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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
2010년 02월 08일 08시 17분  조회:7691  추천:43  작성자: 리수산

조선족사회 현안진단과 대책연구 3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
 
리수산



편집부: 지난 주에 "북대황"이라는 지식청년 관련 프로를 시청했다. 마찬가지로 다음 주 동북항일련군 프로를 기대하게 되며 근로자, 농민, 지식인과 민족단결의 어제, 오늘과 래일이 기대된다. 력사는 인민들이 피와 눈물로 엮은 것으로서 어느 시기, 어느 상황에서 나라와 민족의 고난과 부하는 모두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과 그들을 뒷받침해주는 땅으로 감당해주고 있다. 봉황TV방송에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편집부: 항일련군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수차 할빈 동북항일련군기념관을 참관하여 항일련군 장령과 렬사들의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보았는데 그 과정에 심지어 일부 착오들을 발견하게 되였다. 내가 이 글을 쓰게된것은 항일련군의 비장한 력사를 기념하기 위해서이며 왜곡된 력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무슨 "관동협객", "백산협객", "설산협객"같은 것들이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란무하면서 인기몰이와 볼거리에 리용되고 있으며 각민족 인민이 당의 령도하에 한사람같이 굳게 뭉쳐 영용하게 항일하던 비장한 력사와 진실적인 이야기들이 매몰되고 왜곡되거나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 중앙TV방송에서 동북항일련군의 력사에 대한 보호적 발굴을 조직할것을 충심으로 기대해 본다.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빙설속의 진달래)

고향 동북으로 가는 길에 올라 백산흑수, 북대황, 흑토, 붉은 수수, 옥수수밭, 그리고 늙은 농부가 푸름한 새벽에 옥수수밭에서 오리를 몰아내여 시냇물로 몰아가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항일련국의 "숙영의 노래"가 떠오르며 "팔녀투강", 조일만, 양정우, 조상지, 리홍광 등이 생각난다. 그렇다, 고향의 한치의 땅이라도 모두 렬사들의 선혈과 생명으로 바꿔온것이 아니겠는가.

일제침략자의 쇠발굽 앞에서 동북의 각민족 인민들은 14년동안 영용하게 싸웠으며 4만명 항일련군 전사들이 30여만명 장비가 정예한 일본관동군과 피어린 싸움을 벌려 붉은 피와 목숨으로 마침내 "8.15" 광복의 날을 맞이했다. 60년 세월이 흘러간뒤 젊은 세대들의 행복하고도 즐거운 생활을 보노라면 그토록 비장한 력사들도 대부문 로인들의 회억과 문헌조사를 통해 발굴해낸것이였지만 우리 세대들은 강렬한 진감으로 느꼈었고 붉은 피가 들끓었으며 정신을 집중하여 사고했었다.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로전사가 회억할때 동북항일련군의 투쟁이 그가운데서도 제일 간고했다고 말한것으로 기억된다. 적들한테 발각되지 않으려고 항일련군 전사들은 자기 애한테 아편을 먹여 잠들게 했으며 나중에는 항일련군 대오를 보호하기 위해 친자식을 차디찬 강물속에 버리기까지 했다. 령하 30여도의 엄동설한속에서 일제침략군한테 깊은 산속에 포위되여 나무 껍질, 솜, 얼음과 눈을 먹었는데 설령 적들의 총에 맞아 죽지 않는다 해도 그토록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것만도 기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동북의 흙토지대는 땅이 넓고 인가가 희소하며 환경, 기후가 가혹하여 사람들을 열정적이고 호방하고 거쿨지게 만들었다. 더우기 그처럼 너무나도 가렬처절한 항일투쟁을 겪으면서 고향의 각민족 인민들의 정의는 너무나도 깊고 두터웠으며 의리와 감정을 중히 여기는 짙은 성격을 형성했다. 유난히 가렬처절한 항일투쟁속에서 조선족 전사들이 한족, 만족, 몽골족, 회족 등 형제 전사들과 함께 생사를 함께 하면서 맺은 계급적, 형제적, 동포적, 고향적 우의는 선혈로 맺어진것으로서 그 어떤 감정과 우의보다도 끈끈했다. 당시 3-5명 항일련군 전사속에 1명 조선족 전사가 들어있었는데 항일련군 전사들마도 모두 서로 둘쳐업고 적들의 겹겹한 포위를 뚫고 나와 살아남게 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전 흑룡강성 성장이며 항일련군 로전사인 리범오는 강심애라고 부르는 조선족 아주머니에 의해 일제침략자들의 총구에서 구원되였고 동북항일련군 제7군 창시자의 한 사람인 최석천은 한족 아버지와 딸에 의해 일제침략자의 총구에서 구원된적이 있다.

