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2월 2025 >>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윤동주와 최현배, 박창해
2018년 10월 13일 01시 27분  조회:2685  추천:0  작성자: 죽림
연희전문학교
연희전문 재학 시절 윤동주가 기숙사 생활을 했던 연세대 핀슨홀 전경.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언어의 역사는 얼마나 장구한가. 원시인들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중세 언어인 라틴어나 한문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근대에 들어 민족어가 탄생하면서 개인은 비로소 단독자로서 자유를 얻는다. 1446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후, 한글은 조선인에게 존재와 자유를 주었다.
 
1938년 2월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한다. 입학하자마자 핀슨홀 3층 ‘천장 낮은 다락방’에서 고종사촌 송몽규, 브나로드 운동을 열심히 했던 강처중과 한방을 쓴다. 사실 그리 기분 좋은 시기만은 아니었다. 1938년 3월 총독부는 ‘일본인과 조선인 공학(共學)의 일원적 통제를 실현’한다면서 조선어를 수의(隨意)과목, 곧 선택과목으로 만들었다. 조선어를 폐지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국어(일본어)를 쓰는 학생과 안 쓰는 학생을 구별하여 상벌을 주라는 훈시가 내렸다. 

연세대 핀슨홀 건물 앞에 세워진 시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조선어로 동시 쓰면 누가 읽겠어, 염려하는 친구 윤석중의 말에 “땅에 묻지”라고 박목월이 경주에서 말했던 해였다. 재일(在日)시인 김시종은 제주도에서 아잇적 조선어로 말했다가 선생님께 뺨을 맞았다. 이듬해 국민학교에 조선어 수업이 숫제 없어 시인 고은은 아잇적 머슴 대길이에게 가갸거겨를 배웠다(고은, ‘머슴 대길이’). 이때부터 일본어 친일시가 활발하게 발표되기 시작했다.  

윤동주가 한글로 글을 쓰면 손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윤동주는 좋아하던 최현배 교수의 두툼한 ‘우리말본’(1937년)을 읽었다. 최현배 교수의 금지된 조선어 수업을 수강했고, 입학하고 한 달 후 5월 10일 동주는 검박한 언어로 ‘새로운 길’을 썼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새로운 길’  



핀슨홀 내부에는 윤동주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광화문에 현판으로도 걸렸고, 서대문구청에서 연북중학교 뒷면으로 이어진 ‘안산 자락길’ 산책로 왼편에 시비도 있어 친숙한 작품이다. 내를 건너고 숲을 지나 고개를 넘어 마을로 가는 길은 험난한 길일 수 있다. 1연과 5연이 같은 수미상관이다. 2연과 4연은 묘하게 비틀린 대칭을 이룬다. 쉽게 오지 않을 희망을 그는 반복한다.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까닭은 가운데 3연에 나오듯,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기 때문이다. 보이는 ‘곁’이 있기 때문이다. ‘식구로는 굉장한 것이어서 한 지붕 밑에서 팔도 사투리를 죄다 들을 만큼 모아놓은 미끈한 장정들만이 욱실욱실하였다’(‘종시·終始’)는 기숙사 핀슨홀 생활이 즐겁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현배, 손진태, 이양하 등 당시 최고의 스승들에게 역사며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긍지는 얼마나 뿌듯했을까.  

원하던 학교에 입학한 달뜬 기대를 표현한 시로 이 시를 읽을 수 있다. 한글로 썼다는 사실도 대단치 않을 수도 있다. 이전에도 한글로만 쓴 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어 사용과 교육이 금지되기 시작한 배경을 생각하면, 조금 고집스러운 오기를 느낄 수 있다. 희망 없는 반복이 지겹더라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겠다는 풍성한 반복 의지가 엿보인다.  

윤동주는 힘들 때 성찰할 때 산책을 즐겼다. 기타하라 하쿠슈의 동시 ‘이 길(この道)’을 동생들에게 자주 불러줬던 그는 ‘연희 숲을 누비고 서강 들을 꿰뚫는 두어 시간 산책을 즐기고야 돌아오곤 했다’(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서시’)는 구절도 그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의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니 민족시인이니 특정 브랜드로 정하는 것은 부분으로 전체를 규정하는 침소봉대를 범할 수 있다. 그의 시에 저항과 민족이라는 요소가 있지만, 그 범주로 윤동주를 한정할 수는 없다. 그의 저항과 실천은 미묘하게 숨어있다. 수수하게만 보이는 ‘새로운 길’에도 저항의 단초가 숨어 있다. 

역사를 지키는 투쟁은 기관총에 의해서만이 아니다.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이야말로 지루한 투쟁이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판타지를 유지하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잔혹한 낙관주의(cruel optimism)다. 대학교 초년생의 한낱 달뜬 마음을 담은 소박한 소품일지 모르나, 여기에는 죽지 않는 저항의 씨앗이 담겨있지 않은가.  

