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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갑 아저바이, "손님이 왔으"면 좀 쉽시다
2006년 01월 16일 00시 00분  조회:4744  추천:44  작성자: 우상렬
정인갑 아저바이, ‘손님이 왔으’면 좀 쉽시다

정인갑 아저바이 전 상서:
그간 안녕하십니까?

아저바이 “심상치 않은 '손님' 화제”를 받아보고 이 먼 이국 땅에서 매우 반가웠습습니다. 언녕 답복을 드린다는 것이 한 해가 다 가고 이제야 필을 들게 되니 그래 이게 말이 됩니까? 후학으로 말입니다.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아저바이 말씀은 천만지당한 줄로 압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지성인을 배양하는 최고 학부”-연변대학에 대한 우려와 관심 내지는 충정에 더 없이 감복하였습니다. 연변대학에 몸 담고 있는 가르치는 자로서 아저바이의 그 우려, 그 관심, 그 충정에 백분의 1도 못 미쳐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여기에 “ '생리휴강제도' 따위를 연변대학에 끌어들여” “오염시키”려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저바이는 너무 예민합니다. 과잉반응? 내가 “심상하”게 쓴 “손님”을 아저바이는 굳이 “심상치 않은 ‘손님’”으로 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 원색적인 언어구사를 했습니다. “'생리휴강제도' 따위”, “끌어들여”, “오염시키”기 “따위(나도 한번 써봅시다)” 같은 말은 정말 “따위”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어쩌면 아저바이하고 저하고 세대차라 할가 아니면 시대차라 할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손님”이 워 그리 심상치 않습니까? “손님”이 왔으니 쉬는 것이지요. 아저바이는 내 이 단순하고 홀가분한, 어쩌면 단세포적으로 단순하고 홀가분하다보니 너무도 명료하고 분명한 단순하고 홀가분함에 복잡하고 거창하게 풀이를 하니 정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합니다. “한국 청년학생의 정신상태의 변화에 대한 우려”,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이는 한국 대학생들이 태만,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마디로 “'손님' 현상은 한국 적지 않은 청년학생들의 타락을 나타내는 심상치 않은 현상”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머리가 갸웃해집니다. “생리휴강제도”는 “생리휴강제도”대로 돌아가고 공부는 공부대로 잘 하는 한국 청년학생, 대학생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저입니다. 적어도 요 1년간 배제대학교 강의체험만 놓고 보아도. 이것은 절대 “저자가 배재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배재대학化하여 생긴 착각(當局者迷)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아저바이는 저한테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거저 한국“놈”들 놀아나는데 잘 놀아나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이니깐요. 아저바이 논리대로 하면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말 정신 나간 “놈”들입니다. 자기네 청년학생, 대학생들을 “태만, 타락”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한국『매일경제』사회면 윤지경 ․ 김명수 기자의 「생리통 결석도 “출석”인정」보도글을 한번 봅시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합니다. “올해 새학기부터 여학생이 생리통으로 결석을 했을 때 출석으로 인정받게 된다./교육인적자원부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여학생이 생리로 인해 학교에 안나왔을 때 건강권과 모성보호 차원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하도록 관련제도 등을 보완할 것’을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이에 따라 오는 3월부터는 생리통으로 결석했을 때 학교장에게 확인을 받으면 출석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전에는 생리로 결석했을 때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등에 근거해 ‘출석으로 인정되는 생리로 인한 결석’은 한 달에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좀 지루하니 이만큼 합시다. 내가 아저바이한테 글 안 올리까 하다가 실은 한국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접하게 되어서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부 대학 스스로의 자율권 차원에서, 그것도 주로 학생들 스스로 제 좋은 차원에서 “생리휴강제돈”지 뭔지 야단법석을 피우더니 이젠 정부 차원에서 같이 “놀아”나니 말입니다. 새해에 들어서더니 한국 정부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모양입니다.

