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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른다”
2022년 06월 14일 12시 00분  조회:2478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올 5월 16일(음력)은 아버지(오호준)탄신 105주년 기념일이다.
아버지는 1917년 5월 16일에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온성읍 이포면 장덕리 장덕동에서  탄생하였다.
1920년대 초에 할아버지(오창범)가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아 아들 3형제(오광준, 오호준, 오형준)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첫 삶터로 도문 곡수에 잡았다가 량부모가 돌아가자 백부(오광준)님이 두 동생을 데리고
오씨네동네로 불리는 강건너 마을인 달라자에 이주해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1947년 5월 9일, 30살에 나를 낳고 1957년 1월 12일 40살에 불행하게 사망되였다. 오늘 필자는 지난 5월 18일(양력) 가정의 날을 기념하여 쓴 수필(응모작품 27) 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른다를 아버지 탄신 105주년을 기념하여  하늘나라에 계시는 선침님과 뱀부님을 비롯한  모든 고인분들에게 올리면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빈다. 
 .  
                      “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릅니다”
                                                           
                         (
글:오기활 랑독:윤련순 음악배경:변소화)
 
“인생 70고래희”라는데 나는 어느덧 70 대중반이지만 지금도 신사물에 호기심이 많고 언행이 천진하다. 
그런데 요즘에 셈이 든다고 할가, 종종 지난날을 돌아보며 내가 대체 어떻게 살아왔는가?” 자문 본다. 
 와중에 “나는 눈물도 헤푸고 웃음도 헤푸게 살아왔다”는 엉뚱한 답으로 남들을 당황게 하였다. 래서 그들에게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사나이가 아니다”는 어른들의 에 걸려 “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른다” 자기를  변명한다. 
지나온 인생을 반추해보면 나는 확실히 울음도 헤프고 웃음도 헤프 살아왔다.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는 “남자들이 녀자들보다 알콜중독자가 세 배이상이 됨은 남자들이 녀자보다 눈물을 자주 흘리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남자들은 알콜의 도움으로 자신의 분노나 슬픔을 해소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 알콜의 도움이 없이 웬간한 자극 받기만 하면 순간사이에 눈물을 흘린다. 
.
나는 2살에 엄마를, 10살에 아버지를 잃고 16년을 큰집에 얹혀서 5촌 12명이 한구들에서 살았다. 그래서 제 설음으로 흘 눈물이 많았다는 생각이다.

 먼저 곡문(哭门)으로 들어간다
나는 지나 온 설음으로? 아니면 동정심이 많아서? 또 아니면 소박한 계급감정에서?..
아무튼 “뢰봉”영화도 손수건을 손에 쥐고 봐 했다. 
나는 부모사랑갈증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얼굴도 기억이 없는데도 엄마생각이 점점 더 나면서 어릴 때 누님들을 따라 부르던 노래 혼자서 “엄마생각”을 부르려고 도 애절 노래말에 목이 메여 한번도 끝까지 부르지 못다.
“엄마생각”의 가사이다.
1절
쓸쓸한 가을바람 불어 오면은
사랑하는 우리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죽어 나비되고 내가 죽으면 
꽃이 되여 그때마다 안아주세요
2절
동생아 울지 말고 어서 자거라
네가 울면 내 눈에서 피가 흐른다
 .... ... 
 1절 시작부터 가슴이 저리고 2절은 목이 메여 계속하여 부를래야 부를  없었다.
() 자랑을 할려니 나에게는 두 번이나 대성통곡을 한 과거가 있다.
 번은 내가 큰집에서 한집식구(食口)로 16년을 살다가 1975년 국경절에 결혼하고 이듬해 1월에 큰집에서 세간을 나던 날이다.
“한집식구”란 한 지붕을 쓰고 사는 한집식솔이 한구들 앉아서 한가마 밥을 함께 먹는 食口 말한다. 
食口란 먹 말하는 입(口) 말한다.
 입은 살아있는 인간수 계산하는 1 인체구조이다.
하기에 한집의 식솔이 얼마냐그집에 食口가 몇이냐,  나라 사람이 얼마냐를 “그 나라 사람의 입이(人口)이 얼마냐? 묻다.  
그러니 내가 큰집이란 대가정에서 “한집식구” 사랑과 대접을 16년이나 받다가 래일부터 “딴식구”로 딴가마밥을 먹는다고 생각하 생각할수로 설음이 앞서며 눈물이 앞다.
