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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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왔습니다
2005년 12월 03일 00시 00분  조회:4170  추천:57  작성자: 우상렬
손님이 왔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이나 중국대학생들 강의 듣기 싫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교수들 밥통 떨어질세라 고안해낸 것이 출석 체크하기. 1순이, 2순이, 3순이... 이렇게 이름 부르다 나면 한 5분 잡아먹기. 그리고 평상시 학습자세요, 학습 태도요 하며 평시 성적 몇 %, 그리고 이런 성적들을 장학금과 매치시킬 때 학생들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출석을 잘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런 것이 안 먹혀들어갈 때가 있다. 예컨대 아프거나 집에 불상사가 났을 때 청가서를 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 내가 강의를 하고 있는 배재대학교 강의에서 좀 색다른 안 먹혀들어감에 나는 좀 놀라다가 이제는 그 식이 정상이 되어 있다.

3순이:교수님, 내 청가서입니다. 내일 강의 내 못 나옵니다.
교수 우:어, 그래
청가서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좀 이상해났다.
공결이유, 뭐, 손님이 왔다구? 이마에 내 川자를 그리는 교수 우.
손님이 왔다구? 얘, 손님이 왔습니다. 또박또박 말하는 3순이. 그래, 손님이 왔는데 니하고 관계가 뭐야? 니 공부 니 하면 되지. 아이 참, 교수님도. 손님이 왜 나하고 관계없어요. 여자들 손님인데... 우둔한 우교수는 그제사 좀 깨도가 되는 듯 하다. 아, 그거~ 월~경 아니아니, 달거~ 아니아니 거시기... 깨도가 되면서도 제풀에 주눅이 들어 얼굴이 붉어지고 꺽꺽 거리는 우교수. 그렇지요, 월경 말이지요. 한 수 가르치는 듯한 3순이. 우리 여기서는 생리휴강제도라는게 있어요. 여자들만의 휴강제도! 3순이는 어깨가 으슥해났다. 아, 그래. 그럼 쉬어야 되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속은 켕기어, 임마, 손님, 아니 월경이 뭐 그리 대단해. 부끄럽지도 안 해. 그 잘난거 갖구 쉬겠다구? 우리 엄마는 밭에서 나를 낳고 그 대로 호미자루 잡고 일했단다. 지금 기집아이들은, 참, 못 말려!

그런데 이튼 날 배재대학교 신문의 ‘바탕화면’이 전부 핑크색으로 된 톱기사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문화기획/생리휴강(핑크색 1호 글자로, 필자 주)]-제목:월경, 당당히 말하자(진붉은 월경색 2호글자로, 그리고 옆에 알락달락 예쁜 생리대 아이콘을 줄 세워 놓음. 필자 주) 소제목:‘그날’ 아닌 ‘월경’으로 새로운 도약(검은 색 3호 글자로, 필자 주). 호기심에 끌려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숨을 죽여 가며 주~욱 훑어보니, 아닌게 아니라 월경 소리다. 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여성들에게 생리휴가가 주어지는데 대학생이나 청소년들에게 생리휴강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대학권에서 최초로 생리휴강제도를 정규적으로 실시한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교의 경우를 부러운 사례로 꼽고 있다. 그리고는 요즘 들어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생리휴강을 시범실시 한다고 발표하게 되면서 대학권에서 생리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니 順理成章 격으로 우리 배재대학교도 여대생들의 생리휴강제도를 실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문조사를 하니 여학생 100% 찬성, 인터뷰를 하니 남학생들도 여성들에게 배려를 하는 것은 신사에티켓의 기본이라고 하며 좋다고 한단다. 그러다가 마침 11월 한국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시즌이라 배재대학교 여학생회 출마후보들은 너도나도 생리휴강제도 정착화를 공약으로 내건다. 이 공약이야 말로 學心, 특히 女心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생리, 그것은 어느 새 여성만의 독특한 존재가치로 부상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당당히 말해지는 붉은 원색의 월경이다. 그래서 그것은 지긋지긋하고 우울만 안겨주던 반갑지 못한 손님으로부터 즐겁고 반가운 손님으로 변해간다. 여권이 그 만큼 신장되고 현대사회가 그 만큼 신사화되었다는 말이 되겠다. 신사가 되자면 여성에 대해, 특히 여성의 손님에 대해 배려를 해야 한다. 이로부터 무신경하던 나는 어느새 ‘손님’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이고 공손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 배재대학교 강의 때 생리휴강 신청서를 들고 오는 여학생에 대해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OK, OK 연발했다. 그러면서 나는 맹세했다. 이제 중국에 돌아가 우리 연변대학교 강의 때는 여학생들이 생리 기색만 보여도 내가 알아서 척척 생리휴강을 배려해 주리라고. 우리 여학생들은 여자가 아닌가, 무엇이 모자란데 말이다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다보니 손님이 반가운 줄 모르고 무신경하게 아무렇게나 지내 보낸 우리 어머니가 불쌍해났다.

2005.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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