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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창작도 예술품 제작이다...
2016년 11월 10일 22시 53분  조회:3814  추천:0  작성자: 죽림
 
가사의미의 상징적색채창조 기법에 대하여
                                   김은철
  지금 연변에는 많은 가사들이 창작되고 있다. 이런 가사들을 두루 살펴보면 대부분 그 의미가 직접전달의 단순한 창작기법에 의하여 씌여졌음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있다. 이는 우리 연변의 가사창작자들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바 현상태의 기법에서 한층 높은 차원의 기법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연변가사의 질적제고는 운운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필자는 직접전달의 표현방법으로 쓰면 안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표현하려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서 직설적으로 쓸수도 있고 상징,과장,추상 등 다종한 모든 방법으로 다 쓸수있다고  본다. 그런데 필자는 목전 가사를 쓰는 작자들중 직설적표현방법외에 다른 표현방법에 대하여 추구하고 연구를 깊이하는 창작자들이 많지 않다는 주장이다. 
  가사창작의 질적제고를 가져오려면 다방면의 요소들이 있겠으나 필자는 이 글에서 가사의미의 상징적창조에 대하여서만 불충분한 견해나마 피력하려고 한다. 
  독자들의 리해에 도움을 주고저 리상각 석화 두 시인의 개별적 가사들을 분석하면서 목전 가사창작과 결부하여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본다.
.
  먼저 리상각시인의 “두루미”를 보자. 
 
깨끗한 압록강 모래섬가에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두루미 
떼를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아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제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뒤맵시 앞맵시 보아달라고
이다리 저다리 껑충거리네
마주섰다 돌아섰다 하는 그 모양
아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제모습이 그 얼마나 어여쁜지를
 
배손들 마음을 끈줄 알고서
어여쁜 제모습에 깜짝 놀랐나
두루미는 떼를 지어반공중에 떴네
아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하늘하늘 뜬 모양 더욱 아름답네
 