 
‘새로운 길’을 시발로 금지된 언어로 계속 시를 쓰며 그는 금지된 시대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에게 ‘새로운 길’을 가자는 의지는 ‘아Q정전’(루쉰)의 정신승리법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졌다. 금지된 언어로 19편의 시를 깁고 다듬어 시집을 내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죽어가는’ 한글을 사랑하는 실천이었고,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이었다. ‘새로운 길’을 꿈꾸며 견디려 했던 그는 4학년에 오르면 급기야 ‘모가지를 드리우고 피를 흘리겠다’는 위험한 다짐까지 써 놓는다. 

 
스승 한 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 제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스승 최현배와 제자 윤동주는 1940년대 지역은 다르지만 함께
감옥에 갇혔고 한글을 잊지 않았다.
최현배의 금지된 조선어 수업에서 함께 배웠던, 윤동주의 2년 선배 박창해는 광복 후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로 유명한 ‘바둑이와 철수’를 만들어 국어교과서 독립선언을 완성한다.
최현배는 제자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자신의 큰아들이 대표로 있는 정음사에서 가로쓰기로 낸다. 최현배는 여러 학자와 함께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시킨다. 


무한한 성찰과 저항을 거쳐 조선어는 존재해 왔다. 보이지 않고 하찮아 보이는 저항들이 모여, 거대한 언어의 역사와 단독자의 자유를 지켰던 것이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10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 - 소쉬르 2017-10-30 0 3534
809 시는 낱말의 조합으로 초자연적인 길을 열어야... 2017-10-30 0 2283
808 [타산지석] - 100年 = 100人 2017-10-30 0 2913
807 시인은 예언적 신앙심으로 모든것에 사랑을 심어야... 2017-10-30 0 3103
806 [노벨문학상과 시인] - 문예부흥운동을 주도한 "상원의원"시인 2017-10-30 0 4051
805 [노벨문학상과 시인]생전 수상 거부, 죽은후 수상자가 된 시인 2017-10-29 0 3427
804 [노벨문학상과 시인]지도자 계급의 어용문인으로 전락된 시인 2017-10-29 0 3159
803 [노벨문학상과 시인] - 문학과 언어학의 부흥을 주도한 시인 2017-10-29 0 3565
802 [노벨문학상과 시인] - 제1회 노벨문학상 주인공으로 된 시인 2017-10-29 0 4212
801 [노벨문학상과 시인]비평가들로부터 절대적 인정을 받은 시인 2017-10-29 0 3584
800 [노벨문학상과 시인] - "새로운 시"의 동의어를 만들어낸 시인 2017-10-29 0 3662
799 시작에서도 싱싱한 화면으로 시정짙은 공간을 펼쳐보여야... 2017-10-28 0 3402
798 시작에서도 조각적 회화공간의 미를 창조해야... 2017-10-28 0 5836
797 시작에서도 선과 리듬으로 독자들을 끌어야... 2017-10-28 0 3105
796 [노벨문학상과 시인] - 알을 깨고 새세계를 연 시인 2017-10-25 0 7441
795 [노벨문학상과 시인] - 남아메리카 칠레 녀류시인 2017-10-25 0 3672
794 "마지막 잎새에도" 그는 "빛"이였다... 2017-10-25 0 2602
793 단 한번도 반복되는 하루는 두번 다시 없다... 2017-10-22 0 2801
792 "삶은 짧지만 하나의 강렬한 축제" 2017-10-21 0 2642
791 20세기 최고의 독일 시인 중 한 사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17-10-21 0 4321
790 "나는 내가 가진 모든것들을 당신에게 빚졌습니다"... 2017-10-21 0 2377
789 " 머리가 어질어질 뗑하게 만드는" 러시아 시인들 이름... 2017-10-21 0 2427
788 러시아 투사시인 - 표드르 이바노비치 츄체프 2017-10-21 0 3234
787 독학으로 배운 언어로 시를 쓴 노르웨이 과수원 농부시인... 2017-10-20 0 2556
786 시인 김용제는 "그림자", 시인 윤동주는 "빛"... 2017-10-20 0 2540
785 시작에서도 정적인것을 동적인것으로 출구를 찾아 표현해야... 2017-10-17 0 2167
784 [그것이 알고싶다] - 어린이들은 "어린이"를 알고 있는지요?... 2017-10-17 0 4263
783 "어린이"와 방정환 그리고 "강도" 2017-10-17 0 5061
782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2017-10-17 0 2199
781 시비(詩碑)에 또 시비(是非)를 걸어보다... 2017-10-17 0 2787
780 "반달할아버지"가 "반달"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다?!... 2017-10-17 0 2070
779 "반달할아버지"와 룡정 2017-10-17 0 2118
778 "반달" = "하얀 쪽배(小白船)" 2017-10-16 0 3545
777 시인이라고 해서 다 시인이다?... 아닌 이도 있다!... 2017-10-14 0 1887
776 시인은 용기를 내여 치렬하게 작품을 쓰라... 2017-10-14 0 2365
775 [쟁명] - "꾸준히 실험시를 써보라"... 2017-10-14 0 2196
774 "반달"과 "반달 할아버지" 2017-10-14 1 3149
773 한줄기의 빛이었던 시인 - 윤동주 2017-10-13 0 2339
772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한 아이디어, 한 이미지를 갖고 써라... 2017-10-10 0 2180
771 "현대시는 암소, 하이퍼시는 암퇘지"... 2017-10-10 0 2530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