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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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콤플렉스(우상렬104)
2007년 10월 26일 15시 46분  조회:4670  추천:54  작성자: 우상렬

못난 콤플렉스


우상렬


사람은 다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산다. 못났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한다. 못났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애초에 거부한다. 그래서 못난 콤플렉스에 싸일 확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못난 콤플렉스에 싸여 한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와 처음에 내 스스로 잘 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내가 잘 생겼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여자애들이 나를 쳐다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면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좁지는 않은 이마, 진한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덩실한 콧마루, 키가 좀 작은 것이… 그리 못 나지는 않았는데 하면서도 결국 못난 데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나는 어떻게 된 문서인지 그때 잘 못 먹는 세월인데도 살이 질 대로 져버리 일본의 스모우 선수 모양새로 번져갔다. 그런데 그것이 콤플렉스로 확실히 자리를 잡기는 대학교에 가서다. 대학교에 가 보니 고운 처녀동지들이 참 많았다. 꿀 같은 욕심이 막 솟구쳐났다. 그런데 그 처녀동지들이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남들은 하나씩 척척 끼고 잘도 다니는데… 나의 못난 콤플렉스는 결국 여기서 결정지어졌다. 그리고 그때 설상가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뽀드라지(여드름)가 또 한 매 결정타를 가했다고 봐야겠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때 하는 일이란 결국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술 퍼 마시기. 술로써 못난 콤플렉스를 발산하자 했고 처녀동지들을 잊자 했다. 다른 하나는 책보기. 술에서 깨면 책보기. 书中自有颜如玉를 외우면서. 못난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 서기를 대단히 꺼려했다. 사람이 없거나 안 보는 데서는  술술 나오던 말도 사람들 앞에 서면 꺽꺽 거리며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학생간부 같은 것은 애초에 미련을 접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실습을 할 때도 중학교 교사실습을 배치하는 것을 기어코 우겨 방언조사로 땜질하고 말았다. 그런데 운명은 얄궂게도 대학졸업 후 굳이 나를 중학교 교사로 배치를 해준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서 연구생시험을 보는 것으로 못난 콤플렉스만 쌓이는 그 지겨운 중학교 교사 노릇의 탈출구를 찾았다. 그런데 인생은 돌고 돈다고 할까, 아니면 운명의 아이러니라 할까, 나는 연구생을 졸업하고 결국 사람들 앞에 나서는 직업인 선생 노릇을 어쩔 수 없이 하고 말았다. 그때 심양의 내 짜개바지 친구들 축하해주기는커녕 한다는 얘기가 야, 니 같이 둔하게 생긴 놈이, 아니면 야, 깡패두목 같은 놈이 어떻게 대학교수 노릇 하지 하는 식이다. 이때도 못난 콤플렉스는 나를 감싸고 돌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못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송구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섰다. 그래서 떳떳하고 당당해야 할 대학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항상 주눅들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어줍잖은 표정이고 모습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나다. 그때 아무리 못났더라도 젊은 연구생총각 대학교수 희소가치 때문에도 대학생 처녀동지들이 은근히 사모하고 프로포즈를 보내오기도 한 것 같은 데 물 먹은 담이 되어 내 절로 물 앉고 말았다. 해가 잠던 밤하늘에/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너와 나를  훔쳐보는가봐/할가말가 망설이는 나는 못난이… 아, 운명의 신은 정말 나를 놀리는 가봐. 이제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나, 보상심리가 살아나 여자들 앞에서 좀 잘날까 해보자니 내일 모레 50고개를 바라보는 나의 아래 도리는 맥없이 축 처지고 만다. 그런대로 고만고만 살으라는 갑다.      

이 못난 콤플렉스 때문에 언젠가 우리 아버지하고 싸우기도 했다. 내가 연구생 다닐 때다. 겨울 방학 때가 되면 우리 아버지 생일이 돌아온다. 우리 아버지 생일 때마다 한다는 얘기가 이놈아, 다른 사람들은 대학만 나오고도 새애기를 잘 데리고 오던데 너는 연구생 다닌다는 놈이… 다 때려치워! 이때마다 나는 거저 시무럭이 웃고 넘기고 만다. 그런데 어느 한번은 술이 좀 거나하게 되어서 그런지, 우리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말대구를 했다. 뭐요, 새애기 데려오라구요? 내 이 못난 놈이 어디 가 데려와요? 좀 잘 만들어주고나 데려오라 하지요! 하하하, 성낼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으신다. 이놈아, 니가 어디 못났다고 그러냐? 이 못난이야! 쯔쯔, 남자라는게… 확실히 우리 아버지 눈에는 내가 잘 나 보였겠다. 우리 아버지는 이 아들이 있어 얼마나 대견스러워 하는 지 모른다. 아버지는 우리 육형제를 낳았는데 세상에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항상 자랑하며 어깨를 쭉 펴고 다닌다. 우리 아버지 논리대로 우리 육형제를 쭉 보니깐 내 위에 다섯 형은 그런대로 다 괜찮게 생긴 것 같다. 다 자기네들보다 낳은 새애기들을 얻어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키 꼴 하나만 보아도 다 내보다 크다. 제일 큰 형님으로부터 죽 내려오면서 조금씩 작아지기는 했지만. 아마 우리 아버지도 육형제를 낳자니 점점 맥이 진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한테 와서는 1미터 70도 못 넘는 1등 残废를 만들고 말았겠지. 나는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며 내 못난 콤플렉스의 최종 근원을 결국 우리 아버지에게 돌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일종 운명적인 비극으로 치부하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다음 세상에 가서 보자고 하면서.

