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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사춘기 그리고 졸혼
2019년 11월 20일 10시 42분  조회:1281  추천:0  작성자: 장연하

“사춘기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나름의 몸부림이다. 만약 사춘기가 없다면 평생을 데리고 살며 먹여 살려야 할 것이다”

몇년 전 막내아들이 심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전문의 강의 요청을 받고 간 자리에서 전문의가 한 말이다.

사춘기는 눈도, 몸도 그리고 마음도 사방팔방으로 향하는 시기이다. 사전적 해석에 따르면 12~3세에서 15~6세를 사춘기로 보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서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시기이다. 때문에 부모의 구속을 원치 않는다. 자신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괜한 간섭을 한다고 보는 자녀의 인식 때문에 사사건건 충돌이 발생한다. 부모와 자녀, 이성간 교제와 갈등의 시작, 사춘기의 특징이다.

제2의 사춘기, 생소한 용어지만 인간의 수명이 백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2의 사춘기라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약 50세에서 75세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나는 사춘기와 류사한 역동적 심리과정을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10대의 사춘기는 신체적으로 2차 성장이 나타나는 시기이고 정신적으로 자기의식이 높아가고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라고 한다면 제2의 사춘기는 지혜와 경험에서 나오는 능력의 시기, 원숙한 사고가 가능한 시기,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꿈을 꾸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10대 사춘기가 누구나 꿈을 꾸는 시기라고 한다면 제2의 사춘기는 꿈을 꾸는 사람만 꿈이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10대의 사춘기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자녀의 몸부림이라면 제2의 사춘기는 누구로부터의 독립으로 보아야 할가?

성장한 자녀가 그중 한사람이고 할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은 보편적으로 자신의 꿈보다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례가 많다. 아글타글 뒤바라지하여 대학에 보내고 자녀를 출가시켜놓으면 또 손자, 손녀 양육까지 감당해야 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부모라는 이름 뒤에 자녀를 위한 희생의 그림자가 옥죄고 있다면 부모 자신을 위한 삶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나이 들었다고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성장한 자녀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내적 몸부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2의 사춘기의 독립하고 싶은 두번째 대상은 배우자이다. 몇십년을 함께 살았던 배우자의 간섭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고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요즘 황혼리혼 (50대-60대)이 급증하는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 조사기관에서 50~69세 2020명을 대상으로 50세 이후 황혼리혼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근 41%가 황혼리혼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리혼한 전체 부부 가운데 3만 63쌍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헤여진 경우로 전체 리혼의 1/3을 차지했다. 이른바 ‘황혼리혼’이다. 2010년 처음 3만건을 넘어선 황혼리혼은 해마다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혼리혼에는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재산분할이나 미혼 자녀의 출가 같은 일. 이런 문제로 망설이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졸혼(毕婚)’이다. 문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이다. 졸혼은 ‘부부가 리혼하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이다.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펴낸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법적 혼인 상태는 지속하되,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별거하거나 생활공간을 분리하되, 대부분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유지한다.

얼마 전 부부간에 금슬이 좋다고 항상 부러움을 샀던 친구를 만났는데 퇴직하고 외국에 나갔다고 했다. 남편과는 ‘졸혼’하고…친구는 헌신적인 내조로 잘 알려져 모든 남편들이 부러워하는 안해였는데 ‘졸혼’이라니! 필자의 친구처럼 요즘 외국에 나가 있는 부부들중에 ‘졸혼’이 많다고 한다.

친구는 “내 인생이 참 괴롭고 고단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집을 나와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과 서로의 남은 인생에 대해 고민한 끝에 리혼하지 않기 위해 졸혼을 택했다고 했다. 친구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한 것 같다. 졸혼은 어찌보면 잠시 쉬여가는 방학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졸혼은 황혼리혼과는 구별되는 헤여짐의 형태이다. 황혼리혼은 법적으로 남남이 됨으로써 영원한 결별을 뜻하지만 졸혼은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헤여짐이다. 즉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활양식을 영위하지 않지만 엄연히 부부이다. 서로 희망하는 삶을 통제하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자기만의 삶에 집중한다. 누구를 위한 희생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주인공이다. 스스로 위로하고 보상한다. 보다 성숙된 자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자기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삶을 산다.

제2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결혼과 리혼 사이에 이처럼 부부관계의 새로운 쟝르가 확산되고 있다. 고령화로 결혼기간이 길어질 테니 더 세분화될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만 전제된다면…

결혼식 주례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될지도 모른다. 부부관계는 일방적일 수가 없다. 한사람만 잘한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보는 랑만적인 그림은 아닐지라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반려자로서의 례우를 받으려면 지금 나를, 나와 내 가족의 관계를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하다.

50대 이후 찾아오는 제2의 사춘기는 삶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때인 만큼, 방황하지 않는 제2의 사춘기를 계획할 필요가 있다. 마치 려행계획을 짜듯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생애 2막 인생 스케치, 제2의 사춘기를 멋지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짜보는 것은 어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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