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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소나무와 첫락엽
2016년 12월 27일 16시 30분  조회:2281  추천:0  작성자: 죽림

‘첫낙엽’을 밟는다. 청명한 소리가, 먼 여행을 마친 마지막 파도 소리처럼 빈 숲속에 부서진다. 그 소리는 파도 소리가 다시 수평선 너머 원점으로 돌아가듯, 텅 빈 나뭇가지에 걸린다. 지난여름의 폭풍우, 사랑을 나누던 새들을 재잘거림, 잘 마른 햇살이 팔랑거린다. 잎을 갉아먹던 애벌레가 그네를 타고, 폭염에 지친 어깨 위에 소낙비가 선다. 첫낙엽 속에는 지난 봄, 여름, 가을 너머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시간의 배꼽이 달려 있다.

[월간산]북바위산 북동릉의 소나무 사이로 본 부봉.
[월간산]북바위산 북동릉의 소나무 사이로 본 부봉.

첫날, 첫걸음, 첫새벽, 첫머리, 첫봄, 첫여름, 첫가을, 첫겨울, 첫눈 따위의 말은 있지만 ‘첫낙엽’이라는 말은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없다. 하지만 첫낙엽은 실재한다. 마냥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지 않게 문득문득 얼굴을 돌리는 가을과 아직은머뭇거리며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겨울 사이에 있다. 나는 그 불확실한 시간이 좋다. 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자르기 직전 같은 시간.

첫낙엽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부서진다. 부서짐으로써 존재한다. 첫사랑이 그렇듯이, 세상 모든 ‘첫?’들은 부서질 운명을 타고 났다. 그것으로써 불멸한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은 기억되지 않는다.

홀로서도 아름다운 산, 주변 명산 조망의 즐거움은 덤

북바위산 남동쪽 능선에 걸린 사시리고개에서 첫낙엽을 밟는다. 아무도 밟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첫낙엽이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첫낙엽은 낙엽과는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한다. 내가 밟지 않아도 첫낙엽은 햇살과 바람에 의해 곧 부서질 것이다.

첫낙엽 부서지는 소리는 낙엽 밟을 때의 소리와 다르다. 바스락거리는 것도 푸석거리는 것도 아닌 소리. 그 소리 속에는 수액이 오를 때의 파동, 바람의 결, 햇살의 지문이 새겨져 있다. 이제 곧 영원한 과거로 봉인되기 직전의, 무시무종한 시간이 거기 있다.

텅 빈 능선에는 갓 떨어진 참나무 잎으로 가득하다. 지나간 시간의 모든 햇빛이 여기에 다 쌓였다. 이 빛들은 언젠가 다시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일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가뿐히 넘어 선 빛이다. 그런데 그 빛을 밟고 가는 나는 숨이 차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실감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어떤 세계에 속했는지를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 나는 어둡고 무거운 욕망이 충돌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단’이 난다(지금 우리나라가 그 처지에 놓였다).

[월간산]북바위와 소나무.
[월간산]북바위와 소나무.

지금 내가 선 곳은 산. 이곳에서는 아무리 나쁜 생각을 품어도 세상에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산을 오르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물론 산에 사는 생명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갚을 길 없는 미안함이다.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북바위산(772m)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다. 월악산국립공원의 서쪽을 남북으로 가르는 송계계곡 서쪽에 자리했다. 남쪽으로 백두대간의 마패봉과 마주하고 북서쪽으로 송계계곡 건너 월악산을 바라본다. 북바위산은 월악산은 물론 주흘산, 조령산 같은 이름 높은 산에 가려져 널리 알려진 산은 아니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변 명산을 조망하기 좋은 산으로 사랑 받는다.

그러나 이 또한 북바위산의 독자성을 간과한 시각이다. 북바위산은 형식상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을 뿐 월악산과는 독립된 산이다. 송계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어 산줄기도 연결되지 않는다. 산 북쪽으로는 용마산을 마주 보면서 그 사이에 동산계곡, 남쪽으로는 597번 지방도와 석문천을 흐른다. 북바위산에서 남동쪽 사시리고개에서 송계계곡으로 흘러드는 사시리계곡은 온전히 북바위산의 동남쪽 자락에 깃들어 있다. 거듭 말하건대 북바위산은 독자성이 강한 산이다.

북바위산의 조망만을 강조하는 것도 본말 전도다. 북바위산은 홀로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산이고, 주변 명산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만약 안개 자욱한 날 이 산을 오른다 치자. 이 산의 가장 빼어난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하늘과 맞닿은 넉넉한 암반 위에 홀연히 솟아오른 듯한 소나무와 함께하게 될 것인즉, 그때는 누구라도 신선의 경지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말의 낭비를 무릅쓰고 거듭 말하자면, 북바위산을 오르는 최고의 즐거움은 암릉을 걸으며 바위와 하나가 된 소나무와 함께하는 일이다.