연안에서 전사들이 조선족 작곡가 정률성이 작곡한 "팔로군행진곡"과 "연안송"을 높이 불렀다. 조일만 렬사가 사형장으로 나아갈때 조선가곡 "적기가"를 불렀다. 양정우 군장의 령도하에 군참모장 겸 제1 사단 사단장 리홍광(조선족)은 부대를 이끌고 백두산지대에서 활동하면서 일제침략자를 침중하게 타격했으며 1935년 5월 12일 료녕성 신빈현에서 일본침략군과의 전투에서 영용히 희생되였다. 림해설원의 항일영웅 허형식(원명 리희산)은 일찍 일제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팔녀투강"가운데 리봉선, 안순복(조선족)의 영웅이름은 지도원 랭운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민의 머리속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조선족 녀성 렬사 김순희는 체포된뒤 적들이 그녀한테 마을의 항일련군 전사들을 내놓으라고 핍박하자 그녀는 혀를 깨물어 적들의 얼굴에 내뱉았으며 적들이 그녀더러 항일련군 전사들의 명단을 적으라고 핍박하자 그녀는 자기의 손가락을 몽땅 끊어버렸다.  화가 상투끝까지 치민 적들은 임신중인 이 녀성을 잔혹하게 산채로 불속에 던져 태워죽였다. 리조린, 진뢰, 리민(조선족)은 백산흑수에서 서로 어깨겯고 싸웠으며 그들이 창작한 "숙영의 노래"는 더구나 새중국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선렬의 유지를 계승하여 학습과 사업에 노력하도록 고무격려해주었다.
동북항일련군기념관에 진렬된 60여명 항일장령과 저명한 렬사가운데 허형식, 리홍광, 리학복, 리민환, 리복림, 리룡운, 리제순, 리일평, 리봉선, 안순복, 서봉산, 김정국, 김근, 한호, 한진, 권영벽, 박진우, 박한종, 박선봉, 류만희, 조오선 등 20명 조선족렬사의 영웅이름들이 기재되여있다. 동북항일련군 제2 군단에서 조선족 전사가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제1, 제7 군단에서도 조선족 전사가 절반 가량이나 차지했었다.

당의 령도하에 혁명적 인도주의정신(실제상 인문정신)을 발양하여 1000여명 일제침략군 살인마들을 량심이 있는 일반인으로 개조한 전 무순전쟁죄범관리소 김원 소장도 고향이 한국 경상북도 봉화군이였는데 1933년 7살적에 심양 주변지역으로 이주해온 조선족이였다. 이들 전쟁죄범들은 김원소장을 그들을 도와 진리를 깨닫케 한 "은사"와 "교장"으로 간주하고 관리교양 인원들을 잘못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는 하나의 거울, 좋은 스승과 유익한 친구로 여겼으며 전쟁죄범관리소를 새로운 인생의 "모교"로 삼았다. 이들 1062명 전쟁죄범들은 귀국한뒤 "중국귀환자련락회"를 설립하여 세계평화와 일중우호를 위해 아주 많은 사업을 해왔다. 전 국민당 전쟁죄범 채성삼 장군은 일찍 김원동지를 "귀중한 말로 전쟁죄범들을 개과천선하도록 가르치고 유구한 력사로 후대들을 애국친민하도록 계시해준다"고 높이 평가했다.  아카데미영화제에서 9개 부문상을 수상한 이딸리아 저명한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의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에서 나오는 전쟁죄범관리소 김소장(영달의 아버지 영약성 분)의 실제 모델이 바로 김원으로서 마지막 황제 부의는 문화혁명가운데 비판투쟁 받는 김소장을 붙들고 김소장은 좋은 사람인데 당신들이 잘못 투쟁하고 있다고 말한적이 있다.

