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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칼럼] 글쓰기에 대한 단상(류경자)
2019년 08월 01일 09시 45분  조회:1914  추천:0  작성자: netizin-1

     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나를 혐오한다. 글쓰기의 형태란 흔히 창작으로 여겨지는 시, 소설 쓰기와 창작에 대한 비평으로 여겨지는 평론, 논문 쓰기 등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번역 또한 다른 측면에서의 창작적 글쓰기로 여겨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나에게 글쓰기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싫지만 어느 순간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것.

 

 

  내가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대학교수, 심지어 그 유명한 작가마저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논문은 유일하게 대놓고 표절을 ‘허용’하는 글쓰기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썼던 글귀를 베껴도 성실하게 각주만 달면 표절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논문이 인용된 저자는 이러한 ‘표절’에 고마워할 수도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대학교수의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것은 성실하게 각주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독자의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각주를 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각주를 찾아 읽다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작가들은 각주를 달지 않는 소설 쓰기를 선호한다. 그 유명한 작가의 표절 논란에 휩싸인 글귀를 비교한 문장을 읽다보면 우연이라고 해도 그런 우연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문장이 나열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에서 창조란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모든 작품의 탄생에는 언어의 구축이라는 기본적인 토대가 필요하다. 알다시피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거의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다. 남의 글을 읽지 않고 순전히 내가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쓰기의 역사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이 조금씩 쌓아놓은 언어의 토대 위에서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글을 읽고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통째로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화시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은 파괴 위에 다시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역사의 천사’는 폐허 위에서 역사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다시 구축한다. 벤야민은 역사를 잔존해 있는 폐허로부터 거꾸로 읽을 것을 제안하며, 그의 이러한 작업에는 역사를 파괴하는 동시에 복구하는 기획을 담고 있었다. 글쓰기란 그러한 파편들을 끌어 모아 다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쉰은 '무덤'이라는 작품집을 내면서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정신은 되밟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모질게 끊어 버리지 못하고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자그마한 새 무덤을 하나 만들어 한편으로 묻어 두고 한편으로 아쉬워하려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과거를 주워 모아 재구성하는 루쉰의 ‘새 무덤 만들기’ 작업은 역사의 파편을 모아 재구성하는 벤야민의 방식과 닮아있다. 루쉰이 ‘찌꺼기’로 표현한 과거와 벤야민이 말하는 ‘역사의 파편’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루쉰의 '고사신편'에 수록된 소설들을 보면 루쉰이 어떠한 작업을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루쉰은 누구나 아는 옛이야기를 끌어 모아 전혀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기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렇다고 루쉰의 소설이 표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루쉰은 신화와 전설을 높이 평가하면서 신화와 전설이 모든 종교, 예술, 문학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루쉰은 중국 상상력의 진정한 기원을 보았던 것이다. 루쉰에게 글쓰기란 과거를 파괴한 폐허 위에서 새롭게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의 모든 창작을 학습하고 분석한 딥러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에 대해 어떤 이는 두려워했고 어떤 이는 경이로움을 표했다. 예술가의 존재가 위협 받는다는 목소리와 기계는 기계일 뿐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존재한다. 진정한 작가라면 나는 이를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작품을 써내는 사람들이 많다. 널리 알려진 사람도 있고 무명작가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엄청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발굴되기도 한다. 이런 작가에 대해서는 시대를 초월한 글쓰기를 한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든 널리 알려진 작가이든 나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훌륭한 작품의 평가에는 기준이 없다. 흔히 입상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데 훌륭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입상 따위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해야만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다. 매번 노벨문학상 시즌이 오면 문학계는 이 문학상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 전에 제도권에 의해 규정되기를 거부한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와 같은 작가도 있다. 그것 또한 그 작가의 소신이자 그의 작품에 반영된 그의 사유이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올 수 있는 것만이 작품이 될 수 있다.

  류경자 약력:

  동서대학교 조교수, 한국체육대학교 강사

  연변대학교 중문과 학사∙석사,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

  역서 『디지털기술과 신사회질서의 형성』

  논문 “루쉰의 탈경계적 상상력과 치유의 글쓰기”, “장용학 소설의 역사인식 연구”외 다수.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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