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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고개 숙인 벼이삭들을 보면서
2019년 07월 16일 11시 06분  조회:78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을 보면서
 

강효삼

 

북방대지, 어디라 없이 풍년이 들었다. 만풍년이다. 길차게 들어선 옥수수들도 그렇지만 넓은 벌 어디라 없이 꽉 들어찬 황금벼이삭들이 더 장관이다. 고개를 폭폭 숙인 벼이삭들이 이랑과 이랑사이에 꽉 어우러져 그 누구의 말처럼 그우에 닭알을 던져도 가라앉지 않고 둥실 떠있을것만 같다. 만약 예전처럼 대다수 우리 민족 농군들이 그냥 대면적의 벼농사에 집착했다면 저 무르익을대로 익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흐뭇했을가. 너무 좋아 논머리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한바탕 추었을것이다. 

천하지대본이 오로지 농사이던 그 세월,  얼음 덮인 겨울 눈판에 거름을 내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뙤약볕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기까지 농사군이 흙과 싸름하여 얻는 결과의 모든것이 바로 저 고개 숙인 벼이삭안에 고스란히 깃들어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농군들의 최대의 소망이요 념원이요 긍지요 재부는 무엇무엇 해도 벼이삭들이 알알이 여물어 고개를 숙이는것이였다.

흘러온 력사를 돌이켜보면 벼농사는 이 땅에 정착한 우리 민족의 주업이였고 타민족이 가질수 없는 우세였으며 우리 삶의 근간이였고 삶의 보증이였다. 만일 우리 민족이 북방땅에서 다른 민족이 할수 없는 벼농사를 할줄 아는 능력과 지혜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우리에게 그처럼 넓고 기름진 들판이 차례질수 있었을가? 기후조건이 랭한 북방으로 말할 때 살을 에이는 찬물에 들어서 맨발로 벼농사를 한다는것은 웬만한 의지와 결심으론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 입쌀을 일명 뼈쌀이라고 했고 우리 민족의 위상이 더 높아진것인가. 

이토록 어렵게 생산한 입쌀이여서 그 용도 또한 아주 만만치 않았다. 쌀알이 옥수수나 수수보다 작지만 한족들은 입쌀을 “대미大米”라 불렀고 그래서 쌀이 귀하던 때 입쌀은 만능통행증이나 다름없었다. 입쌀을 가지고 성사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싶이 되여 조선족들이 매우 큰 각광을 받았다. 때문에 식량사정이 각박하던 세월에도 우리 조선족 농민들은 그래도 다른 민족들보다 좀은 배부른 세상을 누릴수 있지 않았을가. 그리고 입쌀때문에 전반 조선족들이 혜택을 입어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인이라 해도 그가 조선족이면 국가로부터 우대하여 한족들보다 다문 몇근의 입쌀이라도 더 배급을 받을수 있었다. 그보다 벼는 밭곡식보다 산량이 높은데다 우리 조선족이 국가에 헌신하는 량식수량 또한 어마어마했다. 내가 몸 담고 살던 작은 마을만 해도 바치는 공량公粮이 다른 열개 한족마을에서 바치는 수량보다 더 많았는데 어찌 생각하면 우리 민족이 자기들만의 집단마을을 결성하고 민족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우리 말과 글은 물론 교육과 문화, 체육도 우리 나름으로 발전시켜 오랜 세월 자신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확보할수 있은것이 저 무르익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의 공로때문은 아닐가싶다. 그래서 늘 무르익어 고개 숙인 벼이삭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부단히 변화하는것이 시대인만큼 지금은 달라져도 너무나 많이 달라진것 같다.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해마다 대풍이 들어 고개 숙인 벼이삭을 보는것이 너무 례사로운 풍경이 된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벼농사에선 우리보다 뒤떨어졌다던 타민족들이 우리 민족을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는것이다. 청출어람이라고 지금 타민족들이 벼농사를 우리 민족 내놔라 하고 더 잘 짓는다. 게다가 인구수에 따라 토지를 배분하는 규정에 따라 그들이 소유한 토지자원이 풍부하다보니 량적으로 질적으로 우리를 앞서가게 되여 우리 민족 벼농사는 부득불 우세로부터 렬세에 처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아직도 질 좋은 입쌀을 생산하는것으로 의연 벼농사에서는 아직 조선족이란 이미지를 지켜가는이들이 있다. 허지만 보편적으로 이 광활한 북방대지에서 이제 열심히 농사짓는 대부분 농군들은 타민족들임을 부정할수 없다. 그들에게 벼농사가 보편화되면서 넓은 벌은 그들의 몫이 되였다. 벌뿐이 아니다. 필자가 몸담고 사는 고장만 돌아보아도 그들이 어찌나 벼농사에 정성인지 무릇 산골짜기, 언덕밭, 황무지 어디라 할것 없이 벼를 심을만한 곳은 죄다 논이 되여 가을이면 어디 가도 누런 황금벼들을 어렵잖게 볼수 있다. 바꾸어 생각하면 만일 우리 민족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벼농사를 계속 짓는다 해도 꼭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없다. 그러니 어찌 그냥 뒤떨어진것을 고집하고있겠는가. 그들을 초월한 강경지계가 없는 한 무언가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 농사일을 접고 로무에 나선 주요원인이다. 그냥 뒤처진 그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일찌감치 뛰쳐나간것이 나는 아주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해서 나는 가끔 이런 추측을 한다. 가령 우리 민족들이 농촌에서 뛰쳐나가 한국로무요 도시산업화요 하는 새로운 세계에 뛰여들지 않고 아직도 그냥 좁은 땅뙤기에 얽매여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물론 농촌이 지금처럼 로인들만 남은 한산한 처지로 변하지는 않을것이고 학생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는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을것이며 민족공동체도 오늘처럼 이렇게 심각하게 흔들리지 않았을것이다. 반면 너나없이 모두가 가난했을것이다. 허면 못살면서도 그냥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눌러앉아있는것이 과연 좋은것일가? 아니면 잠시 공동체에 충격이 있더라도 우선은 잘살고 보는것이 바람직한 처사일가? 저 무르익은 벼이삭들을 볼적마다 늘 사고해보게 된다. 

이제 벼농사의 선구자요 정초자요 추동자요 하여 월계관을 잔뜩 쓰고 우쭐하던 세월은 지나간 과거가 된것 같다. 그리고 농군들이 한데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오붓이 살아가던 전원목가적 삶도 끝이 난것 같다. 우리는 이제 우리 선대들로서는 체험할수 없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받고있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촌마을이 한산해지고 공동체가 흔들리는것을 두고 너무 슬퍼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다 하여 이제 저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우리의 삶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무심해서도 안될것 같다. 아직 수많은 농군들이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타민족에게 임대하여 해마다 거기서부터 나오는 수입이 적지 않고 더구나 날따라 그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토지를 당당하게 우리 이름으로 소유하고있기때문에 저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아직 색바래지지 않았다.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개척과 정착의 력사는 벼의 력사, 쌀의 력사였다. 지난날 무르익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은 이 땅에서 우리의 정착을 도왔고 오늘은 우리가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가도록 떠밀어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그러니 정면 반면으로 우리 삶의 의지가 되여주고있는 저 황금의 벼이삭들 은공을 잊지 말자. 그것은 또한 이 땅에 벼농사의 기틀을 앉힌 우리 조상들의 은공을 기억하는것이니 나는 무르익어 고개 숙인 저 벼이삭들에 감사와 경의를 드리고싶다. 

출처:<장백산>2017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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