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술> 시모음
2015년 04월 10일 22시 05분  조회:4340  추천:1  작성자: 죽림

 

- 술에 관한 시 -

 

+ 선생님과 막걸리

해가 중천에 있고 겨울은 시작되었다
네모난 창에 등을 대고 언덕 내리막길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앙상한 미루나무 아래로 걸어 올라오시는 선생님
필경 우리 담임 선생님이셨다
울타리도 죄다 없어진 우리 집을 묻지도 않고 찾아오신 그 날
엄마는 신작로 중앙상회까지 내려가 오징어를 사왔다
콩콩 곤두박질 치는 심장은 곤로 속 심지보다 더 뜨거웠다
양조장집에 가서 막걸리를 두 됫박 넘게 받아오고
선생님은 오징어회를 맵지도 않은지 잘도 드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거지
나는 선생님이 떠난 후의 각오를 새롭게 했다
또 양은 주전자를 가지고 막걸리를 받아왔다
바닥에 쏟고 몇 번은 입을 대고 빨아먹었다
선생님은 두 번째 주전자마저 다 비우고서야 일어나셨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든 도망쳐야 하는데
그날 밤 엄마는 아무말 없었다
그리고 한달 뒤 중학교 입학원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날 느이 담임이 와서 가지도 않고 막걸리만 마셨는데
막걸리 잔을 비울 때마다 너는 꼭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더라
지긋지긋한 술
느 아버지도 모자라 이젠 담임까지 와서 술타령이냐

나의 은인 담임 선생님
아마 그때부터 술을 가까이 하신 것일까
슬픔의 강 너머로 나의 선생님이 손짓한다
(최나혜·시인)

+ 술과의 화해 

나는 요즘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나는 한때 
어떤 적의가 나를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크기 위해 부지런히 
싸울 상대를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그때는 애인조차 원수 삼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솔직히 말해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원수 삼던 세상의 졸렬한 인간들이 우스워지고 
더러 측은해지기도 하면서 
나는 화해했다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더 크고 싶었으므로 
대신 술이라도 원수 삼기로 했었다 
요컨대 애들은 싸워야 큰다니까 

내가 이를 갈면서 
원수의 술을 마시고 씹고 토해내는 동안 
세상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었고 
책들은 늘어나거나 불태워졌으며 
머리는 텅 비고 시는 시시해지고 
어느 볼장 다 본, 
고요하고 섬세한 새벽 
나는 결국 술과도 화해해야 했다 
이제는 더 크고 싶지 않은 나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득도한 것일까 
화해, 나는 용서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변하지만 
비겁한 타협이라고 굴복이라고 
개량주의라고 몰아붙여도 할 수 없다 
확실히 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것이다 

적이 없는 생애는 쓸쓸히 시들어간다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강연호·시인, 1962-)

+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나뭇잎 한 바구니나 화장품 같은 게 먹고 싶다 

그리고...... 말들은 무엇 하려 했던가 
유리창처럼 멈춰 서는 자책의 자객들...... 
한낮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 꽃나무들에게 사과한다 
지난 저녁부터의 발소리와 입술을, 
그 얕은 신분을 
외로움에 성실하지 못했던, 
미안해 그게 실은 내 본심인가봐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 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김경미·시인, 1959-)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 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황지우·시인, 1952-)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정연복, 1957-)

 

 

 



+ 막걸리

홀로 마시는
막걸리도 내게는
과분한 행복이지만

벗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더욱 황홀한 기쁨이다

나를 내 동무 삼아
집에서 혼자 따라 마시는
서울막걸리는 
왠지 쓸쓸한 우윳빛

하지만 벗과 눈빛 맞대고
서로의 잔에 수북히 부어주는 
서울막걸리는 
색깔부터 확 다르다

벗과 다정히 주고받는
투박한 술잔에 담긴
서울막걸리의 색깔은

남루한 분위기의 
희뿌연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왜 그리도 눈부신지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


