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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성의 혼 자유의 옷
2006년 04월 17일 00시 00분  조회:6009  추천:73  작성자: 황유복
리성의 혼 자유의 옷
-남계(남호손) 수필을 읽고

서영빈(문학평론가, 수필가, 교수)


1
여러 문학쟝르가운데서 수필만큼 작품과 작가 자신이 밀착되여있는 경우도 드물다. 《문이재도(文以載道)》나 《문여기인(文如其人)》의 전통적인 문학관을 이야기한다면 소설이나 시 쪽에서는 지난 세기의 고물쯤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수필계에 있어서만은 그래도 관대한편이다. 수필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인생관과 미학관을 추출해내는 일은 시나 소설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작품과 작가 자신을 일치시키는 그 리유를 우리는 일차적으로 수필의 허구성 부재에서 찾을수 있다. 상상에 의한 허구를 철저히 배제하고 실제 사실만을 강요하는 수필의 이른바 진실요건이 일단 작품과 작가를 하나로 묶어놓는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수필의 담론은 통상적으로 일인칭이 될수밖에 없으며 수필에 등장하는 인물도 실재 인물일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수필의 자유로운 문체적특징 또한 작품과 작가의 관계를 한층 밀착시킨다. 수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시나 소설보다 훨씬 어려운 리유는 수필의 범위가 그만큼 넓기때문이다. 흔히 소설이나 시, 희곡이 아닌것은 다 수필이 된다. 오늘날 평론으로 통하는 많은 작품들도 따지고보면 수필인 경우가 많다. 이른바 《붓 가는대로 쓰는것이 수필》이라는 견해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누구나 쓸수 있는 글이 수필이요, 또한 그러기때문에 전문적으로 수필만 써서는 문인취급을 받지 못하는것이 수필이다. 수필인구의 량적팽창에도 불구하고 《수필가》란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는 오늘의 현실은 수필의 이러한 문체적특징의 반영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수필의 범위를 좁혀서 문예수필만이 수필인것처럼 인식시킴으로써 수필문단의 정통성과 권위성, 전문성을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과연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며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보인다. 이른바 《무형식의 형식》, 《자유로운 스타일》로서의 수필이 자칫 정형화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어느 쟝르를 막론하고 좋은 글과 별로 좋지 않은 글은 있기 마련이며 그것이 꼭 수필의 범위와 련관되여있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형식의 형식》은 작가 개개인의 재능과 《끼》를 충분히 발휘할수 있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이빙이나 체조에서 규정동작보다는 오히려 자유동작에서 선수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규정을 지키기보다는 자유를 누린다는것이 훨씬 창조적일뿐만아니라 또한 더욱 큰 시련이 될수도 있다. 진짜 춤군의 실력은 타인이 안무한 무용에서의 역할로가 아니라 오히려 막춤에서 드러나는것과 일맥상통한것이다. 완전히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이기에 그 실력차이가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쟝르가 수필이다. 따라서 수필의 이러한 문체적특징은 작가와 작품을 하나로 묶어놓는 다른 하나의 요인이 된다.

주로 《도라지》잡지를 통해 발표되는 남계의 수필은 작품과 작가의 이러한 합일의 경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례라고 하겠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것이지만 남계 수필은 한마디로 학자의 량심이자 스승의 가르침이며 선배의 충고이자 사나이의 고백이다. 그속에는 정직한 민족애가 있고 치렬한 학구적인 탐구가 있으며 따뜻한 고향의 숨결이 있고 감동적인 어제날의 추억이 있다. 저자 내면의 투철한 사상과 진솔한 감정, 희로애락의 력사가 수필속에 살아숨쉬는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수필이라는 자유의 옷을 떨쳐입은 리지의 혼으로 평가하고싶다.


2


력사학자로서 일찍 학계에서 탄탄한 립지를 구축한 남계로서는 어쩌면 이순(耳順)의 나이에 수필로서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그의 글 곳곳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문학적소양으로 보아서는 오늘날 그가 수필에서 이룩한 독보적인 위치가 우연이 아님을 가늠케 하지만 사회활동가, 민족사학가, 박사지도교수로서의 그의 행동반경을 감안할 때 만약 《도라지》잡지사의 간곡한 부탁이 없었다면 아마 그의 수필은 영영 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그의 수필은 출발이 특이하다. 문학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없기에 그의 수필은 첫시작부터 부담없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런 심리적부담이 없는 그의 이런 글쓰기 환경은 그에게 두개 층위의 자유를 부여하게 되는데 하나는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수 있다는점이고 다른 하나는 꼭 쓰고싶은 글이라야 쓴다는점이다. 물론 시간적인 제약 같은것은 있었겠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독자들의 평가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글쓰기에 림할수 있었을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그가 시나 소설이 아닌 수필을 선택하게 된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꼭 하고싶은 말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는 쟝르가 수필을 제외하고 또 어디 있는가?!

