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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연주지사는 한자로 ‘忠臣戀主之詞’라고 적습니다. 한자를 풀이하면 충성스러운 신하가 임금을 사모하는 노래라는 뜻이지요. 대개의 충신연주지사에서 임금은 남성으로, 신하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임을 그리워하는 주체가 여성으로 그려질 때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충신연주지사의 시작은 대개 고려 시대 정서가 지은 「정과정」을 손꼽습니다. 이 작품은 고려 시대 때 지어졌지만 향가와 비슷하다고 하여 향가계 여요(고려 가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정서는 고려 시대 인종의 처남으로 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의종 때 역모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아 귀양을 갔습니다. 3행의 “옳지 않으며 거짓인 것을”이라는 구절은 모함을 당했음을 암시합니다. 의종은 정서에게 곧 다시 부를 것이라며 위로했지만 정서는 이후 20여 년 동안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정서가 자신의 억울함과 더불어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한 노래가 「정과정」입니다. 이와 같이 임금과 떨어져서 임금을 사모하며 부른 노래가 충신연주지사입니다.
정서의 「정과정」 이후 충신연주지사는 사대부들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습니다. 자연을 노래한 송순의 「면앙정가」마저도 마지막 구절은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또한 임금의 은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충신연주지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충신연주지사의 대표 작품은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들 수 있습니다. 정철은 송순의 가사 「면앙정가」에 영향을 받아 「성산별곡」이라는 가사를 썼던 인물입니다. 그가 지은 「사미인곡」과 그 속편 「속미인곡」의 의미는 미인을 사모하다, 혹은 그리워하다라는 것인데, 여기서 미인은 ‘아름다운 사람’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사미인곡」은 송강 정철이 관직에서 물러나 전남 담양 창평에 머물면서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에 비유하여 표현한 작품입니다. 당시 정철이 창평에 머무른 까닭은 과열된 붕당 정치로 인해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인과 서인이 첨예하게 갈등하던 시절이었는데 정철은 당시 서인의 대표 격으로 벼슬살이와 귀양을 반복하고 있었지요. 정철은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임금에 대한 충직한 마음과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는 초조한 마음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작품의 구조는 서사—본사—결사로 나뉘는데 본사는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계절에는 이별한 임에게 보내는 시적 화자의 정성이 담긴 사물들이 제시되어 있지요. 결사 부분을 현대어로 풀이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임을 잊고자 하지만 잊을 수가 없는데 그 까닭은 임에 대한 그리움이 뼛속까지 사무쳐 있기 때문입니다. 임을 향한 충성스러운 마음은 변함없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죽어서 호랑나비가 되더라도 임을 따르겠다는 구절 또한 임금에 대한 충절을 나타냅니다.
「속미인곡」은 「사미인곡」의 속편으로 이 작품 역시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사미인곡」과 달리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두 여인의 대화’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임과 이별한 서러운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듣고 있는 또 다른 여인은 시적 화자의 말에 대해 공감하며 위로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이 다른 사람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것이지요.
내용이 모두 이별한 임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하는 것이네요. 비록 임과 이별한 상황이지만 임에 대한 사랑과 충심은 변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철의 임금에 대한 충성된 마음은 기행가사인 「관동별곡」에도 고스란히 나타나있습니다. 정철은 지금의 강원도 지역 관찰사로 부임하고 난 후, 자신이 다스리는 강원도 지역 전체를 유람하며 가는 곳마다 임금과 나라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충신연주지사는 조선 사대부들의 대표적인 노래였습니다. 임금에 대한 충절은 유교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많은 사대부들이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시조와 가사, 한시로 표현했는데 그것들도 모두 충신연주지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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