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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 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한다. 이를 `사의전신(寫意傳神)`이라 한다. 말 그대로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입상진의(立象盡意)`이니, 상세한 설명 대신 형상을 세워 이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제 그 몇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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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지 않고 그리기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 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 亂山藏古寺"란 제목이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 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 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畵題에서 요구하고 있는 '藏'의 의미를 이 화가는 이렇게 포착하였다.
兪成의 《螢雪叢說》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한번은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 발굽에 향내 나네. 踏花歸去馬蹄香"라는 畵題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 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 모두 손대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향기가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들 물엔 건너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배 하루 종일 가로 걸렸네. 野水無人渡, 孤舟盡日橫." 적막한 강나루엔 하루 종일 건너는 사람이 없고, 빈 배만 버려진채로 가로 놓여 강물에 흔들리고 있다. 이 제목이 주어졌을 때, 2등 이하로 뽑힌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물 가에 매여 있는 빈 배의 뱃전에 백로가 한 쪽 다리로 서서 잠자고 있는 장면을 그렸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배의 봉창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튼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1등 한 그림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공이 뱃 머리에 누워 피리를 빗겨 불고 있었다. 시는 어디까지나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사공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예 사공도 없이 텅 빈 배보다는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사공이 드러누워 있는 배가 오히려 이 시의 무료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드러내기에는 제 격일 듯 싶다. 이 화가는 의표를 찌르고 있는 것이다. 鄧椿의 《畵繼》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한다. 이를 '寫意傳神사의전신' 이라 한다. 말 그대로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立像眞意 입상진의' 이니, 상세한 설명대신 형상을 세워 이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즉 시인은 하고싶은 말을 직접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 山斷雲연 "는 말이 나왔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구름 위에 삐죽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다. 그렇다고 구름아래에 봉우리가 없는가. 다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辭斷意屬." 시속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구름 위에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인이 진정으로 하고자하는 말은 구름아래 감춰져있다.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드 매클래쉬는 「시의작법 Ars Poetica」이란 시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 고 하고, 또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 A Poem should be equal to: Not true" 고 하였는데,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한 간접화의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해야함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할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을 통해 말하라는 것이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 목적이 이 있지 않다.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롭게 만들어야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한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한 자기감정을 주욱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흔히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인이 이백자의 할말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어떻게 스무 자로 줄여 말할 것 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백팔십자를 걷어낼 것 인가로 고민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독자는 시인이 하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걷어낸 말, 즉 행간에 감추어둔 뜻을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느냐의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정민 지음 '한시 미학산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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