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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세종ㆍ충북=뉴스1) 김정수 기자 =
20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율리 좌구산 휴양림에
봄의 전령 복수초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복수초는 ‘영원한 행복’,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봄의 전령사로 알려지고 있다.
4월초 노란색 꽃잎이 벌어지기 전에 피며 지름은 3∼4㎝다.
눈길
어둑새벽 눈길 위엔 시묘 살던 서당집 훈장 할아버지 짚신 발자국과 석유등 밝히고 새벽예배 간 천안할머니 조그만 신발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 겨울
겨우내 하얀 눈이 쌓이는 고향집 삼밭,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는 샛노란 무 싹들이 세상 소식 궁금하다고 기지개를 켜며 새록새록 고개를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 아래에는
저 하늘 아래에는 운동모자 꾹 눌러쓰고 코스모스 꽃길 말없이 걸어가는 소년과
하얀 팔 내놓고 오르간 앞에 앉아 있는 갈래머리 소녀가 있었다
귀가
이제는 가리, 은하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를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로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을 들어가면 우물가에서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를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환한 그 집, 흰 무명저고리 여인이 아랫목에 더운 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빡이는 곳으로
감꽃 지는 마을
감꽃 피는 내 고향 가고 싶다 논두렁에 콩 심고 비 맞으며 깨 모종하고
장날이면 어머니랑 단둘이 등불 밝혀 들고 한내 장길 아버지 마중을 가고 싶다 개구리 울음 가만가만 밟아가며
오늘같이 비 오다 갠 날엔 앞산 뒷산 나란히 잠든 어른들 한 분, 한 분, 깨워 일으키고 싶다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장마 끝나고
장마 끝나고 갈울내깔, 징검다리 하나 둘 모습 드러내면 시냇물 맑아져 송사리 피라미 떼 줄을 짓는다 아랫 내 물턱 큰물에 휩쓸려온 방개고무신 한 짝 걸려 있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버들붕어 한 꿰미씩 들고 곱돌모랭이 돌아오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 내리는 저녁
저녁눈 설핏하게 떠도는 날은 고향마을 찾아들고 싶다 아이들 한바탕 떠들다 돌아가고 시누대밭 참새들만 춥다고 조잘대던 저녁 어스름, 그집 앞 지나다가 나풀대던 단발머리 보고 싶다 외양간에 늙은 소 거친 숨 몰아쉬던 소리 들릴 듯하다
그 여름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집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옛 동산에 오르며