한국은 그만하면 민주주의가 잘 된 나라입니다. 무슨 문제든지 공개하고 공론화하고 토론에 부침니다. 그래서 나라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투명화되고 절대 다수의 의견이 결집될 때 그기에 따릅니다. 시끌벅적한 민주주의, 바로 여기에 한국의 역동성과 저력이 있습니다. 물론 절대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꼭 맞고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맹점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드러나지요. 그러나 현재로는 절대 다수의 논리를 따르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도 아마 제멋대로의 독단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지 않습니다. 이미 근로노동법에 의해 사회직장여성들 범위에서 “생리휴식제도”가 실시되고 있고 또한 대학 범위에서 공론화되고 일부 대학에서 “생리휴강제도”를 실시한 전제하에서 그 합리성, 적법성 같은 것을 충분히 검토하고 검증하는 민주주의절차를 거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하도록 관련제도 등을 보완할 것’에 합의를 본 줄로 압니다. 현대는 대명천하 민주주의시대라 아저바이가 “심상치 않”게 보고 내가 “심상하”게 보는 “생리휴강제도”는 민주주의원칙 차원에서 볼 때 그 시시비비는 분명할 줄 압니다. 그러니 제가 “'생리휴강제도' 따위를 연변대학에 끌어들”이는 문제도 제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아저바이께서는 백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나는 적어도 우리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생리휴강제도”옹호/반대? 그래서 한국의 경우처럼 100%는 아니라 하더라도 절대 다수가 “옹호”라 할 때는 “오염” 좀 시켜도 무방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개혁가, 행동가, 실천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얼마나 나태하고 안일에만 빠져있는지 옹호/반대 같은 묻기조차도 하기 싫어하는 놈입니다. 그러니 아저바이, 정말 마음 놓으십시오. “오염”문제는 원천 봉쇄되고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괜히 내가 “이제 중국에 돌아가 우리 연변대학교 강의 때는”운운, 실없는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생리휴강제도”, 정말 “심상치 않”게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저바이한테 한 수 배웁니다. 이것은 워낙 인권에 관한 문제이니깐요.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보호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군만요. 인권, 세상이 점점 개명해지고 문명해질수록 가장 잘 먹혀들어가는 말. 사형수들한테 안락산지 뭔지 한다는 세상이 아닙니까? 아저바이 말씀 지당합니다. ”밥을 짓다가 아기를 낳는다거나, 필자의 모친처럼 해산 후 며칠 쉬지도 못하고 가마니를 짜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먹고살기 바쁜 세월에 정말 인권의 사각지대에 살았습니다. ”손님“보다 더 신성하고 중요한 아기낳이도 대접을 못 받았으니 말입니다. 불쌍하지요? 그러나 시대는 변해 아저바이가 지적하다시피 ”중국에서 1950∼70년대까지 종업원에 한해 해산 후 56일의 휴가제도를 실시하다가 점점 시간을 늘여 지금은 반년, 조건이 허락되는 직장에서는 심지어 1년까지 허용한다.“ 이것이 발전이겠지요. 아저바이의 결론도 이런 거 같습니다. ”이렇듯 사회 발전에 따르는 여권의 伸張은 좋은 일이다.“ 아저바이는 멋지게도 ”생리휴가제도“를 ”여권의 伸張“으로 모 박았군만요. 사실 여권운운 떠나서 ”손님“은 우리 모두의 신성하고 중요한 ‘건강권과 모성보호“의 거창한 의미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여자한테서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아저바이, 제,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도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정말 몸에 와 닿으니 말입니다. ”손님“,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저바이가 ”처음 '생리'를 알게 된 것은 중3때였다.“고 했지요? 그러니 지금 아이들보다 얼마나 늦습니까? 그 ”총각 선생“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아저바이보다 썩 후배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원색적인 ”월경“은 좀 알만한데 ”손님“은 아직 그리 몸에 잘 닿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이들은 월경 온 것을 누구에게 알리기조차 부끄러워했지요. 아니, 누가 알가봐 겁나했지요. 아저바이의 그 ”너무 수줍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순이와 ”진붉은 월경색 2호 글자로 '월경, 당당히 말하자'라는 제목을 달고 그 옆에 알락달락 예쁜 생리대 아이콘을 줄 세워 놓“은 배재대학교 3순이들하고 한번 나란히 세워놓으면 바로 세월의 자아풍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아저바이가 ”'월경'에 대한 엄폐의식의 파멸이 아니라“고 운운하면서도 ”사회의 변화가 이렇듯 無常한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참, 인권, 아니, “손님”얘기를 하니 아저바이 말씀대로 여권이라 합시다. 