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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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향의 고개길
2012년 10월 06일 22시 52분  조회:1690  추천:3  작성자: 장수철
연변조선족자치주 설립 60주년 기념응모 1등상

 
고향의 고개길

장수철




 
고개고개 고개길 학교 가는 길
공부하고 휘호호 휘파람 불며
붉은 댕기 팔라라 오빠 오는 길
 
꼬불꼬불 꼬불길 밭에 가는 길
일 다하고 딸라랑 황소를 몰고
엄마아빠 웃으며 돌아오는 길
 
그랬다. 영철이도 룡남이도 불렀고 순이도 옥이도 불렀다. 진붉은 진달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하품을 하는 소가 끄는 수레가 덜컹덜컹 지나가기도 하고, 못난 돌멩이가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울퉁불퉁한 작은 고개길이였다. 또한 해맑은 아이들이 재잘재잘 신나게 달려가고, 흰옷 즐겨입는 할머니 어머니들이 장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넘나들던 그런 고개길이었다.

아직까지도 까치산기슭에 창문아래는 잉크색재물칠을, 우는 하얀 회칠을 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은 길고 외진 마을의 서쪽에 난, 소수레가 무난하게 다닐수 있었던 고향의 그 고개길을 잊은 친구는 없을것이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통하는 나트막한 고개, 그 고개를 넘나들면서 우리는 짜개바지를 벗었고 소녀애들은 고무신을 벗었으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사춘기를 맞이하였다.

고개 너머 저쪽엔 무엇이 있을가? 흐릿한 날 고개너머에서 들려오는 개산툰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는 우리 시골애들에게 신비와 경이를 자아내게 하였으며 우리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기차는 정말 길가?, 기차는 정말 빠를가?)

고개너머 저쪽에는 필경 가난한 우리 마을보다 행복한 락원의 세계가 있을것 같았다. 고개길 옆에서 하품을 하며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보다 칙칙폭폭 기적소리 내며 달리는 기차가 시골애들에게는 더더욱 좋았다.

“사람은 벌로 가야 해! 벌로!”

항상 흰 옷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흰 베적삼을 입고  대통을 물고 다니는 마을의 좌상어른이신 영남이 할아버지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버릇처럼 말하였다. 할아버지가 태여난 집에서 내 아버지가 태여났고 그 집에서 내가 태여났지만 마을 누구의 부모들도 자기 자식만큼은 저 고개를 너머 고향을 떠났으면 했다.

새순이 돋고 제비가 돌아오던 어느해 마을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철호형님과 말이 있던 마을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쌍가매누나가 도시로, 그것도 지팽이 짚고 다니는 소아마비한테 시집가게 되였다. 얼근하게 취한 철호형님을 보고 쌍가매엄마가 큰소리를 쳤다.

“가난뱅이한테 내 딸을 주라구? 꿈도 꾸지 말어!”

드디여 쌍가매는 해방패차에 앉아 고개를 넘어 도시로 시집가게 되였다. 어떤 마을로인들은 혀를 찼다. “쌍가매는 해방패차를 타고 도시로 시집가게 되였으니 오죽 좋으랴!”

그후 마을의 누나들이 하나 둘 고개를 넘어 벌방으로 도시로 시집을 떠났다. 하지만 다른 고장에서 우리 마을로 시집오는 처녀들은 거의 없었다.

가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비가 오면 질퍽하게 젖어 진흙탕이 되고마는 그 고개길이 못견디게 싫어졌다.

소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 한패의 도시청년들이 한적한 시골로 찾아왔다. 집체호 형님 누나들은 자전거도 마음대로 타고 다닐수 없다며 흙먼지가 포실포실 일어나는 마을의 구불구불한 고개길에 대해 여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게다가 집체호 한 형님이 공사에 회의를 갔다가 저녁 늦게 고개길을 넘어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다. 또 어느날에는 집체호 영숙이 누나가 도시의 집에 갔다오다가 고개길에서 풀을 밟아 넘어지는 등, 사람들이 고개길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이 잦아졌다. 마을사람들도 “돌멩이 뿐인 길”이라는둥, “없애버리고 다시 만들어야겠다”는등 고개길에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나.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마을의 돌격대청년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고개길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량옆의 나무들을 잘라내더니 넓고 반듯하고 아주 큰 길로 만들었다. 고개길은 이제 더 이상 작고 못생긴 예전의 고개길이 아니였다. 얼마후 마을에는 현성에서 오는 뻐스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호도거리를 시작하자 부지런한 철호네가 맨먼저 흑백텔레비죤을 사가지고 그 고개길을 넘어왔다.

