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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
나는 한국에서 어느 곳에 불상사가 났을 때 TV모금액이 단방에 기하급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한국 사람들의 인정에 감복하고 말았다. 정말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몸에 와 닿았다. 그러면서 우리 중국에서 같은 경우에 억지로 월급에서 돈을 얼마 얼마씩 까는 형태에 대해 정말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사천지진에 국내 각 지역의 성금이 쇄도하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 중국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갈마들었다. 一方有難, 八方來助의 중국말이 그대로 먹혀들어가는 광경에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일단 나는 이것을 이젠 우리 중국 사람들도 많이 살만하게 되었구나로 받아들였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소박한 그런 논리로. 인간은 지극히 동물적인 존재다. 우선 내부터 살고 보기다. 이것을 우리 중국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自私自利라 해도 좋다. 그래서 인간은 내 배부르고 등 따뜻해야 남을 생각하게 된단다. 우리 중국에서 말하는 溫飽 수준의 小康생활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중국 고대 지성 맹자도 인간은 배가 부른 후에 知禮義라고 했다. 배가 부르지 않고는 짐승과 같다는 것이다. ‘천사’도 배가 부른 후에 된다는 얘기다. 그럼 우리 중국이 溫飽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한 小康생활 수준에 와 있단 말인가? 대답은 ‘아니올시다’. 아직도 奔小康 단계. 그렇지만 분명히 이전보다, 개혁개방 전보다 훨씬 살만하게 되었다. 이번 사천지진을 통해 보게 되는 우리 중국의 기부문화는 일단 여기서 기인한다.
현대 심리학의 제3차 물결을 몰고 온 미국의 馬斯若라는 유명한 심리학자는 한 술 더 떠서 인간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의, 식, 주 문제가 해결되고 귀속, 안전, 존경의 수요가 만족되면 인간 삶의 가장 높은 경지인 자아실현의 경지를 추구하게 된단다. 이번 사천지전에 자발적으로 달려가서 고생을 사서 하는 자원봉사자들 가운데는 이런 경지의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거액을 기부하고도 이름 한 자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무조건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불행한 사람을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雷鋒 같은 사람들. 그렇다 해서 기고만장한 귀족이나 거만한 귀부인들의 하사나 베품하고는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거저 자기가 좋아서 그렇게 할 뿐이다. 그럴진대 이 사람들에게 기부를 유도하거나 압력을 가하거나 하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짓이다. 사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부문화가 몸에 베였거늘. 우리의 기부문화에는 아직 이들의 그림자가 적어 아쉽다.
그런데 단지 배부르고 따뜻해서, 그리고 자아실현의 고차원의 경지를 추구해서 기부문화가 이루어진단 말인가?
고사리 손에 한 웅쿰 쥐어진 1전, 2전…, 五保戶 할머니의 손에 쥐어진 꼬깃꼬깃한 쌈짓돈, 거지 손에 쥐어진 땟국이 흐르는 돈들이 의연금 상자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정녕 인간의 순정, 순수한 인간애 같은 것에 코마루가 찡해나고 말았네. 이것을 보편적인 인간적 동정, 인도주의라 해도 좋네. 인간에게는 분명 이런 것들이 있지. 그 천사 같은 면말이다. 사실 우리 일반 서민들에게는 이런 의미의 기부가 더 몸에 와 닿는다. 우리 누구든지 한 번쯤은 천사가 되어서 潇洒地走一回할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이것은 돈 액수에 관계없거늘. 어디까지나 마음이다,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내 정성을 보이면 된다. 그것이 돈이든지 무엇이든지 관계없이. 이것이 바로 誠金이란 것이다. 그래 이것이 聖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기부문화에는 아직 무단적인 ‘행정명령식’이나 자기과시욕이나 억지춘향노릇하기나, 여하튼 誠金이나 聖金하고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우리 조선사람에게는 십시일반이라는 전통문화가 있다. 어려운 사람이 경조사를 치를 때 주위의 사람들이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대로 ‘잘난 것’,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대로 ‘못난 것’, 부자는 부자대로 많이, 빈자는 빈자대로 ‘적게’, 여하튼 돈이든 무엇이든 자기 성의껏 정말 誠金이나 聖金을 내서 원만히 일을 치르도록 한다. 이것이야 말로 상부상조의 전통적인 진정한 천사의 얼굴을 한 우리의 기부문화이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19일 현재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각 시와 현의 적십자회, 자선총회에서 모금운동 5일 만에 1천만 원의 성금을 답지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그래도 우리 연변이구나 하며 혀를 찼다. 그 誠金에는 돼지저금통장에서 빼낸 어린 고사리 손의 돈이 있는가 하면, 직장을 잃고 재취업 준비 중이던 분의 쌈짓돈이 있기도 하고, 손자손녀들에게 부축되어 나온 할아버지의 차곡차곡 싸고 또 싼 용돈도 있다. 이것이야 말로 십시일반이란 것이다. 우리 연변은 어렵다. 잘 되는 기업 하나 없는 것 같다. 중소학교 교사들 월급조차도 제대로 못주는 곳도 있다. 우리 대학교 교수들의 월급도 아마 전 중국에서 가장 밑바닥에 맴돌 것이다. 일반서민들 ‘쿠리’ 비슷한 외국노무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순수한 인간의 정,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 내가 좀 어렵더라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십시일반, 바로 우리에게는 이 십시일반이 있다. 이것이 衆志成城이란 것이기도 하여라. 바로 이 십시일반으로 우리는 길림성에서 장춘시, 길림시 다음으로 많은 모금액을 답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연변대학교만 해도 상당한 규모의 모금액을 답지했다고 한다. 우리 연변대학교는 또 의료진 22명으로 구성된 대학교병원 구조팀이 곧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란다.
우리 연변이 자랑스러웠다. 그 어떤 곳에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우리의 ‘십시일반’이 멋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사천지전 현장에 와 있는 나는 나하고 잘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 연변을 좀 보라고~ 우리 조선족을 좀 보라고~ 좀 생색을 내는 것 같아 무엇하기도 했다. 기부는 이렇게 자랑하는 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말이다. 여하튼 나는 우리 연변이, 우리 조선족이 멋있다. 진정한 기부문화를 온 몸으로 사르는 우리가 아니더냐! 그리고 노파심에 마지막에 한 마디, ‘십시일반’으로 씨 뿌려지고 자라나고 북이 돋아진 기부문화가 그 어떤 치사한 관리들의 실적 쌓기나 부패한 관리의 검은 속을 채우는데 희생되지 말고 정녕 誠金에 聖金으로 전달되어 재난의 현장에서 활짝 꽃이 폈으면 한다. 그래서 이재민들이 진정 지진으로 물질적인 집은 잃었으되 정신적인 집의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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