지금 막말해서 세월이 좋다보니 여자들 말 잘 들어주고 있지요. 사회가 나서서 여자들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잘 챙겨줍니다. “손님이 왔습니다”, 그러니 쉬십시오. 우리 사회의 아량이고 신사스타일. 識時務者가 俊傑이 아니겠습니까? 아저바이, 나보다 중국말 더 잘 하니 물론 잘 아시겠지요.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순리인줄로 압니다. 사실 중국어에 “來例假了”도 마찬가지. 의례히 오게 되는 휴가니 쉬어야 된다는 것. 그런데 그 동안 우리 사회가 각박하다 보니 그렇게 못해주었다. 그래 이제 얼마간 살만하고 여유가 있으니 쉴 때는 쉬라하는 식. 이쯤에는 아저바이도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저바이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손님'은 별문제이다. 이 '손님'은 重體力勞動者에게 적당한 혜택을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아저바이는 重體力勞動者만 내세우면서 정신노동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輕體力勞動者까지 그 혜택에서 제외시키니 학생에 한해서는 더 운운할 여지도 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학생에 한해서는 체육시간을 면제해 주면 그뿐이다. 일반 수업까지 빠져야 할 정도의 부담이 되는 '손님'이 절대 아니라고 한다.”고 학생의 “손님”에 대해서도 말하고 계시군만요. 그런데 아저바이의 이 “절대”는 좀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생리휴강제도”가 법적인 효력을 발생하면서 정착한데 대해 한번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輕體力勞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정신노동도 대단히 소모적이고 피곤한 것입니다. 아저바이가 줄곧 정신노동을 해왔지 않습니까? 이 점 잘 아실겁니다. 학생들, 공부 마찬가지의 정신노동입니다. 그것이 기형화될 때는 “입시전쟁”으로까지 비화하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손님”은 육체적으로만 나른하고 피곤한 “손님”이 아닐 줄로 압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성과 연계되면서 그렇게 신성하고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손님”은 찌부둥한 흐린 하늘과도 같은 흐린 기분이랍니다. 이 점을 느껴보자면 사실 아저바이나 나나 여자가 한번 되어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데. 그런데 그것이 일종 모성의 통과의례를 치르는 고역임은 아저바이나 저의 대학교수 지성으로는 얼마든지 공감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역을 같이 치러주지는 못할망정 우리는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물론 이 배려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요.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생리휴강제도”가 제도적인 가장 확실한 방식의 하나임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건 그렇기한테, 아저바이는 “여성에 대한 무제한의 '혜택”이 마음에 걸리지요? “마땅치 않”다 이거지요. 사실 “무제한의 ‘혜택’”문제가 아니라 여자를 보는 아저바이의 근본시각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무슨? 안 그렇다구요? 그럼 좋습니다. “시각을 바꾸어 본” 아저바이의 高見을 잠간 보도록 합시다. “여권의 신장이 아니라 오히려 여권에 대한 침해로 변할 수 있다. 여성을 弱者, 심지어 無能者로 취급하며 그 만큼 사회 활동의 領域에서 배제시키는, 하여 여성의 사회 지위가 낮아지는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다. 남성과 거의 같이 일하는 중국 여성이 집에서 놀며 남편이 벌어다 주는 밥을 받아먹는 한국 여성보다 사회지위가 훨씬 더 높은 것이 이 도리를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변증법이 흘러넘치고 논리적으로 완벽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너무 비약이 심하고 인간을 너무 경제적 동물로 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어찌 손바닥 뒤집듯이 “침해”로 변할 수 있고 “弱者”, 심지어 “無能者”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사회지위를 “낮아”지게 한단 말입니까? 하물며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한다고 해서 사회활동영역에서 배제되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 배려 속에 여권은 보호받고 그 배려 속에 여성은 육체적, 정신적 충전을 하며 强者, 有能者가 되며 사회지위는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배려는 남자가 여자에 대한 배려가 아닙니다. 전반 사회적인 협의 하에 우리 인간이 베푸는 배려입니다. 인간만이 베풀 수 있는 배려입니다. 바로 이런 배려와 베품 속에 여성의 인권은 더 돋보이는 존재로 각인됩니다. 