  이 가사는 가창자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일반 가사들의 의미보다 시적의미가 우세적으로 다분하여 가사의미의 상징적 파악에 다소 어려움을 주고있다.
 가창자들에게 직감적으로 전달되는것은 두루미의 외적인 형상뿐이다. 가창시 가창자들은 두루미의 이 외적인 형상으로부터 그 상징적 의미를 련상하게 되는데 이때 가창자의 정서는 시적경지에 오르게 된다. 
  자칫하면 가창자들이 두루미의 형상감수에만 그쳐 이 노래를 부를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가창의 보다 높은 차원의 질적보장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창의 질적문제는 가창자의 선천적인 음성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가창자의 감정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세계에서 가창하는가 하는것은 직접적으로 청중들 감상의 질적인 높낮이와 관계가 있다
  리상각시인은 이 가사의 상징적 시적의미를 깨끗함과 그 깨끗함이 보여주는 미에 두고 있는것같다. 우선 아래에 매절의 의미를 분석해 보자.
  1절에서 “깨끗한 압록강”,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두루미” 등등은 깨끗함에 대한 시인의 추구를 표현하고있다. 깨끗함의 서정적주인공으로 두루미를 등장시킴으로써 두루미의 아름다움은 바로 깨끗함에 있다는것을 표현하고 있다. 
  2절에서는 두루미의 동적인 상태를 주로 묘사하고 있는데 두루미의 이 동적인 형상은  바로 깨끗함과 미에 대한 다듬질에서 창조되고있음을 표현하고있다. 즉 다듬질은 곧 깨끗함과 미를 창조하기 위한 로동임을 상징하고 있다. 
  3절에서는 두루미의 속성 즉 정결한 미의 속성은 겸손에 있다는것을 표현하고있다.  배손들이 두루미의 깨끗한 미에 찬양을 보내고있을 때 두루미는 깜작 놀라 반공중에 떠오른다. 하늘높이 떠오른 두루미를 보며 시인은 “하늘하늘 뜬 모양 더욱 아름답네.”라고 보다 승화된 차원의 서정에서 시적의미의 상징인 깨끗한 미를 강조하여 찬미하고있다. 
  후렴에서는 그토록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모르고있는 두루미의 형상을 의인화하여 묘사함으로써 시적의미의 상징인 깨끗한 미의 속성, 즉 겸손에 대하여 찬미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남보다 좀 뛰여난 재주를 가지고있는 사람들이 자고자대하면서 우쭐거리는 겸손치 못한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녀인들중에도 자신의 생김새가 여느 녀인들보다 좀 우월하다고 뽐내며 자고자대하는 현상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녀인들은 생김새는 아릿다워도 아릿다움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겸손성이 결여되기에 속되게 보인다. 
  리상각시인의 이 가사는 속되게 보이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아름다움이 지녀야할  겸손을 강조하여 찬미하고 있다. 이런 겸손은 가사의 후렴에서 돌출히 표현되고있다.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라는 구절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 두루미의 겸손성을 형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바 그 상징적의미는 바로 깨끗한 미의 겸손성이다. 
   리상각시인은 단순히 자연을 노래하기 위하여 이 가사를 쓴것이 아니다. 재간있는 작사자라면 자연경물의 형상을 통하여 꼭 쓰게되는것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은 직접적으로 자연경물과의 융합속에서 그려낼수도 있고 자연경물의 형상을 빌어 상징적으로 표현할수도있다. 
  이 가사에서는 인간을 “배손”이라는 단어로 객관적으로 등장시켰을뿐 두루미의 동적인형상과는 아무런 련계도 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이 가사의미의 상징적대상은 인간이다. 즉 깨끗한 미를 갖고있는 인간이다.
  웬간한 시적감상능력을 가지고있는 가창자라면 어렵지 않게 상징적대상이 련상되여 머리에 떠올리게 될것이다. 혹자는 가창중 순결하고 아름다운 련인을 련상할수도 있고 또 혹자는 한복차림의 아릿다운 우리 민족의 녀인들을 련상할수도 있으리라. 필자는 이 가사가 순진하고 겸손하고 수줍고 깨끗한 조선족 녀인들을 상징했다고 본다. 
