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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革命...! 과 詩의 革命...?
2015년 03월 14일 21시 57분  조회:429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의 발전은 혁명의 방식이 아니라 계승과 창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김관웅

 

   최룡관 씨는 흑룡강신문에 실린 《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2006.5.200),《우리의 거울을 옮겨야》(2006.6.3), 《새로운 제재의 개발을》(2006.17) 등 글에서 해방이후 우리 중국조선족의 시문학의 발전사를 제 마음대로 서술하고 평가를 내리고 시인들을 줄 세우기를 하고 선지자연(先知者然)한 예언도 서슴없이 내던졌다.

  김철, 리상각, 김성휘, 조용남 등 문화혁명이전 기성세대의 시들은 이미 우리 시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들의 시를 대표로 하는 중국조선족의 시문학은 이른바 《제1차 시혁명》의 주력들인 석화, 리성비, 김학송, 리임원 등 이 《네 마리》(최룡관의 개성적인 표현을 존중하여 그대로 답습함)의 척후병의 시창작에 의해 교체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문화혁명 이전의 기성시인들의 시가 우리시문학의 발전을 가로막는《장벽》이 되였듯이 듯이 오늘은 이 《네 마리》척후병들의 시들도 《새로운 장벽》으로 나서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최룡관씨는 《이것이 오늘의 연변시단의 상황》이므로 《이 상황을 극복하여야 하며 이 장벽을 젖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룡관씨가 고취하고 있는 이른바 《제2차 시혁명》은 바로 이 《네 마리》척후병들의 진부한 시들을 《젖혀버리고》 이들의 시보다 더 생동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시들이 나오도록 하려는 것이 《제2차 시혁명의 길》이라고 그 목적을 명료하게 밝혔다.

  그러나 최룡관씨는 결코 석화, 리성비, 김학송, 리임원 등 이 《네 마리》척후병을 포

함한 동세대나 그 선배시인들을 모두 부정한 것은 아니다. 최룡관씨는 자기의 시학관, 기

호 및 친분관계 등에 좇아 김파, 박화, 정몽호, 남영전 같은 시인들은 《제2차 시혁명》의

토대 또는《혁명의 주체》로 인정했다.

  《제2차시혁명에서 류파가 형성되는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 시는 너

무 한곳에 모여 오구작작이다. 시인마다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시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지난날에 김파시인은 립체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박화시인은 주지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남

영전시인은 토템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정몽호시인은 상징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조광명시인

은 선시라는 기발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성과를 올리였는데 현시점에서 보면 남영전시인

이 따낸 성과가 제일 대단하다. 지난 3월 28일 중국의 저명한 시비평가 사면은 남영전시인

을 <조선족의 아들이다. 더우기는 중화민족의 아들이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최룡관씨가 제2차혁명의 토대 또는 그 혁명의 주체로 내세운 남영전의 토템시에 대해서

는 이미 언급을 했으니 이 글에서는 김파의 립체시와 립체시론만을 거론하기로 한다. 필자는 김파의 시창작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그가 쌓아올린 시창작의 성과에 대해서는 언제나 실사구시하게 평가를 해 왔었다. 이를테면 본인이 적극 추천하여 김파씨의 《욕망》을《중국조선족명시선》에 올렸으며, 또 《우리의 시의 방향제언을 위한 제언》이란 장문(長文)의 시평에서 많은 편폭을 할애하여 김파씨의 《욕망》을 칭찬했다. 그러나 필자는 김파씨의 이른바 《립체시론》에 대해서는 부정적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래 전부터 《과연 새로운 것인가?》(《문학과 예술》2006.2)등 글에서 김파씨의 이른바 《립체시론》은 서양의 상징시와 상징주의시론 같은 전통시론에서 거듭 반복하여왔던 시학주장을 이른바 《립체시》나 《립체시론》이라고 타이틀만 바꾸었을 따름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창의성을 완전히 부정했다.

