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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속에서 핀 예술의 魂 ㅡ 에밀리 디킨슨 - 1775편 詩
2015년 09월 17일 21시 11분  조회:2947  추천:0  작성자: 죽림


바람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
 

 

바람이 피곤한 나그네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다.
주인처럼 나는 근엄하게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그러자 발 없는 손님이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에게 의자를 내주려 했으나
그것은 공기에게 소파를 내주는 것처럼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손님은 몸을 지탱시켜 줄 뼈가 없었다.
그가 말을 꺼내면
우거진 수풀에서 수많은 벌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지나갈 때는
소용돌이치는 얼굴과 손가락이
유리컵 안에서 떨며 도는 바람의 곡조처럼
음악소리를 냈다.

우리 집에 와서 경쾌하게 날아다니다가
소심한 사람처럼 그는 
당황스러워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감상>

 

 

   바람에게서 뼈 없는 몸과 빠른 걸음을 보는 시인.
바람의 한 동작 한 동작에서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듣는 시인.
앉을 수만
있다면 바람에게 의자를 내주고 마실 수만 있다면
바람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어 하는 시인. 사소한 사물의 작은 움직임에도

온몸의 호기심이 일어나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이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귀엽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사물에게 생동감과 생명
력을 부여하는 섬세한 감각이 놀랍다.

 

 

바람조차도 찾아오면 반갑고 함께 놀고 싶어 보내기 싫어하는 장면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마음으로는 친하고 싶어 하면서도 몸은 금방 숨어버리고 마는
바람의 모습이 시인을 꼭 닮은 것 같다. 

시인으로 활동하지도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골방에서 시를 썼지만, 모든 사물과 자연이 친구였기에 마음은 풍요로웠으리라.
사후에 제목 없는 시 원고 이천편가량이 발
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임의로 첫 행에서 따왔다.

-김기택(시인)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년)

그리고 1775편의 시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00여 편에 달하는 시는 그저 혼자 내뱉은 독백 같았습니다.

사랑, 이별, 죽음, 영혼, 천국, 자연 등을 다룬 시는, 
은둔생활 속에서 핀 꽃이었나 봐요.

그는 내내 고독했지만, 
그 고독은 그의 모든 것이었던 시를 잉태한 동력이었습니다.
시와 고독을 평생 친구로 곁에 두고 지냈던 이 사람,
영문학사상 최고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입니다.
이상하고 의외의 일이죠?
그가 살아서는 별 볼 일 없는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에요.

하긴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그의 시를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겠지요.



에밀리를 얘기할 때, 가장 흔히 따르는 것은,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 그닥 부각돼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을 인류보편의 것으로 인식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독신생활하면서 시 짓기에만 몰두하다시피 한 그의 행보는,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입방아에 올릴 수 있는 호기심거리가 될 수 있었겠죠.

마치 시와 결혼한 듯
자신만의 공간에서 치열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그였기에,

보통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의 궤적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엠허스트에서,
변호사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과 에밀리 노크로스의 둘째 딸로 세상과 접촉했습니다.
잘 보시면, 그의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하나씩 딴 것이죠.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신학교에도 진학했지만, 
그는 보수적인 청교도 신앙에 그닥 흥미를 느낀 것 같진 않습니다.
청교도 정신부활을 위한 '영적대각성운동'이 있었을 때도,
그는 되레 청교도 신앙과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숨기지 않았으니까요.

에밀리를 에워싸고 있던 종교가 시작(詩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반면,
한 만남이 그를, 그의 시상(詩想)을 일깨웠습니다.
설핏 짐작 가시죠? 
맞아요. 역시나 사랑.
독신이었다지만, 설마 그가 사랑 한번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셨죠?
아버지가 하원으로 당선돼, 
그의 가족은 1854년부터 이듬해까지 워싱턴에서 살았는데, 

필라델피아의 한 장로교회에서 만난 찰스 워즈워스 목사를 만났습니다.
찰스 목사는 스승과도 같았습니다.
문학적인 설교와 칼뱅주의에 입각한 그의 웅변이, 
에밀리의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던 거죠.

그것은 하나의 지적도전과도 같았고, 시작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받았고, 
워싱턴을 떠나 다시 엠허스트로 돌아간 에밀리를 찰스 목사가 찾기도 했습니다.
에밀리는 여러 글에서 그를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나 역시나 장벽은 존재했죠.
찰스 목사는 기혼자였고, 그가 1861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로 옮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어요.

에밀리는 그를 정녕, 사랑했나봅니다.
친구부부와 동생에게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고, 더더욱 시에 매달렸습니다.
사랑의 아픔 때문인지 시는 봇물처럼 흘러넘쳤고,
좌절된 사랑으로 둘 곳 없는 마음은 작품 속에서 영적인 결합을 이뤘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을까요.
실연을 겪고 난 뒤, 그러니까 30세 이후 은둔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흰 옷만 입고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도 그래서 지어졌습니다.

시작도 계속했으나, 그는 출판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생전에 불과 7편의 시만 발표했을 정도로, 
그는 철저히 고립된 속에서 시와 함께 했어요.

물론, 에밀리에게 사랑이 한번만 거쳐 간 것은 아니지만,
그는 독신생활을 청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로드 판사와도, 
사랑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의 서신에서도 서로 사랑했음이 충분히 드러나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독신생활을 버리지 못해,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1884년 로드 판사가 죽자,
실의에 빠져 있던 에밀리는, 
결국 건강 악화로 2년 뒤인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겪은 사랑의 아픔, 그의 전부였던 시도, 
그를 더 이상 지탱시켜주지 못했나 봅니다.

 
 

에밀리가 죽은 뒤, 그의 동생이 1775편에 달하는 시를 묶어 발표했습니다.
그의 시는 1890~1945년 동안 8권의 시집으로 묶여 출판됐고,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시들은 20세기에 와서 제대로 평가를 받았어요. 
그는 겉으로 보기엔 은둔자였지요. 가사 일을 끝내고 이층 방안에서 시작에만 몰두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시피 했으니. 

그러나 시와 편지를 보자면 열정적이고 재치있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친밀한 언어로 생과 죽음, 영원과 자연 등에 대해 무한한 상상과 사색,
사랑과 이별을 담았습니다.

그의 예술혼은 그래서 아직도 후세인들에게 전파되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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