  이렇게 이 가사를 풀이하고 보니 간혹 개별적독자들은 이 가사의 풀이가 어렵게 느껴져 인상주의수법으로 쓴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가질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 가사는 인상주의 수법으로 쓴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인상주의는 작가의 주관적인 순수한 인상을 작품에 나타내는 예술상의 주의로서 사실주의와는 정 반대다. 그러나 사실주의는 작품에 개관적존재의식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지난세기 80년대중기부터 우리 문단을 휩쓸던 몽롱시가 바로 인상주의창작방법으로 씌여진것이다 이런 시는 작자의 순수한 인상을 작품을 통하여 표현했기에 독자들은 공성을 띤 래해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두루미”는 독자들의 공성을 띤 리해성을 가지고있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것은 이 가사의미의 상징이 바로 깨끗한 미고 그 상징으로부터 련상되는것이 깨끗한 미를 가지고있는 인간이라는것이 독자들에게 공성을 띠고 추리되여 감수되기 때문이다. 
  연변의 가사세계를 훑어보면 개별적 작자들이 인상주의창작방법으로 가사를 쓰고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가사창작에 인상주의창작방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지난세기 80년대중기부터 시작하여 사실주의창작방법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하면서 인상주의창작방법을 고취하던 때를 독자들은 기억하고있을것이다. 
  인상주의작품은 우선 독자들이 작품의 내용부터 리해할수 없게 쓰고있다. 그러니 그 내용으로부터 어떤 공성을 띤 상징물을 추리해 감수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이 인상주의가 한때 우리 문단에 재난성적인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때 어떤 평론가들은 인상주의를 우리 문단의 기치로 내세우면서 인상주의작품에대하여 높이 평가를 하고있었다. 속되게 말하면 이런 평론가들은 주글주글한 늙은이의 배가죽을 매만져주면서도 그 감각이 선녀의 배가죽을 매만진다는 느낌이라고 올리춰주는 안마사로 둔갑하고 있었던것이다. 
  인상주의문학이 번창하고 있을 때 우리의 문학지들은 많은 독자들을 잃었던것이다. 누가 읽어도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그런 작품들에 애독을 가지고 있겠는가? 지금은 지어 작가협회기관지를 작가들마저 외면하는 정도로 돼버렸으니 문예잡지의 운명이란 얼마나 처참한 지경에 굴러떨어졌는가!(문학지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것을 인상파들에게만 미루는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인상주의도 그 중의 하나임을 강조하여 밝힐뿐이다.)
  이런 창작방법을 개별적 작자들이 대중가요의 창작에 도입하고 있으니 필자로서는 동의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는 인상주의창작방법을 반대하는것은 아니다. 인간들중에는 개별적으로 공성을 떠난 특수 현상,특수사물,특수행위에 흥취를 가지고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례하면 동성련애가 그러하다. 인간에게 동성련애는 공성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공성은 이성련애다. 그런데도 변태적인 동성련애에 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것의 합법화에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까지 있는것이 현세계이다. 예술에도 인상주의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한 허용하는것이 응당하다고 본다.
  총적으로 리상각시인의 가사 “두루미”는 가사의미의 상징적창조에 있어서 귀감으로 되기에 손색없는 좋은 가사라고 본다.  
  다음 석화시인의 가사 “동그라미”를 보자.
            
