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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장수동물한테서 배우라...
2018년 02월 06일 22시 07분  조회:4778  추천:0  작성자: 죽림

안늙고 암도 안걸리는 장수동물...
                 인간 수명연장 힌트를 얻다

원호섭,김윤진 입력 2018.02.06. 
 
 

◆ 과학이 이끄는 호모헌드레드 / ② 장수동물의 비밀 ◆

늙지 않는다. 암에 걸리지 않는다. 산소 없이도 18분을 버틴다. 불가능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실존하는 포유동물에 대한 설명이다. 아프리카 지역 땅속에 사는 길이 8㎝의 작은 동물, 벌거숭이두더지쥐가 그 주인공이다. 구글이 인간 수명 연장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생명공학업체 '칼리코'는 지난달 24일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나이가 들어도 사망 위험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 최신호에 실었다.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 '늙지 않는 동물'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2013년 칼리코를 설립하면서 장수동물이 '늙지 않는 비결'을 밝혀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칼리코의 로셸 버펜스타인 박사 연구진은 이를 위해 지난 30년간 벌거숭이두더지쥐 3000여 마리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일생을 관찰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실험실 쥐는 기껏해야 4년을 사는데 비슷한 몸집을 가진 벌거숭이두더지쥐 수명은 30년을 훌쩍 넘어서는 장수 비결을 찾는 게 과제였다. 분석한 데이터 결과는 놀라웠다. 연구 결과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나이가 들수록 사망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곰페르츠 법칙'을 거스르고 있었다. 생후 6개월이 지난 성인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하루 사망 위험률이 1만마리당 1마리꼴 수준에서 평생에 걸쳐 일정하게 유지된 것이다. 평생 사망률에 변함이 없다는 건 사실상 '불로장생'한다는 얘기다. 버펜스타인 박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에 대한 연구 결과는 우리가 아는 포유류의 생물학적 법칙에 모두 위배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불로장생 비결은 무엇일까. 연구진은 손상된 DNA를 빠르게 회복시켜주고 다른 단백질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샤프롱' 단백질 수준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매우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화를 유발하는 각종 단백질 손상을 수시로 바로잡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독일 막스 델브뤼크분자의학센터 등은 통증 신호 전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해 벌거숭이두더지쥐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특징을 가진 벌거숭이두더지쥐 유전체를 분석하면 인간 장수에 대한 유전적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게놈서열 초안을 완성해 2011년 '네이처'에 발표했던 김은배 강원대 동물응용과학부 교수는 "차세대 게놈서열분석(NGS) 기술이 발달하면서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왜 오래 사는지에 대한 유전적 요인을 따지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특정 유전자 존재 유무, 유전자 정상 여부, 유전자 내부 돌연변이, 유전자 중복 등이 형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처럼 덩치는 작지만 같은 몸집의 동물보다 오래 사는 장수동물에는 박쥐가 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연구진이 2014년 '영국왕립학회보B'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나 동굴 속에 사는 동물은 일반적으로 같은 몸집의 다른 동물보다 수명이 길다"고 발표했다. 이 중 대표적인 동물이 박쥐다. 이 때문에 박쥐 유전변이를 분석해 인간 수명과 질병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 박종화 교수 연구팀은 황금박쥐로 잘 알려진 '붉은 박쥐' 유전체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박쥐는 긴 수명, 비행능력, 초음파 감각, 낮은 시력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다. 박 교수는 "박쥐 게놈에서 장수 관련 유전정보를 더 깊이 연구하면 궁극적으로 암 치료와 수명 연장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더지나 박쥐와 달리 덩치가 큰 장수동물에 대한 유전체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 몸집이 크고 세포 수가 많으면 세포가 분열할 때 DNA 돌연변이가 발생하기 쉬워 질병에 더 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덩치가 큰 동물이 가지고 있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오래 사는 동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코끼리다. 코끼리는 사람보다 세포 수가 100배나 더 많은데도 암 발생률은 5% 미만이다. 사람의 암 발생률이 33~50%인 것을 감안하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암에 강한 코끼리에게서 '항암 유전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기를 띠고 있는 이유다. 일종의 '암 세포 킬러'인 코끼리 유전자를 연구하면 인간 암 정복과 인간 수명 연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시카고대 빈센트 린치 교수는 진화 과정에서 한때 기능을 잃어버렸던 코끼리 항암 유전자가 다시 부활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인간에게도 있는 '백혈병 억제 인자(LIF)' 중 하나인 'LIF6' 유전자가 코끼리 체내에서 작동을 멈췄다가 약 3300만년 전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코끼리보다 더 오래 사는 세계 최장수 척추동물은 북극 바다 그린란드상어다. 2016년 존 스펜슨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그린란드상어 수명이 40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 발표했다. 그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졌던 북극고래 평균 수명 211년을 능가하는 연구 결과였다. 이후 연구진은 그린란드상어 장수 비결에 주목했고 그 핵심을 '온도'와 '대사 속도'에서 찾았다. 수온이 낮은 북극 바다에서 살다 보니 신진대사가 느리게 진행돼 수명이 늘어났다고 추정한 것이다. 실제로 그린란드상어는 한 해 1㎝씩 더디게 자란다. 미국 미시간대 숀 수 교수도 2013년 선충 실험에서 온도가 낮아지면 DNA 손상이 줄어들고 노화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2010년 회충에 대한 연구에서도 역시 느린 대사를 가진 변종들이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됐다.

[원호섭 기자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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