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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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이밤을 함께 합시다
2017년 08월 27일 21시 04분  조회:6304  추천:0  작성자: 주청룡


《이 밤을 함께 합시다》프로 생방송
2017년 8월 22일
주청룡
개시곡--《아름다운 동행》--
안녕하십니까? 《이 밤을 함께 합니다》에서 인사 드리는 남경언입니다.
나라의 흥망은 필부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주인공적 자세로 나라와 집단, 사회를 대한다면 문명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한몫 할수 있습니다. 지성인으로서 사회와 민족에 대한 책임감, 사명감을 안고 칼럼쓰기와 민족력사답사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있는 분이 있습니다. 원 룡정시직업중등전문학교에서 부교장사업하다 퇴직하신 주청룡선생님이 바로 그런분입니다. 오늘밤 생방송실에 모셨는데요, 잠시후 만나보겠습니다.
 
          --타이틀--《아름다운 동행》--

 
인사 나누고:
물음:
1. 선생님은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관심하는 문제에 대해 예리한 필봉을 돌리시고 많은 칼럼을 쓰시였는데요, 어떻게 되여 컬럼을 쓰시게 되였는지요?
학교에서 좀 령도사업을 하다가 2006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제2선에 물러나게 되였습니다. 제2선에 물러난다는것은 기실 집에서 편히 쉬라는것이였습니다. 서운한 말로 한다면 인제는 성 쌓고 남은 돌이라고 생각되였습니다.


극진히 사업을 사랑하고 열심히 사업을 해 오던 내가 사업을 결속짓는다는것은 인생의 종말로 느껴졌습니다. 무엇이든 하지 않고 매일 마작치기를 하거나 그렇지않으면 쪽걸상을 가지고 나가서 늙은이들과 같이 그를밑에서 소일하며 보낸다는것은 너무나도 허무한 생활이라고 생각였고 일종 심리적 불안감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끝에 아직 기력도 좋고 정신력도 좋은데 무엇이든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련 며칠 생각을 굴리다가 하루는 기발한 생각이 떠 올랐다. 그것이 바로 ‘나는 중국의 조선족이다. 내 고향은 연변이다. 그럼 내가 중국조선족사회를 위하여, 내 고향 연변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이런 취지를 갖게 되니 우리 조선족사회에 대하여 많이 사색을 하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농촌에서 나서 농촌에서 자랐기때문에 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던 고향을 비롯하여 연변의 여러 농촌을 돌아 다니면서 농촌실정을 고찰하였습니다.   
2006년 여러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고찰한 정황들을 종합하여 보니까
1.    농촌인구가 그 전에 비해 감소되였으며 그때까지도 많은 농민들이 소농경제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    많은 농민들이 제한된 경작지에서 저 소득의 수입으로 입고 먹는 문제를 겨우 해결하였습니다.
3.    장가를 못간 로총각들로 하여 혼인균형이 파괴되였습니다.
4.    학생수가 줄어들고 많은 학교가 페교 되였습니다.
5.    조선족들이 외국로무로 나가면서 외지의 사람들에게 경작지를 임대 혹은 양도하여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이 다른 민족에게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사자료을 가지고 “농촌조선족 인구의 이전을 어떻게 볼것인가?”란 제목으로 10,000여자 되는 글(론문)을 써서 2007년 6월에 흑룡강신문에 발표하고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에서 저의 육성으로 방송되였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첫째로 중국조선족의 이주력사를 간단히 서술하고 연변에 조선족 집거구가 형성된 력사적 배경과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성립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두번째로는 농촌인구, 농경지와 농경인, 학교와 학생 등 연변 농촌조선족의 현황에 대하여 분석하면서 농업인구가 감소되고 농촌학교 학생수의 감소와 작은 학교의 페교는 사회발전의 필연적인 추세라는 것을 지적하고 조선족 교육을 보장할수 있는 대안을 제기하였습니다
세번째로는 농민들이 치부의 길로 나가는 도경을 6가지로 론술하였습니다.
네번째로는 혼인불균형 해결점과 조선족 공동체 해체의 방지대책에 대하여 6가지로 론술하였습니다.
이상의 것을 종합하여 말하면 우리의 터전을 잘 가꾸고 지키고 조선족 공동체를 공고히 하며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다 같이 잘 살아 보자는 것이였습니다.

