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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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사과배와 조선족문화
2005년 04월 12일 00시 00분  조회:2986  추천:75  작성자: 허명철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5

사과배와 조선족문화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사과배는 연변의 특산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조선족농예인이 조선에서 갖고 온 사과묘목을 당지의 돌배와 접목시켜 배양해낸 새로운 품종---사과배는 자체의 잡종우세를 발휘하여 사과나 배가 지니지 않는 특유의 맛과 향기를 뿜고 있다.

반면 대련산 궈광처럼 모양새가 가쭌하게 잘 다듬어지지 않았고 또한 오래 저장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재미나는 것은 사과배와 조선족문화의 유사성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특산으로 자랑떨치고 있는 사과배는 어찌 보면 조선족문화의 형상화한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체의 특유의 생존이념을 토대로 대대로 내려오면서 이미 체질화 되어 있던 조선문화를 중국이란 새로운 사회적문화와 접목(융합)시켜 형성한 조선족문화 또한 중국문화도 조선족문화도 아닌 새로운 문화형태로서 민족문화사에서 특유의 멋을 피우고 있다.

다만 사과배가 깔끔하게 자기의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족문화도 현재로서 자기의 리론적 기틀과 기본성격에 대한 규명이 제대로 잡히지 못하고 있으며 사과배가 오래 저장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중국문화의 대환경 속에서, 또는 세계화의 충격 속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계속 보존해 가면서 존속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연변의 사과배 시장을 개척해야 하듯이 우리도 조선족문화의 새로운 생존공간을 부단히 확장해 나가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특히 오늘날 조선족인구가 날따라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물론 민족에 대한 귀속을 떠나서도 개개의 생명체로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기왕에 우리가 숙명적으로 조선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면 나의 존재에는 조선족다운 그 무엇이 체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조선족다운 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가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전 민족을 결속시킬 수 있는 종교도, 우리 민족만이 즐길 수 있는 명절도 없다. 지난 20세기 90년대 전 중국 200만 조선족이 하나로 되어 고락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선족의 브랜드였던 연변오동축구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즐기는 우리민족은 자기의 축구팀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동한 언어가 생기게 되었고 축구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조선족공동체의 존재를 위해서 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브랜드전략을 펼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우리의 명함과 같은 조선족문화가 하나 둘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온돌문화를 아파트문화와 결합시켜 도시에서 향수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온돌문화를 형성하듯이 우리들이 합심하여 자기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며 또한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간다면 비록 약소할지라도 우리는 그 문화에 힘입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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