저-기 저 소장뜰 대흥내 건너 꿩 산비둘기 사뿐 내려앉는 채당미 해바른 곳은 붙들 아버지 묘 닭재산 자락 코불네 산은 꼽새 할머니 묘 참샘골 서낭당 산삐알은 마구셍이 체장수 묘 황골 방죽머리 뱀밭엔 머슴살이 성배 아버지 묘 앞산 모랭이 돌아가면 자식 못 둔 천안 할머니 묘 함질재 오르막에는 푸른 이끼 덮어쓴 딸그만이네 묘 부엉이골 분고개 산등성은 매방앗간 연승 할아버지 묘 때까치 새끼 치는 팽나무재 너머 애꾸눈이 순옥 엄마 묘 흐드러진 찔레꽃 멍개나무 덤풀 속엔 올망졸망 애기들 묘 수리봉 자락길 지나 시루셍이 먼발치로 중뜸 소이침쟁이 묘 주걱샘 가는 길섶 쑥대밭은 아들 못 둔 연국이 외할아버지 묘 작은매봉재 큰 바위 아래 가재골 다락논 옆은 늑대 할아버지 묘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한복판엔 처녀들 묘 말구루마 비척대는 삼거리 주막집을 지나 갈참나무 숲은 우리 할머니 묘
그리운 홍성
꼬불간 돌아서 은행나무 말무덤 금마천 살진 메기 물살을 친다 의사총을 끼고 숯거리 들어서면 장닭이 목청 뽑아 홰를 쳐 울고 아침볕에 조양문朝陽門 젖은 머리 말릴 때 월산 진달래 붉더라, 붉더라,
독골엿장수
아침나절이면 엿가위 소리 짤깍대며 감꽃 핀 마을 찾아오던 독골엿장수, 실속은 없지만 언제나 다정한 아이들 친구였지 엿장수 궁디는 끈적끈적- 마른버짐 핀 머슴애들 데설궂어도 눈 한 번 끔벅이며 씨익, 웃어 주면 그것으로 끝이었지 어쩌다 한잔 술에 어깨춤을 출 땐 복실이도 꼬리치며 방울 흔들고 처마 끝 아슬한 낮달도 웃음 참느라 눈물 질금거렸지 허드렛 것들 모아 지게 가득 짊어지고 구렛들 저녁 안개 속으로 파묻혀가던 독골엿장수, 유난히 춥던 그 겨울 마지막으로 짤깍 소리 들리지 않았지
빨래터 풍경
구렛들 버드나무샘은 근처에서 유명한 빨래터였다 여름엔 찬물 겨울엔 더운물이 언제나 팡팡 솟아올랐다 아침나절이면 마을 아낙들 하얗게 둘러앉아 빨랫돌 하나씩 차지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워 아랫마을로 띄워 보냈다 나어린 계집애들 감꽃 꿰어 목에 걸고 입이 째지게 동요를 불렀다 먼 들녘에서 장항행 열차가 한낮의 정적을 깨면 물무당도 덩달아 신이 나 힘차게 물살 가르며 매암을 돌았다 손등이 까만 개구쟁이들 어미한테 붙잡혀 엄살을 떨고 수세미로 닦달당한 손등은 어느새 배냇손처럼 하얘지지만 하루만 지나면 도로 까마귀손이었다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된서리 하얗게 내리친 가을날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넘어 막내고모 시집간 들길 따라 감 팔러 장에 가시는 할머니 느린 걸음 신나게 앞질러 가면서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거북당 께끼집 골목에 감 몇 덩이로 좌판을 벌여 놓고 한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려도 할머니 감은 팔리지 않았다 옷고름 끝으로 한사코 콧물만 훔치시는 할머니, 바라만 보고 있기엔 따분해 약장수 말광대 구경을 하고 한참 만에 돌아왔을 때 좌판은 비어 있었다 할머니가 꼬옥 쥐어주신 돈을 들고 장 한 바퀴를 다 돌아봐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할머니 감보다 크고 잘생긴 감을 사 한입 베어 물고 나타났을 때 눈물을 뿌리시며 혼내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빠른 걸음 나는 느린 걸음으로, 백 발짝 뒤에서 걸어왔다 삽다리 장은 퍽 먼 장이라고 생각했다
산골 할머니의 봄
깊은 산골 오두막에 할머니가 삽니다 해와 달과 별과 꽃과 새와 나비는 할머니 가족입니다 토방 위엔 온종일 햇빛이 뛰놀고 밤 되면 먼 나라 아기별들이 속삭여줍니다 궁노루 발짝 찾아가며 버들개지 피고 산벚나무 꽃망울 붉어지면 도란도란 도랑 물소리 귀를 맑게 틔우며 오두막을 안고 먼 길 흘러갑니다 섬돌 밑에 두꺼비와 아침인사 나누며 할머니 갈퀴손은 바빠집니다 울 밑에 오이 놓고 하늘 위로 박 올리고 할머니 등이 호미처럼 굽었습니다 낮은 어깨는 장닭한테 쫓기는 노랑나비 청개구리의 피신처가 됩니다 지난봄에 태어난 병아리가 오늘은 하얀 알을 낳았습니다 폭설에 다리를 다친 아기고라니가 할머니 방에서 겨울을 나고 산으로 갔습니다 도라지 밭을 매다 할머니 쪽잠을 잡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검둥이도 할머니 등에 기대 깜박 잠이 듭니다 지나던 해님이 내려다보고 산그늘 한 자락 끌어다 가만가만 덮어줍니다
