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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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기 로인들에게 새 삶을 마련해주는 사람
2023년 05월 31일 16시 33분  조회:802  추천:0  작성자: 강순화
                         황혼기 로인들에게
                    새 삶을 마련해주는 사람

        ---- 연길시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 김영자원장 이야기

                                                              글 / 강순화

     일찍 2002년 9월, 연변은 물론 길림성에서도 처음으로 사재를 털어 중로년활동중심을 친히 창립하고 20여년간 혼신의 정력을 다 몰붓는 김영자씨, 이순을 넘어 고래희에 톱아 오르는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정열을 자랑하며 찬란한 앞길만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를 두고 모두들 황혼에 붉게 타오르는 생명의 노을이라고 한다.

                                           비운의 청춘시절

     지난세기 60년대, 온 나라에 들씌운 정치동란의 대 재난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반혁명으로, 특무로 억울하게 몰리여 박해받고 투쟁 맞고 로동개조를 하던 그 시대적 비극을 그 누군들 잊을 수 있으랴! 김영자씨의 가정도 례외가 아니였다. 

     연길시방산관리국에서 사업하던 부친은 일본말을 안다는 리유 하나 때문에《특무》로 몰리여 모진 구타를 받으며 투쟁받다가 얼마후에는 농장에 쫓기워 갔다는데 거기에서 또 광란하는 반란파들게 심한 구타를 받아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아무런 치료도 받 을 수 없어 억울한 루명을 쓴채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1959년, 길림성 조선족씨름대회에서 1등을 하여 주덕해주장의 접견까지 받은적이 있는 소나무같이 억세고 튼튼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비참히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녀한테 덮쳐진 청천병력이였다. 화는 쌍으로 온다고 얼마 후에는 또 억울한 루명을 쓰고 피신해 다니던 하나밖에 없는 오빠마저도 교통사고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때 안도의 농장에서 일하던 영자씨는 갑작스레 날아든 부친과 오빠의 비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때 오빠는 젊디젊은 32살이였으니 말이다.

     23살 꽃나이 처녀였던 영자씨는 잇달은 친인의 죽음으로 철저히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마음씨가 무던하여 주위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던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신것만 해도 원통한데 생떼같은 오빠마저 죽다니…그녀는 무심한 하늘을 한없이 저주하고 밤낮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후부터 극심한 신경쇠약증을 앓게 된 그녀는 수많은 불면의 밤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복수가 아닌 사랑으로

    《진짜 너무도 원통했어요. 어쩌면 그렇게 마음씨 곱던 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사실 전 아버지를《일본특무》로 몰고 투쟁한 사람들이누군지 알고 있어요. 당시엔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했었지만 결국은 용서하기로 했어요. 온 나라가 미쳐버린 그 동란의 년대였으니 말이죠.

     저는 복수대신 사랑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내 힘이 자라는 대로 아픔과 불행을 겪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준다면 그것이 바로 원통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오빠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이고 마지막 배려라고 느꼈거든요 ......》

     그 몸서리나던 아픔의 기억들을 그냥 그 세월에 묻어 버리고 오직 오늘의 삶에 더 큰 보람을 창조하려는 영자씨의 담담하면서도 강인한 말이었다.

     무지막지하던 동란의 년대는 드디여 결속되고 새로운 정책이 시달되면서 부친과 오빠의 억울한 루명도 모두 벗을 수 있게 되여 이제는 《반혁명》의 딸로 몰리던 그 굴욕적이고 한이 맺힌 지난날을 깨끗이 청산하고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진정 찾고 싶었다.

     기회는 항상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거세찬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원래 출근하던 연길시문구공장을 사직한 김영자씨는 1981년 제일 첫패로 연길시 서시장에서 복장판매를 시작했다.

   《장사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신용이였어요. 제가 신용을 잘 지키자 많은 복장도매업주들이 앞다투어 외상으로 물건을 주더군요. 그래서 장사는 날로 잘되고 그 규모도 커졌지요.》 하도 억척스레 일한 보람으로 처음에는 리자돈을 꾸어서 시작한 장사가 눈덩이 굴리듯 커지더니 나중에는 16개의 복장매장을 소유하게 되였다. 이제는 그녀도 어느덧《부자》행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불우하고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노라면 자꾸만 지난날 자기의 아픔이 돌이켜졌다. 《복수》대신《사랑》을 실천할 때가 온것 같았다.

                                         마음의 부자

     영자씨는 경제적으로도 부자이지만 마음은 더욱더 부자였다. 1986년에 《주덕해기념비》를 세울 때 사회적으로 모금운동을 하자 그녀는 선듯 천원이라는 그 당시 한 개인으로는 큰 돈인 의연금을 기부하였다. 주덕해동지를 흠모하고 존경하던 아버지와 오빠의 뜻을 기리는 마음에서 였다.

