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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거짓말
2010년 09월 16일 18시 17분  조회:2167  추천:9  작성자: 김인섭

아버지의 <거짓말>

                                                       김인섭    2010-09-03

세월이 여류이고 세월이 무상하다.일구월심의 하루마다 철의 흐름이 급물살임을  일부일 체감한다.

 

돌아보니 지난날 희망, 기쁨과 회한이 헷갈리는 가슴을 붙안고 뛰여온 고행의 일로였어도 아이들과 함께하던 순간만은 즐거운 시각이었다.고고지성(呱呱之聲) 울리며 태여나 고사리 휘저으며 환한 웃음을 던져 환열은 어디에 비견하랴! 

 

부지세월 속에서 애들도 다 자라 일본도 어디서 생계를 찾아 헤매인다. 이국 땅의 싸늘한 비바람을 감내하고 외로운 나날 애상도 많을텐데 버티면서 태연한 그 기품이 가상하다.푼푼한 몇마디로 호소식만 전달할 때면 되려 처량함이 짝이 없다. 다만 엄혹한 세월의 살인적 시련과 집요한 담금질이 장미빛 꿈이 현실에 착근(着根)하는 통과의례(通過儀禮) 생각하니 간절한 기대가 설래기도 한다.

 

천하의 부모는 동심일심이리라!조용할 때면 늘 애들의 상념으로 애수에 빠지면서 상시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지의 회억도 발맞춰 불끈거린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은덕을 해아린다.> 사람들은 말한다.과시 이런가보다. 허나 구로지은(劬勞之恩) 더없는 단순개념인데 아이를 키워보고, 열력을 쌓아놓고, 피눈물의 인생 대가를 치러야만 참인식을 얻는 걸가? 자문하군 한다.오늘 기억의 광야에 산적한 아버지의 사랑 더미에서 몇 쪼각의 편린을 끄집어내어 적어보려 한다. 아버지의 거짓말이다.

 

내가 속이 들던 60년대의 초반, 우리 집은 가난하기로 원근에 유명하였다.조양천이란 소진이 고향인데 진에서 서쪽으로 빠지면 작은 교촌에 초입의 과녁빼기로 보이는 30m2  헌 오막살이가 나의 생가였다.
 

6남매중 형님 누나가 연년 대학으로, 아래 철부지들은 글공부에 여념없는 집안이 적빈여세는 이소당연이고 책보,신발이 없고 폐의파관(弊衣破冠)도 죄다 차제이다. 최선이 먹을거리다.고난의 나날 풀뿌리 들나물 사냥이 인생의 첫 시련이었던 것 같다. 허기에 질려 견디지 못해 채농들의 날채소를 생쥐같이 훔쳐먹던 역시 천궁의 가찬이었다.보릿고개 춘궁기면 초근목피로 허기를 달래시고 중노동과 답쌓인 피로와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하고 누르르게 뜨시던 량부모의 모습이 선연하다.
 

간혹 아버지가 <,요즘엔 썰썰하다.> 변죽을 치시면 어머니는 어디서 돈을 만드는지 돼지고기 한 정도씩 받아 오신다. 근이 90전이나 되었던 기억이 삼삼하다. 어머니는 비게쪽을 받아 푸성귀국을 듬뿍 끓이면 지치신 아버지에게 고기가 거반이었고 나에겐 한두 점씩이면 고작인데 기아로 소증(素症) 시달리는 나에게 점이야말로 신선 세계의 맛이었다.입에 넣자바람에 녹아버린다.철없는 내가 아버지 그릇을 넘성대면 아버지는 얼른 갈라주시 <네가 먹어라,나는 맛이 없다.>하신다. 거짓말인 나는 모른다.

.

아버지는 사시장철 생산대장 사업에 전력투구지가 과언이 아니었다.별을 이고 나가시고 해시(亥時)경이면 오시는데 체소하고 섬약하던 아버지께 어데서 나온 기력인지 지금 돌아보면 실로 불가사의의 신비한 생명 현상이다.그래도 간혹 어데 앉으시면 잠간 사이도 졸곤 하시는데 <자부럼이>이라 소문이 자주 해코지군들의 웃음거리 되군 하였다.잠자리에 드시면 엽초를 말아 반도 못 태우시고 단잠에 떨어진다.베개와 이불자락 태운 일 한두 번도 아니다.휴식도 좀 하시라면 <나는 피곤하지 않다.>고 대답이다.환한 거짓말이었다.

 

<문화혁명> 계급대오청리시기 아버지가 14 나이에 어른들을 따라 어디 다녀왔다는 언녕 밝혀진 턱없는 <역사문제> 빌미로 되어 금시초문의 혹형을 받으시고 7차례나 생명 경각의 지경을 밟으셨다. 어느 날이었던가, 양쪽 귀망울이 주먹같이 부어나고 두다리가 검푸르게 기둥같이 부어오르신 기절상태의 피투성이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끌려들어 왔다.10 초반인 나는 집 구석에서 혼신을 떨고 있었을 따름이다.천우신조였던가,어머니의 지성였던가 아버지는 천천히 회생하시었다.전율하는 나를 보시고 <,무서워 말라.나는 아프지 않다.시간이 지나면 다 일없다.> 하신다. 나에겐 오직 기절낙담 공포였고 절망이었을뿐 진실인지 달래는 소린지 분간도 없었다.

 

인간고의 전부를 편력하신 아버지께서는 60초반의 이른 연세에 숙환중 생애를 생애를 접으셨다. 떠나시기 직전 아버지는 모진 진통으로 쉴새없이 뒤채시며 괴로운 몸부림도 치시군하는 것이었다.아마도 회한과 피땀으로 얼룩진 한살이를 접으시고, 이생의 영욕애환을 반납하시고, 천국의 안식처에 입적하시려는 쓰디쓴 결단이리라. 나는 아버지 손을 잡았다.아버지는 힘을 모으며 가녀 소리를 흘리신다.

<!너는 나가 자가라, 나는 일없다.>

 

이것이 아버지가 인간에 남기신 최후의 한마디고, 우리에게 남기신 진심(盡心) 유언이고, 나에게 남기신 마감의 거짓말이었다.

 

201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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