어렸을 때 어른들 “한집식구가 남이 되는 시작이 형제들이 결혼하고 세간을 나는그 날부터다”고 하였다. 뜻인즉 친형제간이 한집에서 살다가 결혼하고 세간을 나면서부터 촌수가 1촌, 2촌, 3촌. 4촌, 5촌, 6촌..,8촌...12촌....으로 늘어나면서 나중에 촌수가 멀어져 남이 된다는 것이다.
 친형제가 남이 된다 어른들의 말씀이 처음에는 무섭게 들렸는데 나이가 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 보니  말씀 도리 있 정말 맞는 말씀이였다 그러래서 오늘에  말씀을 처으로 실감하니 큰집에서 뼈가 굳고 살이  내가 래일부터 ‘딴식구” “남”이 되기 시작한다니 나로서 대성통곡을 안 할래야 안 할수 없었다.
세간 나던 날 오전 11시경, 나는 소수레 몰고 땅땅 얼어붙은 북강을 건너면서 서쪽에 자리한 큰집을 향해 “형님에!ㅡ 형님에!...형님에!” 하며 애절하게 부르 또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밖에도 내가 대성통곡을 하는데는 이런 원인 있다.
큰집의 사촌형님(오기풍)은 나의 명실공한 엄부형(严父兄)이였다. 왜냐면 나와 형님의 년차가 18년, 형님과 아버지의 년차 역시 18년이니 형님은 확실하고 당당하며 엄숙하 나의 아버지다. 
마른 명태마냥 몸이 마른  형님은 슬하에 무남3녀로하여 백부님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자부터 “서방을 빨리 가서 아들을 낳아 큰집 양자로 맡기고 형님의 앞을 세우라”고 재촉 하였다. 
약한 다리에 침이라고 형님은 중년에 신장병 치료하다가 마이시(链霉索)중독에 걸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걸음까지 휘청거려 동네서 약자 취급 받았다.
 70년대는 나라가 계획경제때여서 거의 모든 생필품 공급제였고 설명절 돼지고기까지 분배하는 시대에 큰집에 내가 없으면 동네 남자없는 집으로 없이움을 당하는 것 같아서 큰집의  모든 처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큰집 신세가 측은하고 형님이 불쌍하고 가련하였다. 그래서 큰집쪽을 바라보며 형님을 부르 또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 대성통곡사는 아들의 결혼때다. 
 아들의 결혼에 아버지가 대성통곡을 했다면 많은 청자들이 의문스러워 했고 척이나 친지 마저 믿을수 없단다.
 시집가는 딸 결혼도 아니고 새 사람을 데려오는 아들의 결혼식에 기뻐서  절로 나 판에 대성통곡을 했다니 말이 되느냐?
나는 일본에 간지 10년이 되는 아들이  2010년 9월16일에
결혼하러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생각으로 며칠전부터 밤을 하얗게 보내였다.
ㅡ조실부모로 하여 아들이라고 못 불려본 내가1976년10월 28일에 금쪽같은 아들을 낳고  아버지로 되였으니 얼마나 기뻤던가.
하늘나라 계시는 어머니가 매년 제사날(음력 10월 20일)이면 흰 눈 내리기에 우리 형제들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흰이불을 하사했다며 기뻐했는데 글쎄 아들의 출생에 때아닌 10월에 아침부터 큰눈이 내리더니 12시경 아들이 출생하자 내리던 눈이 멎고 중천에 붉은 해가 걸렸으니 이는 정녕 장손의 출생에 어머니가 기뻐서 흰이불 하사한 것이라며 얼마나 기쁘던지.... 
ㅡ아들의 예비이름을 12이나 지어놓고 한자 한자씩 해자하다가 백두대간 불로송이 떠올라 茂松이라작명하고  뒤를 자돌림으로 큰 조카(동생의 큰 아들)의 이름을 茂成, 둘째 조카의 이름을 茂林으로 3형제의 공명 松成林이 그야말로 명실공한 백두대간의 불로송으로 진짜 뿌듯하였다.
ㅡ아들의 소학교 입학부터 중학교까지 부자간이 함께 반급벽보를 꾸렸고, 아들의 특장과 흥취를 살려 손품금도 사주고 서법이며 글짓기에 인도를 하면서... 
ㅡ북경아세아운동때 연변일보 특파기자로 취재를 떠나던 날 아들이 부탁하던 로라스케트를 사느라고 길치매인 이 애비가 얼마나 동분서주 했던가......