이 못난 콤플렉스는 나의 결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 내가 연구생을 졸업하고 겨우 한 숨 돌리며 그 당시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연구생 가치를 이용하여 이젠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볼까 하는데 어떤 잡아죽일 놈이 먼저 퍼뜨렸는지는 잘 모겠지만 세간에 나도는 풍문에   처녀들이 신랑감으로 선호하는 남자 키는 1미터80 이상을   표준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이 표준에 따라 1미터 80을 넘기지 못하면 2등 残废, 1미터 70을 넘기지 못하면 1등 残废라는 것이다. 내 키가 1미터 70을 못 넘기니 1등 残废에 드는 셈이다. 그때 나는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모른다. 겨우 살아난 장가 갈 욕망이 자라목처럼 도로 쏙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대학교 우리 반급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축에 속했지만 결혼은 우리 그때 장가드는 나이로는 퍼그나 늦은 30이 다 되어 제일 늦게 가고 말았다. 어쩌구려 겨우 만난 지금 내 아내 된 처녀동지가 키가 작아도 괜찮다고 하기에 허리를 쪽 펴며 겨우 결혼에 골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안깐(아내)이 얼마나 곱고 고마운지 모른다.

물론 나는 못난 콤플렉스를 떨어버리자고 노력도 무지했다. 대학교 때 어느 방학간에 집에를 갔더니 심양에 한창 남자들의 굽 높은 구두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한테 사정하여 겨우 하나 사 신고 학교를 왔다. 한 5센치는 키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어깨가 좀 펴지며 우쭐렁 거릴가 했다. 그때 우리 반급 친구들 가운데 너도나도 부탁이다. 그래서 심양에 부탁하여 거저 다 사주었다. 장사골이 튼 지금쯤이면 한 몫 잡았겠는데, 그렇쟈? 그리고 못난 얼굴에 잘난 사람들의 흉내를 내느라고 바를 것 다 바르고 문지를 것 다 문질러보았다. 그런데 东颦效施라 별로다. 그래서 다분히 우리 절반 형님 아Q 정신승리법 맛이 풍기는 노릇도 해보았다. 잘 생기려면 누가 못 생겨? 생기기 싫어서 그렇지. 잘 생긴 놈은 다 개 아들놈이야! 그리고 우리 아버지 비법도 구사해보았다. 야, 키 크면 뭘 하냐? 하늘에 별을 따겠나? 키 작으면 차표도 절반 값 내고 영화표도 절반 값 내고 옷감도 절반 값이면 되고 오죽 좋아서. 야, 허우대 큰 놈들 다구진게 하나 없더라. 작은 고추 맵다고 작은 놈이 맥을 써! 레닌 봐라, 조그마한게 얼마나 대단해. 사회주의혁명을 혼자 다 했지 않냐? 개혁개방이 되자 등소평이 올라오니 또 등소평을 그들먹인다. 등소평 봐라, 조그마한게 중국을 쥐략펴략 하지 않냐? 누가 감히 등소평 앞에서 얼씬이나 하겠나, 어림도 없지! 참, 우리 아버지 말씀도 일리가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의 일장 연설을 듣고 나면 항상 붕 뜨는 것이 기분이 좋다. 레닌이 되고 등소평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사실 나의 못난 콤플렉스는 내가 미학을 가르치면서 냉철한 지적인 真, 善, 美의 논리로 하루 아침에 날려 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잘 나고 못 난 표준은 겉모양 허울에 있지 않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얼굴만 여쁘다고 여자냐/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여자가 정말 여자지… 그래서 나는 마음이 고와지려고 노력했다. 我很丑,但很善良,그런 경지를 추구했다. 열심히 책을 보며 真을 추구했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항상 인간적 동정심을 베푸는 善에 경도되었다. 마음이 고우면 못난 얼굴도 여쁘 보인다. 情人眼里出西施, 이것에 대한 좋은 주석으로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真, 善, 美가 통일된 이상적인 경지의 완전무결한 인간은 드물다. 가물에 콩나물 나듯 하다. 잘났으면 잘난 값을 한다고 마음이 나쁘거나  못났으면 보상심리에 마음이 곱거나 하는 아이러니가 오히려 정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말 잘난 사람이 못되게 굴 때 얼마가 밉고 괘씸하던가. 못난 사람이 못되게 굴면 원래 그런가 하겠는데 말이다. 못나고 잘난 미학적 변증법은 바로 이렇다. 나는 못난 미학을 확실하게 세웠다. 요새 내가 머리를 중머리 비슷하게 짧게 깎기를 좋아하니 어느새 중대가리 별명이 와 붙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홀가분하다. 즐겁다. 잘 난 내 청춘을 즐긴다.              

잘 나도 내 청춘, 못 나도 내 청춘, 내 멋에 사는 거야. 개성미. 그렇지만 알찬 真, 善의 경지~. 잘 난 내 인생! 

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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