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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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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정지용 "서문"
2018년 08월 09일 23시 40분  조회:2964  추천:0  작성자: 죽림

 

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精誠껏 몇 마디 써야만 할 義務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病 아닌 呻吟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才操도 蕩盡하고 勇氣도 傷失하고 8.15 以後에 나는 不當하게도 늙어 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一片의 精誠까지도 잃었느냐?” 叱咤한다면 少許 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氣力이 남았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詩人 尹東柱의 遺稿에 焚香하노라.

 

 

 

 

 

겨우 30餘篇 되는 遺詩 以外에 尹東柱와 그의 詩人됨에 關한 아무 目證한 바 材料를 나는 갖지 않았다.

 

“虎死留皮”하는 말이 있겠다. 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虎紋을 鑑定하여 “壽男”이라고 하랴? “福童”이라고 하랴? 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詩人 尹東柱를 몰랐기로서니 尹東柱의 詩가 바로 “詩”고 보면 그만 아니냐?

 

虎皮는 마침내 虎皮에 지나지 못하고 말을 것이나, 그의 “詩”로써 그이 “詩人”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그의 遺詩 “病院”의 一節.

 

 

 

 

 

그의 다음 동생 一柱君과 나의 問答 —

 

“형님이 살았으면 몇 살인고?”

 

“서른 한 살입니다.”

 

“죽기는 스물 아홉예요—”

 

“間島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떠했던고?”

 

“할아버지가 開拓하여 小地主 程度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會社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 間島에 詩와 鄕愁와 같은 것이 醱酵하기 비롯한다면 尹東柱와 같은 世代에서부텀이었구나!” 나는 感傷하였다.

 

 

 

 

 

…………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太初의 아침”의 일절.

 

 

 

 

 

다시 一柱君과 나와의 問答 —

 

“延專을 마치고 同志寺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戀愛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습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습니다.”

 

“吝嗇하진 않았나?”

 

“누가 달라면 冊이나 샤쓰나 거저 줍디다.”

 

“工夫는?”

 

“冊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願하면 時間까지도 아끼지 않습디다.”

 

“心術은?”

 

“順하디 順하였습니다.”

 

“몸은?”

 

“中學 때 蹴球選手였습니다.”

 

“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습디다.”

 

 

 

 

 

………………

 

코카사쓰 山中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肝”의 一節.

 

 

 

 

 

老子 五千言에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이라는 句가 있다.

 

靑年 尹東柱는 意志가 弱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抒情詩에 優秀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强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孤獨 속에서 죽었구나! 29歲가 되도록 詩도 發表하여 본 적도 없이!

 

日帝時代에 날뛰던 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 뿐이나. 無名 尹東柱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限이 없는 詩를 남기지 않았나?

 

詩와 詩人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十字架”의 一節.

 

 

 

 

 

日帝 憲兵은 冬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鯉魚와 같은 朝鮮 靑年詩人을 죽이고 제나라를 亡치었다.

 

 

 

뼈가 强한 罪로 죽은 尹東柱의 白骨은 이제 故土 間島에 누워 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또 다른 故鄕”

 

 

 

 

 

만일 尹東柱가 이제 살아 있다고 하면 그의 詩가 어떻게 進展하겠느냐는 問題 —

 

 

 

그의 親友 金三不氏의 追悼辭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 다시 다른 길로 奮然 邁進할 것이다.

 

 

 

 

 

                     1947年 12月 28日

 

 

 

                                       지    용

 

 

//////////////////////////////////////////////////////////===


서(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정성(精誠)것 몇 마디 써야만할 의무(義務)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 쓰고 차라리 병(病)아닌 신음(呻吟)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蕩盡)하고 용기(勇氣)도 상실(傷失)하고 8․15 이후(以後)에 나는 부당(不當)하게도 늙어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일편(一片)의 정성까지도 잃었느냐?” 질타(叱咤)한다면 소허(少許) 항론(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氣力)이 남었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詩人) 윤동주(尹東柱)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하노라. 



겨우 30여편 되는 유시(遺詩)이외에 윤동주의 그의 시인됨에 관한 목증(目證)한바 재료(材料)를 나는 갖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겠다. 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호피(虎皮)를 감정(勘定)하여 "수남(壽男)"이라고 하랴? "복동(福童)"이라고 하랴? 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고 보면 그만 아니냐? 
호피는 마침내 호피에 지나지 못하고 말을것이나, 그의 "시"로 써 그의 "시인"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그의 유시 "病院"의 一節 





그의 다음 동생 일주(一柱) 군과 나의 문답── 

“형님이 살었으면 몇 살인고?” 
“설흔 한살 입니다.” 
“죽기는 스물 아홉에요──” 
“간도(間島)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떠했던고?” 
“할아버지가 개척(開拓)하여 소지주(小地主)정도였읍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회사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 간도에 시(詩)와 애수(哀愁)와 같은것이 발효(醱酵)하기 비롯한다면 윤동주와 같은 세대에서 부텀이었고나!” 나는 감상(感傷)하였다. 