2.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거쳐 필봉으로 우리 조선족을 대변하였다면서요?

예, 2007년 7월에 친척의 요청으로 한국 길에 오르게 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으로 간다면 아마 머리속에 돈벌이라는 사상이 앞설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생각보다도 우선 한국사회를 료해하고 재한 중국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료해하고 한국정부의 중국동포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중국동포들이 한국의 경제건설에 대한 기여, 한국과 재한 중국동포사회의 화합과 공존, 모순과 갈등, 이런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것인가? 하는것을 료해를 하고 이런것을 글로 써서 언론매체에 발표하면 우리 동포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한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유람도 하고 일도 하면서 한국생활을 체험 하여 보면 출입국 관리소, 취업교육장, 로동부 고용지원쎈터, 중국동포타운 등 국가기관, 사업단위를 다니면서 보면 한국의 국가공무원, 사업일군들은 우리 동포들에 대하여 아주 뜨겁게 대하였고 동포다운 사랑을 주었으며 봉사업체의 종업원들도 아주 열정스럽게 대하였습니다. 이럴 때마다 고국 땅에서 한 겨레의 따사로운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에 있을 때 우리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3D업종 일을 하면서 많은 멸시, 모욕 등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갖은 굴욕을 참으면서 일하여 왔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산에 가야 꿩을 잡고 바다에 가야 고기를 잡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들의 실생활을 료해하자면 바로 산업현장, 건설현장에 가야 그들이 고달프게 일하는 실생활을 체험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처음으로 서울 교외의 한 채소농장에 가봤습니다. 농장에 가보니 중국동포들이 온 하루 비닐하우스 안이거나 뙤약볕에서 쉼도 없이 구술땀을 흘리며 일하는데 숙소마저 찜통처럼 뜨거운 채소하우스 안이였고 그 안에서 먹고 자고 하했다. 너무나도 인격이 손상 받는 일이였다. 그집 애완견도 집주인과 같이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사람이 어찌 짐승자리보다 못한 곳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서울과 경기도의 몇몇 건설현장에 가서 현지체험을 하였습니다. 건설현장에서는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안전화, 안전띠, 안전모로 전신무장을 하고 건설현장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3무장을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수 있었습니다.
중국동포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철판으로 된 폼(模板), 강관(鋼管), 철근 등 전부 무거운 물건들을 나르는 것이였는데 한참 일하고 나면 온 몸이 땀참봉으로 되였습다. 그래도 청부업자는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하였습니다.
3D업종에서 다 그런것이 아니라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들이 우리 중국동포들을 아무런 정치권리도 인권도 없는 인간으로 업신여기면서 마구 욕을 퍼부으면서 부려먹는것이였습니다. 아무리 억울하여도 말대꾸 하면 쫓겨나는 판이라 돈벌이 온 것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꾹 참는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고용주들은 의식적으로 불법체류자를 쓰면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도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신고를 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쥐고 일년 넘도록 월급을 주지않는 일이 있었고 지어는 일년 넘게 일하고서도 청부업자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로동공가를 받지 못한 일, 등 이러한 일들은 많고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한국에 와서 현지체험을 하면서 중국에서 듣던바와 같이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들이 중국동포들을 마구 욕하면서 부리고 중국동포를 가정부로 둔 극 소수의 가정에서는 가정부를 종으로 여기여 고용인들이 최저의 인권마저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슴 아프게 보아 왔습니다.
