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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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만난 한인들, 그리고 '라인강'
2009년 11월 04일 12시 54분  조회:5600  추천:153  작성자: 김범송

1. 독일 뤼데스하임에서의 2박3일 심포지엄(강연회)

금년 3월 필자는 6.15 유럽공동위(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박소은 위원장으로부터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해외동포와 민족통일>이란 심포지엄의 주제발표자로 초청을 받았다. 6.15 유럽공동위는 민주와 통일운동 단체들과 관련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2005년에 베를린에서 결성된 한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목적하는 통일운동연대조직으로, 초대위원장에 박소은 여사가 선임되었다. 금번 심포지엄은 6.15공동성언 9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6.15 유럽공동위의 주최 하에, 초청 연사(演士) 위주의 강연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금번 독일 방문일정 중, 라인강변의 유명한 포도주 산지 뤼데스하임에서의 2박3일 강연회 행사가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5월 31일 오후 2시 “중국동포와 한(조선)반도와의 상생관계”의 내용으로 필자가 강연했는데, 오전 중 일정으로 12km의 라인강변 도보 산책과 유적지 답사로 모두들 피곤해할 것이라고 은근히 걱정했지만 발표와 토론 중에 졸고 있는 이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금번 독일 강연회 특징은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 전원이 발표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고, 포도주 시음과 도보 산책 및 와인파티를 곁들여서 여유롭게 진행된 것이다. 이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내용의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한국의 심포지엄과는 대조적이었다.

2. 독일의 한인 1세대, 광부와 간호사

현재 독일에는 1960~70년대 독일(주로 서독)로 이주한 광부와 간호사 주축의 1세대를 중심으로, 약 5만명의 한인(수백명 중국동포를 포함)들이 생활하고 있다. 1963년에서 1977년까지 약 2만명의 한국인들이 독일에 노동이민자로 진출했다. 하지만 당초에는 정책적인 모집대상국이 아니었던 한국인의 이주는 거의 전적으로 광부와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제한되었고,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엄격한 순환시스템 하에서 그들은 이주민의 설음을 겪어야 했다. 3년 동안 고정된 일자리에서만 일해야 했던 그들은 초기에는 복지혜택(연금, 자녀수당, 별거가족수당, 노동보호조치 등)을 받지 못했으며, 비유럽 출신의 ‘소수인’으로서 주류사회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기시와 일상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존경스러운 것은 광부와 간호사 중심의 한인 1세대 이주민들은 단합과 집단적·공개적 정치투쟁을 통해 합법적인 체류(영주)권을 얻어냈고, 근면한 노력과 인내로 결국 독일인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각종 서명운동과 다양한 한국인 공동체의 결속 및 독일사회에 대한 열린 관심 등은 이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현재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한인 1세대들은 여전히 한민족의 생활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고 있지만, 이들 1세대와 이미 독일 주류문화에 적응된 2세대들 사이에는 문화적 갈등과 삶의 가치관 및 조국관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해외동포로서 그들 역시 정체성의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3. 엥겔스 생가와 故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5월 29일, 독일에서의 첫 방문지가 바로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 부퍼탈에 있는 엥겔스(Engels Friedrich, 1820~1895) 생가(生家) 박물관이었다. 엥겔스가 태어난 생가에는 현재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세 번째 생가가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국내외의 방문객들에게 개방되고 있었다.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철학자·정치가였던 엥겔스는 칼 맑스를 협력해 과학적 사회주의 및 사적 유물론을 창시한 위인이며, 1848년 2월 맑스와 공동으로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한편 그가 친구인 맑스의 정신적·물질적 활동을 경제적으로 후원한 ‘푸른 잎’의 귀감으로서, 더욱 후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부퍼탈의 한식점에서 맛있는 ‘아시아특색’의 정심식사를 마치고, 필자와 김원희 선생은 서독의 수도였던 본(BOON)의 한국대사관(분관)에 임시로 설치된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았다. 우리는 당지 영사관 직원의 배동 하에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빌었으며, 생전에 ‘서민대통령’으로서 대북 포용정책을 펼치고 재한중국동포들을 몸소 찾아주셨던 고인의 은덕을 기렸다. 조문행사가 끝난 후 필자는 경건한 심정으로 대사관 (분향소)방문록에 첫 외국인 조문객으로 이름을 남겼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 집정시기 참여정부가 해외동포들에게 베풀어준 (방문취업제 등)재외동포정책의 소중함을 재삼 실감했다.