얼마후에는 영호형님이 가슴에 꽃을 달고 그 고개길을 넘어서 참군했다. 뭐니뭐니해도 고개 넘어 들려온 대학입학시험소식이 제일 반가운 소식이였다.

드디어 마을에도 대학생이 나타났다. 승호형님이 시골에서 첫 대학생이 되여 그 고개길을 넘어 대도시의 대학으로 날아갔다. 시골 부모들은 그들이 못배운 한을 자식들에게 풀어보려고 허리끈을 졸라매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소를 키워서 팔고 힘든 담배농사와 고추농사 그리고 산나물을 뜯어다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을에는 현성중점고중에 입학하는 애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대학생들도 다른 동네들보다 많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대학생이 많이 나오자 고개 넘어 다른 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는 집들도 많아졌다. 우리는 저 고개를 넘어 도시로 가려는 꿈의 깃을 펼치려고 죽기내기로 공부하였다. 도시로 가면 뭔가 있을터이다. 이곳보다는 더 좋은 무언가가 있을것이다라는 기대감에 부풀기까지 한 꿈.

그렇게 꿈꾸던 나는 끝끝내 고향의 고개길을 넘어 현성중점고중에 입학했다. 기숙사생활을 하던 나는 달말이면 쌀과 김치, 고추장을 가지러 꼭꼭 고향으로 오는데 어머니는 몇시간전부터 고개마루에 서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신다.

시골애들이 도시에 가서 고중,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할 때 우리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앞날의 위해 그 얼마나 어려운 고개를 수없이 넘어야만 했는가.

언제부터인가 마을에는 한국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너도나도 경쟁이라도 한듯 땅을 팽개치고 돈 벌러 고개길을 넘어 출국하였다…

또 돈을 벌어서 고향에 돌아왔다가는 다 도시로 뿔뿔이 나갔다.

사람들이 도시로 외국으로 떠나자 이젠 마을에는 사람들이 손을 셀 정도였다. 그때쯤 그 고개길도 콩크리트길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라에서 초가집을 개조하고 마을마다 콩크리트길을 닦았던것이다. 소달구지가 다니던 흙먼지 뽀얀 고개길이 넓은 아스팔트길로 변했다. 안타까운것은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아진것이 아니라 더 적어졌고 더우기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간 안쪽에서 나와 림시로 밭을 도맡은 왕씨가 기세사납게 뜨락또르를 몰고 그 고개길을 퉁퉁 달리고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굽이굽이 고향의 고개길옆에는 예나 지금이나 진달래가 붉게 피여나지만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올줄을 모른다. 고향에서 살던 이들은 다시 이 고개를 넘어 돌아올 날을 꿈꾸며 어디로 떠난것일가? 다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온 구구절절한 애환이 스며있는 고향의 고개길을 추억하는이도 분명 있을터인데…

어릴적 짙기만 했던 푸른 산과 끝간데 없이 높기만 했던 하늘과 향기로운 바람을 함께 향유했던 순수했던 시절을 보냈던 친구들은 아직도 나처럼 정다움과 따뜻함이 녹아있는 그 고개길을 잊지는 않았을것이다. 더우기 도시락 숟가락이 탕탕 구르는줄도 모르고 숨가삐 달리던 고향의 그 고개길을.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 돌아오면 자가용차를 몰고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고향으로 찾아간다. 나는 버릇처럼 고개마루에서 차를 세우고 쉼을 한다. 청운의 꿈을 심어준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고향의 고개길, 그 고개마루에 서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입가엔 옅은 미소가 그리고 가슴엔 아린 그리움이 밀려온다. 유년의 기억 저편에서 어머님이 손짓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말이다. 마치도 학교에서 하학하고 돌아올 때 고향마을의 굴뚝에서 피여오르는 밥짓는 하얀 연기를 보았을 때의 그 아련함처럼 말이다.

이 그리운 향수를 지금 나의 고향에서 살고있는 왕씨는 영원히 체험하지 못할것이다…

그것은 우리들만의 고향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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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연변사람
날자:2013-06-29 18:22:12
짜릿한 마음을 불러내는 글이였습니다.
2   작성자 : 연변사람
날자:2013-06-29 18:22:01
짜릿한 마음을 불러내는 글이였습니다.
1   작성자 : 회경촌
날자:2013-06-27 21:05:53
참 읽기 좋은 글입니다...옛 고개길 혹시 그 고개 길이 어디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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