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 최초의 현대 시집 / 김억
2017년 02월 19일 16시 46분  조회:4749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대 근대
저작자 김억
창작/발표시기 1921년 3월 20일(초판), 1923년 8월(재판)
성격 시집, 번역시집
유형 문헌
권수/책수 1책
간행/발행 광익서관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김억(金億)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 / 김억
오뇌의 무도 / 김억

김억의 번역시집. 광익서관에서 1921년 발행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인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우리 나라 최초의 현대 시집이기도 하다.

개설

총 168면. 광익서관(廣益書錧) 발행으로 초판은 1921년 3월 20일, 재판은 1923년 8월에 나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인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집이기도 하다. 김유방(金惟邦)의 장정에 장도빈(張道斌)·염상섭(廉想涉)·변영로(卞榮魯)의 서문과 역자 자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글, 그리고 김유방의 서시가 그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내용

1918년부터 1920년 사이에 김억이 『태서문예신보』·『창조』·『폐허』 등의 지면을 통하여 발표하였던 역시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번역의 대본은 세계어(에스페란토) 역본이며 이밖에도 영어와 일어를 주로 참고하고 불어도 힘 있는 한 참고하였다고 역자 자신이 밝히고 있다.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 등 21편, 구르몽의 「가을의 따님」 등 10편, 사맹의 「반주(伴奏)」 등 8편, 보들레르의 「죽음의 즐거움」 등 7편, 예이츠의 「꿈」 등 6편, 기타 시인의 작품으로 「오뇌의 무도곡」 속에 23편, 「소곡(小曲)」에 10편 등 총 8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재판본에서는 일부 시인의 작품이 삭제되거나 추가되어 초판보다 약 10편이 더 많은 9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작품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퇴고 과정을 통하여 적지 않게 변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모두 김억의 철저한 리듬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억은 역시에서 원시가 지니고 있는 리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가능한 한계까지 한국어의 리듬을 살려보려고 섬세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의의와 평가

『오뇌의 무도』가 우리 근대시에 미친 영향은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끊임없이 모색되어온 한국 자유시의 형태가 이들 김억의 번역시를 통하여 자리 잡혀진 것을 우선 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베를렌의 「작시론(Art poetique)」의 번역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새로운 시의 경전(經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가늘고 여리고, 애달프고 서러운 감각은 권태·절망·고뇌를 거쳐 나타내는 병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1920년대 전기의 우리 시의 체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Daum백과] 오뇌의무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출생일 1896. 11. 30, 평북 정주
사망일 미상
국적 한국

요약 1910년대부터 프랑스 상징파의 시 등 외국시를 번역·소개하여 근대문학 형성에 이바지했으며, 오산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김소월을 발굴,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키웠다. 
1920년 〈폐허〉·〈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폐허〉에 베를렌의 시를 연재하고, 번역시 〈가을의 노래〉·〈작시론〉 등 19편과 문예이론으로 〈스핑쓰의 고뇌〉(폐허, 1920. 7)·〈플로베르론〉(폐허, 1921. 1) 등을 소개했다. 〈창조〉에는 투르게네프의 시를 비롯한 많은 외국시를 번역했고 모파상의 소설 〈고독〉(창조, 1921. 1)을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퇴폐주의 시인과 작품은 1920년대 문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때 퇴폐주의 문학이 문단을 휩쓸기도 했다.

 
김억
김억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6.30) 발간

1910년대부터 프랑스 상징파의 시 등 외국시를 번역·소개하여 근대문학 형성에 이바지했다. 초명은 희권, 필명은 안서·안서생·AS.

오산중학교를 거쳐 1913년 게이오[慶應]의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중퇴했다. 도쿄 유학시절인 1914년 4월 〈학지광〉에 시〈이별〉을 시작으로 〈학지광〉 5호에 시 〈야반〉·〈밤과 나〉·〈나의 적은 새야〉, 6호에 〈예술적 생활〉, 10호에 〈요구와 회환〉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16년 오산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김소월을 가르치기도 했다. 1918년 〈태서문예신보〉 4호에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5호에 〈믿으라〉·〈오히려〉·〈봄은 간다〉등의 시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했다. 최남선이 보여준 계몽성의 시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유시 형태를 보여주었다.

〈태서문예신보〉 6호에 베를렌의 〈거리에 내리는 비〉·〈검은 끝없는 잠〉이란 시를 번역했으며, 〈프랑스 시단〉·〈소로굽의 인생관〉을 통해 서양 문예이론을 소개했다. 〈시형의 음률과 호흡〉(조선문예, 1919. 2)에서 운율은 생리현상인 호흡에 기초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프랑스 후기 상징파 시인인 폴 클로델의 '호흡률'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여기서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이원구조성을 '심령과 육체의 조화'로 표현하여 예술의 기본개념을 밝히고 있다.

1920년 〈폐허〉·〈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폐허〉에 베를렌의 시를 연재하고, 번역시 〈가을의 노래〉·〈작시론〉 등 19편과 문예이론으로 〈스핑쓰의 고뇌〉(폐허, 1920. 7)·〈플로베르론〉(폐허, 1921. 1) 등을 소개했다. 〈창조〉에는 투르게네프의 시를 비롯한 많은 외국시를 번역했고 모파상의 소설 〈고독〉(창조, 1921. 1)을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퇴폐주의 시인과 작품은 1920년대 문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때 퇴폐주의 문학이 문단을 휩쓸기도 했다.