꼭 하고싶은 말을 자유자재로 하기 위해 수필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필을 관통하고있는 가장 큰 흐름은 엄숙성이라 할수 있다. 남계 수필의 엄숙성은 제재선택, 단어사용, 작품구성을 비롯한 형식적인 측면의 섬세함과 치밀함에서도 나타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수필에 림하는 저자의 자세에서 나타난다. 그의 수필은 수필을 위한 수필, 자아과시를 위한 수필, 문학유희로서의 수필이 아니라 《도라지》 칼럼명(남계인생수필)에서도 나타나듯이 인생을 위한 수필이다. 인생의 아름다움, 인생의 진지함, 인생의 행복, 인생의 진실을 찾아다니는 구도자의 자세가 글속에 그대로 드러나있는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의 글속에 죽음의 유혹을 찬미하고 죽음을 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자 그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진지함을 역설한다.(《오늘날의 삶에 충실해야》) 그는 자신의 경륜과 인생 선배들의 잠언으로 죽음은 결코 회피할 성격의것이 아니지만 삶의 목표가 될수는 없다는 교훈을 심어준다. 이처럼 그의 글은 멋을 위한 글이나 한때의 호기를 위한 글이 아니라 사명감과 리성에 바탕을 둔 엄숙한 글이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엄숙한 글쓰기가 쉽게 빠질수 있는 중세기적 도학자들의 설교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뛰여넘는다. 당위성에 립각한 보편적인 론리로서가 아니라 개성화에 바탕을 둔 정서철학으로서의 문학이 태여나게 되였던것이다. 남계수필의 근저에는 학자로서의 량식, 민족사학가로서의 력사의식이 자리잡고있지만 그것이 수필로서의 성공으로 이어지는데는 그의 박학다식, 탁 트인 국제감각, 몸에 배인 문학적소양이 크게 기여한것으로 보인다. 음악, 미술, 스포츠, 의학, 어학, 문학 제반에 걸친 그의 전문가적인 식견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객관성을 보장하였고 미국의 명문 하버드에서의 연구경력과 세계 각국에서의 학술경력은 그에게 국제적인 감각과 시야를 부여하였으며 중국고전에 대한 조예를 포함한 풍부한 문학적소양은 그에게 상징, 낯설게 하기, 대상화, 구체성을 아우른 탄탄한 문학적 기교를 제공하였다. 이러한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남계 수필은 우리 수필문단에서 좀처럼 발견할수 없었던 학자수필의 령역을 개척하게 되였던것이다. 남계 수필이 우리 수필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는 필자의 평가는 맹목적인 찬사의 언어가 아니라 그의 수필이 지니고있는 이러한 학자수필로서의 경지를 가리키는것이다. 엄숙한 리성의 혼과 자유로운 수필의 옷이 완벽하게 결합된 남계 수필에 있어서는 결코 과찬이 아닐것이다.


3


수필에서 문학의 여러 표현기법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리유는 허구를 배제한 실제 사실만으로 승부를 거는 쟝르이기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도 저자 본인이 말하는 사실과 독자들이 느끼는 사실 사이에는 흔히 거리가 있게 된다. 이러한 거리를 가리켜 필자는 사실과 진실 사이의 거리라고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사실로 공감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서술이 진실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에서부터 진실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문학성의 획득과정이며 동시에 문학적장치의 실현과정이 되는것이다.

수필의 설득력은 의미화과정을 통해 부여되는것이 일반적인데 의미화의 기법은 작자에 따라 다르다. 그럼 아래에 남계 수필이 지니는 의미화기법의 몇가지 특성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자.

