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공부 101] - 20...
2020년 03월 01일 22시 04분  조회:3335  추천:0  작성자: 죽림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한글은 조선 시대에 규방의 문자였다?

 

 

분야 고전 시가

교과 연계표

교과 연계표
구분 교과 단원

중학교

 

문학의 갈래

고등학교

문학

한국 문학의 갈래와 흐름

조선 시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조선 후기부터는 여성도 작품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이 있나요?

한글은 조선 시대에 규방의 문자였다?

내방가사, 부녀자들이 지은 노래

조선 시대 여성들은 봉건적 관습에 얽매여 활동하는 데에 많은 제약이 따랐습니다. 부엌일, 바느질, 손님 접대 등 주로 집안 살림을 돌보기에 바빴고, 사회적 활동이나 대외적인 문화 활동은 기대하기 어려웠지요.

그런데 부녀자들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선비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글로 시가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학자와 문인은 훈민정음을 천대했지만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에게는 두루 보급되었습니다. 이들은 사대부들의 노래 중에 우리말 위주로 창작되는 가사 문학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고 작품까지 창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내방가사는 주로 영남 지방에서 크게 발전하였는데 학자들에 따르면 영 · 정조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지어져서 일제 강점기 시절과 해방 직후까지 약 6,000여 편의 내방가사가 창작되었다고 합니다. 내방가사가 영남 지방에서 주로 지어진 까닭은 영남 지방에 한글을 깨우치고 교양을 갖춘 부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서민들이 지어 부른 민요 대신 사대부의 가사를 선택하여 자신들의 감정과 정서를 노래했을 것입니다.

봉건적 관습과 여성의 삶을 그리다

내방가사의 주요 내용은 상당수가 양반 부녀자들의 생활 주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양반 사대부가 유교적인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골몰했던 것과 달리 실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 놓고자 했지요.

따라서 사대부의 가사와는 큰 차이를 보였고 어떤 점에서는 서민들이 지은 가사와 그 성격이 유사했습니다. 관념이 아니라 실제 생활을 다루었기 때문에 내방가사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표현할 수 있었지요. 내방가사의 주요 내용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노래한 작품들이 다수 있습니다. 시집간 딸이 지켜야 할 내용을 노래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사친가」도 있고, 자신의 환경을 탄식하는 「여탄가」, 「여자탄식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봉건적 인습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내방가사라고 해서 현실이나 환경을 한탄하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전가」나 「향원행락가」와 같이 때로는 여성들이 지닌 취미라든가 놀이도 노래로 지어 불렸고 당시의 문물이나 풍속도 소재로 활용되었습니다.

허난설헌의 「규원가」, 가장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내방가사

현재까지 전해지는 내방가사 중에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허난설헌의 「규원가」를 들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이로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뛰어난 문학적 재주를 지녔던 허난설헌은 어릴 때부터 재주가 남달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한시를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으니까요.

문학적인 재주가 뛰어난 그녀였지만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극은 결혼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허난설헌은 열다섯 살에 김성립과 혼인을 합니다. 그런데 김성립의 집안은 허난설헌의 집안과는 달리 지극히 가부장적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요. 더군다나 남편은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웠으며 허난설헌을 버거워하여 집안을 돌보지 않은 채 밖으로만 돌아다녔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허난설헌이 낳은 두 아이도 돌림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오빠의 잇따른 죽음으로 상심이 컸지요. 마침내 그녀도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사계

「규원가」는 작품 제목대로 규방에서 지내는 여인의 원한을 그린 가사입니다. 작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허난설헌에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의 사랑을 잃고 슬픔에 잠긴 채 원망과 그리움을 함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규원가」의 일부를 현대어로 풀이하여 감상해 보겠습니다.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는 기생집에 새 기생이 나타났는가? 꽃 피고 날이 저물 때 정처 없이 나가 있다가 좋은 말을 타고 어디어디를 머물며 놀고 있는가? 원근의 지리를 모르는데 임의 소식을 어찌 알까. 인연을 끊으려 한들 임 향한 생각이 없을까. 임을 못 보거든 그립지나 말 것을, 하루 열두 때 길기도 하고 한 달 서른 날이 지루하기만 하다. 창밖에 심은 매화 몇 번이나 피고 졌는가? 겨울 밤 차고 찰 때 눈이 섞어 내리고, 여름날 길고 길 때 궂은비는 무슨 일인가? 아름다운 봄철에 좋은 풍경을 보아도 아무 감흥이 없다. 가을 달이 방에 비치고 귀뚜라미가 침상에서 울 때에 긴 한숨 떨어지는 눈물에 헛된 생각만 많다.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렵겠구나.

