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2월 2025 >>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무명詩人
2016년 02월 18일 06시 56분  조회:4675  추천:0  작성자: 죽림

무명시인

            /함명춘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엔 없었던
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한 두어 번 부러진 연필을 깎을 때였을까
그가 연필을 들고 있을 때만큼은 언제나
바나나 같은 향기가 손에 와 잡히곤 하였다
그는 마을 어귀 가장 낮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마당엔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넣었다, 그러면
나비와 새 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읽고 돌아가곤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기척이라곤 낙엽 같은 노트를 찢어대는 소리일 뿐
아니, 밤보다 깊은 울음소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을까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
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
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넣었다
더이상 쓸 수 없을 만큼 연필심이 다 닳았을 때
담벼락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를 새겨넣고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
무명시인
끝내 그의 마지막 시는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그 몇 줄의 시를 읽을 수 있는 것들만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날은 바람과 구름이 한참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갔다
누군가는 그 글이 그가 이 세상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라 하고
또 누군가는 그건 글도 시도 아니라고 했지만
더이상 아무도 귀에 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집 마당, 한 그루 나무만 서 있을 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처럼 세월이 흘러갔다, 흘러왔다

 
------

시인은 홀로 연필을 깎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에 들어와 연필을 깎으며 살기로 한 사람이다. 그는 연필을 깎으며 마른 나무 같은 글들을 노트 속에 심기 시작한다.

한 그루 연필이 노트 속으로 들어가고 또 한 그루의 연필이 노트 속에 심겨지는 동안 세월이 갔다. 그가 그 방으로 들어와 열심히 연필을 깎았기 때문이다.

연필로 시를 쓰면 볏짚 타는 냄새가 나고, 저물 무렵 연필 속에서 흘러나온 글씨 속에는 비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비가 오는 날 젖은 볏짚이 타는 냄새를 쓰고 싶어서 그는 혼자 연필을 깎는 사람이다. 감추어 두었던 울음이나 세상이 자신을 지나가며 남겼던 것들이 혼자 헛웃음이 되면 그의 연필에서 흘러나온 젖은 볏짚들은 두엄이 되어 노트 귀퉁이에 쌓여간다.

그와 함께 그윽하게 썩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다.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는, 허명을 남기는 일보다 자신의 노트 속에 새들을 남기겠다고 다짐한, 그래 진짜 시인은 부러진 연필을 깎아 새들을 불러 모으는 존재니까.

 

시평/김경주 시인

---------------------------

 

산중여관1

 

마당엔 제비가 낙엽을 쓸고

몇 개인지 모를 방을 옮겨다니며

물고기들이 걸레질을 할 동안

오동나무와 족제비는 아궁이를 지펴 서둘러 밥을 짖는다

뒤뜰에는 장작을 패는 바람의 도끼질 소리

혹시 오늘은 어느 객이 찾아오려나

주인인 듯한 허름한 옷차림의 산국화

현관문 앞 숙박계를 어루만지며

길고 흰 수염을 쓰다듬듯 시냇물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가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 잃어야 한 번 쯤

묵어갈 수 있는 산중여관

                                                                   - 함명춘 (1966~ )

 

"겨울의 초입에 서니 이런 산중여관에 가고 싶다. 가을은, 낙엽은 다 졌겠다. 나목이 되어 조용히 서 있어도

좋겠다. 산중여관의 주인은 까다롭지 않고 무던해서 노랗고 작은 산국화처럼 나를 보고 반겨 웃을 것이다. 그

러면 엷은 향기가 그에게서 내게로 올 것이다. 나는 세상을 떠나와 산중여관에 묵고, 시냇물은 세상을 찾아가

라고 거룻배를 띄워 보내도 좋겠다.

방과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불을 때 밥을 짖고, 밤새 문 밖에서 낙엽을 비질하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싶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늦은 밤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면 어느새 나도 수수해져 사람이 좋아질 것이다. 목침

을 베고 누우면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처럼 순하게 잠들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복하게 내린 눈을 순은의 아

침에 보게도 될 것이다" 시를 올린 문태준 시인의 글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83 詩의 세계속에는 지상과 천상이 한 울타리에 있다... 2016-10-20 0 4204
1682 詩란 삶이 이승사자를 찾아가는 과정속의 울음이다... 2016-10-20 0 3969
1681 "말똥가리" 스웨덴 시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6-10-20 0 4748
1680 폴란드 녀류시인 -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2016-10-20 0 4742
1679 고대 그리스 녀류시인 ㅡ 사포 2016-10-20 0 4892
1678 고대 그리스 맹인 음유시인 - 호메로스 2016-10-20 0 5553
1677 神들은 문학과 취미의 부문에 속하다... 2016-10-20 0 4931
1676 최초로 음악가가 "노벨문학상"을 걸머쥐다... 2016-10-19 0 5319
1675 <밥> 시모음 2016-10-19 0 3784
1674 詩를 쓸 때 꼭 지켜야 할것들아... 2016-10-19 0 4128
1673 詩란 백지위에서 나를 찾아가는 려행이다... 2016-10-18 0 4154
1672 락서도 문학적 가치를 획득할 때... 2016-10-17 0 4578
1671 詩란 낡아가는 돌문을 천만년 들부쉬는 작업이다... 2016-10-17 0 4415
1670 모든 문학예술은 련속성안에 있다... 2016-10-17 0 4257
1669 죽음은 려행이며 려행은 곧 죽음인것이다... 2016-10-17 0 4141
1668 시인으로서 살것인가 아니면 살인자로서 살것인가... 2016-10-16 0 4721
1667 한춘시인이여!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2016-10-16 0 4118
1666 마지막 단어라는것은 없다... 2016-10-16 0 3886
1665 무질서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2016-10-16 0 3900
1664 동시 창작론 / 유경환 2016-10-16 0 4121
1663 동시 창작론 / 신현득 2016-10-16 0 4351
1662 미국 최후의 음유시인 - 월트 휘트먼 2016-10-16 0 5822
1661 모더니즘 대표적 영국 시인 - T.S.엘리엇 2016-10-16 0 7063
1660 詩란 언어비틀기가 오로지 아니다... 2016-10-16 0 4895
1659 詩는 태초부터 노래말, "활자감옥"속에 갇힌 문학 도망치기 2016-10-16 0 3955
1658 솔솔 동시향기 흩날리는 동시인 ㅡ 강려 2016-10-14 0 3636
1657 중국조선족 제2세대 대표적 시인 - 리상각 2016-10-14 0 4320
1656 詩에게 말을 걸어보다... 2016-10-14 0 3986
1655 음유시인 전통의 뛰여난 후계자 ㅡ 노벨문학상 주인 되다... 2016-10-14 0 4977
1654 詩란 막다른 골목에서의 정신과의 싸움이다... 2016-10-14 0 3918
1653 詩란 꽃씨앗을 도둑질하는것이다... 2016-10-14 0 3768
1652 난해한 말장난의 詩가 "최고의 현대시"인가?!... 2016-10-14 0 3883
1651 숟가락 시모음 2016-10-12 0 4170
1650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詩모음 2016-10-12 0 4325
1649 명태 시모음 2016-10-12 0 6282
1648 어머니 시모음 2016-10-12 1 5455
1647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2016-10-12 0 4276
1646 영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많아도 詩를 쓰는 놈은 딱 하나 영남 뿐! 2016-10-12 0 3706
1645 중국 조선족 시단의 기화이석 - 한춘시론 2016-10-12 0 3671
1644 詩의 독해(讀解)는 천파장 만파장이다... 2016-10-12 0 3758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