우리가 돈벌러 갔고 한국의 많은 3D업종에서 인력을 많이 수요하는 것만큼 3D업종에서 일하는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인격만은 무시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내 힘으로서는 중국동포들을 대변해 한국의 언론매체를 통하여 중국조선족의 지위를 확립하고 3D업종에서 중국동포들이 인권침해를 받지 않도록 호소하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에서 조선족은 소수민족의 우대정책을 향수하면서 자랑스럽게 생활한다는것을 12가지로 개괄하여 말하면서 중국조선족의 문화수준은 전국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조선족은 로인을 잘 모시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례절바르고 깨끗하며 문명스러운 민족이라고 전국에 널리 자랑을 떨치고 있으며 중한관계에서도 중국조선족은 가교작용을 하고 있다고 제기하였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서 소수 민족이라 하여 소외를 당하였거나 소외감을 느껴 본 적이 없이 소수민족의 우대정책을 향수하면서 당당하게 중국조선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한 겨레의 고국에 와서 일부 하류계층의 사람들에게서 ‘조선족’이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칼럼을 써서 한국의 동북아신문, 중국의 흑룡강신문, 료녕신문에 발표하여 중국에서 우리 조선족은 아주 우수한 민족으로 부상하고 있으므로 한국사회도 우리 동포들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을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3D업종에서 내가 직접 목격하였거나 친척, 친구들이 멸시, 모욕 등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사례들을 정리하여 “한겨레의 사랑을 느꼈으며”라는 제목으로 대통령님께 올리는 편지를 써서 동북아신문에 발표하여 중국동포들의 인권을 보장하여 줄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의 이런 글들이 신문에 발표되자 한국사회와 동포사회에 일정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리하여KBS-1 라지오에서는 제가 중국동포들의 의사를 충분히 말을 할수 있다고 하며 저를 “2008년 송년의 밤”프로에 초청하였습니다. 저는 그 프로에 참석하여 한국정부의 ‘방문취업제’의 좋은 정책으로 하여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정부의 우리 동포들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한국정부의 이 사랑에 감사를 들이며 한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중국에 돌아가서 잘 살겠다는 내용으로 말하였는데 전파를 타고 지구촌의 방방곳곳에 전하여졌습니다.
그리고 2009년 1월에 KBS-TV와 중국동포타운신문에서 공동 주최하여 《한국기업인과 중국동포와의 간담회》를 조직하였는데 신문사에서는 또 제가 중국동포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표달할수 있다고 그 간담회에 초청하였습니다.     
그 회의에서 저는 한국정부의 ‘방문취업제’정책이 좋아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많이 나와 돈을 벌고 있고 우리 동포들도 고국건설에 한몫을 담다하고 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반면에 모든 고용주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들이 중국동포들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불공정한 대우를 하면서 일을 시키는 사례들을 숫해 들면서 한국기업인들에게 중국동포들의 인권을 존중하여 줄것을 호소 하였습니다. 이것이 2009년 음력설 이튿날 저녁 10시에 KBS-TV-1에서 방영되여 많은 중국동포들의 절찬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도 조선족들이 이 프로를 보고 제가 중국동포들의 속심의 말을 아주 잘하였다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이 우리 동포들에 대하여 눈높이를 아래로 하는데는 중국동포들에게서 찾아 볼점이 없는것은 아니였습니다. 중국동포들에게서 찾아볼 문제들을 보면 극 소수의 개별적인 사람들이 한국의 법률과 제도를 준수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쓸어 다니면서 주정을 하거나 싸움질을 하고 불법 퇴페업소를 꾸리거나 거기에 드나들고 위생을 잘 지키지 않고 교통질서를 잘 준수하지 않는 등등 문제들이 존재하여 미꾸라지 한마리 개울물을 다 흐린다고 중국동포들의 이미지에 엄중히 손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동포들 자각적으로 한국의 벌률과 제도를 준수하자!” “아름다운 동포사회의 이미지를 가꾸자” 등 칼럼을 써 중국동포들이 즐겨 보는 한국의 몇몇 신문에 발표하여 중국동포들이 자각적으로 한국의 법률과 제도를 준수하고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버는것으로써 한국정부의 우리들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며 한국사회와 동포사회가 화합,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에 노력할것을 호소하였습니다.