초기의 창작시는 〈해파리의 노래〉(1923)에 싣고 그밖의 번역시는 〈오뇌의 무도〉에 모아 펴냈다.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 경성방송국 등에서 일했으며 〈가면〉의 편집을 맡기도 했는데, 이무렵 많은 번역시와 민요시를 발표하여 문단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해방 후에는 수선사라는 출판사의 주간으로 있었고, 6·25전쟁 때 이광수·박영희와 함께 납북될 때까지 잡지 〈개벽〉·〈조선문단〉·〈신동아〉·〈신인문학〉·〈동아일보〉·〈매일신보〉를 통해 300편이 넘는 시와 150편 정도의 평론을 발표했다.

그의 시세계는 〈해파리의 노래〉·〈안서시집〉(1929)·〈안서시초〉(1941)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해파리의 노래〉는 자유시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안서시초〉의 시대에는 7·5조의 민요시 형태를 보여준다. 후기 시에 보이는 정형성은 뒤에 그가 한시를 번역하면서 영향받은 듯하다. 시집 〈금모래〉(1925)·〈민요시집〉(1948), 희곡 〈젊은 그들〉(1933), 수필집 〈사상산필〉(1931), 번역시집 〈기탄잘리〉(1923) 등이 있으며 한시를 번역한 〈망우초〉(1934)가 있다.



[Daum백과] 김억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330 윤동주 서울 하숙집 가보다... 2017-03-17 0 2769
329 시쓰기는 보석쟁이가 값진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는것과 같다 2017-03-17 0 2731
328 윤동주의 시는 끝까지 한글 작품으로 남아있다... 2017-03-17 0 3314
327 윤동주의 친동생 윤일주도 시인이었다... 2017-03-16 0 4032
326 시비(詩碑)가 뭐길래 시비(是非)인거야... 2017-03-16 0 3091
325 한 편의 시에서 시의 1행이 주조행(主調行)이라 할수 있다... 2017-03-16 0 2844
324 윤동주 묘비에는 "詩人尹東柱之墓"라고 워낙 각인되여... 2017-03-16 0 3327
323 시인은 늘 령감의 메시지를 잡을줄 알아야... 2017-03-15 0 2943
322 시의 씨앗은 시인의 몸 안에서 "무자각적"으로 싹터 자란다... 2017-03-14 0 2837
32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이골이 나다"의 유래 2017-03-14 0 2473
320 일본 교토 윤동주 마지막 사진 찍은 자리에 詩碑 세우다... 2017-03-13 0 3057
319 시 한편이 태여나는것은 늘 울고 웃는 과정을 그려가는것... 2017-03-13 0 2604
318 있어야 할건 다 있고 없을건 없다는 "화개장터" 2017-03-12 0 2870
317 우리 고향 연변에도 "詩碑자연공원"을 조성해야... 2017-03-12 0 3330
316 일본 문화예술인들 윤동주를 기리다... 2017-03-12 0 4414
315 일본 한 신문사 부장이 윤동주의 "빼앗긴 시혼(詩魂)"다루다... 2017-03-12 0 3133
314 일본 녀류시인 50세부터 한글 배워 시를 번역하다... 2017-03-12 0 3323
313 일본인 = "윤동주 선배가 나와 같은 의자에서 공부했다니"... 2017-03-12 0 2986
312 일본의 중견 시인이 윤동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하다... 2017-03-12 0 3259
311 일본 녀류시인 이바라키 노리코가 윤동주 시에 해설을 달다... 2017-03-12 0 2925
310 작문써클 선생님들께: - "실랑이" = "승강이" 2017-03-11 0 2710
309 조선어의 자멸의 길은 있다?... 없다!!!... 2017-03-11 0 3648
308 시는 짧음속에서 큰 이야기를 보여줘야... 2017-03-11 0 2248
307 독자들도 시를 보고 도망치고 있다... 2017-03-10 0 2845
306 시인들이 시가 싫어 도망치고 있다... 2017-03-10 0 2597
305 작문써클 선생님들께= 아름다운 순 우리말로 작문짓게 하기... 2017-03-08 1 2990
304 윤동주의 친구 문익환 목사도 시 "동주야"를 썼다... 2017-03-07 0 4793
303 청년문사 송몽규도 시를 썼다... 2017-03-07 0 3000
302 청년문사 송몽규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에 들다... 2017-03-07 0 4248
301 시인과 수석인은 이웃이다... 2017-03-07 0 2625
300 민족시인 윤동주를 연변 룡정 고향에서 모실수 있다는것은... 2017-03-07 0 2680
299 시는 생명의 황금빛이며 진솔한 삶의 몸부림이다... 2017-03-06 0 2789
298 시인은 죽기전 반항하면서 시를 써야... 2017-03-03 0 3432
297 시는 천년을 기다려서 터지는 샘물이여야... 2017-03-03 0 2539
296 시는 이미지 무덤이다... 2017-03-02 0 3008
295 시는 상식, 틀, 표준 등 따위가 깨질 때 탄생해야... 2017-03-01 0 2909
294 시 한수라도 마음속에 깊이 갈무리 해야 함은?!...ㅡ 2017-02-28 0 3665
293 작문써클선생님들께;우리와 다른 알고 넘어가야 할 "두음법칙" 2017-02-28 0 2947
292 시는 "빈 그릇"이다... 2017-02-28 0 2640
291 시문학도들이 알아야 할 시창작원리 12가락 2017-02-27 0 2826
‹처음  이전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