응봉국민학교 *
팔봉산 해 높이를 재며 시작되던 응봉국민학교, 무논에서 개구리가 라랴러려- 언문으로 울면 귀밑때기 새파란 아이들 입이 째지게 책 읽는 소리 들렸지 측백나무 울타리 늦은 잠에서 깨어난 참새들 구구단 못 외워 벌 받는 아이처럼 살금살금 교실 안을 넘겨다보고 노오란 해가 눈썹 끝에 와서 걸리면 숙직실 부엌에서 강냉이 죽 끓는 냄새가 풍금 소리에 솔솔 묻어오기도 했지 운동장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엔 각시붕어, 모래무지, 꾸구리, 미꾸라지가 지느러미 파들거리며 손 안에 들어와 잡혀주고 봄비 오다 갠 날 운동장 늙은 벚나무에서 팝콘처럼 터지던 벚꽃, 전교생이 소낙비를 가려도 넉넉하던 플라타너스, 코스모스 화안한 신작로길, 가을 운동회, 꼴찌를 놓친 적 없던 백미 달리기는 여학생들 앞에서 얼마나 나를 작게 했던가 담임선생님 등에 업혀 소풍가던 상국이, 국어책을 잘 읽던 똑똑한 윤수, 눈물이 많아 울보 별명을 붙이고 살던 착한 완수, 무릎 꿇고 벌받던 개구장이 용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졸업생 답사를 읽어나가던 빨간 스웨터 혜진이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가 구렛나루 거뭇하던 영묵이, 덕회, 그리고 먹석골, 솔안말, 우체국, 청심당약방도 지금 모두 잘 있는가, 잘들 있는가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 소재한 ‘응봉초등학교’의 옛교명
※ 충남 예산 응봉 출생. 1993년《시와시학 》으로 등단 『아버지는 힘이 세다』『감꽃 피는 마을』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 『루루를 위한 세레나데』등의 시집이 있음 시와시학상 동인상 수상
눈길
어둑새벽 눈길 위엔 시묘 살던 서당집 훈장 할아버지 짚신 발자국과 석유등 밝히고 새벽예배 간 천안할머니 조그만 신발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 겨울
겨우내 하얀 눈이 쌓이는 고향집 삼밭,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는 샛노란 무 싹들이 세상 소식 궁금하다고 기지개를 켜며 새록새록 고개를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 아래에는
저 하늘 아래에는 운동모자 꾹 눌러쓰고 코스모스 꽃길 말없이 걸어가는 소년과
하얀 팔 내놓고 오르간 앞에 앉아 있는 갈래머리 소녀가 있었다
귀가
이제는 가리, 은하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를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로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을 들어가면 우물가에서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를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환한 그 집, 흰 무명저고리 여인이 아랫목에 더운 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빡이는 곳으로
감꽃 지는 마을
감꽃 피는 내 고향 가고 싶다 논두렁에 콩 심고 비 맞으며 깨 모종하고
장날이면 어머니랑 단둘이 등불 밝혀 들고 한내 장길 아버지 마중을 가고 싶다 개구리 울음 가만가만 밟아가며
