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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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등장과 한반도의 미래
2009년 02월 23일 07시 42분  조회:2493  추천:28  작성자: 이승률

세 번째 이야기  동  북  아  네  트  워  크   를      구축하라 -F T A  와  T & T


KTX 등장과 한반도의 미래



단군이래 최대국책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고속철도(KTX)가 공사가 개통된지도 벌써 햇수로 5년째다. 이로서 한국은 독일 ICE, 스페인의 AVE, 일본의 신칸센(新幹線), 프랑스의 TGV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 고속철도 보유국이 되었다. 고속철도의 개통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화시키면서 한반도의 국토이용방식과 국가산업전반에 걸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운 좋게도 고속철도 시승식에 두 번씩이나 참가했었다. 한번은 중견기업 CEO그룹인 후박나무회원들과 함께였고, 한번은 연우포럼 임원들과 함께였다.

우리는 대개 모르고 살지만, 문화예술분야에 독창적인 재능과 능력을 타고난 한국 사람들은  문화예술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섬세하게 반응하고 감격하고 환호를 하는 반면, 과학기술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상당히 반응이 무딘 편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얼마 전 베이징에서 7위의 종합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온 국민이 열광하며 기뻐하는 반면, 우리나라가 세계 5위국의 원자력 대국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사람조차도 없을 정도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그것도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더 먼저 고속철도를 갖게 됐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무척이나 설레어 하며 고속철도를 두 번이나 시승한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는 듯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고속철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고속철도건설은 단순히 철도건설기술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기계, 전기, 통신, 건설 분야의 기술과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 요즘같이 재화와 사람의 이동이 많은 시대일수록, 재화의 가치에서 물류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 때문에 이동수단의 기능뿐 아니라 이동수단의 품질도 중요한 시대가 됐다. 즉, 교통은 시간을 줄여주는 안전한 이동수단이어야 하는 동시에 쾌적하고 품격있는 그 무엇이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고속철도는 그 압도적인 속도만큼이나 차별화되는 품격과 안전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하고 그 때문에 최첨단의 관련기술들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기술이자 상품인 것이다. 즉, 고속철도를 가졌다는 것은 그 관련 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을 갖고 있음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KTX는 장차 언젠가 한·일간에 해저터널이 뚫리면 일본 열도와 한반도 그리고 중국 대륙을 복합적으로 연결하는 동북아 대중교통인프라의 첨단 운송수단이 될 전망이다. 이는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유럽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게 될 것이다. 교통, 물류, 통신, 금융, 에너지 등의 경제교류 부문의 확장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 외교, 안보, 군사, 문화, 기술, 교육 등 제반 분야에 걸쳐 세기사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때 부산을 시발점으로 기획하기보다 인식의 폭을 넓혀서 도쿄를 시발점으로 하게되면, 도쿄-부산-서울-북경-모스코바-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대륙철도망은 태평양으로부터 아시아, 유럽과 영국, 그리고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의 4분의 3을 망라하는 지구촌의 대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지구촌의 종주국인 미국이 세계흐름의 변방에 서게 될 지도 모른다. 고속철도는 생각하기에 따라 역사를 새로 쓰는 신기원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의미와 가능성을 가진 채 우리의  KTX가 개통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KTX을 시승하면서 우리가 일구어낸 시속 300킬로미터의 아찔한 승차감에 감격했고, 그 짜릿한 감격 속에서 오랫동안 꿈꾸어온 동북아시대가 한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이 일은 내가 그동안 연변과기대 교수들과 함께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에 힘입어 중국 동북 3성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이 한반도와 연해주 지역으로 긴밀히 교류해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만일 한국에서 고속철도가 개통될 경우, 이 철도는 북방지역(중국, 러시아, 몽골)뿐만 아니라 장차 남쪽으로 일본열도와도 연결되어 동북아 일대를 신천지로 변모시켜놓을 것이라는 그 ‘믿음’을 실현하는 첫 단계가 되어준 셈이다.
그러나 이 믿음을 온전한 실체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결국 한·일 해저터널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지금까지 양국 정부와 연구기관에서 논의된 한·일 해저터널 노선은 3개 안으로 압축돼 있다.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쓰시마 아랫섬-경남 거제시(209㎞), 일본 가라쓰-쓰시마 윗섬-경남 거제시(217㎞), 일본 가라쓰-쓰시마-부산(231㎞) 등 노선이다. 이는 그동안 해저터널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해왔던 일본 측 연구결과를 기초한 것이다. 터널의 길이는 영국-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 50.54㎞의 4배가 넘어 이 터널이 만들어질 경우 해저터널 중 세계 최장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들 3개 노선은 서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 먼저 쓰시마 하도(下島)를 거쳐 거제도로 가는 노선은 거리는 가장 짧지만 바다 밑으로 가는 거리가 가장 길다. 쓰시마 상도(上島)를 거쳐 거제도로 가는 노선은 쓰시마를 횡단하는 것 외엔 첫 번째 노선과 같다. 마지막으로 부산으로 연결되는 안은 노선이 비교적 직선이지만 가장 길고 지진대를 지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KTX와 직결되므로 물류 연결성 및 효율성이 좋고 경제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해저(海底) 부분이 128㎞로 다른 안에 비해 20㎞ 가까이 짧다. 공사비는 60조-100조원, 공사기간은 15-20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공사비 약 14조원, 공사기간 6년이었던 유로터널에 비해 공사비는 5배, 공사기간은 3배가 넘는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의 동남경제권과 일본의 서남부해안의 경제권은 9세기 신라시대 장보고 선단이 양국의 해상무역을 장악하면서 하나의 영역으로 경영했던 곳이었다. 당시 장보고 선단은 부산항에서 쓰시마항을 거쳐 하카다-카라츠-나가사키-다자이부 로 통했고 경주의 외항인 울산, 감포, 포항을 거쳐 돗토리현, 시네마현으로 연결하는 항로를 개척했다. 특히 외국 문물의 집적지였던 기타 큐슈의 다자이부太宰府 를 통해 한반도의 생산물은 물론 중국과 중동의 선진문물을 수출하고 일본의 황금과 명주 그리고 무명을 수입하면서 한일해협권의 경제협력을 계속해온 바 있다.

