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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특산이 뭐예요”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일전에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두분의 동료 교수와 함께 연변고찰에 나섰다. 동행한 교수 한분은 신강 우룸치 출신의 한족교수이고, 다른 한분은 사천 량산 출신의 이족교수로서 중국인류학계에서 유명한 분들이었다. 연변에서 몇년간 생활한 나로서는 별로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으나 연변에 처음가는 그들은 자못 흥분된 기분이었다. 기타 민족들에게 조선족은 문화와 교육이 발달하고, 깨끗하고 세련된 집단으로 알려져 있어 그들이 연변행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큰 것 같았다.
그러나 연길로 도착해서부터 그들의 질문은 수없이 나에게 쏟아졌다. “왜 길에 사람이 이렇게 적냐?”, “연변이라면 조선족 특색이 짙을 것 같았는 데 와보니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장사하는 사람이 거의가 한족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질문이 끝없는 것 같았다. 연길, 용정, 도문, 훈춘, 조양천 등 지역을 돌면서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기억에 오손도손 했던 도시들은 인적이 한산한 모습을 보였고, 수부도시 연길마저 너무 썰렁하게 느껴졌다. 물론 겨울이어서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적은 원인도 있겠지만, 밤에도 많은 아파트의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보면 빈집들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또한 랭면집이나 개장집같은 곳도 복무원이 모두 한족이어서 예전에 분위기는 아니었고, 도시의 변모는 변하고 있으나 조선족 생활문화의 색이 옅어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오기 전날 두 교수는 연변에 왔으니 기념으로 뭐래도 좀 사가야 할 것 아닌가고 하면서 우리를 동행하는 민족종교국 간부에서 “연변의 특산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 분은 선뜻 대답을 못하더니 운전기사와 상의하고 나서 “연변에는 장백산에서나는 중약재와 산나물이 특산입니다. 기념품으로 가져가면 좋을 겁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한 매장으로 갔는데, 들어서보니 가게도 크지 않고, 연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삼이나 록각、검정귀 버섯 등이 진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요즘은 중약재와 같은 것들이 너무 가짜가 많아 원만한 품질포장이 없으면 쉽게 사게 안된다. 두 교수는 살 것이 없다는 식으로 머리를 흔들며 체면상 검정귀버섯 한 봉지씩 사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새삼스럽게 “연변의 특산이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녀보면 자연경관만 보는 여행이 제일 멋없고, 순 경관이 아닌 역사문물이나 생활문화를 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여행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그기에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이나 공예품 같은 것을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가령, 운남성 이강에 가면 옥룡설산과 같은 거대한 자연경관이 있는 가 하면 옛 나시족의 왕궁이 있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요해할 수 있고, 더욱이 당지에서 나는 공예품들이 여행객들이 발을 당긴다. 각종 은제품, 나무공예품, 각종 골동품, 당지에서 나는 천으로 만든 손수건과 목도리와 같은 장식품들이 많아 숙소에서 쉬다가도 또 나가 돌고 싶다. 하남성 개봉에 가면 수놓이가 일품이다. 각종 꽃이나 풍경을 정교하고 수놓아 액자에 넣어 파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치고 하나쯤 사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내몽골 하이라얼시에 가면 나무를 편으로 잘라 그 횡단면에 그림을 그려서 파는 공예품들이 일품인데, 그것을 하나 사서 집에 걸으놓으니 구수한 나무 향기도 일품이어서 오는 손님마다 부러워 한다.
그럼 연변에는 뭐가 있을 가? 흔히 말하는 연변의 자랑거리인 개고기와 냉면은 한번 먹어보면 끝이고, 소위 장백산에서 난다는 약재를 사자니 큰 회사나 장기간 경영하여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가 없어 선뜻 사게 안된다. 공항이나 호텔 등의 매장에는 한국산 공예품과 일부 러시아산 공예품들이 있는데, 이런 물건을 굳이 연변에서 사야할 필요가 없다. 가령 북경만 해도 대사관 구역의 상업구에 가면 각 국의 물건들이 즐비하고 큰 매장들이다보니 품질도 신뢰할 수 있다.
연변에 가면 흔히 당지 간부들로부터 장백산은 세계 몇 대 약재기지요, 연변의 삼림피복율은 얼마요 하는 소개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개고기 거리”만 만들지 말고 “장백산특산거리”는 못 만들가? 검증을 받은 업체들을 집중시켜 관리도 강화하고 상호 견제하고 경쟁시켜 특산품의 시장을 정돈하여 전국 나아가 국제적으로 이름있는 약재시장으로 발전시키지 못할 가? 삼림피복율이 70%이상이라는 연변에 가면 왜 목 조각품과 같은 공예품 하나 볼 수 없을 가? 목재가 대량 수요되는 산업은 채벌과 같은 제한을 받아 쉽게 발전시킬 수 없다면 원목으로 쓰기 힘든 나무를 조각이나 공예품으로 만들 수는 없을 가? 하이랄시의 공예품처럼 나무 횡단면에 우리 민족여성들의 단아한 모습이나 민속놀이장면과 같은 그림을 그려 넣는다면 외지 여행객들에게 얼마나 뜻깊은 기념품이 될 가?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윈리는 교환이 아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로 남과 교환해야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고 생활도 윤택해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연변의 상황은 “색시를 남에게 보내고 안방까지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형국”이다. 양질의 노동력과 인재는 외지로 나가고 외지 상품들이 본 지역의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내 것을 만들어 남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밑에서 일하여 번 돈을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형국으로 양쪽으로부터 당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변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본 지역의 자연자원、생태환경、인문자원을 잘 이용하여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보다 상급 정부의 자금을 쟁취하여 눈에 보이는 공정을 벌리기에 급급한 것 같다. 물론 기초시설 개선이나 건설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취직이 잘되고 수입이 높은 외지로 나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기업과 사람이 적어지다 보니 거금을 들여 건설한 고속도로와 아스팔트는 한산하기만 하다. 길이 쭉쭉 뻗어있고 개발구도 널찍널찍 하건만 정작 행인은 드물고 기계 가동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즉 무대는 갖춰져 있는 데 배우가 없는 셈이다.