..........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太初의 아침"의 一節 



  

다시 일주 군과 나와의 문답── 

“연전(延專)을 마치고 동지사(同志社)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戀愛)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읍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읍니다.” 
“인색하진 않었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나 거져 줍데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順)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선수였습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 

코카사스 山中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 "肝"의 一節 

  

  

노자(老子) 오천언(五天言)에, 
"허기심(虛基心) 실기복(實基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이라는 구가 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意地)가 약(弱)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抒情詩)에 우수(優秀)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强)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孤獨)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發表)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시대(日帝時代)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 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十字架"의 一節 





일제헌병은 동(冬)섣달에도 꽃과 같은, 어름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시인을 죽이고 제나라를 망(亡)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은 이제 고토(故土) 간도에 누워 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房은 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 "또 다른 고향" 





만일 윤동주가 이제 살아 있다고 하면 그의 시가 어떻게 진전(進展)하겠느냐는 문제(問題)─ 

그의 친우 金三不氏의 추도사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 다시 다른 길로 매진(奮然) 분연(邁進)할 것이다. 

- 1947년 12월 28일 지 용 





───── 

 

 
 내가 무엇이고 정성( 精誠)것 몇마디 써야만할 의무(義務)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나는 천의를 뒤집어 쓰고 차라리 병(病)아니 신음(呻吟)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蕩盡)하고 용기(勇氣)도 상실(傷失)하고 8.15 이후(以後)에 나는 부당(不當)하게도 늙어 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일편(一片)의 정성(精誠)까지도 잃었느냐?" 질타(叱咤)한다면 소허(少許) 항론(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끓으리라.
 
 
 아직 무릎을 끓을만한 기력(氣力)이 남었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윤동주(詩人尹東柱)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하노라.
 
 
 겨우 30여편(餘編)되는 유시이외(遺詩以外)에 윤동주(尹東柱)의 그의 시인(詩人)됨에 관(關)한 아무 목증(目證)한바 촌료(村料)를 나는 갖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겠다.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호문(虎紋)을 감정(鑑定)하여 "수남(壽男)이라고 하랴? 복동(福童)"이라고 하랴?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詩人)윤동주(尹東柱)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尹東柱)의 시(詩)가 바로 "시(詩)"고 보면 그만 아니냐?
 
 
 호피(호피)는 마침내 호피(虎皮)에 지나지 못하고 말을것이나.그의 "시(詩)"로써 그의 "시인(詩人)"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왔다.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病)을 모른다.나한테는 병(病)이없다고 한다.이 지나친 시련(試鍊),이 지나친 피로(疲勞),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그의 유시(遺詩) "병원(病院)"의 일절(一節).
 
 
  
 
 
   그의 다음 동생 일주군(一柱君)과 나의 문답(問答)--
 
 
   "형님이 살었으면 몇살인고?"
 
 
   "설흔 한살 입니다"
 
 
   "죽기는 스물 아홉해요-"간도(間島)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떤했던고?"
 
 
   "할아버지가 개척(開拓)하여 소지주정도(小地主程度)였읍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회사(會社)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간도(間島)에 시(詩)와 애수(哀愁)와 같은것이 발효(醱酵)하기 비롯한다면 윤동주(尹東柱)와 같은 세대(世代)에서 부텀이었고나!"나는 감상(感傷)하였다.
 
 
 
 
 
   .......................
 
 
   봄이 오면
 
 
   죄(罪)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또 태초(太初)의 아침"의 일절(一節).
 
 
 
 
 
   다시 일주군(一柱君)과 나와의 문답(問答)--
 
 
   "연전(延專)을 마추고 동지사(同志社)에 가기는 몇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戀愛)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것 못 보았읍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읍니다"
 
 
   "인색(吝嗇)하진 않었나?"
 
 
   "누가 달라면 책(冊)이나 싸스나 거저 줍데다"
 
 
   "공부(工夫)는?"
 
 
   "책(冊)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願)하면 시간(時間)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順)하디 순(順)하였읍니다"
 
 
   "몸은?"
 
 
   "중학(中學)때 축구선수(蹴球選手)였읍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
 
 
   코카사쓰 산중(山中)에서 도앙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시름 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그러나
 
 
   .............................."간(肝)의 일절(一節)
 
 
 
 
 
  노자(老子)오천언(五千言)에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이라는 구(句)가 있다
 
 
  청년(靑年) 윤동주(尹東柱)는 의지(意志)가 약(弱)하였을 것이다.그렇기에 서정시(抒情詩)에 우수(優秀)한 것이겠고,그러나 뼈가 강(强)하였던것이리라,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孤獨)에서 죽었고나!29세(歲)가 되도록 시(詩)도 발표(發表)하여 본적도 없이!
 
 
  일제시대(日帝時代)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 뿐이나,무명(無名)윤동주(尹東柱)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限)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詩)와 (詩人)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이 흘리겠읍니다.-"십자가(十字架)의 일절(一節).
 