문헌의 기재에 따르면 동북에서 6만 2942명 조선족 청장년들이 참군했는데 선후로 항일전쟁, 해방전쟁 등에 참가하여 3만여명이 희생되였다. 연변지역만도 1만 3450명 렬사를 갖고 있다. 해방전쟁시기 몇십만 조선족 해방군 전사와 군중들이 전선을 지원하는 전시복무사업과 중국 전역을 해방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해방후 각민족 항일련군 로전사의 회억들이 영화, 소설, 그림 이야기책에 올랐다. 50-6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그토록 감동적인 영화와 그림 이야기책 "빙설속의 진달래", "김옥희", "중화의 딸", "팔녀투강", "생사연분", "양사령의 소선대"에 대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것이다. 20세기 60년대, 아직도 소학교를 다닐때 그림 이야기책 "김옥희"를 봤었는데 김옥희의 남편 최대장이 전우들의 철퇴를 엄호하던중 총탄에 맞아 희생되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항일전쟁의 승리를 거둘때 워낙 4만명 규모였던 항일련군 전사들이 10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6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지금까지 살아있는 당년의 항일련군 전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봉황TV방송 최신조사에 따르면 40여명밖에 안된다. 중앙TV방송 "대면"프로제작팀의 최신조사에 따르면 7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중 녀성이 8명밖에 안된다). 우리 세대에서 알고 있는 력사의 진실은 문헌조사를 통해 장악한것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모두 남들한테서 듣거나 영화, 소설, 그림 이야기책들로부터 알게 된것으로서 당년 항일련군 로전사들의 직접적인 회억을 영화와 소설화할 시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기에 관계부문의 보호적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다행히도 향항봉황TV방송에서 5년 남짓한 시간을 들여 항일련군 전사들의 육성을 진실하게 기록했으며 항일련군의 부분적 력사들을 발굴했다. 중앙TV방송 "영화전기"프로제작팀도 적잖은 항일련군의 력사를 발굴해냈다. 일전에 10여 편의 국내 TV 드라마와 영화들을 살펴보았는데 온통 그 무슨 "관동협객", "장백협객", "설산협객"같은 것들이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란무하면서 상품화와 인기몰이에 리용되고 있었으며 각민족 인민들이 당의 령도하에 한사람처럼 굳게 뭉쳐 영용하게 항일하던 비장한 력사와 진실한 이야기들이 매몰되고 왜곡되거나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마치 항일투쟁의 토대가 이와 같은 도적 떼, 협객, 토호와 악덕지주, 지주장원의 보안무장들이였던것 처럼 묘사되고 진정으로 항일투쟁을 지원했던 일반 민중들은 찾아 볼수가 없었다. 이는 협애한 민족주의 사조와 저속화 상업문화추세가 일부 창작대오에 반영된것이라고 할수있다. 변형된 인물묘사와 이야기 줄거리의 터무니가 없는것이 더구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수 없으며 또한 이는 슬프고도 우려를 자아내는 일로서 라디오텔레비젼부문에서 결코 좌시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중앙TV방송에서 아 단란의 력사에 대한 보호적 발굴을 조직할것을 기대해본다.

로인들의 회억과 고증에 따르면 1942년을 전후하여 항일전쟁이 가장 어려웠던시기 "항일"깃발을 내걸었던 비정규군과 도적 떼 부대들은 분분히 투항변질하여 일제침략군의 충실한 주구로 되였다. 광복후 이와 같이 변절하여 적의 편에 넘어간 도적 떼 부대들은 국민당의 개편을 받아 토비가 되여 사처에 쏘다니면서 민족모순을 조작하고 방화, 살인, 략탈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저질렀으며 흑룡강성 목단강, 계서 일대에서 300여 세대의 민족마을을 초토화하고 심지어 어린애까지도 살려주지 않고 날창으로 찔러 죽인뒤 울타리에 걸어놓았다. 이는 일제침략자들이 민족등급을 획분하고 민족분렬을 조작하고 요언을 날조하여 모순을 전가하는 비렬한 음모와 올가미였는데 사실 이와 같은 토비들에 의해 리행되였으며 이런 요언들은 민간에서 극히 나쁜 영향을 끼쳤다. 토비들의 야만적인 소행은 각지 농촌들에서 핍박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위대를 조직하게 했으며 청장년들은 분분히 총을 들고 자발적으로 조직되여 자기들의 땅, 삶의 터전, 동네 어른과 마을 사람들을 보위하게 되였다. 다행히도 공산당이 령도하는 해방군대오가 제때에 들이닥쳐 일제침략자들에게 투항하고 백성들을 학살하고 민족분렬을 조작한 토비들을 철저히 소멸하여 각지의 참사를 평정하고 민족단결을 실현했으며 사회를 안정시켰다. 만약 당의 영명한 령도와 올바른 민족정책이 없었고 각지의 도적 때들이 살판치면서 계속 민족모순을 도발했더라면 상상할수 없는 후과를 초래했을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력사를 거울로 삼고 이런 현상을 시작단계에서부터 철저히 근절해야한다.

우리가 빙설과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극악무도한 일제침략자를 전승하고 조국의 해방을 쟁취할수 있은것은 당의 올바른 령도가 있었기 때문이고 각민족 인민이 한사람처럼 굳게 뭉쳐 영용하게 적을 무찔렀기 때문이며 동포의 정, 형제의 정, 민족의 정, 고향의 정, 애국의 정과 계급의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메달과 자신이 생겨난뒤 우리는 계속 끊임없이 경제이익 최대화에 여념이 없다지만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던 간거한 항일 투쟁 역사를  절때 잊지말아야하며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이 어떻게 왔는가를 더구나 잊지 말고 갑절 더 소중히 여기고 애호해야한다.



<조선족사회 현안진단과 대책연구>글 싣는 순서:
1. 세 동강 난 조선족사회
2. 조선족,역사와 현실바로잡기에 나서야
3.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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