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16년 05월 01일 18시 57분  조회:4822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1996년>

 

▲ 일러스트 / 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문태준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163 볼세비키/ 정세봉(제목 클릭하기... 訪問文章 클릭해 보기...) 2024-07-13 0 1153
2162 프랑스 시인 - 기욤 아폴리네르 2021-01-27 0 4649
2161 미국 시인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2021-01-26 0 3156
2160 미국 시인 - 월러스 스티븐스 2021-01-26 0 3338
2159 미국 시인 - 로버트 프로스트 2021-01-26 0 3162
2158 미국 시인 - 엘리엇 2021-01-26 0 3595
2157 미국 시인 - 에즈라 파운드 2021-01-26 0 3355
2156 미국 시인 -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2021-01-26 0 3388
2155 미국 시인 - 제임스 디키 2021-01-26 0 3049
2154 미국 시인 - 필립 레빈 2021-01-26 0 3187
2153 미국 시인 - 리처드 휴고 2021-01-26 0 2869
2152 미국 시인 - 시어도어 레트키 2021-01-26 0 3155
2151 미국 시인 - 존 베리먼 2021-01-26 0 3248
2150 미국 시인 - 앤 섹스턴 2021-01-26 0 3508
2149 미국 시인 - 실비아 플라스 2021-01-26 0 2897
2148 미국 시인 - 칼 샌드버그 2021-01-26 0 3412
2147 시적 개성 목소리의 적임자 - 글릭; 노벨문학상 문턱 넘다... 2020-10-09 0 3358
2146 고대 음유시인 - 호메로스 2020-03-09 0 4684
2145 프랑스 시인 - 폴 엘뤼아르 2020-03-01 0 4773
2144 한국 시인, 생명운동가 - 김지하 2020-01-23 0 4467
2143 한국 최초 시집... 2019-12-16 0 4667
2142 조선 후기 시인 - 김택영 2019-12-06 0 4555
2141 토속적, 향토적, 민족적 시인 - 백석 2019-11-18 0 6844
2140 한국 최초의 서사시 시인 - 김동환 2019-10-30 0 4346
2139 한국 순수시 시인 - 김영랑 2019-09-29 0 6482
2138 [시인과 시대] - 문둥이 시인 2019-08-07 0 5048
2137 일본 시인 - 미야자와겐지 2018-12-18 0 5212
2136 "쓰레기 아저씨" = "환경미화원 시인" 2018-11-15 0 4775
213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고추밭 2018-08-20 0 5085
2134 동시의 생명선은 어디에 있는가... 2018-07-09 2 4280
2133 인도 시인 - 나이두(윤동주 흠모한 시인) 2018-07-09 0 5065
2132 저항시인, 민족시인, "제2의 윤동주" - 심련수 2018-05-28 0 5947
2131 페르시아 시인 - 잘랄 앗 딘 알 루미 2018-05-04 0 6231
2130 이탈리아 시인 - 에우제니오 몬탈레 2018-04-26 0 6240
2129 프랑스 시인 - 보들레르 2018-04-19 0 7532
2128 윤동주가 숭배했던 시인 백석 2018-04-05 0 6173
2127 일본 동요시인 巨星 - 가네코 미스즈 2018-03-31 0 6079
2126 영국 시인 - 월리엄 블레이크 2018-03-22 0 4004
2125 오스트리아 시인 - 잉게보르크 바하만 2018-03-06 0 5128
2124 미국 시인 - 아치볼드 매클리시 2018-02-22 0 5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