아저바이가 여권 운운하니 저도 따라 갔습니다만 사실 여권이라는 말은 근본점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남녀이분법에 의한 남권 대 여권의 대립논리를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떨어져 살 수 없고 여자는 남자를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상호보완적인 전일체적인 인간존재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남권도 좋고 여권도 좋고 그것은 모두 하나 된 우리 인간의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우리가 여권을 말하는 것은 이때까지 우리가 가부장제 하에서 인간의 권리를 쪼개어 이른바 남권을 조장하고 남용한데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리휴강제도”라는 것은 아무리 무제한으로 베풀도 마땅한 우리 인간의 성스러운 권리입니다. 그리고 아즈반이, 여성해방의 경제론풀이는 많이 듣던 얘긴데 합리적인 면도 있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는 딱딱한 경제-돈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보다 중요하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관계는 정입니다. 아저바이, “정 하나로 맺어진 사랑...” 한국 트로트 못 들어보셨습니까? 정만 통하면 니가 돈 벌어오니 내가 돈 벌어오니, 니가 많이 벌어오니 내가 많이 벌어오니... 이런 문제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집에서 밥만 먹고 잠만 자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로서의 할 일이 있습니다. 집안 거두고 아이 낳아 키우고... 얼마 전 한국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해보았더니 월평균 적어마치 100만원어치라고 합니다. 사실 여성들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너무도 대단한 일을 합니다. 남자들이 두 손 들고 마는 일을 합니다. 위대한 어머니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른바 사나이 남자들이 집에 들어와서 큰소리 못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정만 통하면 베개머리송사라는 것도 잘만 통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이런 말이 생겨난 것도 같습니다. 남자는 이 세계를 지배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고. 아저바이, 이렇게 놓고 볼 때 아저바이의 한국과 중국의 여성지위 운운은 좀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전통적인 문화풀이가 곁들어져야 될 줄로 압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안방을 차지하고 창고열쇠를 쥐고 있은 줄로 압니다. 현재도 이런 패턴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편네한테 돈 좀 얻어 쓰기 위해 두 손 싹싹 비비는 한국의 나그네들, 그리고 비자금 챙기기에 바쁜 한국의 나그네들이 불쌍합니다. 아저바이, 한국에 왜 노숙자가 그렇게 많은지 압니까? 돈 못 벌어들어 가니깐 여편네 볼 면목이 없어 스스로 추방한 나그네들이 많이 합류했기 때문이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른바 여권이 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같은 “혁명”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유교문화를 싹쓸이하여 이른바 여권이 머리를 든 줄 압니다. 현재 중국의 많은 평범한 가정들을 보십시오. 사실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돈을 적게 벌어들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지는 돈을 못 벌어오면서도 돈을 적게 벌어들어 오거나 못 벌어들어 오는 남자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피탈하며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저바이,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더 말씀 드리면 부부간, 가정의 문제는 경제, 돈만으로 풀이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참, 아저바이가 생리휴강제도를 주자니 공부 빼먹는 시간이 너무 많아 우려된다고 했지요? “'손님'이 머무는 시간을 평균 4일로 하면 남학생보다 15.4% 적게 수업 받는다. '손님'체류 기간과 일요일이 겹칠 수도 있겠지만 수업이 싫어 주장한 것이라고 할 때 일요일 외에 4일간 결근할 것은 당연하다. 1년 수업 기간을 9개월로 가정하면 대학 4년간에 남학생보다 4×9×4=144일 결근하게 된다.” 나는 “손님”이 머무는 시간을 잘 모르는데 아저바이는 너무도 잘 알고 계시군만요. 그리고 그 골치 아픈 산수계산도 너무 잘 해 준 줄로 압니다. “수업이 싫어 주장한 것이라고 할 때”라는 가정법을 곁들이면서 말입니다. 아저바이 계산법으로 볼 때 확실히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육인적자원부의 관계자도 “‘생리로 인한 결석’은 한 달에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학에서 실제 실시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4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저바이, 한보 물러서 이 하루쯤은 어떻습니까? 이 하루쯤이면 “여성에 대한 무제한의 '혜택'” 아니겠지요?

