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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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려행기[6]
2019년 12월 15일 14시 14분  조회:3791  추천:0  작성자: 주청룡
서유럽려행(6)

 
트레비 분수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저녁 6시에 우리는 바띠까노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으로 갔다. 바띠까노 시국(Vatican 市國)은 략칭으로 바띠까노이고 이딸리아의 로마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경 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령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도시국가이다.  바띠까노시는 바띠까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띠까노 평원을 포함하며 면적은0.44km2  즉 북경 천안문광장의 면적과 같으며  인구는2016년의 통계로 842명이다. 

바티칸시국의 지도


 
바띠까노 시국의 령토는 로마의 북서부에 있는 바띠까노 언덕과 그 앞 린근에 성 베드로 대성전, 사도 궁전과 시스티나 경당 그리고 바띠까노 미술관 등의 건물들이 세워진 평원이다. 이 지역은 1929년까지 로마의 보르고 지구의 일부분이였다. 로마시와 분할된 것은 레오 4세(利奥四世,  제103대 교황, 재위: 847년 4월 10일 ~ 855년 )가 테베레 강 서쪽연안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길게 성벽을 쌓아 올린 때부터이며 이후 레오 4세의 벽을 포함하여 바오로 3세(保禄三世, 제220대 교황, 재위: 1534년-1549년), 비오 4세(庇护四世, 제224대 교황, 재위: 1559년~1565년), 우르바노 8세(乌尔巴诺八世, 제235대 교황, 재위: 1623년 -1644년)가 새로 쌓아올린 성채 덕분에 면적이 더 확장되였다. 1929년 라테라노조약(拉特拉诺条约, 1929년 2월 11일 이탈리아 왕국과 바띠까노시국 량국이 라테라노 궁전(拉特朗宫)에서 체결한 조약)을 맺으면서 이탈리아 정부가 바띠까노의 령토를 환상선에 의해 둘러싸인 구역을 경계선으로 명시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였다. 일부 국경 지역은 벽이 없는 대신 어떤 건물들로 선을 긋는 것으로 대신하였으며 국경의 작은 일부분에는 현대식 벽을 건설하였다. 바띠까노의 령토에 포함된 성 베드로광장은 로마의 나머지 부분과 격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탈리아 정부와  바띠까노시국은 대체적으로 성 베드로광장 밖의 비오 12세 광장 구역을 가상의 경계선으로 보고 있다.

또한 라테라노조약에 따라 교황청은 이딸리아 령토안에 일정한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카스텔간돌포(冈多菲堡)와 대주교좌 성당들 그리고 로마와 이딸리아 전역에 산재한 교황청 소속의 관청이나 사무소 등으로 이러한 소유지는 외국대사관의 지위와 류사한 치외 법권(다른 나라의 령토 안에 있으면서도 그 나라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국제법에서의 권리)을 누리고 있다.

성 베드로광장은 일반적으로  바띠까노시국과 이딸리아 량국이 공동으로 치안을 유지한다.  서기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 이후 바띠까노 언덕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는 장소가 되였으며 성 베드로(예수를 따르던 열두 명의 제자가운데의  첫번째 제자, 나중에 로마에서 로마의 제5대 황제 네로尼禄의 박해로 순교하였다)도 이 순교자 중 한 사람이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원형경기장에서 거꾸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맞은편에는 비아 코르넬리아를 경계로 삼아 고대 로마시대의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4세기 초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 언덕은 다신교의 각종 이교 신들을 위한 제단과 무덤, 비문 등이 지어졌다. 이러한 고대의 잔재들은 수세기에 걸쳐 문예부흥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사를 할 때 빈번하게 발견되였으며 교황 비오 12세 치세에는 본격적으로 대규모적인 발굴작업을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콘스탄티누스(君士坦丁, 중기 로마 황제, 재위 306년 - 337년)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326년 성 베드로의 무덤 우에 최초의 성당인 옛 성 베드로 대성전이 지어진 것이 기원이며 5세기 초에 대성전 근처에 교황의 궁전이 지어지면서 이 지역은 점차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전 건물은1506년에착공되여 1626년에 준공되였으며 초기 르네상스식의 대표적 건축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과 그 앞의 광장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커져갔으며 19세기 중반에 신흥국가인 이딸리아 왕국에 병합되기 전까지 약 천년동안 로마와 그 주변 지역들을 장악해 교황령(教皇国,  로마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 령역. 1929년 라테란 조약 체결 이후  바띠까노시국을 이르는 말이다.)이란 이름 아래 다스렸다. 이 시기의 대부분 동안 교황들의 거주지는  바띠까노가 아닌 라테라노 궁전(拉特朗宫 )이였으며 아비뇽유수기(1309년 - 1377년)를 제외한 최근 세기 동안에는 퀴리날레 궁전(奎里纳尔宫)이였다.

19세기 중엽 이딸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이 창궐하면서 교황청은 차츰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갔으며 1870년에는 마침내 수도인 로마마저 점령당하면서 교황의 소유지들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되였다. 1861년부터 1929년까지 60여 년 동안 이러한 로마 문제라고 불리는 상태가 유지되였다. 이로 인해 천년동안 이어지던 교황령은 종말을 고하고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의 상층부들은 바띠까노로 대거 피신했다. 이후 교황들은 로마 및 기타 지역에 대한 이딸리아 국왕의 권한을 인정하라는 이딸리아 정부의 주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당한 요구라며 항의했고  바띠까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교황령이 이딸리아에 병합된 이후에도 이딸리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교황청의 이딸리아로부터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계속 인정하였다. 이딸리아는  바띠까노 안에 있는 교황청에 대한 무력행사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퀴리날레 궁전(奎里纳尔宫)을 포함하여 교회 재산의 상당수를 몰수해갔다. 교황령의 마지막 통치자인 교황 비오 9세(庇护九世)는 로마를 잃은 이후 스스로를 ‘바띠까노의 포로’라고 표현했다. 이런 상황은 1929년 2월 12일 이딸리아정부와 교황청 간에 라테라노조약을 체결되면서 종식되였다.

 

 
바띠까노 박물관

 
라테라노조약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알바니아의 군주, 1869년~1947년)와 교황 비오 11세(이딸리아 출신 교황, 1857년 ~ 1939년) 량측으로부터 전권을 이양받은 베니토 무솔리니와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에 의해 각각 조인되였다. 이 조약으로 이딸리아는  바띠까노 시국을 독립국가이며 교황청의 소유와 국제법상 치외법권을 인정하였으며 가톨릭교회를 이딸리아의 국교로 삼았다.  바띠까노 또한 로마를 수도로 한 이딸리아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더불어 량측은 라테라노 조약에 반대되는 이전의 모든 법들을 페기하였다. 라테라노 조약은 파시즘 정권이 물러나고 1947년 이딸리아 공화국이 들어선 후에도 그대로 채택되였다. 다만 1984년 량측 합의로 가톨릭교회를 이딸리아의 국교로 존속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의 새로운 정교 협약으로 수정되였다.

바띠까노 시국은 교황이 통치하는 일종의 신권국가(神权国家)로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총 본부이다. 교황은 직무상 바띠까 시국의 국가원수이자 바띠까노 시국의 정부 수뇌자이며 법적으로 교황은 절대 군주에 해당하며 바띠까노 시국의 립법권, 행정권, 사법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교황은 유럽에 남은 유일한 절대 군주이다. 교황은 콘클라베(教宗选举, 교황을 뽑는 전 세계 추기경들의 모임. 교황이 사망하거나 물러나면 16~19일 사이에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西斯廷小堂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한다.)에서 여든 살 이하의 추기경들이 선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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