 우아한 화폭으로 재현해온 지승원선생을 마주하면서 시 한수가 저절로 떠오른다. “시내물의 흐름을 찬히 보아라/ 천리만리 먼먼 길도 자신만만타/ 흐르고 흐르고 내처 흐르네”(―김성휘 “시내물”)

김인덕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ㅡ료녕SK실업부동산개발유한회사 리사장 홍종국씨 “그룹에서 조선족인 저를 이렇게 인정해주고 밀어줄줄 몰랐습니다. 그 기대에 보답하고저 열심히 일하고있습니다.” 패기와 자신감에 벅차있는 홍종국씨(1963년생), 현재 그는 료녕 SK실업부동산유한회사 리사장, 단동SK물류유한회사 총경리를 맡고 단동지역의...
  • 2013-11-19
  • 문주호씨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진 록강사회구역에 거주하고있는 문주호(45세)씨의 나무뿌리조각이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고있다. 나무뿌리조각공예에 남다른 애착심을 갖고있었던 문주호씨는 20년전인 1992년부터 안해 안춘옥(45세)씨와 함께 부지런히 산과 골짜기를 넘나들며 모양이 각이한 여러가지 마른 나무뿌리를 주어...
  • 2013-11-19
  •  연길윈워터전기유한회사 총경리 박무일씨 창업스토리    연길윈워터전기유한회사 총경리 박무일씨는 20년 동안 순간온수기개발에 몰두하여 창업의 희열을 맛보고있는 창업인이다. 1982년 동북공학원(지금 동북대학) 주물전업을 졸업한 박무일씨는 주물에 남다른 흥취가 있었고 매사마다 끈기있게 달라붙었...
  • 2013-11-19
  • ‘예술구국(藝術救國)’. 이 짧은 문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조성환 선생이 독립운동 동지였던 한흥교의 아들인 항일음악가 한형석에게 ‘예술을 통해 나라를 구하라’며 내려준 훈구다. 먼구름 한형석은 한일강제병합이 강행됐던 1910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불운한 해에 태어난 ...
  • 2013-11-18
  •       전통산업의 재발굴과 문화식품 시대를 선도하다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 리동춘 사장 “21세기는 문화식품시대이다”라고 고취하는 사람이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의 리동춘 사장이다. 그는 우리민족의 전통식품인 된장과 전통술의 재발견을 통해 ‘오덕 장로주&rsqu...
  • 2013-11-15
  • [화제집중] 장경률 연변일보 론설위원(전 편집국장)과 펼친 담론 장경률 선생은 지난 11월 3일 동포세계신문사를 방문해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역할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쟁론이 벌여졌다. 이 쟁론에 화두를 던진 장경률 길림성 조선문신문잡지 심열위원 연변일보 론설위원(전...
  • 2013-11-13
  • “나시족은 운룡설산을 자신들의 정신적지주로 생각한답니다. 하늘이 손에 잡힐듯 하지만 하늘대신 산을 품은 나시족의 정신은 만년설만큼 고결해 보였습니다” 길림성 지질국 연변지질 제6조사원에서 니화석 지질학자로 근무했던 김한산(73살)선생이 건네는 첫마디였다. 그는 째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2013-11-13
  • 동항시정기수산물양식기지 오기범총경리의 창업담   관전정기수산물양식장, 동항시정기수산물양식기지 오기범(1966년 생)총경리가 동항시바다가에서 민물고기 양식과 수출로 흥부박을 캐고있다. 연길태생인 그는 지난 1983년에 연변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연길시방직공장에 배치받아 10년간 사업을 해오다가 1993년...
  • 2013-11-12
  •  조선족 미술계 원로 김영호 옹    11월 5일 오후 2시, 기자가 중국 조선족 미술계의 원로이자 거목인 김영호화백(83세)의 저택을 찾았을 때 선생은 한창 래년에 연변대학 미술학원 미술전시홀에서 마련될 수채화 중심의 개인전시회(약 40여폭)에 출품할 작품을 창작중이였다. “오전에는 약 3시간 동...
  • 2013-11-08
  •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새회장에 뽑힌 이건기 싱가포르 한나프레스 사장. "갈라진 한인 언론인 단체 통합에 앞장서겠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현재 전 세계 한인 언론인들의 단체가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세계한언)와 재외동포언론인연합회(재언협)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 2013-11-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