오늘같이 비 오다 갠 날엔 앞산 뒷산 나란히 잠든 어른들 한 분, 한 분, 깨워 일으키고 싶다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장마 끝나고
장마 끝나고 갈울내깔, 징검다리 하나 둘 모습 드러내면 시냇물 맑아져 송사리 피라미 떼 줄을 짓는다 아랫 내 물턱 큰물에 휩쓸려온 방개고무신 한 짝 걸려 있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버들붕어 한 꿰미씩 들고 곱돌모랭이 돌아오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 내리는 저녁
저녁눈 설핏하게 떠도는 날은 고향마을 찾아들고 싶다 아이들 한바탕 떠들다 돌아가고 시누대밭 참새들만 춥다고 조잘대던 저녁 어스름, 그집 앞 지나다가 나풀대던 단발머리 보고 싶다 외양간에 늙은 소 거친 숨 몰아쉬던 소리 들릴 듯하다
그 여름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집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옛 동산에 오르며
저-기 저 소장뜰 대흥내 건너 꿩 산비둘기 사뿐 내려앉는 채당미 해바른 곳은 붙들 아버지 묘 닭재산 자락 코불네 산은 꼽새 할머니 묘 참샘골 서낭당 산삐알은 마구셍이 체장수 묘 황골 방죽머리 뱀밭엔 머슴살이 성배 아버지 묘 앞산 모랭이 돌아가면 자식 못 둔 천안 할머니 묘 함질재 오르막에는 푸른 이끼 덮어쓴 딸그만이네 묘 부엉이골 분고개 산등성은 매방앗간 연승 할아버지 묘 때까치 새끼 치는 팽나무재 너머 애꾸눈이 순옥 엄마 묘 흐드러진 찔레꽃 멍개나무 덤풀 속엔 올망졸망 애기들 묘 수리봉 자락길 지나 시루셍이 먼발치로 중뜸 소이침쟁이 묘 주걱샘 가는 길섶 쑥대밭은 아들 못 둔 연국이 외할아버지 묘 작은매봉재 큰 바위 아래 가재골 다락논 옆은 늑대 할아버지 묘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한복판엔 처녀들 묘 말구루마 비척대는 삼거리 주막집을 지나 갈참나무 숲은 우리 할머니 묘
그리운 홍성
꼬불간 돌아서 은행나무 말무덤 금마천 살진 메기 물살을 친다 의사총을 끼고 숯거리 들어서면 장닭이 목청 뽑아 홰를 쳐 울고 아침볕에 조양문朝陽門 젖은 머리 말릴 때 월산 진달래 붉더라, 붉더라,
독골엿장수
아침나절이면 엿가위 소리 짤깍대며 감꽃 핀 마을 찾아오던 독골엿장수, 실속은 없지만 언제나 다정한 아이들 친구였지 엿장수 궁디는 끈적끈적- 마른버짐 핀 머슴애들 데설궂어도 눈 한 번 끔벅이며 씨익, 웃어 주면 그것으로 끝이었지 어쩌다 한잔 술에 어깨춤을 출 땐 복실이도 꼬리치며 방울 흔들고 처마 끝 아슬한 낮달도 웃음 참느라 눈물 질금거렸지 허드렛 것들 모아 지게 가득 짊어지고 구렛들 저녁 안개 속으로 파묻혀가던 독골엿장수, 유난히 춥던 그 겨울 마지막으로 짤깍 소리 들리지 않았지
빨래터 풍경
구렛들 버드나무샘은 근처에서 유명한 빨래터였다 여름엔 찬물 겨울엔 더운물이 언제나 팡팡 솟아올랐다 아침나절이면 마을 아낙들 하얗게 둘러앉아 빨랫돌 하나씩 차지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워 아랫마을로 띄워 보냈다 나어린 계집애들 감꽃 꿰어 목에 걸고 입이 째지게 동요를 불렀다 먼 들녘에서 장항행 열차가 한낮의 정적을 깨면 물무당도 덩달아 신이 나 힘차게 물살 가르며 매암을 돌았다 손등이 까만 개구쟁이들 어미한테 붙잡혀 엄살을 떨고 수세미로 닦달당한 손등은 어느새 배냇손처럼 하얘지지만 하루만 지나면 도로 까마귀손이었다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된서리 하얗게 내리친 가을날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넘어 막내고모 시집간 들길 따라 감 팔러 장에 가시는 할머니 느린 걸음 신나게 앞질러 