3. 여러 매체와 손잡고 많은 칼럼을 쓰시면서 우리 사회의 발전에 한몫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예, 한국에서 3년 남짓이 체류하면서 한국사회와 중국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료해하고 체험하면서 중국조선족을 대변하는 글을 많이 썼지요. 그리고 2010년 10월에 중국에 들어왔는데 이듬해의 어느 하루 중앙인민방송국의 《오늘의 화제》담당편집 박민걸 선생님이 저한테 전화가 왔던데  《선생님의 글을 보니 인제 중국에 들어오신 것 같은데 이제부터 우리방송의 〈오늘의 화제〉프로에 칼럼을 하여 달라는 청탁받았습니다.
그래서 2011년 7월부터 매주 《오늘의 화제》프로에서 시리즈로 중국조선족의 현상태를 분석하고 앞으로 해야할 일, 한국과 중국조선족 사이에 어떤 모순과 갈등이 있는가? 이런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것인가? 하는 문제와 기타 사회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육성방송으로 칼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1년반 련속  출연하다나니 매주일마다 하나의 화제를 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 연변주위 선전부 부부장으로 하업하시던 채영춘선생님, 연변대학 김관웅, 우상렬 교수님, 원 연변인민출판사 〈농가〉잡지 주필이였던 홍천룡선생님 등 분들을 중앙방송에 추천하여 같이 륜번으로 칼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앙인민방송뿐만 아니라 길림신문,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등 조선족 보도 매체에 계속하여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칼럼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4. 약이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듯이 그런 비판과 반성의 자세가 있어야 우리에 대한 정학한 이미지  정립을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돌아오신 후에도 여젼히 필을 놓지 않고 우리 민족의 발전과 진보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들었습니다.