  박화의 주지시나 정몽호의 상징시 역시 기존 동서양 문학전통의 계승이지 결코 정몽호의

완전한 창조라고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기치를 들었다고 평가하기 보다는 주지시나 상징시를 선호하고 그 공부를 했다고 해야 적절한 평가일 것이다. 류파가 나오려면 그 류파 나름대로의 독득한 시학주장과 그 시학주장에 따르는 시창작실천이 결부되여야 한다. 공허한 슬로건이나 독창성 없는 시학주장만 가지고서는 안된다. 우리 시단에 류파는 사실은 있다. 그것은 현실참여파와 현실도피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기치를 내걸지 않고 어떤 동인단체를 결성하지 않았을 뿐이다. 필자는 자신은 바로 현실참여파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필자 그리고 필자와 의견을 같이 하는 우리문단의 적지않은 문인들에게는 현실참여파로서의 올곧은 시학주장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참여의 시창작이 활성화되지 못했기에 명실상부한 현실참여파라고 하기는 어렵다. 필자의 <<우리 시문학의 방향전환을 위한 제언>>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참여파의 선언서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우리 시인들이 이 주장에 동감하여 보다 많은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현실참여의 시를 창작하여 하나의 도도한 흐름을 이룰 때 우리시단에도 명실공히 21세기의 중국조선족시문학의 하나의 시문학류파 - 《신현실참여파》가 형성되리고 확신한다.

  《기치를 들었다》는 것은 흔히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으로 남들이 들지 않았던 독특한 시문학의 기치를 내들었을 경우에나 사용하는 표현임을 최룡관 씨는 알아야 할 것이다. (물

론 그 명칭의 과학성 여부를 불문에 부친다면 아직까지 이 세상에서 <토템시>란 기치를 든

사람은 없었으니. 남영전씨의 경우에는 〈토템시〉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

다.)

  똑 같은 리치로 나타난지 백년이 거의 되는 초현실주의나 의식의 흐름 같은 모더니즘의

일부 수법을 배우고 도입하는 것을 명분이나 리유로 최룡관씨가 이른바 《시혁명》을 고

취하는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시를 전혀 모르는 황소도 웃다가 꾸러기 터질 노릇이다. 우

리민족의 시력사만 보더라도 지난 1930년대 김기림, 김광균 정지용 같은 이들이 이미 많은

장난을 친 적이 있는 모더니즘 시창작이나 시론을 중복하는 것이나 별로 다름이 없으면서

도 왜 굳이 《시혁명》을 고취하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이비《시혁명》은 2차,

3차, 4차, 5차가 아니라 100차를 해도 최룡관씨의 개인의 범위에서만 한정된다면 문제가

없다. 최룡관씨가 모더니즘을 하던지 말더니즘을 하던지 소더니즘을 하던지 필자는 오불관

언이라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시단의 혁명으로 확장하려고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최룡관씨가 말도 안 되는《제2차 시혁명》의 주체로 부각시킨 이들은 물론 이미 고인이

된 박화나 정몽호 같은 시인들이나 김파나 남영전 같은 60세 좌우의 현역시인만은 아니다

. 이에 대해 최룡관씨는 《제2차 시혁명》의 가상적인 《혁명의 주체》를 등장시키고 있다.

  《네마리 척후병보다 다른 새로운 척후병들이 나와야 새로운 시의 길을 개척할수 있다.

네마리 척후병들이 제2차 시혁명에서 그냥 척후병이 되자면 이제까지의 자신을 이겨야 하

며 새로운 나로 다시 태여나야 한다. 그것은 너무나 간고한 작업이여서 그들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것은 어찌보면 무리이기도 하다.

  그들은 80년대의 청출어람이였다. 21세기에 와서는 그들을 바탕으로 하는 청출어람이 나와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이와는 관계없고 세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필자는 그들에게희망을 걸지 않는다. 그들의 아래 세대에 희망을 건다.