아저바이, “생리휴강제도”는 “여간 복잡한 문제”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대학이라고 해도 저마다 손님이 오는 시간이 다르니 강의 진도를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사실 이런 문제는 없습니다. 그저 정상적인 원래 강의진도에 따라 하면 됩니다. 하루 쉬고 곧 바로 따라 갈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여자들입니다. 물론 “여학생에게 이런 혜택(생리휴강제도)을 주자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더 낙관적이고 적극적이며 주인공다운 인생도 있지 않을까."가 아니라 있습니다. ”시끄럽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씩 붉은 '손님'이 찾아와 고무해주니 신바람 나는데 휴강은 무슨 놈의 휴강이야! 너네 남학생들 우리보다 작대기 하나에 계란 두 개 더 차고 다니니 몸이 무겁고 힘겹지? 휴강하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해봐라!"라며, 말입니다. 물론 여자들 가운데는 이런 半邊天하는 女强者도 있습니다. 우리 중국 여자들 가운데 많지요? 그런데 여자들 가운데 半邊天할 수 없는 弱女者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손님” 때문에 골치아파하는 여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의 다원화 내지 다원 가치성 원칙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리휴강제도”는 어디까지나 꼭 쉬라는 것이 아니고 쉴 수도 있고 쉬지 않을 수도 있는 여성들 자율에 맡기는 것입니다. 아저바이는 “생리휴강제도”실시의 구체적인 세부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대학의 경우를 보면 학습성적과 장학금과의 긴밀한 연계 등등의 구체적 조치가 따라 가다보니 실제로 “생리휴강제도”를 남용하는 여학생들은 매우 적습니다. 쉬라도 안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저바이, 아저바이가 “생리휴강제도”에 찬성표를 던지자 하니 자꾸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이 뒤를 잡아끈다 이거지요? “필자가 소학을 다닐 때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이라는 상이 있었다. 1년에 결근 날자가 이틀 이하면 정근이고 하루도 없으면 개근이다(지각, 조퇴가 3번이면 하루 결석으로 인정한다). 30명 정도의 한 개 반에 해마다 정근생 2∼3명, 개근생 2∼3명의 수상자가 나온다. 심지어 졸업시 6년 정근생, 개근생 수상자도 간혹 나온다.” 맞습니다. 그때는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들이여야 공부를 잘 하고 수상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거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학교에 가야 공부가 되니 말입니다. 집에 책도 없고 TV도 없고, 볼거리가 없는 거지요. 무식쟁이 엄마, 아버지가 많은 지라 가르쳐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집에 책도 있고 TV도 있고, 엄마, 아버지도 유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굳이 학교에 안 가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새 장비가 좋으니 선생님 강의 녹음, 녹화해온다든가,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실제 강의 못지 않은 강의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집의 따뜻한 구들에 앉아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죠. 아저바이, 아저바이는 “중국의 웬만한 대학에서는 며칠 결근했다가는 남의 필기장을 빌어 베낀다, 밀린 숙제를 한다 하며 보충 공부로 둬 주일간 진땀을 흘려야 하는데 말이다.”를 들먹이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정말 촌스런 시대착오적인 촌 아저바이의 얘기입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우리도 이렇게 공부했습니다. 지긋지긋 신물이 나도록 말입니다. 시험공부라는 것이 교수님 마디마디 말을 최고지시로 간주하고 달달 외우기. 그래서 강의시간에는 교수님 방귀 뀐 소리 하나 놓칠새라 대구 베끼기. 그리고는 앵무새 노릇하기. 高分低能의 죽은 공부. 대학, 대학강의라는 것이 어디 이렇습니까? 적어도 베끼기가 아니라 같이 사고하고 토론하고 쟁론하기. 결론이 없어도 좋습니다.『성경』같은 경전공부가 아니니깐요. 사고의 깊이를 가져오고 폭을 넓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공부할 줄 알기 배우기, 한 마디로 공부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할 줄 아는 공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습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아저바이나 저에게 있어서 이런 상식적인 논의는 너무 소모적이니깐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봅시다. 사실 아저바이가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이라든가, “필기장을 빌어 베끼기”, “둬 주일간 진땀을 흘리기”든가는 제가 이해한 학습방법 차원의 천박한 얘기가 아니고 보다 심도 있는 고차원의 얘기인 듯 합니다. “옛날 한국도 상기의 상황과 비슷하였으리라 본다. 이런 정신이 있었기에 광복 후의 곤란, 6•25전쟁 후의 난관을 이겨냈으며 한강의 기적도 창조해 냈으리라. 좀 먹고 살만해 졌다고 안일만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세상에 각고분투 없이 출세한 사람이 있는가!” 아저바이는 바로 “정신”을 얘기하고 있구만요. 물질, 방법보다는 정신, 정신적 힘, 그런 거 말이지요? 인간에게 정신이 정말 필요하지요. 정신없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 또한 너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논의입니다. 그리고 아저바이는 이 정신을 너무 흘러간 옛 노래에서 찾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무지막지하게 돌격, 앞으로의 “계속혁명” 시대가 아닙니다. 과학의 시대입니다. 합리적인 과학의 원칙에 따라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좀 먹고 살만해 졌다고” 슬슬 놀아가며 충전도 해가며 여유롭게 사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입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일로를 걷지 않습니까? “각고분투”의 정신으로 더 열심히 일해 공산주의를 앞당겨 와야 할 우리 중국도 언녕 만만디 주5일근무제를 하지 않았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현재는 많은 작업들이 컴퓨터자동화라인이 되어 있어서 주5일근무만 해도 이전에 하루도 안 쉬고 줄창 일만 하던 때보다도 효율이 높다는 것이지요. 먹고 살만하다는 것이겠지요.
