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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시에 취해본다
2021년 04월 23일 10시 48분  조회:1253  추천:0  작성자: netizin-1

오늘도 한시에 취해본다
□ 김춘식


나는 글을 쓰는 짬짬이 머리도 쉴겸 해서 몇해 전 중고서점에서 산 후 둬번밖에 읽지 않았던 《우리 한시 삼백수:칠언절구편》을 다시한번 훑었다. 비록 말 타고 꽃구경하는 식으로 읽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퍼그나 많았고 감회도 깊었다. 전에도 두보, 리백 등의 시를 비롯하여 《당시 3백수》는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이 지은 한시를 접하기는 한국에 들어가서 처음이다. 가끔 신문들에 실리는 한시들을 감상하면서 한시에 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문에 실린 것을 하나둘 오려 모으던 데로부터 한시에 관한 책을 두루 사놓고 부지런히 탐독했다.

나에게 있어 한시는 매우 어렵다. 한국에서 쓰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으니 한시가 어려운 것도 당연하고 설사 한자를 잘 안다 하여도 한시는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복잡한 형식과 특유의 표현기법 때문에 어려운편이다. 그래서 한시를 제대로 리해하려고 여러 면으로 탐구도 해보았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그 읽는 맛, 보는 맛에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시 읽기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울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옛시만이 가진 감성이나 그 시대의 지식을 잘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기에 한시를 그대로 적어놓은 것보다는 번역문도 따르고 해설도 붙어있는 책을 즐기는편인데 《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편》과 《우리 한시 삼백수:7언절구편》 등은 내 취미에 딱 맞는 책이다. 당시 삼백수가 당조 때의 수십만수의 시중에서 그 정수라고 할 만한 것들을 묶었듯 이 두권의 책도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한민족의 5언절구와 7언절구중 알맹이라 할 만한 시를 각각 삼백수 뽑고 이를 풀이했다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편》에서는 삼국부터 근대까지 우리 7언절구 백미 삼백수를 가리고 사랑과 인간을 비롯하여 존재와 자연, 달관과 탄식, 풍자와 해학 등 일곱마디의 좁은 행간 안에 녹아있는 우리네 인생사를 오롯이 펼쳐냈다.

한시는 읽을수록 맛이 있다. 이런 한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큰 공감과 감동을 준다. 읽다 보면 한시는 우리들의 생활과 거리가 결코 멀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한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랑만을 이야기한다. 그중의 단연 으뜸은 일상의 한 순간에서 얻은 빛나는 깨달음이다. 살고 살아 감내해야 인생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듯 한시는 보고 또 보며 곱씹을 때 그 의미가 새롭다

김병연의 <죽 한그릇에 비친 구름>, 황진이의 <박연폭포> 등은 모두 내가 즐겨 읊는 한시들이다.

그리고 언녕 한시 하나에 꽂혔다. 바로 한시중 송별시의 최고작이라 일컫는 고려 때의 시인 정지상이 지은 <님을 보내며(送人)>이다

“비 갠 긴 언덕에는 풀빛이 짙은데

남포에서 님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를 것인가

리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는데.”

읊을 때마다 전률이 이는 최고의 작품으로 나도 살면서 이런 작품 하나만 써낼 수 있다면 평생 후회 없는 삶이 되지 않을가 싶다.

한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짬짬이 하나하나의 시를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한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게 된다. 사랑과 우정, 죽음, 자연, 려행, 일상과 현실 등은 우리 한시의 가장 보편적인 소재들이다. 무작정 어렵다고 생각하며 외면하기 이전에 천천히 한시를 읽다 보면 천년의 세월을 함께 나누어 그들의 삶을 함께 주억거리게 된다.

내가 이렇게 한시 공부에 열을 올리니 주위로부터 리해할 수 없다는 눈치를 많이 보내온다. 나이 60이 넘어 그런 것을 배워 뭘 하느냐다. 배우기도 어렵거니와 배워봤자 어디에 써먹지도 못할 것을 가지고 말이다. 더구나 젊은이들도 배우기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한시니깐. 늙은 나이에 무슨 한시타령일가 싶겠지. 하지만 나는 이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내가 즐기는 것이면 그리고 의의 있는 것이라면 꼭 해내고픈 마음이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이제야 ‘신중년’에 들어섰는데. 나도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을 즐기며 잊고 살던 랑만을 되찾고 싶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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