그리고 부모들의 가슴속에 잊을 수 없는 아픈 일로 아들이 애비의 휴대용록음기를 몰래 갖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고 독선적인 이 애비가 나서 부모들 모르게 록음기를 사겠다고 부모 몰래 16살에 도문시립병원에 다니며 1200그람의 피를 팔았다는 소식을 남을 통해 뒤늦게   이 애비가 울분 터지는 가슴을 짓누르며 시립병원 원장을 찾아가 미성년의 피를 사서 시립병원이름을 콱 날리라 울음으로 호소하던 이 어제 같은데... 
ㅡ아들이 일본류학을 갈때 엄마는 흥진촌에 가서 송아지 한마리를 사서 그자리에서 잡고... 소고기를 삶아서 말린 고기가루로 짐을 꾸리면서  배고플때 아무때나 물에 풀어 먹으라고 당부하고는 떠나는 아들에게 게 포장한 국기를 주면서 어디서나 애국심을 간직하라고 당부하던 모습... 
 애비미국의 성공대가 ㅡ 라폴레온 힐이 쓴 책 (성공의 법칙)아들에게 주면서 너의 일생의 좌우명을 하라고 부탁하던 그 날이 어제 같은...
 ...금쪽같은 아들이 결혼하고 돌아가는 날 이제부터 아들이 “딴식구”로 된다 생각하니흐르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게다가 항간에서 떠도는 “유능한 아들은 국가 아들이고 효도하는 아들은 사돈집 아들이며 무능한 아들이 내 아들이다” 말에 “유능하고 효도하는”내 아들이 이제부터 “남의 아들”로  것이라 생각하니 이 애비는 금쪽같은 아들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감히 볼 수 없어서 집에 혼자남아 볼멘소리로 “아들아, 아들아...”를 부르 대성통곡하였다... 
2
哭门 나와서  笑门 다.
나는 선천적이라고 할가 아무튼 웃음 동무하여 재직때연길집 출입문 벽거울에 “오늘 세번 웃었습니까?”를 유표히 붙혀놓고 출퇴근 때마다 거울을 마중하고 세번 웃는것을 습관화 하였다.
나는 어디서나 나를 소개할때면 나의 이름 오짜, 기짜, 활짜로 오기활, 한자이름을 해자하면 나라 吴, 터 基, 살 活로 “吴나라에 基본상 살活아가는 사람이”고, 한편 나의 이름을 꺼꾸로 부르면 “활기”라면서 “나는 이름 그대로 활기스러운 사람이다” 자찬한데서 청자들 하여금 때아닌 웃음을 짓게 하였다. 
내가 이 글에 특필함은 아들의 “제철효도”로  남들이 우리를 “기쁨이네 가정” 이라고 칭하는 얘기다. 
12년전, 결혼 아들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하는 약속이다.
“나는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잘 배워주는 것으로 부모효도를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아들의 말에 다른 기대를 두지않고 흘러보내는 말로 “그래라, 그래라”며 머리 끄덕였다.
그후 아들내외 “우리말로 해라”를 “가훈”으로 한것 같다. 
아들과 며느리는 얘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말을 가르쳤기에 손녀가 두살때 벌써 우리말로 “99”를 7단까지 외우는 동영상을 보내와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동영상 우리 친척들게 돌렸는데 친척들 모두 “아버지가 박사니깐...”하면서 경탄을 자아냈다.
심지어 며느리는 한국 나들이를 할 때마다 얘들을 데리고 다니며 얘들을 한국 “어린이 집”에 보내여 우리말을 배우게 하였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그후 우리가 한국에 다녀보니5살짜리 손녀의 우리말 수준은 한국드라마에서 나오는 동역에 못지 않았다. 우리가 전등이나 텔레비를 “죽여라”고 하면 손녀가 그 자리로“할아버지, 텔레비를 죽여라가 아니라 텔레비를 꺼라고 해요”라며 어른들의 틀린 말과 사투리를 바로잡아 주었다.
한번은 손자가 놀음에서 손을 떼고 나에게 “내가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랍니까?” 묻기에  나는 별 생각이 따로 없이 “저기 가서 자라”고 했더니 손자가 “내가 우리 말로 했는데도...하면서 할아버지가 우리 말을 알아 못듣는다”며 이상해 하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입(口)의 역할이 식(食)과 설(说)이라면 입(口)이 우리 3대를 “한집식구(食口)”로 만들었다.
우리가 3대가 한집, 한상에서 한가마 밥을 먹고 3대 서로가 “딴말”이 아닌“우리말”을 하니까 웃어도 함께 웃고 욕 해도 같은 말로 “인민전”을 벌리니 이것이 “한식구”가 아니고 “딴식구”가. 