+ 소주

나를 빼닮아 잠잠히 
투명한 영혼의 그대여

삶이 즐겁고 기쁠 때  
마음이 힘들고 외로움에 겨울 때면
얼마든지 나를 들이켜도 좋으리

언제든지 그대 가까이 
그대의 호명(呼名) 기다리고 있나니

그대 천 원 짜리 낡은 지폐로
나를 찾아와서

동그랗게 이 몸 안아 주면
나 그대의 좋은 벗 되어주리

애오라지 하나
간절한 소원 있다면

내가 행여 그대의 몸에 
몹쓸 독이 되지 않는 것

그대의 귀한 생명을 응원하는
맑고 순수한 기운이 되는 것

그래서 그대와 나의 
생명의 빛깔이 서로 닮아가는 것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
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
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 가벼운 슬픔

이틀이나 사흘 걸러
늦은 밤 막걸리를 마십니다

뽕짝 테이프를 들으며
쉬엄쉬엄 마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 술병에 담긴

750밀리리터 서울 막걸리 
한 병이 동날 무렵이면

약간 취기가 돌며
스르르 삶의 긴장이 풀립니다

가슴 짓누르던 근심과 불안의
그늘이 옅어집니다 

달랑 천 원이면 해결되는
내 생의 슬픔입니다.

이렇듯 
나의 슬픔은 참 가볍습니다.


+ 도봉산에서

어둠이 사르르
커튼처럼 내리는 

도봉산 자운봉 오르는
비스듬한 길 중턱

이제는 정이 든 
바위들 틈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의
행복한 성찬을 차렸다

저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집마다

귀가(歸家)의 불빛은
점점이 포근한데

저기 우람한 산봉우리는 
말이 없네
   

+ 땅콩

세상 욕심과 거리가 먼 그 친구도
정 붙일 욕심 하나 필요했을까

호프집에 들어가면
500cc 생맥주 몇 잔에
허름한 안주 하나 시키는 것은
우리의 오랜 관습이건만

어쩌다 술자리 무르익어 
호프 한 잔씩이라도 더하는 날엔
뿌듯하게 놓여 있던 안주도
어느새 우리의 인생살이 마냥
가난한 바닥을 드러내는데

때마침, 아롱아롱 주기(酒氣) 너머
벗의 당당하고 또렷한 외침
"여기, 땅콩 좀 더 갖다 주세요."

참 신기하게도
친구의 욕심은 늘 채워진다

불경기에 장사하기 힘들 텐데 
싫다는 내색 없이
수북히 땅콩 한 줌  
선물처럼 얹어놓고 가는
술집 주인의 넉넉한 손길

그래서 오늘도 
벗들과의 행복한 술자리  


+ 아차산 손두부

방금 쪄낸
아차산 할아버지 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툼한 손두부 한 모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벗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대화의 꽃
피우는 날은

고단한 인생살이
온갖 시름이야
잠시 내려놓아도 좋은
행복한 축제일

허름한 옷차림의 서민들과
하산 길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의
구수한 대화를 귀동냥하며
술맛은 점점 좋아지는데

자꾸만 더 먹으라며
내 앞의 종지그릇에
두부 한 점 살며시
담아 주는
벗의 다정한 마음에

누추한 할아버지 집은
어느새 지상 천국이 되네


+ 오라, 인간의 집으로

여기는 인생 열차의  
간이역 같은 곳
아차산 산행길의 
가빴던 숨 잠시 고르며
한 구비 쉬었다 가는
고향 마을 사랑방 같은 곳  

선한 눈빛의 할아버지가 
사십 여 년 정성으로 빚어 오신
군침 도는 손두부 한 모 앞에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어렴풋한
첫사랑 연인의 뽀얀 살결 같은
우윳빛 서울막걸리 한 잔   
주거니받거니 하며
기분 좋게 달아오르는 취기(醉氣)에
세상 살맛 새록새록 움트는 곳

한세월 살면서 켜켜이 쌓인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의 짐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내보이며
순수한 동심으로 되돌아가
낡은 천 원 짜리 지폐 몇 장뿐인
지갑이 얇은 사람도
이곳에 들어서면 어느새
마음만은 넉넉한 부자가 되는 곳

