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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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한녀성의 삶을 들어본다
2022년 05월 01일 20시 38분  조회:1442  추천:0  작성자: 강순화

                       
                        한 남한녀성의 삶을 들어본다

 

    민족 상찬의 대 비극 - 6.25전쟁의 포성이 비참히 울부짖던 1950년대초, 남한땅 산간마을은 전쟁터로 되였고 가족들은 행방불명 갈라져 버려 부모들이 애들을 잃고 애들은 버려지는 일들이 기수부지였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절때 그게 아니였다. 끈질긴 모성의 힘으로 악착스레 자식을 붙잡고 있었기에 무남독녀 외딸인 나는 다행히 그 험악한 세상에서 태여 났어도 넓고 따뜻한 엄마품에 안겨 겁없이 자랐고, 커가며 글을 배워 무언가는 해야 할 몽롱한 한가닥 희망을 부여잡고 인생길을 향해 쉼없이 달릴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워낙 금슬이 좋으시기를 그 시대에서는 보기드믄 분들이였는데 외동아들 하나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청빈하고 근신하게 살아 오셨다.
외가는 가정형편이 넉넉한 편이여서 우리 엄마는 어려서부터 진짜 <부자집> 귀동녀로 고이고이 자랐단다. 그런데 운명이란 웬 작간 이였는지 엄마는 그만 그 청솔한 가정의 독자아들이였던 아버지한테 시집가고 말았다.

    그때는 어린 녀자애들이 마구잡이로 일제의 정신대에 끌려가는 동란시기라 그 구렁청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엄마는 열일곱 나이에 일찍 출가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그 운명의 기구함을... ...  엄마는 결국 한평생 밤낮으로 아빠를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허구한 <과부>인생을 살고 만 것이였다.

    아버지는 워낙 책을 너무 많이 읽었던 탓인지? 그 무슨 리론이요, 예술이요 하면서 온 세상을 <김삿갓>처럼 방황하며 집에 오지 않는 것이 수년이 아닌 평생이 되고만 것이다.  엄마는 기약없이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위하여 집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고 생계를 위해 외동딸인 나를 이모집에 맡껴 키우며 힘들고 궂은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가면서 고난한 삶을 이어갔다.

    나에게 엄마는 세상에 한분밖에 없는 목숨같이 귀하고 하늘같이 귀중한 존재였다. 어데 그뿐인가? 엄마 또한 얼마나 예쁜 미인이였던가. 외지에서 공부하다 방학에 집에 돌아오면 나는 엄마를 위해서 그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 어린나이에도 밤을 새며 엄마에게 부채질을 해 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엄마는 행복해 하지 않았다. 딸의 정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남편의 사랑과는 비교도 안되는 모양이다.

    36세의 꽃나이에 수년을 독수공방하며 어찌 고독한 인생에 만족 할수 있겠는가? 나는 드디여 엄마를 시집보내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가 중등학교에 금방 입학한 때였다. 재삼 권고하기를 1년이 넘어 엄마는 그만 아이 넷이나 되는 한 회사원에게 재가하였다.

    갑자기 늘어 난 다섯 식구, 그것도 아무런 인연도 혈연도 없는 식구들과 큰언니, 큰누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이였던가?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나는 벌써 혈육이 아닌 남들을 섬기며 사는 법,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헌신하며 사는 법을 스스로 익혀 간 듯 하였다.

    재혼한 엄마는 새 식구들을 거두기에 정신이 없었고 나는 나름대로 독방을 차지하고 자유로이 자기 앞날을 개척해 나갔다. 동서양 고금중외의 서적들을 미친듯이 탐독하였고 따라서 글쓰기에도 재주가 늘어 항상 최고로 인정 받았다.

    허나 모든 학문이 인간학인 듯이 그 글들은 기쁨 없는 인생의 방황과 갈등만이 뒤엉켜 있어 남에게는 모종의 향수로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고통의 추억과 그 현실 자체였다. 세인들의 칭찬은 의미가 없어 보였고 사랑이 없는 글들은 아픈 인생의 구슬픈 하소연 뿐 이였다.

    살림에 타수한 엄마는 내가 대학입시 원서를 넣는 날 교통비도 제때에 갖춰 주지 않아 걸어서 늦게 도착하여 결국은 원하지 않는 2차 대학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범 없는 골안에 슬기가 왕이라고 그 대학에서 나는 인기 인물이 되였고 교정의 한떨기 꽃송이로 불렸다. 국문학에 재능을 가졌던지라 신문과 방송으로 소문을 냈고 나날이 자신만의 화려한 대학시절을 장식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절친한 친구가 <넌 신학을 해야 겠다>라고 권고했고 국문과 지도교수도 비록 아쉽기는 하지만 <너라면 신학을 해도 될 것 같다>라고 추천서를 써 주시여 드디여 나는 신학대학에로 다시 전공을 옮겼다.
그때는 이미 대학 3학년 시절이였다. 신학을 배워보니 진짜 인간을 넘어선 우주적인 학문이였다. 신학을 배우면서 원래의 재능을 리용하여 계속 <신문창간>도 주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라 우리 진보적 성향의 학생들은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긴급조치 9호>에 걸려들어 서대문감옥에까지 붙잡혀 들어가서 <죄수>로 되었었다. 때는 1975년, 진보적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압제당하는 테러시기였다.       
     
    감옥에서 보노라니 이러저러한 구실로 잡혀 들어 온 어린 학생들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 온 새끼양들 마냥 불쌍하게 여겨졌고 어서 빨리 나가서 다시 그들을 구해 주기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최하층 백성들을 동정하고 세상을 넘나들며 우리민족에게 사랑과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가르치는 인문학의 기초가 되었지 않는가 생각된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나는 백두산 천지에서 힘차게 흘러내는 폭포수와 더불어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중국의 조선족 형제자매들과 어께곁고 배우고 배워주며 연변땅을 사랑하는 마음 한가슴 가득 안고 멀리멀리 푸르른 희망의 바다를 향해 쉼없이 달리고 있다.

                                   
                                         (이진숙 구술, 강순화 정리) 연길민속촌 집단상담에서

                                            ※ (이진숙: 1997부터 20 여년간 중한 합작으로 운영 된
                                                  연변대학민족문화교육원에서   한국측 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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