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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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식 리더십 - 공백 제로의 원칙
2009년 05월 06일 08시 11분  조회:4374  추천:33  작성자: 이승률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네덜란드식 리더십 - 공백 제로의 원칙


몇 년 전 암스텔담을 간 적이 있다. 제4차 CBMC유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인천국제공항에서 11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기내 TV화면에 나오는 항공노선을 계속 관찰했다. 한반도에서 북서향으로 방향을 잡은 비행기는 북경을 거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지나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바이칼호 부근, 세계 최대 천연가스전 개발지역)를 향했다. 거기서 노선을 서쪽으로 고정시킨 채 장시간 시베리아를 횡단한 후 모스크바와 발틱해를 지나면서 남쪽으로 기수를 돌리면 유럽의 관문 암스테르담에 이른다.  나는 이 비행노선을 따라가면서 마음속으로 도쿄에서 런던까지 달려가는 KTX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첫째:TSR(시베리아 대륙횡단철도)과 연결되는 노선

        일본(도쿄 – 오사카 – 후쿠오카 – 쓰시마) – 한반도(①부산– 동해선– 원산– 청진, ②부산– 서울– 평양–원산 – 청진) – 러시아(나호드카– 보스토치나–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유럽(암스테르담/로테르담– 브뤼셀– 파리/런던)


둘째:TCR(중국횡단철도)과 연결되는 노선

        일본– 한반도(부산– 서울– 평양– 신의주)– 중국(심양– 북경–서안)– 중앙아시아(타지크스탄– 천산산맥– 우즈베키스탄)– 러시아(모스크바)– 유럽


셋째:TMR(만주통과철도)과 연결되는 노선

        일본– 한반도– 중국(북경)– 몽골(울란바토르)– 러시아(TSR과연결)– 유럽


장차 KTX는 남북 경제협력과 사회통합을 유도하는 대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유럽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의 주역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를 동북아 물류의 중심축`(HUB)으로 발전시켜 가는 동북아시대의 새 역사, 상생하는 역사의 진로를 선도하는 교통혁명의 대안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유럽연합이 부러워진다.  ‘인류 최대의 경제실험’으로 불린 유로화 도입에 성공하고 ‘인류 최대의 정치실험’으로 불렸던 동구권 10개국의 EU가입도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냈다. 그 결과 회원국 27개국에 인구 4억 5천만 명으로 팽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로 분열됐던 유럽을 EU라는 하나의 지붕아래 결속시키는 ‘정치 빅뱅’이자 역사상 최대 국가연합의 탄생을 실현하는 위업을 성취한 것이다.


나는 EU 회원국 대표들이 모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통합의 시대를 열어간 그들의 리더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들이 일궈낸 상생의 역사는 인류사회의 발전과 문명의 척도를 향상시키는 참으로 위대한 흔적이 되어 그 길을 따라가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 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민족 공동체와 한반도 통일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리더십이 우리사회 안에서 ‘큰바위 얼굴’처럼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한다.  


네덜란드의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보나미덱스 박신회장은 29년 전 (주)선경의 주재원으로 네덜란드에 건너가 단돈 200길더(한화 12만원)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유럽 의류업계의 거상(巨商)이 됐다. 지금도 1년이면 4,5개월씩 세계 각국을 누비는 국제상인으로 장사 잘 하기로 소문난 네덜란드의 유태상인들마저 경쟁을 회피할 정도다. 그는 유럽인에게 옷을 가장 많이 판 동양인으로 유명하지만, 또한 네덜란드 유태인 거상인 미슈밤 영감을 양아버지로 모시고 끝까지 그의 인격과 상술과 경영방식을 배울 만큼 자신의 인생을 세일즈 하는데 철저했던 인물이다. 30년 가까운 장기간의 이민생활을 통하여 유럽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히딩크를 키운 나라, 네덜란드>란 저서에서 월드컵 당시 히딩크의 엄지손가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의 개척정신과 일본 도쿠가와 막부를 설득해 무역을 했던 상인정신을 함께 보았다는 내용과 함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뿌리 저변은 네덜란드에 닿아있다. 또 일본이 400여년간 조용히 서양식 문화를 흡수해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뿌리에도 네덜란드 상인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두 나라는 지금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되었다.  한국은 350여년 전 하멜이라는 네덜란드인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지만 그들의 정신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가 네덜란드인을 제대로 발견하게 된 것은 히딩크를 통해서였다. 그가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히딩크십은 미국과 일본에서처럼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유럽의 오래된 속담 중에 ‘네덜란드를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계화에 일찍 눈뜬 네덜란드 사람들의 경제 감각을 배우라는 뜻이다. 또 일본인들에게 어느 나라 사람을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의외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일본의 명문사학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 개화기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도쿠가와 막부 말 네덜란드에 유학했던 사람이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일본의 개화가 시급하다면서 1858년 양학숙(洋學塾)을 세웠으며 그 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1868년 양학숙을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으로 개명하고 유럽의 선진문화를 보급하는 창구로 삼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게이오 대학의 전신이다. 또한 큐슈지역과 네덜란드와의 오랜 교류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일본의 개화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친 나라다.