오라, 
세상의 벗들이여

사시사철 아무 때나 들러도 
소박한 인정(人情)이 넘실대는  
따뜻한 인간의 집
아차산 할아버지 손두부집으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883 미국 시인 - 빌리 콜린스 2016-11-28 0 4749
1882 詩는 언어로 남과 더불어 사는 정서를 절규하는것... 2016-11-28 0 4069
1881 시인, 시, 그리고 미술... 2016-11-27 0 4230
1880 시인, 시, 그리고 경제... 2016-11-27 0 3663
1879 시인의 미국 시인 - 에즈라 파운드 2016-11-27 1 5504
1878 현대시를 이끈 시대의 대변인 영국시인 - T.S. 엘리엇 2016-11-27 0 5398
1877 "부부 시인"의 비극과 또 하나의 그림자 2016-11-26 1 5705
1876 미국 시인 - 실비아 플라스 2016-11-26 0 5233
1875 독일 시인 - 롤프 디터 브링크만 2016-11-26 0 4232
1874 권총으로 자살한 구쏘련 시인 - 마야꼬프스끼 2016-11-26 0 4415
1873 20세기 러시아 최대 서정시인 - 안나 아흐마또바 2016-11-26 0 3730
1872 20세기 러시아 최대의 시인 - 오시쁘 만젤쉬땀 2016-11-26 1 3928
1871 상상하라, 당신의 심원한 일부와 함께 비상하라... 2016-11-26 0 3387
1870 세계문학상에서 가장 짧은 형태의 시 - "하이쿠" 2016-11-26 0 4226
1869 詩의 탄생 = 人의 출생 2016-11-26 0 3531
1868 실험적 詩는 아직도 어둠의 아방궁전에서 자라고 있다... 2016-11-26 0 4112
1867 詩가 무엇이길래 예전에도 지금도 실험에 또 실험이냐... 2016-11-26 0 4631
1866 詩는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어야... 2016-11-26 0 3453
1865 詩를 더불어 사는 삶쪽에 력점을 두고 써라... 2016-11-26 0 3818
1864 詩人은 명확하고 힘있게 말하는 사람... 2016-11-26 0 3684
1863 詩를 발랄한 유머와 역설의 언어로 재미있게 읽히는 시로 써라... 2016-11-26 0 4052
1862 캐나다계 미국 시인 - 마크 스트랜드 2016-11-22 0 5294
1861 미국 시인 - 시어도어 로스케 2016-11-22 1 6537
1860 러시아계 미국 시인 - 조지프 브로드스키 2016-11-22 0 4656
1859 詩란 마음 비우기로 언어 세우기이다... 2016-11-22 0 3950
1858 자연속의 삶을 노래한 미국 시인 - 로버트 프로스트 2016-11-21 0 6696
1857 풍자시란 삶의 그라프를 조각하여 통쾌함을 나타내는 시... 2016-11-21 0 3854
1856 미국 재즈 시의 초기 혁신자 中 시인 - 랭스턴 휴스 2016-11-20 0 5220
1855 락서는 詩作의 始初에도 못미치는 망동... 2016-11-19 0 3640
1854 인기나 명성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색갈을 고집한 예술가 2016-11-18 0 5309
1853 카나다 음유시인 - 레너드 노먼 코언 2016-11-18 0 5221
1852 령혼 + 동료 = ...삶의 그라프 2016-11-18 0 3546
1851 김영건 / 박춘월 2016-11-18 0 3445
1850 詩作의 첫번째 비결은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쓰는것... 2016-11-18 0 4007
1849 詩作할때 "수사법" 자알 잘 리용할줄 알아야... 2016-11-16 1 4854
1848 詩人은 "꽃말"의 상징성을 발견할줄 알아야... 2016-11-15 0 3720
1847 진정한 "시혁명"은 거대한 사조의 동력이 안받침되여야... 2016-11-15 0 3572
1846 고 김정호 / 허동식 2016-11-15 0 3702
1845 윤청남 / 허동식 2016-11-15 0 3671
1844 詩를 제발 오독(誤讀)하지 말자... 2016-11-15 0 3869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