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최승호 - 대설주의보
2016년 05월 01일 18시 52분  조회:5017  추천:0  작성자: 죽림

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983년>

 

  

 

▲ 일러스트 / 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정끝별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163 볼세비키/ 정세봉(제목 클릭하기... 訪問文章 클릭해 보기...) 2024-07-13 0 1153
2162 프랑스 시인 - 기욤 아폴리네르 2021-01-27 0 4649
2161 미국 시인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2021-01-26 0 3156
2160 미국 시인 - 월러스 스티븐스 2021-01-26 0 3338
2159 미국 시인 - 로버트 프로스트 2021-01-26 0 3162
2158 미국 시인 - 엘리엇 2021-01-26 0 3595
2157 미국 시인 - 에즈라 파운드 2021-01-26 0 3355
2156 미국 시인 -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2021-01-26 0 3388
2155 미국 시인 - 제임스 디키 2021-01-26 0 3049
2154 미국 시인 - 필립 레빈 2021-01-26 0 3187
2153 미국 시인 - 리처드 휴고 2021-01-26 0 2869
2152 미국 시인 - 시어도어 레트키 2021-01-26 0 3155
2151 미국 시인 - 존 베리먼 2021-01-26 0 3248
2150 미국 시인 - 앤 섹스턴 2021-01-26 0 3508
2149 미국 시인 - 실비아 플라스 2021-01-26 0 2897
2148 미국 시인 - 칼 샌드버그 2021-01-26 0 3412
2147 시적 개성 목소리의 적임자 - 글릭; 노벨문학상 문턱 넘다... 2020-10-09 0 3358
2146 고대 음유시인 - 호메로스 2020-03-09 0 4684
2145 프랑스 시인 - 폴 엘뤼아르 2020-03-01 0 4773
2144 한국 시인, 생명운동가 - 김지하 2020-01-23 0 4467
2143 한국 최초 시집... 2019-12-16 0 4667
2142 조선 후기 시인 - 김택영 2019-12-06 0 4555
2141 토속적, 향토적, 민족적 시인 - 백석 2019-11-18 0 6844
2140 한국 최초의 서사시 시인 - 김동환 2019-10-30 0 4346
2139 한국 순수시 시인 - 김영랑 2019-09-29 0 6482
2138 [시인과 시대] - 문둥이 시인 2019-08-07 0 5048
2137 일본 시인 - 미야자와겐지 2018-12-18 0 5212
2136 "쓰레기 아저씨" = "환경미화원 시인" 2018-11-15 0 4775
213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고추밭 2018-08-20 0 5085
2134 동시의 생명선은 어디에 있는가... 2018-07-09 2 4280
2133 인도 시인 - 나이두(윤동주 흠모한 시인) 2018-07-09 0 5065
2132 저항시인, 민족시인, "제2의 윤동주" - 심련수 2018-05-28 0 5947
2131 페르시아 시인 - 잘랄 앗 딘 알 루미 2018-05-04 0 6231
2130 이탈리아 시인 - 에우제니오 몬탈레 2018-04-26 0 6240
2129 프랑스 시인 - 보들레르 2018-04-19 0 7532
2128 윤동주가 숭배했던 시인 백석 2018-04-05 0 6173
2127 일본 동요시인 巨星 - 가네코 미스즈 2018-03-31 0 6079
2126 영국 시인 - 월리엄 블레이크 2018-03-22 0 4004
2125 오스트리아 시인 - 잉게보르크 바하만 2018-03-06 0 5128
2124 미국 시인 - 아치볼드 매클리시 2018-02-22 0 5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