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인간 오기철씨의 내심 들어본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9일 13시54분    조회:95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오기철
《리득 있으니 하겠지, 몰라줄때 제일 안타깝고》 《 돈 꾸어달라 할때 제일 딱합니다》

1, <<…달라>>는 줄전화에도 짜증을 모르는 오기철

 
지난 9월 27일, 기자는 작년 10월에는 전국소수민족참관단에, 올해 9월에는 중국장애자련합협회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 유일한 조선족대표로 참가한 왕청현배초구진봉림촌 촌민위원회주임(촌당지부서기 겸)오기철을 인터뷰를 했다.

이번 인터뷰를 기자는 그를 찾는 련속부절한 전화로 짜증을 겨우 누르며 참으며 요행 마무리를 지었다.

<<이는 처음 하는 속심말입니다>>

<<오주임, 또 3500원을 빌려 주세요…>>

아무튼 모든 전화는 오기철의 정상적인 사업전화외 거의 모두가 병자,고아, 약세군체들이 <<…달라>>는 전화였다.

<<사업을 해보니 농촌사업처럼 바쁜사업이 없습니다…>>

<<나는 대상의 마음을 아는데 대상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것이 너무도 안탑깝습니다.>>

<<심지어 일부 간부들마저 (그 사람이 호추(好处)가 없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며 후론을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찾아 다니며 내 속을 뒤집어 보이겠습니까?>>
기자에게 처음 한다는 말의 계속이다.

 -나한테는 봉림촌에서 나서 자란 20년 인정 밖에 아무도 없다. 봉림촌에 집이 있나 밭이 있나… 촌에서 일군을 하루 쓰면 120원을 주는데 내 일은 국가에서 발급하는 6000원 년금 외 모두 무상이다. 때론 일꾼들이 힘들게 했다고 내 몫을 품값으로 계산해 일꾼들을 더 주지만.

- 돈을 빌려 달라는것이 정말 딱하다. 나는 저금통장이 없다. 양돈수입은 거의 모두 약자부축사업에 돌렸다. 내가 빈곤부축을 하면서 빌려준 돈을 달라고 못한다. 줄돈은 있어도 빌려줄 돈이 없는것이 참 난처하다.

- 나도 바람은 있다. 나의 바람은 부거나 권력에 대한 바람이 아닌 내가 보통인간으로 세상에 태여 나서 사회에 필요가치를 얼마나 창조할수 있는가를 검증하려는 내인생가치에 대한 평가바람이다.
… … …

2012년 7월, 길림성농촌장애자사업대회에서 오기철의 발언을 들은 중공중앙위원이며 중국장애인련합회당조서기, 리사장인 왕신헌(王新宪)이 길림성성위서기 손정재가 그를 접견할 때 오기철의 사적을 특별히 곁드니 손정재는 그 자리에서 <<오기철은 진정한(实实在在的)도덕모범입니다.오기철사적선전을 잘하겠습니다.>> 고 하였다.
 아무튼 봉림촌의 200여 가가호호 모두가 오기철의 덕을 봤다며 자랑한단다
 
 

 
2, 잊지 못할 그 시각

 



<<이 사업은 선두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번 대표대회분조(길림성과 흑룡강성이 한조였음)회의에서 한 오기철의 발언이다.

- 장애자부축사업은 선두자가 있어야 한다. 정부에만 의거하면 안된다. 전 사회의 힘을 빌어야한다.

- 농촌에 돌아와서 약세군체라고 잡고 보니 모두가 장애자들이였다. 나의 10여 년간 감수라면 이들을 <<수혈>>(补助)이 아닌 <<조혈>>을 할수 있도록 부축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몇 만원을 보조한다고 해도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어 넣는 격으로 된다. 그들을 부축하여 자립의 길로 가게해야 한다.
오기철은 온 가정이 산속에서 17년간 오막살이 생활을 하다가 마을에 내려와 17살에 소학교1학년에 입학하여 25살까지 소학공부를 한 <<원시인>>, 지체장애자, 사회의 애물로 불리며 사람들의 기시를 받던 예민익(倪民益)을 <<보조→부축→자립>>으로 이끌어 <<무>>로부터 <<유>>로 이끌어 준 생동한 실례로 발언하였다.