허난설헌, 「규원가」 중에서

자, 감상한 부분이 어떻습니까. 일단 남편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도 봉건적인 질서 속에서 부녀자는 집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네요. “원근의 지리를 모르는데”라는 구절을 보면 당시 부녀자들의 바깥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지을 당시 허난설헌은 남편에 대한 기대를 버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임 향한 생각이 여전하며,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가슴속에 남아 있음을 표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인용된 뒷부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변하도록 임이 오지 않는 것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겨울밤 눈이 섞어 내리고 여름에 궂은비가 내리며 가을날 귀뚜라미가 우는 상황은 임과 떨어져 지내는 시적 화자의 정서를 더욱더 애달프게 하는 데 기여하는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표현에서 이 작품의 문학성이 드러나는 것이겠지요.

뜬금있는 질문

허난설헌이 남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허난설헌은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창작을 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모든 작품을 다 태우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그런 까닭에 남아 있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지요. 지금 전해지는 허난설헌의 작품은 허균이 죽은 누이의 작품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예전에 보았던 누이의 작품을 기억으로 재구성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난설헌집』에 실려 있는데 한시 142편 정도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난설헌집』에는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도 극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관련이미지 3

  • 교녀가 / 계녀가사 
  •  
  • 사모가 
  •  
  • 화전가 
  •  
  •  
  •  
  •  
  •  
  •  
  •  
  •  
  •  
  •  
교녀가 / 계녀가사

교녀가 / 계녀가사작자, 연대 미상의 규방가사. 평소 시집가기 전의 딸을 교훈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한글은 조선 시대에 규방의 문자였다?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70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2022-06-08 0 2628
1569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 남영전 2021-12-20 0 2281
1568 [문단소식]- 훈춘 김동진시인 "풍경소리" 울리다... 2021-09-07 0 2259
1567 [시공부사전] - 담시(譚詩)? 2021-05-29 0 2641
1566 하이퍼시 명언 21 / 최흔 2021-05-25 0 2674
1565 하이퍼시 명언 20 / 최흔 2021-05-25 0 2663
1564 하이퍼시 명언 19 / 최흔 2021-05-25 0 2442
1563 하이퍼시 명언 18 / 최흔 2021-05-25 0 2506
1562 하이퍼시 명언 17 / 최흔 2021-05-25 0 2448
1561 하이퍼시 명언 16 / 최흔 2021-05-25 0 2469
1560 하이퍼시 명언 15 / 최흔 2021-05-25 0 2572
1559 하이퍼시 명언 14 / 최흔 2021-05-25 0 2312
1558 하이퍼시 명언 13 / 최흔 2021-05-25 0 2565
1557 하이퍼시 명언 12 / 최흔 2021-05-25 0 2578
1556 하이퍼시 명언 11 / 최흔 2021-05-25 0 2484
1555 하이퍼시 명언 10 / 최흔 2021-05-25 0 2543
1554 하이퍼시 명언 9 / 최흔 2021-05-25 0 2584
1553 하이퍼시 명언 8 / 최흔 2021-05-25 0 2402
1552 하이퍼시 명언 7 / 최흔 2021-05-25 0 2361
1551 하이퍼시 명언 6 / 최흔 2021-05-25 0 2514
1550 하이퍼시 명언 5 / 최흔 2021-05-25 0 2416
1549 하이퍼시 명언 4 / 최흔 2021-05-25 0 2462
1548 하이퍼시 명언 3 / 최흔 2021-05-25 0 2526
1547 하이퍼시 명언 2 / 최흔 2021-05-25 0 2553
1546 하이퍼시 명언 1 / 최흔 2021-05-25 0 2585
1545 토템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김룡운 2021-05-24 0 2437
1544 토템과 민족문화 / 현춘산 2021-05-24 0 2222
1543 남영전 토템시의 상징이미지/ 현춘산 2021-05-24 0 2702
154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시인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5-10 0 2717
1541 시인 최기자/ 소설가 허련순 2021-05-03 0 2509
1540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6 2021-03-02 0 2573
1539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5 2021-03-02 0 2655
1538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4 2021-03-02 0 2425
1537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3 2021-03-02 0 2836
1536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2 2021-03-02 0 2761
1535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1 2021-02-19 0 2814
1534 [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2021-01-18 0 3047
1533 [시공부] - 김기림 시인 2021-01-18 0 3411
1532 [타산지석] - 늘 "이기리"... 꼭 "이기리"... 2020-12-28 0 3214
1531 토템시/ 범= 남영전, 해설= 현춘산(8) 2020-10-10 0 3099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