  그들이 누구인가? 필자의 졸견으로 보면 한영남, 김승종, 김영건, 김현순, 김춘택, 김경희, 심예란, 심명주, 박춘월, 허옥진, 허련화 등 시인들중에서 덩지 큰 시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누가 되는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 모든 시인들이 아니고 다른 새로운 시인일수도 있다.》

  물론 이런 젊은 세대의 시인들이 아직 시를 쓸 시간이 많으니 선배를 초월하여 훌륭한

시인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신진시인들은 결코 최룡관씨처럼 혁명의 방법

으로 이 《네 마리의 척후병》에 대해 무모한 <<혁명>>을 단행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가 기성세대 시인들을 《젖혀버리는》식으로 발전될 수도 없거니와 아직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알건대 최룡관씨가 이름을 찍은 한영남, 김영건, 김승종, 심예란, 심명주, 박춘월, 허옥진, 김현순, 김춘택, 혀련화 등 《제2차 시혁명》의 혁명주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은《제2차 시혁명》의 주요한 혁명의 대상들인 석화, 리성비, 김학송, 리임원 등으로부터 지극한 가르침과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소문으로 많이 전해 들었다. 마치도 병아리가 어미닭은 졸졸 따라다니듯이 하는 이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선배이자 스승이고 은인들을 혁명하겠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혁명의 본의(本意)는 목을 베는 것이니까. 《수호전》이나 《삼국연의》 매 장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상투어를 패러디해서 쓴다면 그야말로 《제2차 시혁명의 대상들인 석화, 리성비, 김학송, 리임원의 위태로운 목숨이 어떻게 되였는가를 알려면 하회를 보아야 할것이다.》

  한영남, 김승종, 김영건, 김현순, 김춘택, 김경희, 심예란, 심명주, 박춘월, 허옥진, 허련화 등도 모두 최룡관씨의 《제2차 시혁명》의 주장에 공감하거나 동참할 시인들은 아님을 잘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들 중에는 시의 대문에 아직 들어서지 못한 초립동이들이 적지 않으며 《제2차 시혁명》을 일으키려는 동기나 그 리론적 준비나 배경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대 최룡관씨가 지금 고취하고 있는 《제2차 시혁명》의 주체가 되지 못할

것이며, 또 되려고도 하지도 않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시혁명의 주체가 없는

시혁명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우에서 최룡관씨가 이름을 찍지 않은 신진 시인들도 많으며 또 이들은 결코 그 시창작의 수준에서 최룡관씨가 이름을 찍은 신진시인들에 비해 짝지지 않다. 이들은 최룡관씨의 시창작주장에 더욱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최룡관씨의 《제2차 시혁명》은 애오라지 최룡관씨의 주관적인 발상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대중적인 기반이 없는 공상적인 혁명에 불과하다고 인정한다.

  무릇 정치혁명이든 문학혁명이든 성공하려면 명확한 혁명의 대상과 그 혁명을 이끌어나갈 혁명의 주체 그리고 광범한 대중적기초와 충분한 혁명의 조건 및 혁명의 명분과 리유가 갖추어져야 한다.

  필자는 최룡관씨의 이른바 《제2차 시혁명》은 이 모든 것이 결여되였거나 불충분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최룡관씨의 혼자만의 주관성과 맹목성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므로 이 《시혁명》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하다.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과 예술의 발전과 진보는 정치혁명처럼 대방을 죽여 버리는 방식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계승과 창조를 통해 이룩됨을 알아야 한다. 물론 모더니즘의 반전통의 특징을 뚜렷하게는 갖고 있으나  모더니즘의  모든 문학류파가 죄다 반전통의 방식을 취한 것은 아니다. 특히 모더니즘 시문학의 원조인 상징주의와 이미지즘은 사실은 인류의 전통적인 표현수법을 체계화하고 계통화하고 리론화했을 따름이다. 특히 이미지즘은 서양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시에서 많은 것을 계승하여 발전시켰지 결코 전통에 대한  혁명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님을 최룡관 씨는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 최룡관씨는 자신의 시창작에서 많이 전통에서 배웠으며 결코 혁명을 한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자기도 하지 않았고 또 할수도 없는 시혁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다.

 


                                       2006년 6월 20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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