<<새로운 형세하에서 장애자사업은 영광스럽고 책임이 중하다. 장애자사업은 인류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강불굴하는 내재적가치의 체현이며 사회적인 인도적관심과 문명진보발전의 수치가 담겨있는 사업이다. 우리는 마땅히 모든 장애자형제자매들과 손잡고 함께 분투하고 함께 발전하며 중국꿈을 실현하고 인류문명진보의 새로운 한 페지를 써내야 한다.>>

이는 오기철이 돌아와서 쓴 <<중국장애인련합회제6차대표대회출석유감(有感)(거대한 고무 영광스러운 사명)>>의 마지막 단락이다.
<<이제 3년이면…>>

오기철은 지난 15년에 해낸 일들을 회고하며 <<하도 하고 싶은일이니 해냈지 재교육을 받기 위함이나 농촌하방(下放)간부라는 신분이라면 당초부터 아름 차서 못했을것이다>>며 해낸 일을 반추했다.

오기철은 교회, 외국세력의 파견, <<머저리>>라는 등등 의심과 불신, 후론을 참고 이겨내며 <<나를 좋다고는 하면서도 비웃는 얼굴>>들과 웃음으로 참으며 지냈다고 한다. 자기가 귀향한후 진당위서기가 6번이나 바뀌였다며.

<<이제 3년이 남았습니다. 3년이면 제가 정년퇴직을 하는데다가 신통히도 촌민위원회주임 임기(6년)도 마감이 됩니다.>>

<<원래는 빈곤호만 대상하고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새농촌을 건설하는 중책에로 옮겨 졌으니 꼭 잘 해내야지요.>>

<<나는 1등밖에 모릅니다. 왕청현제1촌을 건설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제 3년후면 검증됩니다. 꼭 감탄할겁니다.>>

정년퇴직후 또 하고픈 일이 있는가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우리 민족민속박물관을 꾸려보겠다는 꿈이 언녕부터 있었는데…>>라는 혼자말로 보기 좋은 웃음을 지어보일뿐 확답을 안했다.
 

 

 
3, 영예로운 사명을 지니고.…
 


<<이만하면 내가 세계기네스북에 오를수 있을가요?>>

오기철은 귀향후 남을 돕는데 쓴 사재(私財)가 얼핏계산해도 100만원은 될것이라고 하는데 수혜자들의 실제 조사에 따르면 140만원도 더 되였다. 그러나 독자들이 오기철이 생활에서 얼마만한 짠돌인줄은 아마도 모를것이다.

그는 술은 원래부터 못마셨고 귀향전까지는 고급담배만 피우는 <<담배지골>>이였는데 귀향후 (그 비싼 담뱃값이면 남을 돕는데 쓰겠다)며 금연을 했고 귀향하여 생일을 쇠지 않고 노래방과 다방을 멀리했다. 그가 부인의 용돈을 너무 밝히는 데서 종종 부부언쟁을 한단다.

오기철이 <<짠돌>>임을 이번 북경행차가 증명한다.

 <<이번 출장에 집에서 준비를 잘 한 덕에 돈을 1전도 안 팔았습니다. 모든 교통비와 북경활동은 나라에서 부담했고 왕복기차내의 화식은 집에서 갖고 간 반찬, 면식, 광천수, 음료, 소시지를 먹다보니…>>

<<부인님, 이만하면 내가 세계기네스북에 오를수 없을가요?>>

이는 오기철이 북경에서 돌아와서 부인과 하는 롱조였다.

X            x        x      x

7년전 필자는 유일석기자의 소개로 오기철을 알게된후 몇번 그를 인터뷰를했지만 그의 속심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차려진 중책과 거물급명예는 그에 대한 편책이고 압력이다.

<<명심보감>>에 <<은혜를 베풀거든 그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하지 말라(施恩勿求報 輿人 勿追悔)>>는 명구가 있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기에 오기철에게는 아무런 바람과 후회가 없다.

 오기철은 은혜를 베풀고 남에게 주는 일에서 생사사생(生事事生)하는 사람으로 성사사성(省事事省)를 모른다.