2010년 10월에 귀국하여서도 우리 조선족사회를 위해 무얼 해야하는가 하는것을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굴리던 중 한번은 제가 살던 농촌 고향마을에 다녀오게 되였는데 그전에는 다른 민족이 한호도 없이 순 조선족이 60여 호 단란하게 모여 살던곳이 2007년 한국 방문취업제 문이 열리자 출국로무요, 대도시요 하면서 떠나다니 조선족은 몇호밖에 없고 대부분 다른 민족들이 밭을 부치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이 다른 민족에게 누에 뽕입먹듯이 잠식되고 있었다. 매우 가슴아픈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농업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룡정시의 원 광신향 당위 김재범서기와 함께 연변의 여러 농촌들을 돌아보면서 3농문제를 조사하였습니다.
연변의 농촌 각지를 돌아 보니 거의 다 제 고향마을과 비슷한 상황이였습니다. 우리는 농촌조사가운데서 우리의 토지가 타민족에게 넘어가는것이 가슴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토지는 임대한 것이기에 기한이 되면 도로 찾을수 있다고 하면서 아주 락관적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길고 세대가 바뀌게 되면 자연히 그 임대가 경영권으로 넘어갈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후세 사람들이 대학교나 기타 여러가지 도경을 통하여 과학적인 영농법을 배워가지고 본 고장에 와서 규모화 농업을 하려고 하여도 발을 붙일 자리마저 없게 될것이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영영 잃게 될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농촌 마을이 다 그런것은 아니였습니다. 우리는 주 농업위원회를 찾아 우리의 뜻을 말하고 주 농업위원회의 알선으로 몇개의 선진촌들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촌들을 방문하면서 여러가지 선진적인 경영모식도 많이 찾아내였습니다. 이러는 가운데서 토지가 타민족에게로 넘어가지 않고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우리가 가꾸고 지키자면 아래와 같은 여섯가지 방면을 노력하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로 외지에 나간 촌민들의 토지를 촌민위원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여 본 지방 촌민들에게 임대하여주어 외지에 갔다가도 아무때든 돌아와서 농사를 짓도록 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과학적인 규모화 농업을 하여 제한된 농경지에서 보다 높은 수확을 따내야 합니다.
셋째로는 생태농장을 꾸리는 것이였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배운 사육기술로 고향에 돌아와서 가축, 가금 생태농장을 꾸리는것입니다.
넷째로 자연우세를 충분히 리용하여 당지의 농산품, 특산품 등을 여러가지 명브랜드로 가공하여 수출형 농업을 하여야 합니다.
다섯째로 농민전업합작사 혹은 전문농장을 꾸리는 것입니다. 분산된 농업으로는 다수확을 따낼수 없습니다. 농민전업합작사 혹은 전문농장을 꾸려 로동력을 합리하게 배치하여 농사도 짓고 다종경영을 하면서 통일관리, 통일생산, 통일수확, 통일가공, 통일판매를 하여 규모화, 기계화, 현대화의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여섯째 공농업이 결합된 집중촌건설을 하는것입니다. 분산된 자연툰을 합병하여 유리한 환경조건을 갖춘 곳을 선택하여 집중촌을 건설하여 제한된 경작지를 감농군들에게 맡기고 촌기업을 많이 꾸리여 그외의 로동력을 모두 촌기업으로 전이 시키면 여유의 로동력을 합리하게 배치할수있습니다.
모두어 말하면 공농업이 결합된 집중촌을 건설하여 소도시화를 하는것입니다. 소도시화를 하면 도시에 시집가는 처녀들이 적게 되며 따라서 조선족 총각들의 혼인 불균형도 해결할수 있으며 인구가 증가되면 자연히 학생수도 늘어나 우리민족 교육도 보장할수 있으며 조선족공동체를 더욱 건전히 구축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에 들어가 창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출국하여 번 돈으로 본 고장에서 집중촌건설에 투자하여 공업도 하고 과학적인 규모화농업을 한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도 가꾸고 지킬수 있으며 이 터전을 우리의 후세에 넘겨 줄수 있다고 봅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농촌조사를 개괄하면서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우리가 가꾸고 지키자”란 제목으로 만여자 되는 글(론문)을 써서 2012년도에 흑룡강신문, 《농가》 잡지와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 방송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중한수교 20주년을 맞으면서 “중한수교와 중국조선족사회”란 론문을 써서 중앙인민방송, 〈농가〉잡지,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한국의 동북아신문에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소제목형식으로 보면
1.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
2. 중한수교전의 중국조선족사회  
3.  중한수교후의 중국조선족사회
(1) 연해도시, 대도시에로의 인구이동 
(2) ‘코리안드림’으로 인한 한국진출
(3) 외화수입은 자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4) 인구이동이 조선족사회에 미친 영향
1) 조선족집거지 인구의 감소와 분산으로 하여 조선족공동체 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2)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이 점차 타민족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3) 농촌총각들이 장가들기 어렵게 되였다
4) 리혼률이 높아가고 결손가정자녀가 많아지고 있다
 4. 금후의 전망 등 이러한 내용들이였습니다.
그리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국가중점도서의 항목으로〈개혁개방과 중국의 조선족〉이란 계렬 도서를 출판하게 되였는데 3농문제에 관한 책은 출판사의 홍천룡선생님과 저에게 맡겨 쓰게 하고 2015년도에 우리더러 농촌조사를 하라고 하여 목당강지구에 가서 녕안, 해림 등지를 돌고 계서지구에 가서 계서, 밀산 등지를 돌았으며 할빈지구에 가서 오상, 아성, 상지 등지를 돌았으며 가목사지구에 가서 화천현, 탕왕현 등 흑룡강 농촌 조선족 마을을 다니면서 3농문제에 대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5. 우리 민족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기에 그런  보귀한 글들을 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밖에 선생님은 《중국조선족백년실록》 편찬사업에 참가하여 우리 력사 보존사업에 자신의 힘을 이바지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아, 이건 제가 《중국조선족백년실록》편찬사업에 참가하였다기보 다 제가 쓴 전국로동모범 리호천사적이 여기에 수록되였지요.