     그녀는 또 인재에 대한 투자야말로 으뜸가는 투자라고 인정하면서 학습성적이 우수하여 대학에 붙었지만 학비가 없어 가지 못하는 대학생을 여섯명이나 도와주었고 외국에 류학가려는 학생들에게 무리자로 돈을 대주어 그들이 이국땅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쟁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연변텔레비방송국에서 조직하는《사랑으로 가는 길》에 나오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아이들에게도 수차 적지않은 돈을 기부하였다.

     이밖에도 김영자씨는 집을 사서 집없는 사람들을 우선 들게 하고 장사밑천도 대주면서 그들이 하루속히 곤경에서 빠져나오게 하였고 의지가지 없는 로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고 해마다 《로인절》도 쇠여드렸다.

     1998년 8월15일 로인절에는 연길시로인들을 공인문화궁 1,2층에 모시고 공연을 감상하게 하였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천선복떡공장에서 나오는 떡을 각 로인독보조에 분배하였다. 그리고 70여명의 연원과 공작인원들을 식당에 안배하여 대접했으며 뻐스 한대를 내여 화룡에 있는 명승지--선경대까지 유람시켰다. 로인들은 이 특별한 명절대접에 너무도 감격해 마지 않았다.

     항상 베푸는 마음만을 가졌기에 그는 자기가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성씨도 이름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제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것은 그들한테서 보답을 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벌어드린 재부는 모두가 사회에서 온 것이니 응당 사회에 도로 돌려야지요.》사내대장부들도 가지기 힘든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씨, 역시 김영자씨는 아름다운 마음의 부자였다.

                        로인들의 활무대-천선복중로인활동중심

     일개 섬약한 녀인의 몸으로 큰 장사를 벌리다보니 워낙 건강하지 못하던 몸이 더욱 쇠약해지였다. 정작 자신이 아프고나자 환자들의 아픔을 더 절실하게 느낄수 있은 김영자씨 머리속에는 대담한 구상이 무르익어갔다.

     때는 2000년초였다. 건강이 얼마간 회복되자 그녀는 그간 무르익혔던 구상대로 서시장복장매점을 전부 처분하고 연길시 교외에 있는 소영향 민주촌에 3000평방메터의 땅을 사놓았다. 《장애인 재활원》을 꾸려 돈없고 가난한 환자들이 적은 돈으로도 만족한 치료효과를 볼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민주촌에는 이미 10여년 전 3층으로 된 아담한 장애인재활원 청사를 지어 놓았고《농장》도 꾸려 놓았다. 어써 빨리 더많은 로인들의 사회복지에 활용하고 싶어 하는 영자씨의 모습에서 그의 진한 인간애를 느낄수 있었다.

    《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은 그녀가 직접 잉태하고 키운 하나의 사랑의 분신이다. 많은 중로인들이 퇴직후 즐거운 만년을 보낼수 있는 진정한 활무대를 만들어 드리려고 마음먹은 그는 주밀한 계획과 오랜 준비사업을 거쳐 드디여 2002년 9월 9일 정식으로 사회에 성립을 공포하였다.

     면적이 800여평방메터되는 교실을 갖고있는 이 활동중심을 건립하면서 책걸상, 민족복장과 악기, 무용복, 컴프터 등 설비를 사는데만도 무려 30여만원의 거금이 들었다. 음악교실, 무용교실, 컴프터교실, 타악기교실, 태권도훈련장 등 다섯개의 반급을 설치하고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전업교사들을 초빙하여 학원들에게 강의를 하게 하였다.

     교원들의 강의비도 나오지 않는, 일년에 200원이라는 적은 학비로 로인들은 자신이 즐기는 교실의 과목을 배울 수 있으며 해마다 《3.8절》,《로인절》도 함께 기념하고 봄, 가을 들놀이와 같은 다채로운 과외활동에도 참가할 수 있다.

     그렇게 적은 경비로 어떻게 운영해 나가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우리 중로년활동중심은 경영성을 띠지 않는 공익성 봉사단체입니다. 저는 다만 로인들에게 즐거운 만년을 보내드리려는 마음에서 이 중심을 창설했습니다. 로인들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시면 저도 즐겁습니다.》김영자원장의 훈훈한 대답이다.

     이 활동중심을 운영하기 위해 그녀는 자기가 경영하는 떡공장에서 나오는 리윤을 해마다 평균 4-5만원씩이나 부어 넣으면서도 전혀 후회가 없다고 한다. 하여 학원들은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자기 돈을 내여 우리 로인들에게 이처럼 훌륭한 활무대를 마련해주는 사람은 만에 하나도 없다》면서 감복해 마지 않았다.

     또 이런 재미나는 에피소드도 있다. 2004년, 중앙텔레비죤방송국, 하남텔레비죤방송국 및 하북텔레비죤방송국에서 련합으로 민족대단결을 다룬 소수민족 제재의 20회 드라마《연분의 별하늘》을 연변에 와서 촬영하게 되었다.

     드라마극조는 연길시 고려호텔에서 조선족환갑잔치 장면을 찍었는데 그때 군중배우로 이 천선복활동중심에 출연제의가 들어왔다. 영자씨는 조선민족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로인들에게 화사한 민족복장을 입고 촬영현장에 오게 하였다.

