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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물과 용서와 사랑의 시인 - 한영남 박춘월
중국조선족시단에서 자신만의 색갈과 목소리를 가진 몇 안되는 시인가운데 한영남시인이 있다. 소설, 평론, 수필, 실화,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시인은 다산이기도 해서 해마다 그의 필을 통해 쏟아지는 글들은 조선말 신문과 잡지 곳곳에서 심심찮게 찾아볼수 있다. 그 많은 글들가운데서 오늘은 한시인의 시 3수만 뽑아들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시 <용서>
<산길을 걷다가/ 억수로 비뚤게 자란/ 나무 한그루를 만났다/ 그 나무의 휘우듬한 무릎을 만지며/ 그냥 용서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시의 서두에서 먼저 삶의 현장에서 거센 비바람과 폭염과 엄동을 견디느라 억수로 비뚫어진 나무 하나, 목숨 하나를 만난다. <구불거리며 자랐을 망정/ 푸름을 퍼올리며/ 싱싱한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고는/ 그냥 용서해버리기로 하였다> 삶의 매 한굽이를 넘길 때마다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으며 몸부림을 쳐왔을가? 꺾이우지 않으려고 지탱하다가 지탱하다가 휘여졌을 그 무릎을 만져주고 그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으며 동참을 해주고 인정을 해주는 화자의 따뜻한 가슴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설사 곁에서 비뚤어지게 굴었을지라도 비뚤게 살수 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깊은 리해와 용서를 해주는 높은 경지에 서있는 화자를 시 중간부분에서 만날수 있다. 구불거리면서 자라 추한 모습이 된 그 내면에는 숨은 아픔과 상처가 있다. 푸름을 퍼올리는 생명의 싱싱한 노래,그 노래를 부르는 자와 노래를 들을수 있는 귀를 가진 시인의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이 아름다운 장면이 독자들을 용서의 세계에로 인도해 준다. 파란만장의 세상을 처절한 몸부림으로 살아남은 우리들의 가슴속 내밀한 곳에도 상처와 신음소리가 숨겨져 있다.설사 억수로 비뚤어졌다 해도 그것은 엄연히 푸른 생명이고 싱싱한 음악임에 틀림없다. 살아남아 준것에 대해 감사하고 아직도 푸르른 생명의 노래를 불러줄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자. 용서는 아름다운것이다. 용서는 더 나아가서 사랑의 경지에 이른다. <그날은 괜히 연필도 깎지 못하고/ 볼펜으로 못난 친구한테 편지를 썼다> 그렇다. 화자도 우리 독자도 우리는 어쩌면 누구나 다 저 비뚤게 자란 나무일수 있다. 그리고 그런 비뚤어진 우리 매개인은 다 그 누군가의 따뜻한 리해와 용서를 갈망할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어루쓸어주고 뜨겁게 뜨겁게 사랑해줘야 한다...
시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
여기서 우리는 시인 한영남이 얘기하는 물과 그의 상처를 들어보자.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 내내 흐르다가/ 돌을 만나면 으깨지고/ 나무 만나면 베여지고/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흐르다가 돌을 만나면 으깨지고 나무를 만나면 베여지고 산을 만나면 돌아가는 물은 어떤가? 으깨질줄을 알고 베여질줄을 알고 에돌아갈줄을 아는 유연한 존재다. 으깨지고 베여졌다가 다시 용케도 원형을 회복하는 물은 말한다. <그러나 내게 무슨 상처랴>하고 말이다. <짐승들은 철버덕거리며 나를 희롱하고/ 자그마한 풀가지마저 내게 칼질하고/ 사람들이야말로 아무렇게나 나를 찢고 베이고 갈라놓고... 해도/ 실로 나는 물이다> 여러 상대들이 와서 희롱하고 칼질하고 찢고 벤다 하더라도 실로 나는 물이란다. 물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이였다면 피투성이가 되고 만신창이가 되였을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물이라서 찢겨졌다가도 다시 합쳐지고 베여졌더라도 또다시 뭉쳐서 흐를수 있다. 이것이 물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지혜이다. 