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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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신《동심(童心)》설
2006년 02월 05일 00시 00분  조회:3585  추천:53  작성자: 김관웅
☆나의 문학관☆

신《동심(童心)》설

김관웅


수정으로 만든 정교한 꽃병에 꽂아놓은 비단이나 플라스틱 같은 인조재료로 만든 꽃이 그 아무리 색깔이 현란하고 모양새가 크고 아름다워도 향기가 없는 조화(造花)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시골의 들쑥날쑥한 돌각담 우에 피는 호박꽃이나 거친 산언덕에 피여난 진달래꽃이 아무리 수수하고 왜소하고 초라하더라도 그것은 진짜 꽃이며 자연의 향기를 풍긴다.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眞), 선(善), 미(美)는 문학작품에 대한 3대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진실성과 그에 따르는 자연스러움이 문학의 최고경지하고 생각한다. 루쏘의 《참회록》이나 파금의 《수상록》같은 작품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바로 진실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논픽션에 속하는 수필이 이러할 할 뿐만 아니라 허구에 의한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자신의 정감을 드러내는 표현적인 장르인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문학의 부동한 장르에서의 진실성이 부동하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소설이나 희곡에서의 진실성은 주로 묘사된 객관적인 인간이나 사건이나 환경이 진실해야 한다면, 시에서는 표현된 주관적인 정감이 진실해야하며, 수필에서는 드러낸 작자의 내심세계가 진실해야 한다. 특히 수필에 있어서 진실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다.

총적으로 문학은 거짓말이나 무병신음이나 잘난 척 하는 허장성세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 진실은 곧 문학의 생명이다.

문학작품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자면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면 무엇을 말해야 한다. 자기의 마음속에는 없었던 말, 또 자기 능력으로는 할 수도 없는 남의 말을 가져다가 제가 말한 것처럼 슬쩍 새로 포장하여 자기의 이름을 붙여서 창작품이라고 내놓는 것은 도둑놈의 도둑질이다. 속에는 개똥이 들어있는데 입으로는 비단 같은 말을 토해낸다면 그것은 잘난 척 하는 허장성세이고 고상한 것 척 하는 위선이다. 마음속에 아무런 상처도 없고 고민도 없으면서 아프다고, 괴롭다고 짹짹거리면 그것은 무병신음이다.

작가들이 진실한 말을 하자면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동심을 가져야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황제의 새 옷》에서 어른들은 모두 《임금님의 새 옷이 화려하다》고 칭찬했지만 유독 아이만이 《임금님이 벌거벗었어요!》라고 진실한 말을 할 수 있은 것은 바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순진무구한 동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이 아이로부터 어른이 되여 가는 과정은 부단히 각양각색의 거짓말을 하는 것을 배우고 각양각색의 허위의 옷으로 자신을 꾸미는 위장술을 배워가는 과정으로서 어른들의 사회는 거짓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 허위의 옷을 더 많이 마련한 사람이 더 잘 살아가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림표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큰일을 못 한다》고 한 말은 어쩌면 어른들이 사는 우리 사회의 정곡(正鵠)을 찌른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백설 같이 순결한 동심이 나날이 세속의 거짓의 먼지
와 위선의 오물이 묻어서 추레한 어른의 마음으로 변질돼 가는 오염(汚染)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밝음에서 어두움, 즉 무명(無明)의 상태에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은 흔히 마음에 세속의 리해득실을 따지는 리기주의나 눈치보기주의 또는 기성 륜리나 도덕적 선입견의 때가 껴서 아이들처럼 진실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진정한 문학인으로 되는 과정은 어린이로부터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반대로 어른의 마음으로부터 어린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명나라말기의 리탁오(李卓吾)의 《동심설(童心說)》이나 영국의 랑만파 시인 워즈워스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였다. 리탁오의 말처럼 동심(童心)은 진심(眞心)이다. 동심을 잃으면 진심을 잃게 되고, 진심을 잃으면 진실한 인간이 사라지게 된다. 이 세상의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들 중에서 동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조선 중세기의 암흑 속에서도 마음속의 할 말을 다하고 할 노릇을 다하고 간 시대의 선각자 허균은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낸 것이요, 륜리의 분별은 서인(聖人)의 가르침이니,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낸 본성은 감히 어길 수 없다》고 했다. 허균이 말한 《하늘이 낸 본성》이란 바로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정이며 욕망이다. 이는 리탁오가 말한 《동심》이나 선종에서 말하는 《평상심(平常心)》과 그 뜻이 서로 통한다.

《심우도(尋牛圖)》나 고승들의 어록들을 보면 선종(禪宗)에서는 불도(佛道) 수행에서의 마지막의 진리를 깨달은 단계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불화(佛畵)나 법어(法語)로 표현하고 있다. 설익은 수행을 하면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다》라고 말하게 되는데, 그 단계를 뛰여 넘게 되면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로 돌아오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개인의 리해득실을 따지거나 남의 눈치를 의식하거나 혹은 관념의 장난에 빠져서《벌거벗은 임금은 옷을 입었다》는 어른의 거짓말로 되였다가, 다시금 《벌거벗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아이의 《동심(童心)》이나 《평상심(平常心)》 또는《하늘이 낸 본성》에로 돌아온다는 얘기를 형상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문학의 최고경지가 진실에 있고 문학의 생명이 진실성에 있는 이상 우리 문학인들이 이 문학의 최고경지에 오르는 과정은 부단히 마음속에서 거짓을 추방하고 진실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오로지 자기 마음속의 진실을 가리고 있는 거짓의 옷들을 하나둘씩 다 벗어던져야 홀가분한 몸으로 문학의 상상봉을 향해 톺아오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한 마음은 바로 동심(童心)이며 평상심(平常心)이다. 동심이나 평상심은 그 어떤 거창한 리념이나 리상이나 현란한 기교나 잔재주가 아니라 림제(臨濟) 선사가 말했듯이 《옷입고 밥 먹고 똥 싸고 사랑하는 것》이다. 추우면 옷 입겠다고 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싶다고 말하고, 뒤가 마려우면 똥 싸고 싶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검으면 검다고 말하고, 희면 희다고 말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섹스하고 싶으면 섹스하고 싶다고 하는 말하는 것이 바로 동심이요 평상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영원히 어린이의 동심과 어른의 위선과의 싸움이다. 잘난 척,유식한 척, 깨끗한 척, 우아한 척, 고상한 척......하는 어른들의 무수한 《척병》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동심이 이겨야만 문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는 림제 선사의 말은 우리가 진솔한 본성에 눈떠서 주관과 객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정시하고 재현하고 표현할 때 비로소 선종에서 말하는 이른바 불도(佛道)가 열린다는 뜻이다. 문학을 놓고 말한다면 우리가 진실하게 주관과 객관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거짓 없이 진실하게 재현하거나 표현할 때 비로소 문학의 참된 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앞으로 나는 나날이 내 마음속에서 어른의 위선을 몰아내고 어린이의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평상심(平常心)을 가지고 진실한 문학을 하고자 한다.

나의 문학관을 한마디로 귀납한다면 바로 동심(童心)에로의 회귀이다. 비록 엄마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이라는 이 거짓의 세계, 허위의 세계일망정 거짓에 오염된 이 어른의 마음을 버리고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동심으로 돌아가서 문학을 하고 싶다.

2006년 병술년 정월 초이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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