얘들의 “우리말”은 효도와 정비례를 하였다.
손군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방 찾아와 배꼽인사를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편히 주무셨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편히 주무세요” 아침저녁 문안을 하였다. 
한번은 3살짜리 손자 제일 좋아하는 딸기를 사다가 더니 손자는 딸기를 받자마자 먼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누나의 몫까지 챙겨놓더니 나중에 자기의 몫이 없게 되자 울음을 터뜨릴 뿐 자기 분배했던 딸기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손군들로 하여 일본이 이국이라는 감이 별로 없기에심지어 인사말이라도 일본말을 배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디를 다니나 손군들이 동행하니깐.
한번은 며느리 생일에 내가 아들며느리 몰래 “생일선물 깜짝쇼”를 했더니 아들 며느리가 ‘말도, 글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어떻게...?’하면서 “동전눈”을 기에 나에게 전담번역관(손녀)이 있다니 모두 손자손녀에게 엄지를 내들며 웃음만들었다.
나는 손군들과 다니면서 일본의 공중질서와 례절을 배웠다.
손녀는 내가 사진찍기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그가 수영을배우는 수영관을 갈때마다할아버지 수영관에 가서는 사진을 찍지 말아요를 몇번이나 당부했고 손자를 데리고 공원놀이를 할때 소변을 보겠다는 손자에게 저쪽 나무숲속에 가서 소변을 보라고하니 그건 안되요하면서 끝내 공공화장실을 찾았다.
우리 “기쁨이네 가정” 남없는 웃음자랑거리로 우리 아들이 일본 케이오대학의 방문학자로 가족을 데리고 2년간 미국하버드대학에 연수하는 사이에 며느리가 아이들에게 우리 글과 한자를 열심히 배워 준데서 지난 1월에 손자손녀가 련명으로 쓴 편지와 동영상을 받은 것이다.
며느리가 보내온 동영상은 손녀의 아리랑 노래에 흥이 난 손자의 피아노 반주, 할아버지 할머니 수연례에 올리는 축수의 말과 생일축하노래...그리고 한집식구들이 식사를 하는 푸짐한 밥상이였다.
지금 우리는 부모, 아들, 딸이  3국에서 사는 리산가족이지만 3국에서 오는 동영상과 우리말 소통으로 웃음으로 가득찬 “한집식구”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아래는 손군들이 보내온 편지 전문이다.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동안 잘 보냈어요? 가예랑 수민이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내가 우리말로 편지할 줄 몰랐죠? 나는 한국말도 잘 쓸수 있어요. 가예랑 수민이는 미국학교에서 매일 재밋게 보내요. 공부도 제일 잘해요. 그래서 반 친구들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나를 선생님이라며 나한테 물어봐요. 그러면 가예가 배워줘요. 그리고 11월이 되면 우리도 백신을 맞을수 있다고 해요. 참 잘 됐죠? 그리고 우리는 학교에서 한주일에 한번씩 코로나 검사도 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식구는 4명이 함께 학교에 다녀요, 수민이와 가예가 같은 뻐스로, 아빠랑 엄마랑 같은 뻐스로 다녀요 그리고 아빠랑 엄마랑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요. 아빠가 많이 날씬해졌어요. 3키로 뺏어요. 76키로까지 뺄거래요. ㅎㅎㅎ 우리식구들 재밌죠. 
오늘은 이만 끝!
2021년 10월 24일, 가예랑 수민이가.
 
” “민족이란 언어의 공동체이다. 한 민족을 형성하는 5대 요소중 가장 기본은 언어이다”(황유복교수) .
손자손녀들의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노래” 우리 3대 “기쁨이네 가정”에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 으로 아름다운 꽃을 활짝피워 준다. 
세계적인 명인들의 말로 이 글을 맺는다.
“눈물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선물이다” 
“ 눈물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것에 부끄러울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일린 로이 매기니스)
“지혜로운 사람은 남들이 할 수 없다는 일을 해낸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다 하는 것도 못한다는 사람이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웃겨도 웃지 않는 사람이다”(성공의 대가 트레이시)
“웃지 않고 보낸 날은 실패한 날이다”(챠플린)
이로 보면 나는 울음이란 하늘의 선물을 만끽하면서 웃음으로 어리석지 않는 살맛나는 기쁜 삶을 사는 인간이라 하겠다. 
 부언으로 “우리말로 해라”는 아들의 제철효도,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 배워줌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는 며느리에게 감사, 감사, 또 감사를 보낸다.
 
오기활,
2022년 5월 16일 (아버지 탄신 105주년을 기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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