아저바이, 아저바이는 위의 흘러간 옛 노래에서 보면 “한강의 기적”운운에 지난날의 한국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아니 현재의 한국 청년학생, 대학생들에 대해서는 심기가 불편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구만요. 그래서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코 '생리휴강제도'의 합리여부만을 운운하자는 것이 아니다.”지요. 사실 아저바이는 시시껄렁한 “손님”에 “심상치 않”기 보다는 여기에 더 “심상치 않”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간 우려를 표시할 일이 아니다.”가 아니겠습니까? “중국에 유학 온 한국 대학생 공부 안 한다고 너무 소문났다. 수업에 빠지는 현상은 아주 보편적이며 그 정도도 십분 엄중하다. 어학 연수생의 예로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50% 정도의 수업에 빠지는 학생이 1/4, 30∼50% 빠지는 학생이 1/4이나 되며 1주에 한번도 안 빠지는 학생은 거의 없다. 기숙사에 찾아가 보면 대낮에 쿨쿨 자는데 밤새 카라오케에 가 놀고 새벽에 돌아온 자도 비일비재하다.”, “유학생만 그런가 했는데 자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저바이의 경험에다 필자의 경험을 놓고 볼 때 분명히 이런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저바이의 이런 예리한 지적에는 너무 예리하다 못 해 극단적인 편견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 대학생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이라는 제한 어구가 붙었습니다만, 아저바이의 그 가르치는 사람의 정의감이 밑받침된 격앙된 감정이 흘러넘치는 질정은 이것을 커버하고도 훨씬 옷돌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 공부 안 하는 것 같지만 할 “놈”은 다 합니다. 우리 눈에 안 하는 것 같이 보일뿐입니다. 아저바이는 꼭 선생의 강의를 들어야 하고 낮에 해야 공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애들은 선생의 강의보다는 스스로 안겨오는 영상, 낮보다는 밤에 더 정신이 나 하며 공부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 데 것은 그만 두고 북경대학만 놓고 보더라도, 썩 오랜 전 언젠가 필자가 북경대학에 놀러갔다가 박사생들을 보고 夜猫子라고 하는데 어안이 벙벙해 하다가 그 사연을 알고는 거저 웃음이 피식 나오고 말았습니다. 낮에는 쿨쿨 잠만 자다가 남 다 자는 밤이 되면 밤새도록 책을 보며 공부를 하니 야행성의 夜猫子라고 할 수밖에. 그래서 북경대학 博士生樓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히 밝아 있답디다. 한국 애들은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 같습니다. 밤에 공분지 무언지 했으면 낮에 잠이라도 자야 되겠는데 커피 둬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낮에도 책을 끼고 돌아다니니 말입니다. 물론 낮과 밤을 뒤바꾸어 행하는 역자연성은 나쁘겠지요. 그러나 못 말리는 요즘 아이들은 바로 이렇게 공부합니다. 그리고 요즘 애들 동기부여가 잘 되고 필요성만 생기면 하지 말라 해도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른바 사회에 나가 쓸모 있는 공부, 취직에 필요하고 살기에 필요한 공부는 열심히 합니다. 아니, 이런 “거창함”보다는 코앞의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입니다. 야들한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보다는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더 잘 통합니다. 그리고 요즘 애들 자기 적성에 맞고 흥취가 동하는, 이른바 개성에 맞는 공부는 열심히 합니다. 빌게이츠타입입니다. 좀 자사자리하고 용속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후계자가 되기 위한 거창한 전 인류적인 목표를 가지고 공부했는데 말입니다. 이 면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한 한국 애들이 더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저바이의 “한국 대학의 사정을 잘 아는 자에게 이런 예기를 했더니 ‘한국 대학생들 PC방에 가 게임 놀고, 채팅하고, 술 마시고, 데이트하는데 미쳤지 공부하는 줄 알아? 나흘 더 배운 자나 덜 배운 자나 그거이 그거야"며 필자를 면박하는 것이 아닌가!’”에서 그 “한국 대학의 사정을 잘 아는 자”는 사실 잘 아는 자가 아닙니다. 그 자는 너무 피상적으로 심정적으로 말, 아니 내뱉었을 뿐입니다. 필자가 한 1년간 직접 강의를 해보니 이렇지 않습니다.