4. 독일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가족주의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삶의 가치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개인주의란 ‘개체로서의 개인이 사회보다 선행하여 실재’하며, ‘인생의 가치와 권리 측면에서 개인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정의가 가장 일반적이다. 개인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유럽에서 태어난 사상 및 삶의 가치관이며, 개인과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유럽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현재 유럽사회에서 삶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대적 개인주의는 유럽의 종교와 학문적 유산, 문화·전통적 인소들이 융합되어 오랜 세월의 시련과 투쟁으로 이뤄진 것이다. 독일사회에 고착된 개인주의는 개인의 존재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반면 가족 관념은 담백하며, 이는 한국사회에서 신성시되는 가족주의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삶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한 가족주의는 그 자체의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 반면, 사회적 문제로서의 가족이기주의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충(忠)과 효(孝)를 기반으로 하는 동양의 유교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외세의 침략과 문화적 압력 속에서도 고유의 정체성과 생활문화를 지켜왔고, 가족을 토대로 하는 민족공동체를 지키는데 기여했다. (독일)개인주의와 (한국)가족주의는 두 나라의 국민성과 근본적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차이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전의 양면’처럼 각기 장단점을 갖고 있다. 독일인들은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남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생활하는 반면, 외로움과 ‘정’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5. 온고지신, 유대인 강제수용소

6월 2일, 필자는 뮨헨 근처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견학하면서 히틀러와 나치의 극악무도한 파쇼적 만행을 실감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나치독일의 강제수용소로서 최초로 개설된 곳이며, 뮨헨 북서쪽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다하우의 군수품 공장 대지에 세워졌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함께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한 나치독일의 강제수용소 상징이다. 다하우 수용소는 생체실험이 실행되었던 강제수용소로 유명하며, 수감된 죄수들을 의학실험에 사용하기 위해 최초로 실험실을 세운 곳이다. 현재 다하우 수용소에는 각종 생체실험이 실행된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전시관과 학살 장면을 찍은 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이 있으며, 가스실과 시체 소각로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편 같은 전패국인 일본은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참회와 나치의 유대인 학살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 및 역사적 과오에 대한 회개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해방 60주년 기념식이 베를린에서 거행된 적 있었다. 당시 강제수용소 생존자들 앞에서 나치독일의 과거사에 대해 ‘치욕’을 느낀다고 말한 슈뢰더 전 독일총리의 연설은 독일정부의 진솔한 참회와 약속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최근까지 강행한 일본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神社) 참배와 더불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현재 강제수용소는 독일인들이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는 온고지신의 ‘추모단지’로, 후세들의 교육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6. 에필로그

독일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푸르다’이며,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독일의 대지는 온통 ‘푸른 색’이었고 녹화가 잘 되었다는 점이다. 푸르른 하늘과 길가의 울창한 숲 및 도시에 우거진 푸른 나무들을 보면서 독일의 발달한 환경녹화산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독일의 환경녹화 중 99%는 인공림으로, “전 독일인들이 나무만 베어서 팔아먹어도 3년은 산다”는 속설의 의미를 납득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 속에 자리 잡은 2~3층의 양옥들과 말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자연목장 및 도농(都農)차별이 사라진 전원풍경을 보면서 필자는 1970년대 한국의 유명가수 남진이 부른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꿈의 현실화를 실감했다.

한편 법과 사회제도 및 일상규칙 준수를 최우선시하는 독일인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에서 선진국의 사회문화를 절감했으며, 독일 전역에서 수많은 장수노인들을 보면서 이미 초고령사회에 근접한 독일사회에서 고령화 대책 마련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음을 체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에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감하면서 배우는 지식은 그래서 더욱 값지고 수확이 큰 것이다. 금번 7박8일의 독일강연·관광을 통해 해외동포인 독일동포들의 현황과 희망, 통일독일의 정치·경제적인 현황과 역사문화 및 인정세태를 다소나마 이해하였다.

* 본문은 한국 <호서문학> 2009년도 겨울호에 발표·예정된 것으로, 2009년 7월 <흑룡강신문> 주간특집 ‘월드코리언’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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