기자는 왕청현의 제1촌을 건설한 다음에 60을 시작으로 우리 민족의 민속박물관을 꾸려보겠다는 그의 꿈 너머 꿈이 실현되는 그날을 기대한다


길림신문 오기활기자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기계대학을 나오고 연변의 한 대기업에서 기계공정사로 중용받던 최금철(45세)씨, 상해리공대학 화공전업을 졸업하고 역시 연변늄업 화학공정사로 활약하던 김홍녀씨(42세) 부부가 성보청사의  2층57호매대에서 청바지장사를 한지 이미 만 3년철을 잡는다. 그동안 그들부부는 현대마케팅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 2007-07-17
  • 《바이올린 신동》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고있는 다섯살짜리 한인소녀가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유경(5세, 미국명 엘리 최)양은 6월 28일 저녁 필라델피아 《만 뮤직쎈터》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앞서 《현악기 국제음악페스티벌》 입상자자격으로 바이올린을 연주...
  • 2007-07-16
  • 장원수선생은 룡정시룡정중학교 체육교원이다. 그는 국가급 심판원이며 길림성 《특장전시 10대 최우수교원》이다. 꾸준한 학습 고심한 연구 장원수교원은 다년간 축구코치 사업을 맡아하면서 《소년축구훈련》, 《과학화축구훈련》 등 잡지들을 꾸준히 학습하고 축구훈련지도에 유익한 VCD들을 반복적으로 보고 연구하면서...
  • 2007-07-12
  • 해빛찬연한 지난 6월29일 오전, 기자는 주청도 대한민국 총령사관 김선흥총령사를 찾았다. 제남으로 향발해야 하는 와중에도 김선흥총령사는 한시간을 내여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인자한 얼굴에는 후더운 미소가 흘렀고 길게 뻗은 덩실한 코마루와 날카로운 눈매에는 완력과  결단으로 점철됐을 지난 력사가...
  • 2007-07-09
  • 단동시 부동산업계에는 요즘 《피여나는 꽃봉오리》로 불리는 《미녀스타》 한명이 신선한 경영전략으로 동업계와 매체의 주목을 끌며 인기를 모으고있다. 바로 단동백양(佰陽)건설그룹 판매총감 박심찬(녀, 28, 애명 향분)이다.그가 부동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어쩌면 우연이라고 할수 있었다. 2002년에 상해교통대학...
  • 2007-07-06
  • 오늘 우리는 더없이 비통한 심정으로 김호근선생을 추모하게 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2007년 7월 2일 아침 4시 15분 의외의 사고로 59세를 일기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벗이며 자애로운 선배를 잃었습니다. 김호근선생은  1948년 1월 5일, 화룡의 가난한 교육가의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소...
  • 2007-07-06
  • 장춘시 홍기가 부금로에 자리잡고있는 안동슈퍼는 장춘에서 규모가 제일 큰 한국상품 전문점중의 하나, 이 슈퍼의 주인 리광록사장은 꾸준한 장인정신으로 경영에서 매 일보를 다져가는 참다운 당원사업가다. 경영에 앞서 신뢰를 줄 때 고객은 따라준다 리광록사장의 창업스타드는 지난세기 90년대 초반에 시작된다. 그는 상...
  • 2007-07-05
  • 300딸라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군 전설적인 인물인 미주 한인회 남문기회장(54세)을 만난것은 지난 6월 25일 연길 백산호텔에서였다. 미주 한인 최대의 부동산기업인 뉴스타부동산그룹 및 부동산경제채널 KNT CEO이자 로스안젤레스 한인회장인 남문기회장은 22일 세계서울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후 투자고찰의향으로 잠간 연변...
  • 2007-07-05
  • 시작되는 순간부터 뭔가 가슴이 벅차오른다. 보고 있노라면 광야를 말 타고 달리는 여인의 강인한 모습이 그려진다. 또 그 여인의 힘차게 뛰는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고(風鼓)춤이 주는 느낌이다. "광대한 평야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기마민족이었던 여인족의 기상을 살려 한국여인의 내면에 흐르는 강...
  • 2007-07-04
  • 안해에 대한 남다른 사랑동희철선생의 평범한 가정이야기                  프로필1929년 4월 13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남상동에서 출생1934년 중국 간도에 이주1944년 연길간도사도학교 본과 입학1946년 중국인민해방군 길...
  • 2007-07-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