 
 
 
 
  일제헌병(日帝憲兵)은 동(冬)섣달에도 꽃과 같은,어름 아래 다시 한마리 이어(鯉魚)와 같은 조선(朝鮮)청년시인(靑年詩人)을 죽이고 제나라를 망(亡)치었다.
 
 
 
 
 
   뼈가 강(强)한 죄(罪)로 죽은 윤동주(尹東柱)의 백골(白骨)은 이제 고토(故土)간도(間島)에 누워 있다.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房)은 우주(宇宙)로 통(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퐁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 짓는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白骨)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또 다른 고향(故鄕)"
 
 
 
 
 
  만일 윤동주(尹東柱)가 이제 살어 있다고 하면 그의 시(詩)가 어떻게 진전(進展)하겠느냐는(問題)--
 
 
  그의 친우(親友) 김삼불씨(金三不氏)의 추도사(追悼辭)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 다시 다른 길로 구연(舊然) 매진(邁進)할 것이다.
 
 
 
 
                 1947年12月28日
 
 
                                                             
 
 
                                                                                                                                            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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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묘순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지용과 윤동주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과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난 이들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문학의 세계로 침잠(沈潛)하고 있었다. 

송우혜 소설가는 「윤동주 평론」에서 “중학 시절의 그의 서가에 꽂혔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정지용 시집」”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윤동주는 1935년 10월에 발간한「정지용 시집」을 1936년 3월 평양에서 구입해 정독하며 문학수업에 정진했다. 이숭원(서울여대) 교수는 정지용시가 윤동주에 미친 영향」에서 “윤동주의 습작기에 써 놓은 상당히 많은 작품에 정지용 시의 영향이 남아 있다. 윤동주는 습작기에 정지용의 시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확인했다.

이것은 정지용의 시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문사에게 가장 모범적인 길잡이 역할을 했음을 반증한다”며 “윤동주 외에도 다수의 시인 지망생이 그런 시도를 했을 것이나 그러한 학습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윤동주뿐으로 청년 문사 윤동주의 순정을 드러내는 사례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라사행 목사는 1939년 윤동주가 연희전문 기숙사를 나와 하숙을 하고 있을 때, 북아현동 1의 64호였던 정지용의 기와집을 윤동주와 함께 방문하곤 했다. 그들은 정지용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라 목사는 기억한다.

1948년 1월에 출간된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간본에 정지용은 서문(序文)을 쓴다. 강처중의 부탁으로 서문을 쓰게돼 정지용과 윤동주의 인연은 계속됐다. 1923년~1929년 정지용은 일본 동지사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압천」, 「카페프란스」 등의 작품을 썼고, 그를 좋아했던 천상의 시인 윤동주는 1942년 동경 입교대학에서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전입학하게 된다. 이들의 운명은 만나서 같은 공간에 머물러 오래 도란거리지는 못했지만 사뭇 ‘문학이라는 같은 원형질’을 가슴에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윤동주 연구논문이나 ‘동주’라는 영화에 그를 민족주의자로 그리고 있다.

이는 정지용의 도덕주의자적 면모의 영향관계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영향 관계는 필수 불가결했던 것이리라. 정지용의 후기 산문은 시론(時論)형식이라 할 수 있다. 중기 산문에서 보여주던 인간과 자연에의 관심에서 거리를 둔 변주곡을 울린 셈이다. 그의 시론(時論)은 주로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바탕으로 사회의식과 비판정신이 주로 드러나는 중수필적 요소를 비교적 잘 갖추고 내면적 자아의 혼란스러움을 그려놓고 있었다. 순박하고 소박한 자아의 세계관의 소유자 정지용은 좌우익의 이데올로 기가 확실히 정립되지 못한 시대의 혼란스러움을 시론(時論) 형식으로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후기 시론(時論) 작품으로 「여적」, 「오무백무」,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싸움」, 「쌀」,「플라나간신부를 맞이하며」, 「동경대진재 여화」등이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하여 정지용은 그의 후기 산문에서 순박한 도덕주의자로 표명되며 솔직한 모럴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정지용의 후기 시론(時論)에 나타난 도덕주의자적 면모는 윤동주의 지식인의 끊임없는 고뇌를 자아성찰적 자세로 애잔하게 그려놓았던 그의 시에 영향을 끼쳤다. 세상에 닮고 싶은 사람이 꼭 한 명이라도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리라. 윤동주는 정지용을 바라보며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연변지용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심한 모양이다.

옥천군의 또는 대한민국의 정지용 시를 추진(推進)할 구심점이 약해서인가?

시를 쓰는 것에 대한 내외부의 불편함에서 오는 고뇌인가?

참담한 민족현실에 절규하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정지용과 윤동주. 이들을 놓고 혼란을 빚는 것은 마치 중요한 일을 버리고 바쁜 일부터 해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목숨만큼이나 소중했던 그들 삶의 깊은 흔적과 도덕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흘렸던 눈물의 방향을 지키자. 무게중심이 기울지 않는 굳센 노 하나쯤 흔들리지 않고 저어가는 우리가 되자.

///옥천향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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