        동그라미
 
  아침에 뜨는 해 동그랗고
  저녁네 솟는 달 동그랗네
  정든님 얼굴이 동그랗고
  정든님 사랑이 동그랗네
 
  눈덩이 굴리면 동그랗고
  새 생활 꽃피면 동그랗네
  네맘 내맘 합치면 동그랗고
  네힘 내힘 합치면 동그랗네 
 
  동글동글 동그라미
  세상은 아마 동그란가봐
 
  이 가사는 경쾌,명랑,활기가 담뿍 넘치는 한수의 우수한 가사이다. 이 가사는 우선  “동그라미”라는 형상적 어휘로 제목을 달았고 또 주제를 상징하여 표현하고있다.
  일상 생활에서 어떤 형상을 보고 흐믓하게 느끼거나 혹은 어떤 일이 원만히 이루어졌을 때 대방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서양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떤 일의 진행이나 완공 혹은 어떤 일에 찬성,동의,해결등 만족된 기분을 나타날때 잘 쓰는 동작이다. 즉 ok라는 뜻이겠다. 아마 작사자는 이런 생활중에서 동그라미라는 령감이 떠올라 ok라는 대신 순 우리 말 단어 “동그라미”로 제목을 달아 이 가사를 쓴것같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면 “동그라미”의 상징적의미는 “좋다”라는것임을 어렵지 않게 련상하게 된다. 
  1절의 대의는 해가 동그랗고 달이 동그랗다는 자연의 동그라미와 님의 얼굴 동그랗고 님의 사랑 동그랗다는 서정적주인공의 생의 동그라미를 순차적 합동적관계의 시구로 맞물리게 하여 자연이나 주인공의 삶이나 다 동그랗다는것을 표현하고있다. 즉 자연이나 인간의 삶이 다 좋다는것이겠다. 
 2절에서는 눈덩이를 굴리면 동그랗고 생활이 꽃피면 동그랗다는것으로 동그라미의 창조와 그 결실의 희열에 대해 썼고 마음을 합치고 힘을 합치면 동그람이라는것을 표현하고있다. 즉 마음과 힘을 합치여 눈덩이 굴리듯하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좋아진다는것을 쓰고있다.
  그리고 후렴에서는 시구에 동그라미를 반복하여 표현함으로써 세상이 좋다는 이 가사의 주제를 한층 더 집중시키고 승화시키고있다.
  이제 이렇게 “동그라미”를 분석해 놓고 직설적표달방법에만 얽매여 써낸 가사들과 대비해 본다면 독자들은 그 예술적경지의 차를 어렵지 않게 감수하게 되리라고 본다. 이 가사에서 동그라미 대신 상징적의미 “좋다”를 직접 넣어 표현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두말할것 없이 그 효과가 엄청 다르다는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가사창작자들은 상징적색채의 예술적창작기법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장악하여야 본인의 가사창작질을 높은 차원에로 끌어올릴수 있다고 본다.
  목전 가사창작자들의 대오를 보면 대부분 로년들이다. 이 로년들중 문학창작에 풍부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자들은 수량상으로 많지 않다. 적지 않은 작자들이 퇴직휴양한 후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써낸 가사들이 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사는 편폭이 짧고 그 구성이 간단하여 쓰기가 여느 문학장르에 비하여 쉬운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사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것 같은데 가사란 가사를 보는 인상만으로 써서는 결코 질이 있는 가사를 출생시킨다는것은 퍽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필자의 스승이였던 고 리삼월선생께서는 “좋은 가사를 쓴다는것은 아주 어려운일이다. 나는 시쓰기보다도 가사쓰기가 더 힘들다.”라고 여러번 우리 초학자들에게 말씀한적이 있다.
  리삼월선생은 중국조선족시단의 대표적시인의 한분이였다. 시쓰기보다 가사쓰기가 더 힘들다고 여기는 선생의 이 지적은 가사창조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작자들은 가사쓰기에 깊은 연구가 없이 가사에 대한 인상만 가지고 쓰고 있으니 어찌 우수한 가사를 창작해 낼수있겠는가! 
  가사창작은 예술품제작이다. 정교한 예술품에는 흑점하나 있어도 눈에 거슬린다. 
  이로서 가사의미의 상징적색채창조에 대한 필자의 미숙한 소견을 우리의 가사문단에 내놓는바다. 여러 작사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사창작에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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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에는 건전한 문예비평이 있어야 한다
                      라주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문학평론가들이 작품의 질을 평하는것을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것에 비유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들은 의사가 있기에 제때에 병을 치료하여 건강을 유지한다. 만일 의사의 량심이 고약하여 환자의 몸속에 암덩어리가 생긴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아무 병도 없소, 참,건강하구만,라고 한다면 환자는 어떻게 될가? 환자는 곧 죽고 말것이다. 이런 의사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면 이건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롱락하는 범죄행위여서 사람들을 공포속에 밀어넣을것이다.

그런데 문학작품의 질을 진단해내는 평론가들중에는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롱락질 을하는 의사들이 많지 않느냐하는 주장이다. 물론 수준문제로 작품의 질을 제대로 진단해 내지못하는 평론가들도 있겠지만 아무리 수준이 낮다해도 작품의 질이 너무 낮아 곰보얼굴보듯 환히 나타나는 흠집마저 못본듯이 외면할수 있을가!

지난해 자치주 60주년가요응모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가요들을 보면 질적으로 가사나 곡이 낮다는것이 곰보 얼굴보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관부문에서는 아예 입을 봉하고 있고 평론가들도 모두 외면하고 있다. 60만원을 내여 벌린 방대한 이번 응모활동에서 얻은 실적은 무엇이며 교훈은 무엇인가? 이번 행사를 두고 뒤에서는 벼라별 소문과 욕설이 많은데 왜 모두들 앞에서는 말한마디 찍소리 못하는가?

과연 귀감이 될만한 경험교훈마저 못내놓은 이번 응모활동에 대하여 뒤골목에서의 욕설속의 의론들이 사실이라면 이는 나라의 돈 60만원을 밑씻개휴지로 써버렸다는 범죄행위가 설계되는 이야기다. 그래도 지상을 통하여 말한마디 못하는 우리 문단의 문인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비평성을 띤 문장을 감히 지상에 낼 엄두도 못하는 편집들, 필자는 상전의 비위에 거슬릴가 두려워 맴돌이치는 노복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바다.

한개 문단에 문예비평이 없다는것은 한 동아리 사람들에게 병치료를 해줄 의사가 없다는것으로 비유할수있다. 만약 전염병이 휩쓸때 의사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칫 전염병이 그 동아리 사람들을 전멸시킬수도 있는것이다. 이렇다면 이건 실로 무서운 일인것이다.

