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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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김치담그기와 수필쓰기
2006년 02월 26일 00시 00분  조회:5117  추천:67  작성자: 김관웅
☆단평☆

김치담그기와 수필쓰기

김 관 웅


배추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우선 배추김치를 만드는 재료의 근본인 배추의 품질에 의해 좌우된다. 이밖에도 좋은 고추, 마늘, 생강, 젓갈류 등 배추김치를 담그는 데에 소요(所要)되는 기타 자료의 품질도 아주 중요하다. 화학비료를 가득 쳐서 재배한 배추는 인체에 안 좋을 뿐만 아니라 달지도 않다. 앓지 않는 청정한 대자연속에서 무공해농법으로 재배한 배추가 최상이다. 기타 재료도 마찬가지다.

수필쓰기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수필의 재료인 글감(소재)이 보편성과 객관성을 띠고 개성적이고 참신해야 한다. 가장 좋기는 자기의 체험에서 얻어낸 글감이 최상이다. 이것이야말로 앓지 않는 《대자연속에서 무공해농법으로 재배한 배추》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자기의 체험과는 관계가 없는 남의 얘기거나 또는 체험과는 관계가 다소 있다고 하더라도 거짓을 뒤섞은 얘기라면 마치도 《화학비료를 가득 쳐서 재배한 배추》같은 수필의 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우리 수필들을 둘러보면 소재의 선택에서 문제가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흔히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절실한 체험이 아니라 그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문제들을 글감으로 선택하여 아프지도 가렵지도 수필을 만든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면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 것은 류광철의 근작수필 《수캐와 나》이다. 이 수필은 자신이 8년동안이나 겪어오고있는 기러기아빠의 아픔과 고독과 슬픔을 우리민족의 많은 부부리산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수많은 중장년부부들의 보편적인 아픔과 고독과 슬픔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이 성공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자연속에서 무공해농법으 로 재배한 배추》같은 진실성, 보편성, 개인성을 두루 갖춘 훌륭한 소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배추김치는 재료만 좋아서 좋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담그기도 잘 해야 한다. 김장철에 김치 담글 때 처음에 나서는 가장 관건은 초절이를 할 때 소금을 얼마 뿌리는가 하는 것이다. 깨끗이 다듬고 물에 잘 씻은 배추에다 소금을 너무 적게 뿌려 넣으면 초절이가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려 넣으면 마치도 끓는 물에 데쳐놓은 시래기처럼 다 죽어버리게 된다. 소금을 적당히 쳐야 배추가 적당하게 절여지면서도 사각사각한 신선도를 보전할수 있다.

초절이가 잘 되여도 배추를 버무려넣을 때 양념장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김치가 너무 짜고 양념장에 소금을 너무 적게 넣어도 김치가 너무 싱거워 제 맛이 나지 않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에서의 이데올로기는 마치도 김치 담그는 데 있어서의 소금과도 같은 존재로서 소금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너무 적어서 사상이나 철학이 빈약한 글은 절대 상품(上品)으로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과잉된 글은 마치도 소금을 너무 많이 넣은 까닭에 김치가 너무 짜서 잘 익지를 않고 또 그래서 김치가 맛이 없는 것처럼 역시 상품(上品)으로 될 수 없다.

김치를 담는데 있어서 소금을 적절히 넣는 것만 요긴한 것이 아니다. 초절이를 한 김치포기마다에 버무려넣을 양념장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의 비례가 적절해야할 뿐만 아니라 소금도 적당히 넣어야 한다. 양념장에 새우젓이나 꼴뚜기젓 같은 동물성 재료를 넣으면 좋다고 하여 너무 많이 넣으면 오히려 김치가 비릿하여 상큼하고 시원한 맛을 살릴 수 없고,마늘이나 고추의 비례가 너무 많으면 쉽게 배추를 상하게 하거나 너무 매워서 먹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다른 양념의 재료도 비례를 적당하게 넣어야 함은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양념장은 당한 비례를 좇아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는 것이다.

김치를 담그는데 있어서 양념장은 마치도 글을 쓰는데 있어서의 고사, 성구나 격언, 속담 등의 인용에 비길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고사, 성구나 격언, 속담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람용하거나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글의 맛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문단의 일부 문인들의 글을 보면 자기의 체험이나 그것에 대한 감수나 느낌은 극히 적고 대부분 지나간 고금중외의 력사나 고사, 성구들을 무절제하게 끌어들여 자기의 글을 장식하고 있는 폐단이 있다.

중국 송나라시기의 강서시파(江西詩派)의 《무일자무래처(無一字無來處)》, 《점철성금(点鐵成金)》은 당나라시기에 많은 시인들이 숱한 좋은 시들을 이미 써놓아 그것을 초월하기 어려운 상황하에서 그 곤경을 타개하기 위한 일종 책략으로서 당시에는 일정한 영향을 일으키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고사, 성구, 격언, 속담이나 남의 시구들을 작품속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창의성을 잃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청신한 시의 맛을 잃어버렸다. 마치도 소금을 너무 많이 넣거나 양념장을 너무 버무려 넣어 김치가 사각사삭하고 시원하고 상큼한 맛을 잃은 것처럼 말이다.

너무나 용전(用典)을 많이 하면 독자와 작품사이에는 무언9無言)의 장벽이 가로 막히게 된다. 이런 작자들은 자기의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으로 여길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그것을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중국문론에서는《격(隔)》과 《불격(不隔)》이라는 미학범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격(隔)》이란 작품의 감상과정에서 작품과 독자사이에 간극이 생김을 의미하고 불격(不隔)》이란 작품의 감상과정에서 작품과 독자사이에 간극이 생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격(格)》하기보다는《불격(不隔)》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문학은 본질상에서 작자가 자기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난해하거나 난삽한 고사, 성구, 격언, 속담들을 무절제하게 작품에 끌어들이는 것은 마치도 대화에서 대방이 알아 못 듣는 말이나 듣기 싫어하는 말을 그냥 해대는 것은 실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감상은 흔히 직각(直覺)적이고 즉흥적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독자들은 자기가 모를 난해하고 난삽한 고사, 성구, 격언, 속담들이 갈피갈피에 끼여 있으면 오리무중에 빠져 짜증을 내거나 독서를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흔히는 평이하고 단도직입적인 문장으로 작자가 말하고 하는 바를 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필에서는 더욱 이러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한 때는 남이 잘 모르는 고사, 성구, 격언, 속담들을 대량적으로 인용하면 좋은 글이 되는 줄로 착각하여 왔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안지는 별로 오래지 않다.

《대자연속에서 무공해농법으로 재배한 배추》에 맞춤하게 소금을 뿌리고 맞춤하게 양념장을 버무려넣어, 잘 익은 맛있는 배추김치를 만들듯이 앞으로는 가급적이면 자기의 일을 자연스러운 자기말로 올곧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맛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2006년 2월 24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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