그러나 한일해저터널건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양국간에 다양한 의견교환과 연구조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타당성이 주 논란거리다. 한국해양대 박진희 물류시스템학과 교수는 일본에서 대륙으로 수송되는 물동량의 통과료만 챙겨도 ‘남는 장사’라며 적극 추진을 요구한 바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부산-오사카 간 물류 비용이 현재는 컨테이너 1개(20피트 기준)당 665달러지만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472달러로 거의 30% 절감된다. 또한 해저터널 건설에 의한 성장잠재력 증가율은 일본의 경우 5% 이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9~150%(*확인요망)일 정도로 상당히 잠재력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2002년 여름에 건설교통부의 요구로 교통개발연구원이 `한일 해저터널의 필요성 연구’라는 제목으로 타당성조사를 한 바 있는데 당시 언론이 보도한 그 최종보고서의 결론은 대략 이러했다.

 부산에서 일본의 쓰시마(대마도)를 거쳐 큐슈지방을 연결하는 한일해저터널 건설의 타당성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이 최종보고서에서 연구원측은 거제도(A,B안)와 부산(C안) 등을 출발하는 3가지 노선 안을 검토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원측은 한중일 교역량, 세계 및 동북아 컨테이너–항만–항공 물동량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노선이 짧은 A안(230km, 공사비 34조원)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지적했으나 ‘거제지역에 대한 철도 인입에 문제가 있는 등 모든 노선이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일 양국 간에 해저터널건설에 관한 담론이 시작된 건 꽤 오래전부터다. 양국 수뇌차원에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고갔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해저터널에 관한 담론이 이렇게 부정적인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무척이나 해묵은 이유로서 한일해저터널에 관한 최초의 담론이 1940년대 일본이 대동아공영 실현 계획의 하나로 구상했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한일해저터널이 마치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붙어있는 시나리오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두 번째는, 결과적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대륙으로 연결시키는 경유지로 전락하고 실익은 종착점이 있는 일본이 다 챙기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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