     그런데 드라마제작진에서는 연극의 수요라면서 수수한 옷차림을 요구하자 영자씨는 즉시《우리 조선족들도 개혁개방으로 치부하여 복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무엇때문에 수수한 옷을 입어야 합니까? 우리 민족복장을 바꾸라면 우리는 찍지 않으렵니다.》라고 당차게 나섯다.

     결국 극조는 그녀의 주장을 동의하고 아름다운 민족복장을 입은 로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덕분에 학원들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영광도 누리고 또 하나의 만년의 자랑거리도 만들게 되였다.

     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을 꾸려오면서 그 무엇보다 영자씨가 긍지를 느끼는 일은 평균나이 60이 넘는 문예반 로인들이 전국적인 대회에 나가 수차나 금상과 은상 및 우수상들을 수상한 사실이다.

     2004년8월 중앙문화부예술봉사쎈터에서 주최하고 중앙음악학원의 협찬으로 열린 제1회성악기악무용경연에서 선보인《물동이 춤》은 영예롭게 금상을 수상하였는데 그해 12월25일과 26일에 련속 이틀간 중앙텔레비죤 문예채널에서 방송되였다. 우리 민족을 위하여 영예를 떨친 이들에게 영자씨는 거금을 내여 1800원짜리 정수기 한 대씩을 상으로 주었다.

     2005년 2월에는 수도에서 조직한《덕예쌍형(德艺双馨)》기념행사에 참가하여《칼춤》을 내놓았는데 또 영예롭게 은상을 받았다. 매차의 북경행은 몇만원씩의 경비부담을 안아야하지만 기차도 못타본《시골할머니》들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때면 영자씨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2005년,한국과 합작하여 촬영한 중국영화《어머니 장국집 (妈妈的酱汤馆)》 에서는 또 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 학원들을 초빙하여 어머니, 아버지 배역과 식당출납 등 군중배역을 맡아 하는 영광도 지니였다.

     2011년4월에는 한국《민족문화교육원》의 초청으로 천선복예술단 일행 13명이 한국에 진출하여 10여가지 중국조선족 춤과 타악기등 절목으로 서울-부산-목포-제주도 등지에서 20여차 공연함으로서 한국 지역사회와 많은 로인복지 단체들의 열렬한 환영과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2011년5월, 중앙텔레비방송국《행복으로 가는 길 (向幸福出发)》절목의 요청으로 천선복예술단 12명학원들이 또 수도북경의 무대에 오르게 되였다.

     2014년11월에는 연변텔레비방송국《음력설야회 프로》중 4분프로에 입선되여 장고, 북, 꽹과리 등 표연으로 고향 관중들을 감동시켰다.

     2018년4월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의 초청으로 조선 평양에 가서 선북, 장고춤 등 여러 가지 문예절목들을 연출하였고 돌아올때 선북 여섯개, 장고 여섯개 등 근 만여원 가치의 타악기를 그들에게 무상으로 증정하였EK 그들이 그 악기를 가지고 련습하여 다시 중국 연길 환락궁에 와서 연출할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지난해 자치주성립 70주년 기념행사에도 이 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에서는 여러가지 문예절목으로 경축행사에 이채를 돋구었다.

     그의 수년간의 꾸준한 노력은 당과 정부의 인정과 지지를 받았는데:
     2018년10월,연길시인민정부에서는 이 활동중심을 《중국조선족문화계승시범점》으로 임명해 주었고 2019년 12월, 연길시민정국에서는 전시 사회조직공작《선진단위》로 표창하였다.

      2019년1월과 2020년1월에는 련속 두차례 중앙텔레비 춘절련환만회에 초청되여 조선족무용과 장구춤, 타악기 등 다채로운 절목을 연출하여《우수조직상》,《우수지도상》,《매력풍채 연출상》등등 많은 영예를 받아 안으므로서 노래 잘하고 춤 잘추는 우리 조선족을 널리 홍보하였다.

     이 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을 꾸려오는 20여년동안 그녀는 기쁨도 많았지만 근심걱정으로 잠못 이루는 때가 더욱 많았다 한다. 그럴때면 언제나 안해를 리해해 주고 지지해 주며 민음직한 후원자로 큰 뒤심이 되어 준 든든한 남편이 있어서 오늘까지 드팀없이 밀고 나갈수 있었다고 하며 항상 남편한테 고맙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한다.

     그녀의 금후 타산이라면 계속 이《천선복중로년활동중심》을 잘 운영함과 동시에《장애인재활원》을 잘 꾸려 가난한 로인과 장애인들에게 만년에 시름없이 료양치료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고 이 재활원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심없는 헌신과 노력, 남한테 베풀며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참된 인생이고 복된 인생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김영자씨, 황혼녘에 더욱더 빛 뿌리며 생명의 진한 향기를 풍기는 그녀는 정녕 우리들 제2 인생의 산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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