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나의 문학관과 창작의 길
아들은 금년 일본류학을 하고 돌아와 이제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공부도 공부같이 하였다.대학을 나온후 다시 3년 연구생공부를 했고 그것도 부족해 또 일본땅에 가서 일년반 일본어연수를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세 흘쩍 서른을 넘어서게 되였다. 하지만 공부는 많이 했어도 이제 첫 직장생활에 발을 내디디다 보니 경제적으로 푼푼하지 못하다. 어떤 가정같이 원래부터 생활이 좋거나 아니면 출국하여 뭉치돈을 벌어온 집 같으면 아들이 직장에 근무하면서 로임이 많지 않아도 크게 걱정할것이 없어 집도 사주고 장가도 들여주고 하겠지만 우린 너무 가난하다. 혼자의 로임과 자국내 품팔이로 세자식 공부시키는데 가정의 모든 재부를 다 쏟아붓다나니 이젠 맥이 빠질대로 빠져 남같이 집사주고 장가를 들려줄 엄두도 못낸다. 게다가 나는 두 차레나 중병으로 앓으면서 막대한 거금을 소비하였다. 평소 하도 근검하게 살았으니 말이지 아니면 혼자의 박봉으로 살아가기가 여간만 힘에 겨웁지 않았을것이다. 그래서 늘 잠결에도 공부는 시켜놨는데 장차 어떻게 부모로서의 마지막 의무를 다 하겠는가? 늘 깊은 고민거리로 떠오른다. 장가는 물론 집이며 차까지 사주는 부모와 비기면 너무 부족하여 부모로써 할일을 못다한듯 죄송스럽고 부끄럽다. 물론 아글타글 공부를 시킨 목적이 부모가 모든것을 대신하지 않고 인생을 제능력으로 살게 하려 한것이여서 이제 자기인생은 자기가 사는것이 마땅하지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사는 날까지 하나라도 더 보태주지 못해 안타까운데 이제 아들은 직장에서 근무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 그새 모은 돈을 몽땅 부모의 설돈으로 보내겠단다. 근 20년을 공부를 시키면서 부모가 돈을 자식에게 부쳐만 주었지 받아보지 못힌 나로서는 한번쯤 눈감고 받아서 써보고도 싶지만 어찌 그 돈을 받으랴! 감사에 눈물날뿐.
지금 생각하면 우리세대가 아무리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해도 지금의 이 세대들만큼 살아가기가 각박했던것 같지 않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만큼 로임이 적어서 생활고에는 시달렸지만 내가 아들의 나이였던 그 세월에는 누구라없이 다 가난하지 않았던가! 대신 주어진 단위에서 사업만 잘하면 많던 적든 나라에서 생활을 책임져주기에 자생을 위한 간고분투같은 모지름은 지금 혼자 나가뛰는 자식들처럼 그렇게 버겁지 않았던것 같다. 세월이 좋아졌지만 오히려 지금의 아이들이 더 고생스럽다. 그것은 큰 뜻을 품고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가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길에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라는것을 지금 세대들의 간고한 창업담에서 알고있기 때문이다. 비록 로임지수는 높다해도 대신 소비가 얼마나 높은가! 그래도 그런 어려움속에서 키워준 은헤에 보답하려고 많지 않은 봉급이나마 부모들이 설을 잘 쇠게 하려고 집으로 부치겠다니 부모는 그 성의만으로도 즐겁게 설을 쇠고도 남음이 있겠다. 기실 한해에 한번뿐인 설이라하지만 지금은 여늬날도 설에 못지 않게 잘먹고 잘사는 세월이니. 너무 요라스럽게 보낼것 없다.
대신 나는 그 돈을 받아 한푼도 소비하지 않고 고스란히 예금통장에 넣어두었다가 이다음 부모가 아껴모았던 돈까지를 합쳐 아들이 장가를 들거나 집을 사려고 할때 적은 돈이나마 보태주겠다. 하지만 아들의 정성을 생각하고 아들이 섭섭해하지 않게 설은 소박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즐겁고 여유있게 맞으면서 설날 문안전화가 오거든 "네가 부쳐보낸 돈으로 난생 처음 설명절을 즐겁고 의미있게 쇠게되였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고 즐거운 거짓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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