어디 그뿐인가. 1620년 9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던 영국 청교도들도 네덜란드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던 100여명의 청교도들은 아메리카로 가기 전 10여 년 동안 네덜란드에 피해 살면서 그들의 배려와 도움 속에 근검, 절약, 정직, 능률의 덕목을 훈련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뿌리를 완성했다. 한마디로 초강대국 미국의 건국정신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이 네덜란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도 거스 히딩크라는 불세출을 감독을 통해 네덜란드의 힘을 실감한 바 있다. 히딩크라는 인물의 탁월함은, 그가 우리에게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적인 역사를 만들어주어서라기 보다는, 최근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스스로 막연히 생각해오고 기대했었던 그러나 한번도 속 시원히 발휘해보지 못한 우리의 잠재력과 놀라운 응집력을 우리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확인시켜주었다는 데 있다.


그가 처음 한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축구팀은 스포츠맨쉽이 아닌 한국 사회의 뒤틀린 원칙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뿌리 깊은 인맥과 선수선발과정에서의 편파적인 기준, 개인의 능력만을 과신하는 스타 선수들의 불성실한 훈련과 지나친 자만심 등으로 상징되는, 도무지 팀이라고 할 수가 없는 조직이었다.


그런 한국의 축구팀의 내부 상황을 몰랐던 한국인들은 대대로 감독만을 탓했고,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심지어는 민족성과 연결시켜 한국인은 안돼 라는 자기열등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축구팀과 경기를 할 때면 야수처럼 죽을 힘을 다해 달려드는 이상한 팀이었다. 그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일본팀은 번번히 한국 때문에 월드컵 본선진출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본선에 진출해서는 일본팀보다도 훨씬 더 약체인 팀에게조차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라야 하는 이상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히딩크는 그 이유를 딱 한가지로 진단했다. 상당한 기술과 탁월한 재능, 그리고 열정을 지닌 선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생명인 팀웍과 경기능력 향상을 위한 기초체력과 이론적인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분석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은 역대 감독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히딩크가 다른 감독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히딩크를 흔히 그라운드의 음유시인으로 부르기도 하고 그와 함께 변화하는 선수들을 보며 그를 마법사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원칙에 충실할 뿐이다. 그는 팀의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매우 신중하고 섬세하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무서우리만치 단호하고 철저하다. 이것이 그의 독보적인 탁월함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또 누구에게도 절대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것은 예외가 있을 경우 생존자체를 위협받는 네덜란드의 자연조건에서 성장한 그들만의 철저함에게 기인됐다. 히딩크를 알기 전 내가 알고 있던 네덜란드에 관한 기억은 어렸을 적 읽은 동화속의 소년이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강물을 막은 댐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생긴 것을 보고 그것을 처음엔 손바닥으로 막다가 그 구멍이 점점 커지자 두 손으로 막고 나중엔 마을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갔던 동생이 돌아올 때까지 차가운 바닷물에 몸이 어는 줄도 모르고 온 몸으로 그 구멍을 막아낸다. 물을 막은 댐에 구멍이 생기면 죽는다는 그 절절명의 원칙을 그는 팀에 적용했다. 구멍이 생기면, 즉 예외가 생기면 선수도 죽고, 팀도 죽고 게임도 잃는다는 그 원칙을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는 한국팀이 월드컵본선 징크스를 깨기 위해 필요한 훈련의 내용과 양을 결정하고 그 훈련을 완성할 때까지 냉정하고 혹독한 조련사처럼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인맥이고 학맥이고 스타고 뭐고 없었다. 그는 선수들에 관한 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어떤 외부로부터의 평가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해진 훈련량을 소화하고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선수들을 냉정하게 가려내고 그 선수들만으로 팀을 꾸렸다.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 해도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훈련을 게을리하고 팀에 불안한 공백을 만드는 선수에겐 전혀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값이 얼마건, 그가 얼마나 유명하건,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스타플레이어는 그라운드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야 진짜’라고 말하며 그렇지 못한 스타선수들을 가차없이 제명시켰다.