내륙변강지역은 특색경제를 발전시키는 길 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세계공장이 되어 일반 공산품의 생산은 과잉되어 있다. 따라서 내륙지역에서 일반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업을 발전시킬 시장공간이 없고, 그렇다고 고기술산업은 더욱 힘들다. 요즘 내륙 변강소수민족지역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지역 거의가 지방의 우세를 잘 이용하는 특색경제를 발전시킨 곳들이다. 가령 운남성 훙허하니족자치주는 연초공업으로, 내몽골 어얼둬스는 광업과 모직업으로 전국적으로 소문나 있다.
연변은 “꿩 잃고 알 잃고 둥지까지 망가지는”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본 지역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 국내 나아가 국제의 산업지도에서 자기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변의 특색이라면 아무래도 장백산지역에서 나는 각종 자원과 조선족문화가 아닐 가 싶다. 문제는 특색을 어떻게 산업우세로 전환하는 가에 있을 것인데, 특히 문화를 어떻게 경제발전에 이용하는 가하는 문제는 더욱 텅빈 구호같아 보인다. 그러나 문화를 이용한 마케팅 사례는 많은 것 같다.
가령, 요즘 장족지역에서 나는 약재는 “藏药”로 불리면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고, 역시 장족지구 견종인 ”藏獒”는 이미 상류층의 사치품으로 되어 있으며, 장족들이 쓰는 칼 “藏刀” 역시 소장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전형적으로 민족특색과 지역특색을 이용한 성공적인 시장판매전략이다. 운남성 원싼현의 푸저허이 이족민속촌에 가면 경치도 수려하거나와 이족문화 특색 또한 여행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주택, 복장, 음식, 민속활동 모두 이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저녁마다 조직하는 우등불야회는 유람객들의 환영을 받는 다. 기후가 좋아 일년내내 각지의 유람객들이 몰려되는 데, 한달에 한 농호가 몇 만원씩 번다고 한다. 몽고족에게는 “马奶酒”와 “风干牛肉干”있다. 술맛도 좋거니와 고기맛도 일품이며 휴대하기도 편해 북경같은 대도시에서도 부리나케 팔려나간다.
그러나 연변의 현재의 모습은 문화적 특징을 살리려는 노력에 비해 쇠퇴의 추세가 더욱 완연한 것 같다.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라는 타이틀과 문화적 특징을 버린다면 정말로 아무런 특색도 없는 완전한 변방이 되고 만다. 그러나 조선족문화를 잘 이용하여 특색을 부각해나간다면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연변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걸음에 우리는 우연히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에서 새로 개발하였다는 “된장술”을 맛보게 되었다. 조선족의 전통메주를 술원액과 결합하여 빚은 술인데, 길림성품질관리국의 검증에 따르면 화학첨가제가 없고, 메주 속에 영양성분이 용해되어 해독기능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연구하는 두 교수에게 이를 소개하여 주었더니 문화를 상품화한 좋은 사례라고 하면서 기념품으로 이 술을 가져가면 되겠다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홈장이나 다름없는 연변에 와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 같아 내심 개운하지 않았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몇 병씩 선물하였다. 요즘도 이 두분 교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된장술”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군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와 전통을 상품화한 좋은 사례가 아닐 가? 조선족은 일류의 입쌀을 생산하면서도 입쌀 명품브랜드 하나 만들지 못하고, 개고기 잘 먹는다고 전국에 소문났지만 개고기상품 브랜드 하나 없고, 명태로 별 반찬을 다 만들어도 전국 시장에 내놀 상품 하나 만들이 못한다. 여름에 입으면 그렇게 시원한 삼베나 모시 옷도 요즘같이 찌든 여름을 보내야 하는 도시에서는 환영받을 법 한테 서시장에 옷감이 흔해도 상품화시키는 사람은 없다.
연변주정부는 고래등같은 정부청사를 좀 줄여 짓더라도 기금을 조성하여 이러한 지역특색을 반영하고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부금, 세제, 토지사용, 행정절차 등 방면에서 우대정책을 폄으로써 민간의 창발력이 꽃피게 하여야 한다. 허구한 날 상급정부에서 투자해주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눈 먼 외국 투자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역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민 역시 곧 막물이 날 한국노무행에만 집착하지 말고, 현지에서의 경제기반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나라에 의거하여 부자된 집단은 역사적으로 없다. 한국 노무행이 발전과정의 한 단계로 되야지 영구화되어서는 조선족이나 연변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힘들게 번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평생 의지하여 살 수 있는 경제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노무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 가? 지역경제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 연변에 가는 손님마다 특산품 한꾸럭 푸짐히 들고 떠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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