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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 미국 시인 - 오든
2016년 12월 16일 21시 16분  조회:6452  추천:1  작성자: 죽림
 
출생일 1907. 2. 21, 잉글랜드 요크셔
사망일 1973. 9. 29, 오스트리아 빈
국적 영국/미국

요약 옥스퍼드대학 재학중에 이미 시인이자 철학도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대학 졸업 후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의 시와 연극, 특히 브레히트의 연극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초기 '1930년대 시인'의 중심인물로서 C.D.루이스, S.스펜더, L.맥니스 등의 시풍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위 오든 세대의 시인으로 알려진 이들을 '오든 그룹'으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체로 저널리즘이 만든 것이라는 게 정평이다. 그의 시적 세계는 감성적인 측면에서 다분히 좌경적이었으나 이는 핍박받는 빈민의 비참함과 이를 방관하는 사회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섞인 것이었다. 다른 한편 그는 예술가로서 고대 영시풍의 단음절 낱말을 많이 사용해 조롱이 섞인 경시와 모멸 풍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출해냈다. 1939년 미국으로 귀화한 이후에는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작품을 많이 썼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좌익의 영웅으로서 일찍이 명성을 얻었다.

이 시기에 그가 발표한 대부분의 시극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공동집필한 것이다. 1939년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국시민으로 귀화했다.

1908년 오든의 가족은 버밍엄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는 의무관·대학교수를 지냈다. 그의 아버지는 자연과학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지닌 탁월한 의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였으므로, 가정의 분위기는 문학보다 과학에 치중된 편이었다. 또 부모는 독실한 영국 가톨릭교도였기 때문에 오든이 체험한 종교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마법 같은 흥미로운 의식들'이었다.

오던(Audun)이라는 성은 아이슬란드의 사가에도 등장하며, 오든은 아버지로부터 아이슬란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물려받았다.

그는 영국의 중상류층 자녀들이 받는 표준교육과정을 밟았다. 8세에 서리에 있는 세인트에드먼드 예비학교에 입학했고 13세에 노퍽 주(州) 홀트의 그레셤 퍼블릭 스쿨에 진학했다. 오든은 광산 기사가 되려고 했으나, 먼저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1922년경 그는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발견했으며, 2년 후 〈Public School Verse〉를 통해 첫 시를 발표했다. 1925년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시인·철인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고 다른 문학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시인으로는 데이 루이스(1968년 계관시인이 됨), 루이스 맥니스, 1928년 오든의 시를 모아 손으로 인쇄하여 처음으로 시집을 출판한 스티븐 스펜더 등이 있다.

소위 오든 세대의 시인으로 알려진 그들의 이름은 종종 그의 이름과 함께 언급되지만 혁명적인 정치에 헌신했다는 '오든 그룹'이라는 말은 대체로 저널리즘이 만든 것이다. 1928년 오든이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하자 그의 부모는 1년 동안 해외여행을 권했는데, 그는 이전의 문학세대를 매혹시킨 파리 대신 베를린을 택했다. 그는 독일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독일 시와 카바레 노래, 연극, 특히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연극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를린에서 귀국한 후 그는 5년간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단편시집 Collected Shorter Poems〉에서 오든은 자신의 생애를 4기로 나누고 있다.

제1기는 그가 아직 대학생이었던 1927년부터 〈연설가들 The Orators〉을 출판한 1932년까지이다. 〈시집 Poems〉과 더불어 1930년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제스처 게임' 형식의 〈쌍방에 지불되다 Paid on Both Sides〉는 불완전하게 혼합되었지만, 여러 소재가 잘 융합되어 있음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여기에 융합된 소재를 살펴보면, 아이슬란드의 사가, 고대 영시, 공립학교 이야기, 카를 마르크스,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심리학자들, 그리고 이 모든 작품 속에 들어 있는 학생다운 유머 등이다.

이 시들은 한결같지 않고 종종 애매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또 상반된 충동들, 즉 환상과 신화적·무의식적인 것에 대한 주관적 충동, 사회악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심리적·도덕적 결함의 진단에 대한 객관적 충동이 서로 상충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록 시들의 사회적·정치적 요소가 독자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좀더 근본적인 것은 심리적 측면이었다. 시를 일종의 치료법으로 보고 정신분석과 흡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시의 개념이 오든에게는 근본적으로 중요했다.

1933~38년의 제2기는 오든이 좌익 영웅이었던 시기이다.

오든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분석하면서 전체주의의 발흥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이 섬에서 On This Island〉(1937, 영국에서는 1936년에 〈보라, 길손이여! Look, Stranger!〉로 출판)는 구성 면에서 더 분명해져 더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에서 실험적·비상업적 연극을 상연하는 '집단극장'(Group Theatre)을 위해 그는 처음에 일종의 음악 선전극인 〈죽음의 무용 The Dance of Death〉을 썼고, 그후 예비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공저로 〈가죽 아래의 개 The Dog Beneath the Skin〉(1935)·〈F6의 등반 The Ascent of F6〉(1936)·〈변경에서 On the Frontier〉(1938) 등을 썼다.

그는 또 기록영화 중에서도 고전에 속하는 〈야간 우편 Night Mail〉(1936)을 포함한 여러 기록영화에 대한 논평을 썼고 다수의 수필과 비평서를 집필했다. 그밖에 가장 유명한 르포르타주로 맥니스와 동행한 아이슬란드 여행기 〈아이슬란드에서 온 서신 Letters from Iceland〉(1937), 이셔우드와 함께 중국 여행을 기초로 한 〈전쟁으로의 여행 Journey to a War〉(1939)이 있다. 1937년 오든은 스페인을 잠시 방문했는데 시집 〈스페인 Spain〉(1937)은 그 방문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그러나 그의 회고에 의하면 이 방문은 좌익에 대한 환멸을 맛보게 했으며, 그리스도교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6년 그는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의 딸 에리카 만과 결혼했는데, 그 목적은 그녀가 영국 여권을 받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셔우드와 함께 중국을 여행했을 때 그들은 오며가며 미국대륙을 횡단했는데, 돌아오는 여행길에 미국에 영주하기로 결심, 1939년 1월 두 사람은 미국으로 귀화했다.

