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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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2007년 01월 07일 00시 00분  조회:6775  추천:143  작성자: 정인갑
'동무'

정인갑


언젠가 한국 모 신문의 칼럼에서 ‘동무’란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文益煥 목사가 조선 金日成 주석을 만날 때 그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 고민하던 끝에 ‘동무’라고 불렀다는 내용이였다.

그러면서 ‘동무’를 한자의 ‘同務’에서 왔을 것으로 보고 ‘함께 힘을 쓰는 사람’으로 해석해 놓았다. 필자가 보건대 ‘동무’는 한자의 ‘同務’에서 온 것이 아니라 ‘同謀’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중세의 漢語에서는 서로 돕는 동료 일꾼을 ‘훠찌(火計/夥計)’라 했다. 劉昌惇(류창돈)의 《李朝語辭典》에 의하면 이 단어를 한국의 언해본 《老朴集覽》《譯語類解》《同文類解》에서는 ‘동모’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역어류해》와 대조해 본즉 ‘동모’가 아니라 ‘동무’로 되여 있다.

또 《訓蒙字會》는 ‘伴’자에 대한 해석이 '벋(벗―필자 주) 반’으로 되여 있고 그 밑에 ‘俗曰火伴, 同謀(통속적인 말로 화반, 동모라고 한다)’라는 주를 달았다.

《類合》에서는 ‘伴’자를 아예 ‘동모반’으로 풀이했다. ‘伴’자는 ‘동반자’라는 말에 쓰이는 ‘伴’자이므로 그 뜻이 ‘동무’와 통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 ‘동무’의 어원은 무엇이겠는가?

필자는 이를 한어의 ‘同謀’로 보고 있다. 한어에서 ‘同謀’라는 단어는 ‘짝이 되여 같이 일을 꾀하다(동사)’ ‘짝이 되여 같이 일을 꾀하는 사람(명사)’의 뜻으로, 춘추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주 쓰이고 있다.

이런 단어가 한자어에 없을 리 만무하며 조선어의 ‘동무’란 단어의 뜻에 ‘친구’란 뜻 외에 ‘짝이 돼 함께 일하는 사람(명사)’, 혹은 ‘짝이 돼 함께 일하다(동사)’의 뜻인 것으로 보아 그 어원이 한어의 ‘同謀’ 임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훈몽자회》는 16세기 초(1529년), 《역어류해》는 17세기 말엽의 저작인 것으로 보아 아마 한자어의 ‘同謀’를 옛날에는 ‘동모’라 하다가 후에세 ‘동무’로 바꾸었을 것이다. ‘동모’에서 같은 모음 ‘ㅗ’가 중첩되므로 이화(異化) 현상이 일어나 ‘동무’로 변하는 것은 어학적 규률에도 부합된다. 마치 ‘姑母’를 어떤 방언에서는 ‘고무’라고 하듯이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동무’를 ‘북한 빨갱이 말’이라며 쓰지 않는다. 하지만 16세기에 벌써 우리말로 쓰인 것을 ‘북한 빨갱이 말’이라며 배척하는 것은 당치 않다. 사실 조선에서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쓰는 말은 ‘동지’이지 ‘동무’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동무’를 ‘친구’로 대체해 버렸는데 이 두 단어가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에 불편할 때가 많다.

우선 동사로서의 ‘동무’다. 가령 거의 끝나 가는 술상에 새로 등장한 사람에게 술을 권할 때 ‘내가 동무해서 마셔 줄게’하면 적절하련만 ‘내가 친구해서 마셔 줄게’할 수는 없다. ‘친구하다’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한 밤에 험한 산길을 가다니?’ 할 때 ‘동무해주는 사람이 있어’라면 적절하지만 ‘친구해주는 사람이 있어’하면 말이 안 된다.

명사 ‘동무’도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어떤 공사장에서 새로 알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저 사람은 나의 동무야’ 하거나 서로 ‘동무’라 부르면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친구’ ‘동료’ 라고 하거나 ‘김군’ ‘박일식씨’ ‘미스터 최’ 식으로 부른다. 심지어 재미 교포로부터 ‘유(you)’라고 칭하는 것까지 들어본 적이 있다. 모두 ‘동무’처럼 적절하지 못하다.

최근에는 중국 조선족들조차 한국인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점점 ‘동무’라는 단어를 피하더니 지금은 아예 쓰지 않는다. 연길시 예술단의 공연 중에 서로 모르는 두 사나이가 장보러 나와 자리다툼을 하다가 어느새 너 한잔, 나 한잔하며 술에 취하는 프로가 있는데 이 프로를 ‘술친구’라 이름지었던 것이다. ‘술동무’라 해야 맞으며 아주 적절한데 말이다.

한국에서 그토록 쓸모 있는 ‘동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 못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조선족도 쓰지 않으니 매우 서운하다. 마치 어떤 동물의 種이 사라져간다는 기분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아직 ‘길동무’라는 말을 가끔 쓰며 가요 ‘찔레꽃’에도 ‘동무’란 단어가 등장한다.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등산할 때 두 한국 사람이 서로 몰라보다가 한 사람이 ‘같이 등산한 적이 있는데 왜 몰라보나’고 하니 상대방이 ‘아, 생각난다. 한번 같이 등산했던 친구를 내가 몰라봤구나’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말중의 ‘친구’를 ‘동무’라 써야 맞는데 말이다. 하여 몇 년 전에 쓴 이 글을 다시 베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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