참나무 숲 사이로 첫낙엽을 밟으며 부드럽게 오르던 능선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 즈음 우람한 소나무가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북바위산 정상부의 서쪽이다. 이곳에서는 정상이 거의 눈높이에 걸린다. 완만한 암릉을 걸으며 숨을 가지런히 할 즈음 너럭바위 같은 정상에 닿는다.

북바위산의 정상은 소나무라 해도 좋다. 바위 속에서 홀연히 솟은 듯하다. 바위 기슭으로도 눈 가는 곳마다 화가의 손을 빌릴 것 없이 그림이 되는 소나무가 선경을 이룬다. 멀리 부봉과 백두대간의 능선은 기꺼이 소나무의 배경이 되어 준다.

우리 소나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공감할 터이지만 이곳 북바위산 소나무의 아름다움은 새삼스러운 데가 있다. 울진 소광리나 대관령 어흘리의 금강송, 경주 계림의 용틀임하는 소나무가 지닌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었는데, 그 바탕이 암릉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사람의 눈길 말고는 닿을 데 없는 암벽의 소나무를 눈앞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현실성이 오히려 경이감을 줄인다. 비현실적이어서 경탄하던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역설이다. 북바위산 소나무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월간산]1 정상부 동쪽 암릉의 소나무. 2 북바위산 정상 동쪽 기슭의 소나무
[월간산]1 정상부 동쪽 암릉의 소나무. 2 북바위산 정상 동쪽 기슭의 소나무

소나무는 허공과 한몸이다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우리는 고절미를 으뜸으로 여긴다. 최고의 인품과 초인의 이미지를 소나무에 투사한다.

기암창송(奇巖蒼松), 만학송풍(萬鶴松風), 백목지장(百木之長), 백사청송(白沙靑松), 설야송뢰(雪夜松?), 설중송백(雪中松柏), 세한삼우(歲寒三友), 세한송백(歲寒松柏), 송백지조(松柏志操), 송수천년(松壽千年), 송죽지절(松竹之節), 송풍수월(松風水月), 송학청월(松鶴靑月), 일학송풍(一壑松風), 정청송풍(靜靑松風.

소나무의 아름다움에서 고절미에 대한 경도는 지나친 의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박한 세월에 대한 위안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소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고고하고, 강건한 면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북바위산 소나무에서 나는 소나무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상반된 아름다움을 봤다. 바위 위에서 창공으로 솟은 소나무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생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소나무는 강함으로 바위를 뚫고 솟은 것이 아니라, 더 없는 부드러움으로 바위에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세상에 소나무보다 부드러운 나무는 없을 것이다. 빗물보다 더 부드럽게, 안개보다 더 섬세하게 바위로 스며들지 못했다면 결코 목숨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소나무보다 소박한 나무는 없을 것이다. 지나가는 바람이 전하는 투명한 물방울만으로 지족할 줄 알기에 소나무는 사철 푸를 수 있는 것이다.

[월간산]1 북바위산 정상에서 본 부봉. 2 북바위산 정상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월악산의 암릉.
[월간산]1 북바위산 정상에서 본 부봉. 2 북바위산 정상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월악산의 암릉.

세상에 소나무보다 가벼운 나무는 없을 것이다. 소나무는 온 몸을 허공에 내어 주고 산다. 소나무는 허공과 한몸이다.

소나무와 함께 송계계곡을 향해 서서히 몸을 낮추니 부드럽게 흐르는 슬랩 위로 월악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월악산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다. 하늘의 성채 같은 월악의 바위 능선이 장관이다.

슬랩을 지나 회랑처럼 선 소나무 숲길을 빠져 나오자 수직의 벼랑과 한몸을 이룬 소나무가 눈앞에 걸린다. 북바위 벼랑에 걸린 소나무다. 북동쪽 능선에서 이 바위를 바라보면 그 모습이 북과 흡사하다. 북바위산이라는 이름이 이 바위에서 비롯되었다.

북바위를 지나면서부터 암릉은 곧장 송계계곡으로 미끄러진다. 산그림자가 송계계곡의 계류에 누워 있다. 계곡을 따르는 찻길(597번 지방도) 위로 마지막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길모퉁이를 돌면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까. 늦가을과 첫겨울 사이에서 나는 또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무욕하다. 나는 강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다.

/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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