1939~46년에 걸친 제3기에 오든은 미국 시민이 되었고, 그의 종교적·지적 시각이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다른 때 Another Time〉(1940)에는 그의 가장 훌륭한 노래들과 시사성있는 시가 들어 있으며, 〈이중인간 The Double Man〉(1941)은 그가 그리스도교에 귀의하기 직전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1940년 이후 모든 작품의 기초가 된 그의 신념과 태도는 3편의 장시에 분명히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성담곡(聖譚曲)인 〈한동안 For the Time Being〉(1944)에는 종교성이, 같은 책에 실려 있는 〈바다와 거울 Sea and the Mirror〉(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The Tempest〉에 대한 擬似劇的인 논평)에는 심미성이, 1948년 퓰리처상을 받은 '기이한 목가시' 〈불안의 시대 The Age of Anxiety〉(1947)에는 사회심리성이 드러난다.

오든은 그후 장시를 더이상 쓰지 않았다.

제4기는 1948년에 시작되었는데, 그해부터 오든은 매년 4~10월 동안 뉴욕을 떠나 유럽에서 지냈다. 1948~57년 그는 여름을 이탈리아의 이스키아 섬에서 보냈으며, 말년에 오스트리아의 키르히슈테텐에 있는 농가를 사서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아킬레스의 방패 The Shield of Achilles〉(1955)·〈클리오 찬가 Homage to Clio〉(1960)·〈집에 대하여 About the House〉(1965)·〈성벽없는 도시 City Without Walls〉(1969)에서 그는 시의 순서를 외부양식, 즉 성직자의 시간, 풍경의 유형, 집안의 방을 따라 배열했다.

20년 이상 함께 살아온 친한 벗이자 미국의 시인인 체스터 칼먼과 오페라 대본의 예술성을 복원했다. 그중에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공동작,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를 위한 〈난봉꾼의 행각 The Rake's Progress〉(1951), 한스 베르너 헨체를 위한 〈젊은 연인을 위한 애가 Elegy for Young Lovers〉(1961)·〈바사리드 가(家) The Bassarids〉(1966), 니콜라스 나보코프를 위한 〈사랑의 헛수고 Love's Labour's Lost〉 등이다. 그들은 또 〈엘리자베스 시대의 송가집 An Elizabethan Song Book〉(1956)을 편집했다.

1962년 평론집 〈염색공의 손 The Dyer's Hand〉을 펴냈고, 1970년 비망록 〈어떤 세계 A Certain World〉를 발표했다. 그는 편집과 번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생 장 페르스의 시집 The Collected Poems of St. John Perse〉(1972)이 유명하다. 1972년 그는 겨울철 거주지를 뉴욕에서 옥스퍼드로 옮겼는데, 원래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명예 특별연구원이었다. 말년에 오든은 볼링언상(1953)·전미도서상(1956)을 수상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의 영시교수(1956~61)를 지냈다.

오든에 대한 평가

오든(Wystan Hugh Auden)
오든(Wystan Hugh Auden)

영국 태생의 미국의 시인

1930년대 초기에 오든은 그의 시가 이전에 문단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했던 T. S. 엘리엇,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보다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현실에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다소 논의의 여지가 있는 이유로 인해, 일찍이 일부 사람들에 의해 최고의 시인으로 갈채를 받아왔다. 1965년 엘리엇이 죽을 무렵, 오든은 실제로 그의 후계자라는 평을 듣게 되었는데 이 말은 상당히 설득력있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1939년 예이츠가 죽을 때 엘리엇이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을 물려받은 것과 같았다.

시인으로서 오든은 엘리엇보다 더 많은 작품을 썼고 더 변화가 많았으며, 훨씬 더 굴곡이 많았다. 그는 시대를 해석하고, 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대중의 관심사인 지적·도덕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환상과 꿈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려는 욕구도 똑같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의 시는 이따금 독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의 시를 1편씩 따로 떼어 살펴보면 종종 애매한데, 초기 시가 특히 그러하지만 포괄적으로 음미하면 상징적 조망과 신화적 인물 및 상황을 지닌 뜻깊은 시적 질서를 내포하고 있다. 말년에 오든은 자신의 시세계에 체계를 세워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시를 모아 개정하고, 시기별로 정리하여 2권으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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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H. 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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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 오든

위스턴 휴 오든(Wystan Hugh Auden, 1907년 2월 21일 ~ 1973년 9월 29일)은 영국의 시인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후 시민권을 얻는다. T. S. 엘리엇이 대표하는 1920년대의 정신에 반기를 들어 마르크시즘의 문제를 시 가운데 넣어서 세실 데이루이스와 스티븐 스펜더 등과 함께 신풍을 영국시단에 일으킨다. 이른바 '오든 그룹'의 지도적 존재이며 임상의(臨床醫)와 같이 병든 사회를 정신분석과 사회의식을 합친 수법으로 파헤쳤다. 말년에는 앵그리칸(Anglican) 종교에 기울어 인간존재를 '사랑'의 면에서 고찰하는 것과 같은 시를 썼으며, <전시집(全詩集)> 기타 많은 작품이 있다.

 

 

작품 목록[편집]

서적[편집]

영화&오페라대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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