최근에 발표된 《사랑의 언어학》은 《아이 러브 유》를 언어에 따라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데서 시작된다.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어느 외국인의 론문을 인용하여 일단은 사랑표현을 ①《나 사랑 너》류형과 ②《나 너 사랑》류형으로 대별하고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조선어의 표현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조선어의 사랑표현이 과연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통할수 있느냐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은 저자는 《사랑》이란 낱말의 어원을 찾아나선다. 《춘향전》이나 《가루지기타령》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적인 사랑표현방식에 《사랑》이라는 말이 결코 등장하지 않음을 확인한 저자는《석봉천자문》,《왜어류해》, 《신증류합》,《전운옥편》,《훈몽자회》 등 문헌을 통해 《사랑》이란 낱말의 등장시기를 밝히고 《광주본 천자문》을 통해 《사랑》의 어원이 《사량(思量)》임을 지적하였으며 문헌고증을 통해 사량이 사랑으로 바뀐 시기도 소상히 밝힌다. 《사랑》의 어원찾기에서 저자는 학구적인 치밀함을 잃지 않고 철저하게 언어학적인 방법론에 근거해 추적하지만 만약 거기까지라면 수필로서의 《사랑의 언어학》은 자격미달이 될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어서 사랑의 개성적인 성격과 조선어 사랑표현의 개성적성격을 병치시킴으로써 규격화된 조화(造花)와 같은 《아이 러브 유》와 생기와 향기를 겸비한 조선어의 사랑표현을 대비시켜 언어사랑을 통한 민족애를 나타내고있다. 작품의 주제는 언어사랑을 통한 민족애지만 그러한 주제에 이르기까지의 진행과정이 탄탄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철저한 학구적 치밀함을 그 바탕에 깔고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구체성을 통한 언어사랑, 언어와 사랑의 《개성》에 립각한 대상의 병치, 어원찾기에서 보여준 학구적인 태도, 이 세가지가 하나의 작품에서 통일을 이루면서 학자수필의 한 전범이 탄생하게 된것이다.

남계 수필의 이러한 학구적치밀성은 계렬수필인 《사랑의 민족학》, 《사랑의 사회학》, 《사랑의 신화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빛을 발한다. 이 계렬수필의 궁극적인 주제는 민족애지만 그의 이러한 보편화된 주제가 공허하게 안겨오지 않는 리유는 구체성의 획득과 학술적인 엄숙함을 겸비한 설득력에 있다. 필자가 루루이 강조하고있는 과정의 중요성(《무엇》보다는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남계 수필의 또 다른 특징은 집중적인 사고력이라 할수 있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 차분한 분석, 정연한 구성은 바로 이러한 집중적인 사고력의 결실이다. 본인의 이름을 두고 쓴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는 이러한 집중적인 사고력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 수필은 먼저 《이름 없다》는 말의 사전적해석에서 시작하여 이름의 기호적성격, 이름의 사회적성격, 개인 이름과 그룹 이름의 분별성에 대해서 서술하고있다. 여기까지는 구체화되지 않은, 일반적의미의 이름론에 해당된다. 다음 저자는 개체론으로 들어가 《유복》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한다. 그룹 이름 유복(遺腹)에서 개인 이름 유복(有福)으로의 전환과정과 대학시절 이름으로 인한 고민, 엥겔스 어록으로 인한 봉변 모면, 성경에서 다시 찾게 된 《유복(有福)》의 의미로 이어지면서 결론부분에 와서는 나만의 이름과 나만의 인생철학, 나만의 가치관으로 대비된다. 일반론에서 개체론으로, 표면에서 심층으로, 기표에서 기의로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이 과정을 살펴보면 이름과 관련된 저자의 사고력이 얼마나 집중적인가를 알수 있다. 이러한 사고의 바탕에는 물론 평소 루적된 지식의 축적이 깔려있겠지만 한국문단을 포함하여 이름과 관련된 많고 많은 수필중에서 아직까지 이처럼 설득력 있는 수필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은 집중적인 사고력의 결실로 볼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남계 수필은 많은 특징들을 안고있다. 정서적인 색채가 농후한 상징물들을 통한 대상화의 기교(《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옥년이와 봇나무》, 《내가 만들었던 눈사람》,《군 감자와 ⟨이바구⟩》)거나 전문작가들을 뺨치는 정확하고 유려한 언어표현들도 지적될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두개의 례문을 통한 유머감각만을 제시하는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한 이제는 혼전성관계나 동거도 사회적간섭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며칠전 신문을 보다가 상해, 북경, 청도 등 대도시에서 《누드 신혼사진붐》이 일고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놀란 나머지 이제는 누가 공공장소에서 《라체결혼식》을 치렀다 해도 놀라지 않기로 작심했다.

- 《사랑의 사회학》


중용론으로는 우리가 평시에 자주 듣게 되는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요, 과음하면 독약이다》라는 말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해학적인 속담을 1992년 몽고를 방문했을 때 울란바또르의 한 애주가가 들려준적이 있다. 《술을 마시면 죽는다. 그러나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남자․술 그리고 약속》

(《도라지》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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