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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옥년이와 봇나무
2006년 01월 12일 00시 00분  조회:5969  추천:53  작성자: 황유복
옥년이와 봇나무

황유복


나는 가끔 꿈에서 고향마을 뒷동산 언덕에 서있는 봇나무를 만난다. 어릴 때부터 봇나무를 무척 좋아했기때문일것이다.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와는 달리 흰색의 줄기와 수없이 많은 작은 잎들과 잔가지들이 모아져서 무성한 수관(樹冠)을 이룬 미인형 ⟪체형⟫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구별된다. 닭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 서있는 광경은 본적이 없지만 고향의 산기슭에 서있는 봇나무를 볼 때면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말을 실감나게 상상할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젊은 시절 련인에게 주는 ⟪시⟫에서 가끔 봇나무를 읊조리기도 했다.


신명에게

너는
내 꿈속의 언덕우에
홀로 서있는 봇나무 ,
너의 우아하고 유연한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움의 참뜻을
깨닫게 되였다.

너는
내 꿈속의 하늘가에
붉게 피여 나는 저녁노을,
너의 불타는 마음에서
나는 사랑의 참뜻을
깨닫게 되였다. (1963)

(给晨鸣

你是在我的梦之山岗上
伫立着的白桦
在你那优雅的婀娜多姿里
我悟到了美的真谛。

你是在我的梦之天际里
漂浮的晚霞
在你那燃烧的心里
我悟到了爱的真谛。)

한문으로 작성되였던 원문도 그렇지만 다시 우리 글로 옮겨보니 시라고 하기에는 꼴불견이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얼마나 봇나무를 좋아했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인용해본다.
열여덟살 때 고향을 떠나 북경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나는 줄곧 북경에서 살게 되였다. 그런데 북경주변의 들이나 산에서는 봇나무를 찾아볼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천진시 교구에 주둔하던 해방군부대에서 ⟪단련⟫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트럭을 타고 북경시 통현역에 가서 동북에서 실려 나온 원목을 부리게 되였는데 내가 하역작업을 하던 차량에는 전부 봇나무 원목이였다. 쉬는 시간에 봇나무 껍질을 적당히 벗겨 간직했다가 병영으로 갖고 왔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서 책갈피에 끼워뒀다가 여가 시간에 오리고 붙이고 해서 그림을 만들면서 고향생각을 달래기도 했다. 그때 썼던 산문시를 옮겨본다.

미란다에게

내 고향의 산에는 봇나무가 많습니다. 줄기는 새
하얗고 무성한 잎은 파랗습니다. 푸른 소나무나
사시나무와 함께 섞여 서있을 때 수려하고 우아한
풍경은 절경이라 하겠습니다. 지금도 기억되지만
어린 시절 해빙계절이 되면 어린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산에 올라 신나게 놀다가 손칼로 봇나
무 껍질을 짜개면 수정 알 같은 즙액이 뚝뚝 떨어
지는데 컵에 받아 모았다가 단숨에 마시면 시원
하고 향기롭고 감미롭기 그지없었습니다.
− 기유년 세말 천진을 떠나 북경시 통현역에 도
착하여 화목하역작업을 하면서 고향생각이 나 봇
나무 껍질을 벗겨 돌아오다. 《백모녀》의 발레
무용자세를 그림으로 만들어 미란다에게 주
노라. (1969)

(给米兰达

余之家乡山岳多桦矣。桦之树干洁白,茂叶油绿。
或与青松翠杨参差并立,秀丽高雅绝此景致耳。
尚记得孩童时,每遇解冻节气,三五童友上山玩
耍,置利器于桦皮,晶莹滋液滴答而下,适盛于
皿,一饮而尽,清凉芬芳,甘美可口。
巳酉年季,离津来京,抵通县车站卸货,遇
此桦木,唤吾乡念。乃取其皮而归。绘制《白
毛女》舞姿赠于米兰达。1969. 12. 天津塘沽)

이렇게도 나의 가슴깊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간직된 봇나무를 접하거나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첫사랑의 련인이 아닌 어릴 때의 친구 옥년이다. 그런데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옥년이의 모습은 가무잡잡한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꾀죄죄한 옷차림, 그 어느 하나도 이쁘다거나 아름답다는 말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옥년이는 내가 어릴 때 사귀였던 첫 번째 친구였다. 댓살 나던 해, 나는 할머님으로부터 혼자 옥외에 나가 놀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어느 날, 집 마당에서 혼자 놀던 나는 싸리울타리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였다.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 더 람루한 옷을 입고 신뒤축이 꺽인 부들신을 신은 처녀애였는데 왼쪽 옆구리에는 싸리로 엮어 만든 광주리를 끼고 있었다. 내가 좀 놀래는 기색을 보이자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건네 왔다.