베이지 않은듯 찢기지 않은듯한 여유와 치유력을 지닌것이 또한 물이 아니겠는가? <내게 상처를 바라지 마라/ 해아래 말리워도 좋다/ 오물을 퍼부어도 괜찮다> 나는 물이기때문에 내게 상처를 바라지 말라고 한다. 해아래 말리워도 좋고 오물을 퍼부어도 괜찮다고 한다. 물은 전혀 공격하지 않는다. 그대로 받아들일 태세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물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이다/ 아파서 속울음 울어도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 아아 그리고 차마 상처도 입지 못하는> 뭐든지 다 받아들이고 그러고도 태연한 모습인 물은 사실 속으로 울고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울고있는 물이다. 으깨지고 베여지고 희롱당하고 칼질당하고 말리우고 오물을 뒤집어 썼을 때 물은 자신이 속으로 울고있었다고 고백한다. 아아 그리고 차마 상처도 입지 못한다고 말한다. 물은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치유한다. 이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에게는 공격이 없다. 상처를 입으면 가해자가 불편해할가봐 차마 상처를 입지도 못한다. 상처를 입었어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물을 많이 닮아있는 시인 한영남과 그가 들고온 시 한수. 우리 물의 여유와 지혜에 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삶 자체는 순탄하지 않다. 거기에는 수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다. 그 아픔은 드러내봤자 별 도움이 없다. 시간이라는 생명의 곬, 그 곬을 따라 우리도 물처럼 흘러가보자...
시 <무애비죄>
한영남시인의 시는 거창한 시어거나 미사려구가 전혀 없다. 마치 치장 안한 맨 얼굴의 녀인 같다. 그러나 그의 시는 매력이 있다. 꾸미지 않은 소박한 시도 이런 상당한 매력을 가질수 있자면 시인의 느긋하고 여유가 있고 또한 더불어 살줄 아는 삶의 자세가 받침되여야 하지 않겠나 싶다. 화자는 일찍 돌아가신 애비와 그 애비없는 자식을 애잔하게 바라보면서 그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해준다. <남들앞에서 어깨와 가슴을/ 한번도 시원하게 펴보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수많은 보통 애비들처럼/ 평범이상으로 평범하게 살다가/ 죽을 때도 안됐는데 그만 죽어간 애비>와 <그래서 내가 마시는 술은/ 갑자기 물이 되였고/ 나는 그만 애비 없는 놈이 되였지/ 애비가 없다는건/ 어데가서 잘못해도/ 욕을 먹거나 매를 맞을/ 하등의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고/...사는걸 게을리하거나/ 업무따위를 조금 공빼먹어도/ 전혀 거리낄게 없다는 의미이고/ 설명절이 되여도 굳이/ 술병 사들고 찾아가서 세배하는/ 번거로움이 생략된다는 의미이고...> 누구나 다 마음속 깊이에까지 공감을 할수 있는 감정과 사연을 가지고 우리에게 잔잔하게 다가오는 시인 한영남의 시세계는 읽는 이에게 오래동안의 마음속 파장과 여운을 안겨준다. 읽기 특히 쉬운 언어로 우리에게 인생의 그 어떤 깊고 깊은 리치를 말하고 싶어하는 시인 한영남과 그의 시는 언제 읽어도 싫지 않다. 거부감이 없이 순하게 읽어내려 갈수 있고 숨겨진 뜻을 알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림에는 추상화와 추상화 아닌것이 있다. 한영남 시인의 시는 추상화가 아닌 그림에 속한다. 편안하고 푸근하고 그러면서도 우리들 삶의 아픔과 막무가내가 묻어나는 그런 그림이다. 가슴이 뭉클해나는 애비와 애비없는 자식의 그림이다. 청명이면 지랄같이 아버지의 무덤가에는 잔디처럼 애비의 시가 돋아나서 호로자식을 희미하게 웃군 한다는 시 <무애비죄>는 매 독자들의 평범한 삶과 일상과 끈끈히 련결되여 있다. 애비없는 자와 애비있는 자와 그리고 애비된자 어미된자와 모든 자식들에게 화자는 소박한 얘기로 대화를 한다. 그런 시인 한영남을 어느 독자가 싫어하겠는가? 시인 한영남이 계속 좋은 시를 써주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촌평을 줄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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