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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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3 (이승률12)
2007년 04월 25일 17시 15분  조회:2192  추천:88  작성자: 이승률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Ⅲ.

일본의 큐슈지방은 면적이 네덜란드와 비슷하고 소득수준(GDP)도 비슷해서 여러 면에서 비교대상이 될 만하다. 역사적으로도 1860년대 일본 개화기 때 큐슈지역이 일본열도 가운데서 가장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때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교류가 가장 빈번했으며, 나가사키 항이 그 대표적인 무역항이었다. 당시 도쿄를 중심으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하여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앞세워 일본 천황을 실질적인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삼고, 부국강병론과 함께 「탈아입구(脫亞入歐)」설을 주창하며 명치유신(明治維新)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대의 위업을 이룬 인물들의 대부분 출신 지역이 큐슈지방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7세기부터 오랜 기간 동안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무역을 통하여 축적된 선진문명의 지식과 기술과 부와 자산이 그들 개화파의 입지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때 형성된 부국강병을 위한 중상주의 정경유착 정책과 군국주의적 국수주의가 마침내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일본제국사 흥망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경유착과 국수주의적 전통이 지금까지도 일본 정치와 국론을 지배하고 있는 힘의 근간이 되고 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나는 이런 상식을 기초로 하여 이시이 회장께서 들려주신 유럽-아시아 대륙간 철도대장정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경청하였다.

1980년대 말 일본 국철이 민영화된 이후 큐슈철도공사와 네덜란드 철도국간에 더욱 밀접한 교류가 있었는데, 마침 2000년도가 양국간 교류 400주년이 되는 해 임을 상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양국 철도관계자들이 모여 큰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9월과 10월 사이에 네덜란드 행정수도인 덴하그(영어로는 The Hague)에서 출발한 열차가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지역(사마르칸트, 타쉬켄트, 알마티, 키르키스탄 수도 등)을 거쳐 중국 북경역에 도착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실행하게 되었다.

도합 11개 국가를 거치면서 24일간이나 걸린 이 철도여행은 침대칸이 딸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였으며, 여행 참가인원은 일본인 60명, 네덜란드인 40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이 기념행사는 개인이 200만엔(¥)의 경비를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5:1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유럽, 중국(표준궤)과 러시아, CIS국가(광궤) 간에 철로 폭이 달라 도중에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이 국제간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무난히 성공시킨 양국 철도청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했으나, 그 다음해인 2001년도에 영국에서 열차테러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큐슈철도공사의 자문역으로 이 행사에 깊이 관여했던 이시이 회장은 지금까지 중단되어있는 일본-네덜란드 간 철도교류업무를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 후 틈만 나면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에 관한 여론을 주의 깊게 관찰해온 그는, 일본 열도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신 실크로드 철도 대장정”을 한 번도 잊지 않고 꿈꾸면서 지내왔노라고 회고하였다. 미간에 못다한 꿈을 그리는 노장의 연민에 가득 찬 감정이 일순 지나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좀 굳은 표정으로 상대방을 직시하자 그는 금세 분위기를 바꿔 유쾌하게 웃으면서, 최근 후쿠오카와 부산 간에 운행되고 있는 쾌속선(제트포일)사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큐슈 철도청장직을 퇴임한 후 곧바로 이 쾌속선 항운사의 초대 사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1987년 당시 초기에 배 한척으로 시작했던 쾌속선 사업이 이제는 본격화되어 7척의 배가 매일 8회 왕복 운행하는 황금노선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몹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시이 회장의 말을 빌리면, 부산과 후쿠오카는 이미 1일 생활권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부산 여성들이 후쿠오카 텐진(天神)에 떼 지어 쇼핑하러 몰려오고, 후쿠오카 직장인들도 생일이 되면 아침 8시에 출발, 2시간 50분 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점심때 갈비를 먹고 오후에는 쇼핑한 후 자갈치 시장이나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코스가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덧붙여 그는 한일간에 해저터널이 건설되어 철도와 차량이 자유왕래하기 전까지는 부산-후쿠오카 구간에서는 비행기보다 오히려 쾌속선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년간 60만명 수준의 여객이 이용했으며, 이제 몇 년 안가서 100만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시이 회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부산과 후쿠오카 간, 아니 한국과 일본의 지역 항만도시 간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1일 생활문화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사실에 그저 놀랍기만 했다. 또한 동북아연합의 새 시대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조짐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많은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다. 부산과 후쿠오카 간의 이 항로는 옛날 고대인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이용했던 ‘도래인(渡來人)’들의 항로가 아니었던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의 길목에서 부산-후쿠오카 간의 항로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잇는 첩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 나는 깊은 감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면 이 길이 언젠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일본 열도와 한반도 전체가 한 몸이 되어 국가간 통합시장경제공동체로 거듭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감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그리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어떠한 역사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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