우리 문단에는 지금 비리가 독판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리에 대하여 언급조차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이는 문단을 이끌고있는 일부 지도층 사람들의 독단적사업작품과도 관계가있다. 이런 사람들은 백화쟁명을 부르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양대가리를 걸고 개고기를 파는 사람들인것이다. 이런 지도층 사람들로하여 문단에 민주가 없고 언론자유가 없고 문예비평마저 없다. 하여 저질작품들이 우수작품으로 뽑히는 실례들도 보편적현상으로 되여있다. 얼마전 우수작품으로 뽑힌 수필에서 필자는 이런 구절을 읽은바가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시기와 질투, 편견과 오만, 심지어 전쟁과 학살이 기승을 부린다고 할지라도 여기, 우리 00단만은 그와는 상관없이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끈끈한 정을 나누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갔으면 하는바람, 그리하여 00단을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하고 한번 들어오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화합의 지상락원으로 만들어 갔으면 하는 강렬한 소망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것이다....”

독자들은 이구절을 읽어만 봐도 얼마나 한심한가를 느끼게 될것이다. 00단에 아무리 마음이 쏠리고 감정이 통한다고 해도 전쟁과 학살이 기승을 부리는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00단만 잘되기를 바랄수 있는가! 어찌 이런 어마어마한 현상과 대비를 하면서 자그마한 00단을 그토록 높이 찬양할수 있는가! 

이 글을 발표할때 편집이 보아내지 못한것도 문제지만 이 작품을 우수작품이라고 평의해 내놓은 평심들 행위가 더욱 증오를 불러일을킨다. 평심들이 한사람은 아닐텐데 모두다 똑 같은 한심한 근시들이여서 곰보자국얼굴을 보아내지 못했는가? 아니면 작품은 아예 심열도 하지 않고 작자만 보고 평의했는가? 우수작품으로 뽑힌 중에서 이런 저질작품은 얼마든지 골라낼수있는것이 우리 문단의 실정이다. 

중국조선족문단은 그 뿌리를 중국조선족사회에 깊이 밖고서 중국조선족의 문화를 전국과 세계에 널리 선을 보여주면서 빛내여온 문화그룹이다. 이 그룹은 우수한 작가 음악가 미술가들을 많이 배양했으며 이런 예술가들은 우수한 작품들을 무수히 창작하여 중국조선족의 중국에서의 위상을 널리 선전하였고  그 생존과 발전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왔다

중국조선족문단의 지난날 업적은 광휘롭다. 이 문단의 앞길은 더욱 빛나야 한다. 빛나는 문단이 되려면 이 문단에는 반듯이 문단의 병집을 진단하고 고칠수있는 의료진이 건전히 수립되여야 한다. 이 의료진의 사명은 곧 문예비평이다. 문예비평으로 우리 문단의 로선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문예비평의 주도적핵심력량은 평론가들이다. 지금의 평론가들중에는 안마사들이 많다. 주글주글한 늙은이의 배가죽을 안마해주면서도 천하없는 미인의 배가죽같다고 하는 안마사들이 말이다. 
평론가들이여, 안마사가 되지말자!
평론가들이여, 우리 문단의 고명한 의사가 되자!
편집들이여, 상전의 노복이 되지말고 대담히 비평문장을 실어주자!

모든 작가들이여, 자기작품의 흠집을 밝히는것을 인권공격으로 보지 말자. 밝혀진 흠집이 사실이라면 훌륭한 의사의 검진을 받았다고 감사를 드리자. 이것이 작가가 가져야할 수양이 아닐가!

 
                                                 라주
 
* 00단ㅡ 지금 실재하고있는 어느 활동단체이다. 작품의 이름, 작자의 이름, 문학상이름과 구체적인 시간을 상세히 밝히고 싶지만 상세히 공개할 경우 작자와 그 주최단위 지도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기피한다. 비리가 흥성하고있는 현실에서 완전폭로를 한다는것은 지뢰를 밣는 일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독자들의 리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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