아저바이, 요즘 아이들 정말 획일적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보고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因材施敎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우리는 힘듬니다. 아저바이, 저도 중국에 있을 때 우리 학부에 유학 온 한국 연구생들한테 한어를 가르친적이 있습니다. 단 세 명을 놓고 가르치는데 다 제멋대로 놀아납니다. 한 “놈”은 꼬박꼬박 제 시간에 오고 강의도 열심히 듣습니다. 우리가 다닐 때 소학생 같았습니다. 다른 한 “놈”은 위의 그 夜猫子타입니다. 짜식은 자기는 정말 낮에는 정신이 흐리터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가 져야 자기는 정신이 난다는 거지요. 또 다른 한 “놈”은 자기는 아예 강의 자체를 싫어한답니다. 딱딱한 분위기보다 홀가분한 분위기속에서 공부를 해야 잘 된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강의 잘 듣는 그 애만 좋다고 하고 나머지 두 애는 희망 없는 애라고 포기했겠습니까? 이렇게 할 때 가르치는 자로서는 너무도 무책임하지요. 학비까지 받아 챙기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첫 번째 “놈”은 오전 강의 그대로 하고 두 번째 “놈”은 자정 12시(나도 夜猫子니깐)에 하고 세 번째 “놈”은 점심에 밥 먹으면서, 때로는 술 한 잔 곁들이면서 하고, OK? OK! 師道尊嚴을 다 잃고 학생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 같지만 우리의 교육이 因材施敎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학교에 매개 반 인원을 적정수준으로 제한하고 교실도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들며 강의도 아이들 적성에 맞는 영상멀티매체를 동원하든가, 오락이나 유희 속에서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저바이, 因材施敎,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할 때는 ”또한 세상에 각고분투 없이 출세한 사람이 있는가!”가 아니라 그런 사람아 나옵니다. 세상은 萬花境이라 자기 적성만 잘 개발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적성개발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현대교육의 특색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적성개발을 잘 할 때 진짜 이 세상을 감짝 놀래우는 “괴짜”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빌게이츠, 그렇게 因材施敎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선전국 미국식 대학교육도 자기의 적성개발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자 중도포기.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적성개발에 나서 현재 작지만 가장 강한 세계 최고의 컴퓨터회사를 일떠세웠지 않았습니까? 몇 년 전 중국의 교육계에 불기 시작한 이른바 創新교육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因材施敎를 전제로 한 학생 나름대로의 적성개발 및 창의성발휘에 모멘트가 놓여있다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아저바이?

아저바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손님”, 더 나아가서는 한국 청년학생, 대학생들에 대해 “한국의 지성인들은 마땅히 이를 심상치 않은 화제로 보아야 한다.”고 그 누구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일단 아저바이의 시각교정이 필요하고 그 다음 “심상치 않”게 볼 문제인 줄로 압니다.

아저바이, 어쩌다 보니깐 말이 길이지고 많아졌습니다. 좀 격앙된가 봅니다. 그러니 논리적 비약을 떠나서 애초에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는 줄로 압니다. 아저바이의 그 하해 같은 마음으로 너그러이 기분 좋게 받아주고 읽어주십시오. 읽기가 거북스럽거나 싫으면 연길에 놀러 오십시오. 진짜 "손님"이 왔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껏 얘기합시다. 아저바이하고 할 얘기가 많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웃으며 삽시다.

우상렬 배상
2006.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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