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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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무의 어제와 오늘
2009년 05월 20일 21시 35분  조회:4515  추천:64  작성자: 려호길

조선족의 한국노무는 지난 90년대 초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면서부터다. 산삼 녹용 웅담에 불로초 그리고 거시기를 좋아하는 한국아저씨들의 기호에 맞추어 호랑이와 사슴의 거시기를 들고 홍콩을 거쳐 한국을 찾은 조선족들은 보릿고개를 넘어서 자기 몸뚱이를 챙기려는 한국인들로부터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다.  

그때로부터 한국은 개혁개방을 맞은 조선족들에게 기회로 다가왔고 세종대왕을 프랭클린으로 바꾸고 프랭클린을 다시 모택동으로 바꾸는 일은 조선족들의 소망으로 인생역전의 기회로 되었다.  

그러나 풀뿌리와 짐승 뿔, 쓸개와 거시기가 마냥 많을 수만은 없었다. 물동량이 줄어들자 약장사군들은 저질의 중국내지산과 몽골산 러시아산을 연변산으로 조선산으로 둔갑시켜 내속을 모르는 한국행 조선족들에게 팔아넘겼고 호랑이 거시기도 제조단계에 들어섰다. 

한약재와 거시기의 효능이 떨어지자 한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중국동포들이 가짜 약을 갖다 판다’는 것이다. 결국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는 저질의 약재와 거시기의 소동으로 여지없이 실추되었고 지하서울역과 경동시장주변에서 난전을 벌이던 조선족약장사군들은 일제히 단속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고국의 특수를 놓칠 수 없었다. 그 시기 한국행을 하는 조선족들은 가족내부에서도 인물로 뽑혔고 특별히 이산가족이 아닌 다음에는 내 노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넥타이를 풀고 중산복을 벗은 아저씨들은 지하철공사장과 빌라 연립주택 등 건설현장에 투입되었고 여성들은 식당 등 서비스업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중국동포 노무자사회가 형성되었다.  

노동의 대가도 톡톡했다. 90년대 초 건설현장잡부의 일당이 4~5만원이었고 한화 대 달러 환율은 800:1로써 세종대왕 한 장이면 지금의 모택동 한 장과 맘먹었다. 결국 노가다 하루 일당이 당시 중국 일반 노동자의 반년 월급수준이었고 대졸자의 4개월 월급을 웃돌았다. 당연히 고향에 돌아가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로 되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진짜와 가짜로 되는 비지너스와 친척방문, 결혼이 이뤄지면서 조선족의 한국행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또 그들이 벌어들인 돈은 다시 ‘재생산’에 투입되어 그들 가족의 한국행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한국은 조선족들의 천국으로 부상되었고 조선족은 한국이 있어 개혁개방이후 중국에서 다시 잘 나가는 민족으로 될 수 있었다.  

1997년 IMF금융위기로 한국특수는 잠간 주춤했고 한국체류조선족들은 위기를 맞았지만 한국행은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았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재입국과 방문취업제가 실시되고 무연고동포의 한국방문이 가능해지면서 막차를 타려는 ‘농민공’들과 도시빈곤층들로 붐비면서 한국노무는 차츰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게다가 중국경제가 지속적인 두 자리 수의 발전을 유지하고 중국이 발전도상국에서 중도국으로 거듭나면서 한국은 ‘떼돈을 버는 나라’로부터 ‘돈 모으기 어려운 나라’로 탈바꿈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태평양을 넘어온 미국발 금융위기는 조선족의 한국노무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지난겨울 연길암시장에서는 한화 대 인민폐환율이 한때 만원에 44원까지 떨어져 만원에 74원하던 전 해에 비해 30원 가량 떨어지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국노무자들과 그들 가족들은 밤만 자면 떨어지는 한화가치로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다. 그들은 한화가 가치를 회복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감히 환전도 송금도 못하고 꼭 필요한 돈도 빌려 쓰고 아껴 쓰면서 저마다 경제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한국행이 더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괜히 남들 앞에서 한국으로 유난을 떨다간 “아직도 한국이냐?”고 핀잔받기 일쑤다. 그래서 한국행은 도둑고양이 동네나들이 다니듯 조용히 떠났다가 조용히 귀가해야 구설수를 피할 수 있다. 또 한국행 조선족들은 되도록이면 한국에 일하러 가는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노무는 중국의 수많은 농민공들이 남방으로 연해도시로 이웃동네로 품팔이를 떠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셈이다.  

조선족들은 한국행을 자제할 때가 되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과거 한국이 일본노무를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발전된 국내 산업에 힘입었지만 조선족들의 고향은 낙후한 산업구조와 낙후한 사회시설, 낙후한 사회의식으로 해외노무자들이 외화를 보내기에는 적합한 곳이지만 그들의 귀국창업과 재취업 노후설계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고장이다. 그럼에도 촌사람들이 서울 사는 조선족들을 대하고 품이 맹랑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머리를 조아려 아부하고 차별을 받으며 얻은 40만개의 일자리다. 비록 3D업종이고 잡다한 일이지만 많은 조선족가정에는 생계형 일자리임이 틀림없다. 이제 한국노무로 떼돈을 버는 시절은 지났다. 오늘날 조선족노무자들은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 왔고 먹고 살기 위해 왔고 언어와 문화와 풍속습관이 통하는 고국에 살러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2009년5월17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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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감격
날자:2009-05-21 07:09:06
이제는 한국을 근거지로 생할해야 할 때가 지난 것같다. 가족들은 중국에 놔두고 생계는 한국에서 해결하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비정상적이다. 이제는 상해같은 대도시로 대거 진출할 때이다. 한국분들이 일본타운,중국타운의 몇배나 되는 미국 엘에이의 한인타운을 그것도 도시의 중심지역에서 방문하고는 감격하듯이 우리 조선족들이 연변이 아닌 상하이에 엘에이의 한인타운 크기의 코리아타운을 건설한다면 상하이를 방문하게될 전세계 한민족 모두에게 얼마나 감동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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