가면서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거북당 께끼집 골목에 감 몇 덩이로 좌판을 벌여 놓고 한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려도 할머니 감은 팔리지 않았다 옷고름 끝으로 한사코 콧물만 훔치시는 할머니, 바라만 보고 있기엔 따분해 약장수 말광대 구경을 하고 한참 만에 돌아왔을 때 좌판은 비어 있었다 할머니가 꼬옥 쥐어주신 돈을 들고 장 한 바퀴를 다 돌아봐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할머니 감보다 크고 잘생긴 감을 사 한입 베어 물고 나타났을 때 눈물을 뿌리시며 혼내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빠른 걸음 나는 느린 걸음으로, 백 발짝 뒤에서 걸어왔다 삽다리 장은 퍽 먼 장이라고 생각했다
산골 할머니의 봄
깊은 산골 오두막에 할머니가 삽니다 해와 달과 별과 꽃과 새와 나비는 할머니 가족입니다 토방 위엔 온종일 햇빛이 뛰놀고 밤 되면 먼 나라 아기별들이 속삭여줍니다 궁노루 발짝 찾아가며 버들개지 피고 산벚나무 꽃망울 붉어지면 도란도란 도랑 물소리 귀를 맑게 틔우며 오두막을 안고 먼 길 흘러갑니다 섬돌 밑에 두꺼비와 아침인사 나누며 할머니 갈퀴손은 바빠집니다 울 밑에 오이 놓고 하늘 위로 박 올리고 할머니 등이 호미처럼 굽었습니다 낮은 어깨는 장닭한테 쫓기는 노랑나비 청개구리의 피신처가 됩니다 지난봄에 태어난 병아리가 오늘은 하얀 알을 낳았습니다 폭설에 다리를 다친 아기고라니가 할머니 방에서 겨울을 나고 산으로 갔습니다 도라지 밭을 매다 할머니 쪽잠을 잡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검둥이도 할머니 등에 기대 깜박 잠이 듭니다 지나던 해님이 내려다보고 산그늘 한 자락 끌어다 가만가만 덮어줍니다
응봉국민학교 *
팔봉산 해 높이를 재며 시작되던 응봉국민학교, 무논에서 개구리가 라랴러려- 언문으로 울면 귀밑때기 새파란 아이들 입이 째지게 책 읽는 소리 들렸지 측백나무 울타리 늦은 잠에서 깨어난 참새들 구구단 못 외워 벌 받는 아이처럼 살금살금 교실 안을 넘겨다보고 노오란 해가 눈썹 끝에 와서 걸리면 숙직실 부엌에서 강냉이 죽 끓는 냄새가 풍금 소리에 솔솔 묻어오기도 했지 운동장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엔 각시붕어, 모래무지, 꾸구리, 미꾸라지가 지느러미 파들거리며 손 안에 들어와 잡혀주고 봄비 오다 갠 날 운동장 늙은 벚나무에서 팝콘처럼 터지던 벚꽃, 전교생이 소낙비를 가려도 넉넉하던 플라타너스, 코스모스 화안한 신작로길, 가을 운동회, 꼴찌를 놓친 적 없던 백미 달리기는 여학생들 앞에서 얼마나 나를 작게 했던가 담임선생님 등에 업혀 소풍가던 상국이, 국어책을 잘 읽던 똑똑한 윤수, 눈물이 많아 울보 별명을 붙이고 살던 착한 완수, 무릎 꿇고 벌받던 개구장이 용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졸업생 답사를 읽어나가던 빨간 스웨터 혜진이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가 구렛나루 거뭇하던 영묵이, 덕회, 그리고 먹석골, 솔안말, 우체국, 청심당약방도 지금 모두 잘 있는가, 잘들 있는가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 소재한 ‘응봉초등학교’의 옛교명
※ 충남 예산 응봉 출생. 1993년《시와시학 》으로 등단 『아버지는 힘이 세다』『감꽃 피는 마을』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 『루루를 위한 세레나데』등의 시집이 있음 시와시학상 동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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