6. 또 《중국조선족력사동호회》 회원으로서 항일전적지 답사에 참가하여 민족의 력사발굴에도 한몫 하고있다지요.

2015년 한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으면서 《중국조선족력사동호회》성
원들이 대전자 항일전적지, 소사하항일전적지, 내두산 항일밀영유적지, 어랑촌 13용사전적지, 공도진렬사기념비 등 곳을 답사하였고 6월에는 장암동참사유적지를 답사했으며 10월에는 또 《중국조선족력사동호회》성
원들이 연변아동문학학회와 함께 흑룡강 동녕현에 있는 〈동녕요새〉를 탐방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연변 조선어방송 애청자협회의 회원으로 협회에서 조직한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 소왕청항일전적지, 진한장렬사릉원 등 곳을 답사 혹은 참배를 한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중국조선족력사동호회》에서는 이런 답사기를 묶어서 책으로 편찬하려고 하는데 저는 이런 답사기를 써서 협회에 교부하였고 〈동녕요새〉 탐방은 기행문을 써서 지난해《송화강》잡지에 발표했습니다.

7. 우리에게는 참으로 자랑할만한 력사가 있지요.우리의 선배들이 피땀을 흘려 바꾸어온 이 땅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의 력사를 전해가는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입니까, 국가에서도 이 방면의 사업을 지지하면서 비물질유산발굴 등 면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하고있잖아요, 선생님은 자신의 지식과 인맥으로 우리 연변의 명인들을 소개하여 많은 호평을 받은걸로 알고있습니다.

금년 6월에 장춘텔레비죤방송국에서 비물질문화유산《중국조선족명인
기록편》 찍으러 연변에 왔었는데 주정협문사자료실에 찾아가서 자기들의 촬영을 도와 줄 사람을 요구하였는데 주정협에서 저를 추천하여 제가 촬영팀을 안내하며  전국로동모법이며 농민 벼육종가인 최죽송, 전국로동모
범 김시룡, 전국로동모범 우편배달원 리호천, 전국3.8붉은 기수 리옥금, 전국민병선진공작자 리종률, 연변사과배 품종을 백육해 낸 최창호, 조선족의 우수한 교육자 연변대학 초대 부교장 림민호, 중국조선족 음학에서 정률성에 이어 공로가 큰 허세록 등 8명의 기록편을 찍었습니다.

8. 자신의 실제행동으로 사회와 민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보여주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항상 손에서 필을 놓지 않고 보람있는 만년을 보내고 계신다지요. 기행문도 쓰시였다지요.

한국에서 여러곳을 다니면서 유람을 하고 모두 기행문을 써서 한국의 신문에 발표하였지요. 려행수필을 쓰면 문학적으로는 차원이 더 높겠지만 저는 수필을 쓰는 능력이 모자라는 것도 있겠지만 독자들에게는 려행수기를 써야 글을 보면서 관광단과 함께 명승지를 돌아본다는 감을 주기에 중국에 돌아와서도 상해, 항주, 남경, 북경, 청도, 태산, 집안고구려유적지 등 곳을 다니면서 모두 려행수기를 써서 여러 신문에 발표하였고 조선의 평양, 금강산, 개성, 판문점, 동남아의 향항, 오문, 타이, 싱가포르, 말레시아 그리고 대만 등  곳을 려행한 것을 모두 려행수기를 써서 길림신문에 30여 기를 련재로 발표하였습니다.
 
아나운서: 필봉으로 멋진 만년을 장식해가고 있는 선생님이신데요, 만년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맺는말:

 
2017년 8월 22일 밤 9시 《이 밤을 함께 합시다》프로에서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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