약체인 팀과의 평가전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라며 일체 하지 않았다.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만 골라서 평가전을 가졌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내용 만으로 선수들과 축구관계자, 그리고 여론의 우려와 걱정을 잠재웠다.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비기거나 이겨서 온 나라가 들뜰 때도 그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징크스’없는 팀, 전천후 팀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후에 그가 선수들에게 심어준 것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상대팀의 선수구성, 감독의 주요 전략구사범 등을 모든 정보를 선수들과 똑같이 공유했다. 그는 선수들을 감독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으로 키우지 않고 그라운드안에서 공백이 생기면 자신의 포지션에 상관없이 스스로 달려가 막아내도록 훈련시켰다. 그런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선 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감독으로 키운 것이다. 선수들은 점점 공백에 민감해졌고 그만큼 수비가 강해졌다. 동시에 상대의 공백을 발견하는 눈도 그만큼 빨라졌다. 어떻게 공의 흐름을 유도해야 하고 어떻게 수비선수들의 파울을 유도해 내며, 어느 지점에 공백을 유도해야 골을 넣는 데 유리한 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면서 전체의 흐름 속에서 팀의 공백을 먼저 달려가 손바닥으로 막아내는 것이 자신을 살리고 팀을 살리고 경기를 이길 수 있는 길이란 확신을 주었다.  


그 확신의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세계의 축구팬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 축구는 그야말로 가공할 힘을 발휘했다. 무명의 한국 젊은이들은 세계의 축구강호들과 맞붙어 한몸 같은 팀웍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리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을 구사하며 유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폭발시켰고, 세계 축구 강호들은 젊은 한국축구 앞에서 차례로 침몰해갔다. 공백과의 싸움에서 이긴 한국축구는 단번에 선진축구팀으로 도약했다.


유럽의 허브 랜드Hub Land라고 불리는 네덜란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국토 면적은 우리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41,500㎢`남짓밖에 안 되는 작은 국가이고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인 악조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유럽의 주요시장에서 반경 500킬로, 즉, 하룻밤 운송거리 면 갈 수 있는, 유럽 최고의 물류중심에 위치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변강대국들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느라 바람 잘 날이 없는 나라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는 유럽의 코리아라고 할 만큼 비슷한 역사를 헤쳐왔다. 


하지만 결국 네덜란드는 그런 상황을 탓하면서 자기비관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끈질긴 생존의지와 개척정신으로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지리적 잇점을 최대한 이용해 오늘날 유럽의 허브가 되는 데 성공했다. 유럽 최고의 항공화물센터인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과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항인 로테르담 항, 그리고 세계 중요언어를 동시적으로 구사하면서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 암스텔담 서부의 텔레포트를 한데 묶어 흔히 TRI-PORT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파리행 TGV 고속철도까지 연결돼 있어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물류왕국이라 불린다.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유럽의 한가운데 놓인 약소국, 그래서 수없이 많은 강대국의 침략과 약탈을 받아야만 했던 나라, 우리에겐 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이 있듯 그들에게도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적 악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유럽의 허브국가이자 동시에 세계적인 강국이 된 미국과 일본 부와 선진국으로서의 국가경영정신을 전수해준 대부와 같은 나라로 우뚝 섰다. 네덜란드를 배운 나라는 모두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네덜란드가 유럽 물류의 중심이듯이 한국 역시 동북아의 중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EU의 5억 인구보다 무려 세배가 넘는 15억의 소비자를 가진 시장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더구나 세계 경기를 아시아가 먹여 살린다고 할 만큼 역사적인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더 이상 망설여선 안 된다. 분단국가라는, 혹은 약소국이라는 그런 자기비하와 열등의식에 빠져 있는 건 바보짓이다. 네덜란드 식이라면 이 천혜의 지리적 잇점을 활용해 동북아의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세계적인 강호 이탈리아와 16강전을 앞둔 선수들에게 히딩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만들어보자 (Let's make a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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