우리 같이 놀지 않을래?
고독했던 우리는 쉽게 가까운 사이로 될수 있었다. 나보다 대여섯살 우인 그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온갖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고 람루한 옷차림때문인지 마을 애들에게 따돌림받고 있었다. 나는 떼를 써서 옥년이와 함께 저녁노을이 피고 있는 서산에 오를 수 있었다. (수필:《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도라지)2001년 제4기)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동무해주곤 했다. 들이나 냇가에 가서 달래를 캐거나 미나리를 꺾을 때도 그랬고 산에 올라 더덕을 캐거나 참취를 뜯을 때도 그랬다.

옥년이는 아는것이 무척 많았다. 고향의 산과 들 그리고 냇가에서 자라는 참쑥, 냉이, 달래, 미나리, 방가지똥, 고들빼기, 두릅, 참취, 고사리, 더덕, 도라지⋯⋯ 등 식용할 수 있는 나물 그리고 꽃과 열매, 풀과 나무에 대한 많은 상식을 나는 옥년이에게서 배웠다. 강에 나가 가재를 잡다가 으슥하게 후미진 곳에 소용돌이치는 물이 있으면 거기에는 물귀신이 있어 생사람의 머리를 잡아 물밑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접근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고 산에 갈 때면 끄트머리에 담뱃진을 바른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처럼 갖고 다니게 했는데 뱀이 담뱃진냄새를 제일 겁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봇나무에 대해서도 그는 많은 것을 배워주었다. 봇나무는 잔가지가 무성하고 유연하기 때문에 큰 가지 하나만 짜르면 마당빗자루로 쓸 수 있다. 이른 봄날 산에 올라 더덕을 캐다가 목이 마르면 손칼로 봇나무 껍질에 Y자형 상처를 내고 흘러내리는 즙을 그릇에 받아 마시면 시원한 음료수가 된다. 그런데 옥년이는 나에게 봇나무에 대한 상식보다 더 중요한 삶의 리치를 가르쳐주었다.

사귄지 일년 남짓하여 옥년이네는 어디론가 이사가 버렸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녀에 대한 소식을 모르고 있다. 비록 짧은 사귐이었지만 옥년이는 내 인생에서 처음 만난 친구였고 스승이였다. 가난과 계모의 학대때문에 열살이 넘도록 남들이 다 다니는 학교 문앞도 못가 본 옥년이였지만 그녀는 나를 대자연이라는 《학문》에 입문시킨 훌륭한 계몽 선생님이였다. 옥년이는 대자연과 더불어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순수한 아름다움에로 인도했다.

길림을 떠나 북경의 한 대학에서 생활해 온지도 사십여년이 되지만 그동안 나는 인생의 수많은 고비들을 옥년이에게서 배운 《학문》으로 풀어왔다. 처음 대학에 진학하여 한어수준이 너무 낮아 마음이 초조해 졌을 때, 첫사랑의 연인과 헤어지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었을 때,《문화대혁명》에 대한 몰리해로 심리적 갈등이 심해졌을 때⋯⋯ 나는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하였다.

가까이는 자죽원(紫竹園)이나 오탑사(五塔寺)의 숲을 찾았고, 멀리는 이화원북쪽의 서산에 올라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나뭇잎들의 속삭임속에서 산책하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었다. 스트레스나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욕심을 버리는것이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첩경은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였다. 그것은 어릴 때 옥년이가 나에게 터득시킨 삶의 리치였다.

나는 지금도 봇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봇나무는 내가 평생을 살면서 찾았던 아름다움의 상징이였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욕심에 따라 보탠것도 빼버린것도 없다. 쉰살이 넘으면서 나의 머리에 내린 흰 서리는 점점 짙어가고 있다. ⟪머리염색만 하면 십년은 젊어지겠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나는 단 한번도 염색해본적이 없다. 젊어지는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젊어지고 싶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가고 싶었기때문이였다. 지금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때문에 미쳐버린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짙은 화장으로 겉모습을 돋보이게 하려는 정도가 아니고 수술칼을 들이 대여 쌍거풀을 하고 코를 높이고 턱뼈를 깎아내고⋯⋯ 수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성형수술로 얼굴이나 신체의 근본을 고치려 하고 있다. 칼로 째고, 깎아내고, 붙이고 해서 현대인들의 외모가 더 예뻐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때문에 싸우고, 리혼하고, 자식을 내다 버리고, 자신의 무능과 비겁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술로서 자신을 마비시키고⋯⋯ 하기 때문에 우리들 생활속의 아름다움은 분명히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만들어진 아름다움보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봇나무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그렇고 역경을 이겨나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어린 옥년이의 삶의 모습이 그렇다.

20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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